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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딩동
작품등록일 :
2024.09.10 13:08
최근연재일 :
20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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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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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브의 장인

DUMMY




최익현 감독의 촬영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는 자연스러운 미장센을 추구하면서 주로 원 테이크로 촬영하는 걸로 유명했다. 게다가 최소한의 대본조차 현장에서 바뀌기 일쑤였으니, 참 정신이 없었다.


“와, 벙어리다! 거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 엄마가 가까이 가면 병 옮는댔어!”


지금 선철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들은 급조한 아역이었다. 선철은 날아오는 돌을 팔로 막아내며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씬이었다.


“너무 괴롭히지 말자, 불쌍하잖아.”

“어차피 벙어린데 누구한테 이를 거야?”


시대가 변해서 그런지 아역들이 하나같이 프로 냄새가 났다. 그러나 최 감독은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바로 커트를 외쳤다.


“애들이 너무 애들 같지가 않아.”


최 감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선철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도 그림이 별로고.”


그 그림을 지시한 게 누군데.

유한은 애써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최 감독은 본래 현장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촬영 초반엔 그런 일이 없어서 소문이었나 싶었지만, 역시 이 바닥에 완전히 사실이 아닌 소문은 없었다.


“선철이 애드립으로 어떻게 안 되려나?”


그 말에 유한이 긴장했다.

애드리브이야 당연히 가능했지만, 세계적 영화제에 초청되는 작품에서 멋대로 애드리브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메인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

이제는 상황을 보면 시스템이 어찌 반응할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메인 퀘스트 : 애드리브의 장인.]

[촬영 중 애드리브로 오케이를 받아낸다.]

[보상 : 능력치 ‘전달력’ 업그레이드.]


시스템이 정확히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 전달력이 가장 낮은 능력치이자 가장 필요한 능력치였다.

본래 ‘씬 스틸러’ 메인 퀘스트에서도 보상이 전달력 업그레이드였으니 시스템 나름의 판단이나 기준이 있는 모양이었다.


“유한이 이리 와봐.”

“예, 감독님.”


더 길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최 감독이 유한을 모니터 뒤로 불렀다.


“지금 배경은 외딴 마을인데······ 애들이 너무 튀지 않아?”


확실히 훈련받은 아역들이라 그런지 분장해도 외딴 시골 마을의 아이들 같진 않았다.

게다가 정확히 교육받은 훌륭한 딕션까지 더해지니 더욱 분위기가 안 살긴 했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뛰어난 아역이라고 칭찬받았을 텐데, 하필 최 감독의 작품이라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생각 있어?”


최 감독은 현장의 소리를 잘 듣는 걸로 유명했다. 그걸 조금만 비틀면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스타일이란 뜻이다.


“분장으로 케어가 될 수준이 아니야. 저게 어딜 봐서 시골 애들이냐고.”


기획도 캐스팅도 유한이 한 건 아닌데 대책을 내놓으라니 황당하긴 했다.


“저······.”


하지만 유한은 앞으로 얼마나 사소한 기회라도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그가 대학로의 연극 오디션에 마음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역들은 뒷모습만 나오는 게 어떨까요?”

“뒷모습?”

“의상은 괜찮으니까, 뒷모습만 나오면 그림이 영 뜨진 않을 것 같은데요.”

“선철이 아이들한테도 구박받는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뒷모습으로 되겠어?”


음, 유한이 묘한 소리를 흘렸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대로 말해도 되는지 고민이 되었다.


“뭐든 좋으니, 의견 있으면 내봐.”

“그럼, 감독님······ 이번엔 애들 뒷모습만 나오게 잡아주시고 제가 애드리브 한번 해보겠습니다.”


시스템이 내주는 퀘스트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유한은 퀘스트에 너무 집착하진 않되 되도록 주어진 길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애드리브? 뭐······ 자신 있으면 해봐, 어디.”


역시 이 순간이 가장 떨린다.

유한은 다시 카메라 앞에 서서 아역들을 마주 봤다. 올망졸망한 얼굴들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덕분에 머리를 스치는 사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뛰게 하면 웃는다.’


