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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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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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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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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받은 조언

DUMMY





신태욱의 촬영은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유한은 카메라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그의 대사가 또렷하게 현장을 울렸다. 원 테이크를 선호한다는 최익현 감독은 벌써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 마을엔 분명 뭔가가 있어.”


지금의 신태욱은 국민 남자 친구가 아닌, 좁은 마을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비밀을 찾아가는 민훈이었다.


“그것도 절대······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비밀이.”


태욱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오케이 사인이 날아들었다.


“오케이, 커트!”


오늘 촬영분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저마다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나자 다시 태욱이 유한에게 다가왔다.


“가자, 내가 아는 가게가 있어.”


그 말에 유한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나섰다. 현재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신태욱이 아는 가게가 어디인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여기가 내 최고 단골집이야.”


태욱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군가 반기며 나왔다.


“태욱이 왔어?”

“네, 이모. 적당히 섞어서 주세요. 소주랑요.”

“그래, 알았어.”


가게엔 사람이 별로 없었고 태욱은 유한과 초라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곧 어묵탕과 떡볶이 같은 분식들이 적절히 섞여서 나왔다.


“표정이 왜 그래?”

“아니. 너 같은 톱스타는 어디 미슐랭이라도 다니는 줄 알았지.”

“여기가 제일 마음이 편해.”


씩 웃는 태욱을 보자 그제야 유한이 어릴 때 알던 그처럼 느껴졌다.


“나도 여기가 편하네.”


사실 태욱이 술 한잔하자고 했을 때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런 자리라면 허심탄회하게 속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한의 상태창이 변화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이건 유한이 태욱과 술 한잔을 기울이기 시작한 상황에 맞춰서 나타난 퀘스트이리라.


[메인 퀘스트 : 조언을 구해라.]

[동료에게 연기 조언을 구해라.]

[보상 : 능력치 ‘이입력’ 업그레이드.]


하필 보상은 씬 스틸러 퀘스트와 같은 이입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한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연기력만 쭉쭉 올리고 싶었지만, 막상 현장다운 현장에 다시 서보니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만일 유한이 온전하게 선철의 역할에 이입했다면 촬영은 순탄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널 만나니까 진짜 세월이 많이 흘렀단 게 느껴진다.”


태욱이 유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유한도 술병을 받아 태욱의 잔을 채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간단히 건배하곤 그 잔을 비워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봐도······.”

“피차 잘 알고 있잖아.”


둘은 배우였다.

서로 작품에 출연하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 근황을 묻는 건 우스운 일이다.


“솔직히 네가 연극 무대까지 설 줄은 몰랐다.”

“좋은 경험이었어. 덕분에 최 감독님에게 캐스팅도 됐고.”


유한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과거의 자신은 태욱보다 훨씬 주목받는 스타였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태욱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최 감독님은 선철 역의 캐스팅을 엄청나게 고심하셨어. 너한테 그럴 자격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둘이 또 술 한잔을 비웠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인생은 역시 살아봐야 아는 건가 봐.”


유한은 태욱의 기억대로 담담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다른 아역을 챙기며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던 그 이유한이었다.


“너,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렇게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유한이 머쓱하게 웃었다.

한때 모든 조명을 받던 유한과 태욱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뀐 채였다.


“아니. 넌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야.”


태욱의 한마디가 유한의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어쩌면 그 말이야말로 유한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그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성장이 없어도, 계속 추락하기만 해도 진짜 자신은 빛나던 시절과 변함이 없다고.

이건 어쩌면 유한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태욱에게 연기 조언을 구할 수는 없었다. 자존심 문제를 떠나서 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있으니 입을 떼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유한이 연기하는 선철은 주인공인 태욱과 완전히 대척점에 선 캐릭터가 아닌가.


“솔직히 아까 촬영에서 놀랐어. 내가 대본에서 봤던 선철이 그대로 보였거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기복이 좀 있는 것 같더라.”


태욱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유한은 망설이다가 그를 똑바로 보았다.


“아까 커트가 났을 때, 왜 그랬다고 생각해?”

“감독님께 들었잖아.”

“그건 알아. 하지만 난 그 후에 오케이가 난 게 더 이해할 수 없었어.”

“흠······.”


태욱이 잔을 비우더니 말끝을 흐렸다.


“내가 보기에 넌 오늘 선철이란 캐릭터엔 완전히 이입했는데도, 나와 붙는 씬에선 눈빛이 달랐어.”


역시.

오늘의 실패는 퀘스트에 너무 집착한 결과였다.

무조건 씬 스틸러가 되겠다는 생각에 선철의 캐릭터성을 잠시 잊고 만 탓이었다.


“만일······.”


유한이 어렵게 입을 뗐다.


“만일, 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이건 꼭 퀘스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촬영을 위해서 묻고 싶은 말이었다.


“옛날에 네가 내게 해준 조언 생각나?”


그 말에 유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넌 잊어버렸겠지. 하지만, 내 연기 인생에서 조언해 준 건 네가 최초였거든.”


무슨 말이지.

태욱과 함께 촬영한 시절은 그야말로 어렸던 아역 시절뿐인데.


“현장에서 얼어있던 내게 네가 말했잖아.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라고.”

“아······ 그런 말은 누구나······.”

“누구나가 아니라 내 상대역인 네가 해준 말이라서 의미가 있었던 거야.”


달칵, 태욱이 잔을 내려놨다.


“그 조언, 오늘은 내가 돌려주고 싶다.”

“뭐?”

“아역 시절엔 아무것도 몰라서 힘들었다면 지금은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 거야.”


그건 태욱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니 단순하게 생각하자. 우리 어렸을 때, 바로 그때처럼.”


거짓말처럼 유한의 머릿속이 정리되고 있었다.


“너는 그 누구도 의식할 필요 없어. 네가 판단한 선철답게 움직이면 돼.”


순간, 유한의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메인 퀘스트 : 조언을 구해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능력치 ‘이입력’이 C-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입맛은 썼다. 이건 유한이 노력해서 쟁취한 퀘스트가 아니라 순전히 태욱의 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한이 무언가를 가릴 때는 아니었다. 당장 부족했던 이입력이 C 등급으로 올랐단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맙다.”


유한이 진심을 담아 태욱에게 말했다.


“덕분에 머리가 명쾌해졌어.”

“아니, 난 어릴 때의 빚을 갚은 것뿐이야.”


태욱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사이엔 아무런 빚도 없는 거야.”


유한은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는데 태욱에겐 과거의 기억이 그리 중요했나 보다. 하긴, 어떤 승부든 이긴 사람은 쉽게 잊어도 진 사람은 그럴 수 없는 법이다.


“그래.”


유한의 대답 한 번에 태욱의 얼굴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해묵은 감정을 떨친다는 건 그만큼 개운한 일이었다.


“내일 촬영분은 없는데, 네 촬영 보러 가도 돼?”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러냐.”


태욱이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우린 이미 한 작품을 찍고 있는데, 촬영분이 뭐가 중요해.”


유한이 바라마지 않던 탑스타 자리에 앉은 태욱은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호탕했다.

그 모습에 유한은 시스템이 분석해준 태욱의 상태창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 생각하면 아직 태욱과 유한의 차이는 까마득했다.

하지만 그 차이에 화가 나거나 마냥 부럽다는 감정 외에 가슴 속 무언가가 불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성장을 계속해서 언젠가는 태욱처럼 멋진 상태창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



그날 밤, 유한은 가슴이 뛰어서 좀처럼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입맛이 쓰긴 했지만, 오늘도 능력치인 이입력을 C급으로 끌어올렸다. 어서 카메라 앞에 서서 그 효과를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신태욱······.”


만약 촬영장에서 태욱을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떨까.

낮에는 커피 광고에 밤에는 맥주 광고, 온갖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된 태욱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상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한의 모든 상상은 빗나갔다.


“너무 멋진 자식이잖아.”


유한이 팔을 들어 눈을 덮었다.

태욱은 과거의 열등감을 잊고 훌륭한 배우이자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차이가 너무도 커서 감히 질투조차 나질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를 따라잡고 말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시스템을 얻고 나서 뭐든 마음대로 술술 풀릴 줄 알았지만, 성장이란 과정이 필요한 법이었다.

유한은 오늘 태욱을 통해 그걸 배웠다. 어쩌면 배우로서 자질은 상태창의 알파벳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변해야 해.”


앞으로도 여전히 시스템을 따라가겠지만, 오늘처럼 시스템 때문에 흔들리진 않아야 한다.


“시스템.”

[예.]

“오늘 밤은 어떤 알림도 보내지 말아줘.”

[알겠습니다.]


유한은 시스템을 얻은 후 처음으로 혼자만의 밤을 맞이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그의 안에서 찰랑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제야 다시 경기장에 선 거야.’


유한은 잃어버린 9년을 지우기로 했다. 그로 인한 억울함도 서러움도 지금은 필요치 않은 감정이었다.


‘그러니 난, 지금의 경기에만 집중하면 돼.’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유한에게는 다시 성장할 수 있는 현재와 그 성장으로 일어날 미래가 더 중요했다.


‘시스템은 만능이 아니라 페이스 메이커 같은 거였어.’


처음에 시스템을 만났을 땐 모든 게 너무도 마법 같았다. 하지만 태욱의 스탯을 알고 나자 깨달음이 생겼다.


‘신태욱은 시스템 없이도 나보다 훨씬 많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지.’


유한은 모종의 이유로 9년간 성장이 멈췄을 뿐, 다른 이들은 시스템이나 상태창 없이 지금의 유한과 같은 성장을 거쳐왔다는 방증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도 정신을 차려야하는 것도 나야.’


유한은 잠시나마 너무 시스템에 의존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을 일찍 얻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오늘 씬 스틸러 퀘스트에 욕심을 냈다가 실패한 덕분에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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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려 받은 조언 24.09.18 14 0 11쪽
10 다짐 24.09.17 14 0 11쪽
9 묵언수행 24.09.16 18 0 12쪽
8 거장의 관심 24.09.16 19 0 12쪽
7 다시, 한 걸음 24.09.15 21 0 12쪽
6 청년과 노인 24.09.14 25 0 12쪽
5 계약의 조건 24.09.13 31 1 12쪽
4 돌멩이의 가능성 24.09.12 37 2 12쪽
3 아닌 밤중에 홍두깨 24.09.11 40 2 12쪽
2 은하의 영웅 24.09.10 51 3 15쪽
1 우주에서 온 시스템 24.09.10 7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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