이건 아역을 쓸 때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아이들에게 뛰라고 지시하면 반드시 웃는 아이들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요즘 세상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겁을 줄 수도 없으니 최 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뛰다가 웃는 아이가 나와도 되는 장면이라면?

그래서 최 감독이 만족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닌가.


‘해보자.’


유한은 아역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아역이 다섯이나 되니, 저 중 누군가는 분명 뛰기 시작하면 웃을 거다. 그리고 그 웃음엔 전염력이 있어서 제작진들의 골치를 썩이겠지.

하지만, 유한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준비 됐습니다.”


넝마를 입은 유한이 카메라 앞엣허 말하자 최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 투, 쓰리, 슛!”


대본대로 유한이 마을 어귀를 절뚝이며 달려가자 아이들이 뛰어 오면서 소품인 돌을 던졌다.


“벙어리다! 거지!”


아역 중 제일 비중이 높은 아이가 대사를 소화했다. 그러나 이미 달리기 시작하자 아이들 얼굴에 웃음기가 서리고 있었다. 다행히 카메라는 아이들의 뒷모습만 찍고 있었다.


“너무 괴롭히지 말자, 불쌍하잖아.”

“어차피 벙어린데 누구한테 이를 거야?”


아역들이 정해진대로 선철에게 다시 돌을 던졌다. 본래 대본에선 선철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며 도망치기 바빠야 했다.

하지만 유한은 그 순간, 홱 돌아서며 아역들을 향했다.


“우······ 우!”


유한이 몸을 움츠리는 것과 동시에 한 팔을 들어 아이들을 위협했다. 그러자 놀란 아역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쳐버렸다.


“오케이, 컷!”


최 감독의 시원한 목소리가 메가폰으로 터져나왔다. 동시에 유한의 속도 시원해졌다.


[메인 퀘스트 : 애드리브의 장인.]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능력치 ‘전달력’이 C-가 되었습니다.]


성공했다.

이번 애드리브가 먹힌 것이다.


“잘했어! 유한이 이리 와봐.”

“네, 감독님.”


카메라로 가는 길에 보니, 아역들이 엄마 품에서 울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울려서 미안했지만, 무의미한 촬영을 반복하는 것보단 나았으리라.


“이것 봐······ 캬, 그림 좋다.”


카메라에 찍힌 씬에서 아이들은 뒷모습만 보이다가 유한이 겁을 주자 놀라서 울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감정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도저히 연기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이건 대본에 없던 일이고 아역들이 실제로 놀란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상대는 애들이니까, 선철이 욱하는 마음이 들 수 있지. 벙어리라고 팔을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잘했어, 아주.”

“감사합니다. 선철이도 애들 상대로 너무 당하기만 하진 않을 것 같아서······.”

“이 정도 반항은 가능하지. 게다가 애들이 진짜 놀라서 우는 바람에 요새 아역 같지 않고 실감이 확 나.”


이번 애드리브는 완전히 즉흥적인 게 아니었다. 유한은 아역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최 감독의 성향상 요즘 공장에서 찍어내듯 하는 훌륭한 아역의 모습을 싫어한다는 걸 캐치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조합한 결과 오늘의 애드리브 씬이 나온 것이다.


“그나저나 애들을 놀래킨 거 같아서 좀 그러네요······.”

“종일 찍는 거 보단 훨씬 나아. 봐, 벌써 다들 그쳤지.”


최 감독의 말에 아역들 쪽을 보자 다들 엄마의 달램에 진정이 된 모습이었다.


“정 안 되면 엄마들한테 욕 좀 먹더라도 내가 울리려고 했는데, 아주 잘했어.”


애들을 울렸다고 칭찬받다니.

유한은 기분이 묘했지만, 최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역 출신이라 그런지, 아역을 잘 다루네.”

“아닙니다. 저도 어릴 때 미숙했던 기억이 나서요.”

“그래. 아역이랑 동물만큼 힘든 게 없어.”


유한은 새삼 자신의 아역 시절을 떠올려 봤다. 단지 또래보다 더 성숙했고 엄마인 미희가 혹독하게 다룬 턱에 감독들의 취향을 맞춰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고 보면 유한이 잘나갔던 건 연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다루기 좋은 아역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보다, 선철이가 오디션 때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확실히 유한은 오디션 이후로 능력치 몇을 올렸다. 그게 바로 체감이 될 정도라니 역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아닙니다.”

“겸손은 됐어. 가끔 보면 작품하는 중에 성장하는 배우도 있으니까.”


최 감독이 보기엔 유한도 그런 과였다. 그의 커리어를 보면 참으로 의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유한이 주말 드라마의 뻔한 역할만 반복하며 이미지를 소비했다니, 그야말로 갯벌에 처박힌 진주가 아닌가.


“솔직히 우리 현장은 쪽대본이 난무해서 적응하기 어려워질 줄 알았는데.”


최 감독이 본심을 꺼냈다.

그가 유한을 캐스팅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오디션에서의 자유연기였다. 최 감독의 특성상 즉흥적인 연출이나 촬영이 많았기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본 것이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유한은 현장에서 바로 쪽대본을 받고도 순식간에 그걸 읽고 체득해서 카메라 앞에 섰다.

스킬 <속독>의 위력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최 감독으로선 대단한 배우의 재능을 하나 발견한 셈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한이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담백한 태도도 최 감독의 마음에 들었다.

최근 한류스타랍시고 까탈을 부리는 배우도 많았는데 유한은 경력치고 무척 소탈한 편이었다.

물론 유한의 나름대로 긴 슬럼프를 겪으면서 무뎌진 것이겠지만, 모두가 슬럼프에서 새로운 빛을 찾지 못하는 걸 생각하면 대견한 일이었다.


“다음에 태욱이랑 붙는 씬인데, 자신 있어?”


유한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것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직하니, 최 감독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었다.


“씁······ 대본을 좀 고치고 싶은데.”

“네?”

“아니. 아까 선철이의 모습을 보니, 이따 주인공이랑 붙는 씬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줘도 맛있을 거 같아.”


최 감독의 눈이 반짝 빛났다.

더는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유한의 감각도 날카롭게 빛났다. 바로, 시스템이 떠오를 타이밍이었다.


[에픽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뜻밖의 말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유한은 아직도 자신보다 능력치 종류 자체가 많았던 태욱의 스탯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앞으로 유한이 가질 수도 있는 능력치란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 잠긴 능력치를 풀 수 있는 에픽 퀘스트의 출현이 너무도 반가웠다.


[에픽 퀘스트 : 진정한 뮤즈란 무엇인가.]

[감독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자신만의 씬을 촬영하라.]

[보상 : 능력치 ‘카리스마’ 해금.]


두근.

카리스마란 네 글자에 유한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타인을 제압하는 자신만의 카리스마는 배우에게 꼭 필요한 재능이 아닌가.


‘이번 퀘스트······ 반드시 성공해야해.’


유한이 속으로 결심을 다졌다.

그러나 씬 스틸러 퀘스트 때와는 달리 서두르거나 조바심은 내지 않는 채였다. 그러고 보면 반드시 시스템의 성장만이 성장은 아니었다. 유한은 시스템과 함께 성장해 나가며 한 인간으로서도 점점 커나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잃어버린 9년을 보낸 유한에게는 모든 순간순간이 전부 짜릿할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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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제목변경 : 무한 퀘스트로 괴물배우 ▶ 알고보니 우주 대스타 24.09.18 7 0 -
» 애드리브의 장인 NEW 11시간 전 9 0 12쪽
11 돌려 받은 조언 24.09.18 14 0 11쪽
10 다짐 24.09.17 14 0 11쪽
9 묵언수행 24.09.16 19 0 12쪽
8 거장의 관심 24.09.16 19 0 12쪽
7 다시, 한 걸음 24.09.15 22 0 12쪽
6 청년과 노인 24.09.14 25 0 12쪽
5 계약의 조건 24.09.13 31 1 12쪽
4 돌멩이의 가능성 24.09.12 37 2 12쪽
3 아닌 밤중에 홍두깨 24.09.11 40 2 12쪽
2 은하의 영웅 24.09.10 51 3 15쪽
1 우주에서 온 시스템 24.09.10 7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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