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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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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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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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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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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홍두깨

DUMMY

다행히 오늘은 유한이 찍는 장면이 먼저였다.

그게 아니라면 현장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유한의 역할은 주인공들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생뚱맞게 끼어드는 옆집 사람이었다.

그는 일부러 입고 왔던 후줄근한 옷을 그대로 입고 세트장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주시현이 발간 얼굴로 나와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옆집인데······ 죄송하지만, 설탕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이게 유한이 가진 대사의 전부였다.

평소라면 현장에 도착해서 읽어보고 바로 들어가도 되는 씬이다.

하지만, 유한은 이미 속독을 개방하기 위해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 덕분인지 지금 자신이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1미리의 오차도 없이 잘 알 수 있었다.


“컷! 시현이 왜 대사 안 해?”


감독의 외침에 유한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대사를 놓친 건 자신이 아니라 시현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시현이 인사하고 다시 슛이 떨어졌다.

혹시, 여기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유한은 퀘스트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저, 옆집인데······ 죄송하지만, 설탕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유한이 물끄러미 시현을 바라봤다. 온 연기력을 다 쏟아부은 1초였다.


“서, 설탕이요? 잠, 잠시만······.”


주연인 시현이 말을 더듬자 바로 커트 소리가 날아들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도 스탭들도 다 이상하단 눈치였지만, 어찌 됐든 촬영은 계속되어야 했다.


“잠깐 쉬었다 가지.”


이런 간단한 씬에서 두 번이나 실수를 저지를 시현이 아니었다.

감독은 다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잠시 휴식을 선포했다.


“왜, 오늘 컨디션 안 좋아?”

“아닙니다. 그냥······ 러브 씬 중간에 끊기는 장면이라 좀······.”


시현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진짜 이웃이 찾아온 거 같기도 해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 뭐지? 갑자기 제 머릿속이 확 하얘지는 거 같아서.”


그 말에 감독의 시선이 유한을 향했다.

단 세 마디, 하찮은 대사였으나 시현의 말처럼 정말 현실에서 튀어나온 인물 그 자체였다.

이른바 씬 스틸러라는 것이다.


“거기, 이리 좀 와봐.”


감독에게 부름을 받는 게 얼마 만일까.

유한은 떨리는 마음으로 감독 앞에 섰다.

괜히 주연의 컨디션을 망쳤다고 쫓겨나도 할 말은 없었다.


“뭐야, 세 마디 대사에 영혼이라도 갈았어?”


그 비슷한 건 갈아 넣은 것 같았다. 속독은 단지 빨리 읽는 기술만이 아니라 대본 자체를 집어삼키는 집중력을 주었다.


“저······ 감독님.”


유한이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최악의 경우 여기서 잘릴 수도 있지만, 어차피 세 마디짜리 단역이 아닌가.


“대본상, 주인공들이 집에서 러브씬을 나누다가 제 등장으로 방해를 받게 된 건데······ 솔직히 요즘 이웃한테 뭘 빌리는 것도 어색하고······ 차라리 제가 불이 났다고 소리라도 지르는 게 어떨까요?”


감히 두 마디짜리 조연이 대본을 바꾸자고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쌍욕을 퍼부었겠지만, 오늘은 운이 좋게도 유한이 아역 시절 촬영 감독이었던 사람이 총 감독이었다.

즉, 유한의 리즈 시절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면 주시현 씨는 안 나와도 되니 러브씬이 끊기는 감정선만 유지하면 되고 저는 불이 났다고 문만 두드리고 퇴장하면 될 거 같아서요.”


발칙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특히 이번 회차를 전반적으로 봤을 때 포인트가 부족했는데 화재 에피소드를 더하면 생동감이 살아날 것 같았다.


“자신 있어?”

“···네, 저 자신 있습니다.”


늘 처진 어깨로 촬영장을 다니던 유한이 어쩐 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감독은 그 눈빛에 한 씬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럼, 애드리브로 해봐. 시현이는 여기서 나랑 모니터하고.”

“예!”


유한이 씩씩하게 답하고 다시 세트에 섰다.

지금 모든 조명과 장비는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과거처럼 말이다.

그럼,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아파트의 어느 집에서 불이 났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유한은 미리 신발을 벗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준비됐습니다.”

“그럼, 슛!”


탈칵, 슬레이트 소리가 나기 무섭게 유한이 맨발로 앞집에 가서 문을 쿵쿵 두드렸다.


“불이요! 불났어요!”


본래 역할은 여기서 끝이어야 했다.

하지만 유한은 팔꿈치를 접고 그 안에 코와 입을 파묻은 채 어리바리 낮은 자세로 엉거주춤 계단으로 내려갔다.


“컷!”


유한이 더 내려갈 계단 세트가 없어 멈추자, 감독이 컷 사인을 냈다.


“오케이, 괜찮네. 연기는 이따 CG팀에 말하면 되고. 그럼 주인공들 러브 씬도 더 급박하게 끊기니까.”


휴우, 그 말에 유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한이 아직 안 죽었네.”


무심한 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유한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픽 퀘스트 : 인정을 받아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능력치 ‘이입력’ 성장이 해금되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뛰었다.

계속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서 서 있던 기분이었는데 멀리서나마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설마 대본을 다 본 거냐?”

“예.”


고작 세 마디짜리 단역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작품에 대해 이해가 깊다면 대본을 한 두 번 본 정도가 아니었다.


“저도 괜찮던데요.”


감독 뒤에서 30대 여자가 나와서 도도하게 말했다.

유한은 뒤늦게 그녀가 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꾸벅 폴더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 멋대로 대본을 바꿔서 정말 죄송······.”

“아뇨, 뭐 현장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작가가 보조 작가 두어 명과 무어라 두런거렸다.


“지금 주인공들이 러브씬만 가지려고 하면 방해가 나온다는 설정인데, 우연이 계속 겹치면 또 이상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차라리 앞집 남자 혼자서 꾸준히 빌런이 되는 건 어떨까요?”


확실히 주인공들이 사랑만 하려고 하면 무슨 사소한 일이 터져서 아쉽게 끊기곤 했다.

이 작가의 유명한 절단 신공인데, 대본에서도 갖가지 방해가 나오곤 했다.


“아예 앞집 남자를 빌런으로 만들고 오늘처럼 불이 났다거나 지진이 났다거나 외계인이 쳐들어왔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일관적인 방해를 하는 거죠.”


외계인에서 뜨끔했던 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작품의 작가라 그런지 이해가 뛰어났다.


“만일 옆집 남자가 정신에 약간 문제가 있거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면 꼭 불이 진짜로 나거나 연기가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유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러브 씬을 잘라먹는 방해꾼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방해만 하면 되지, 모든 게 진짜일 필요는 없었다.


“오······ 그거 괜찮은데요? 앞으로 이런 에피소드 뽑을 때 종종 사용해도 되고.”


작가의 긍정에 유한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을 열심히 보셨나 봐요.”

“아, 예······ 너무 재밌어서 몇 번이나 몰입해서 봤더니······.”


유한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긁으며 말했다.

그러자 작가는 싱긋 웃더니 보조 작가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때, 감독이 유한을 찾아왔다.


“이유한, 오늘 좀 치는데?”

“네?”

“방금 작가가 앞으로 널 고정 빌런으로 쓰겠다고 설정도 새로 해준단다.”


설마했던 예감이 맞았다.


“그럼, 저 또 나올 수 있는 겁니까?”

“그래. 저 작가 특기가 절단 신공인데, 마침 네 역할이 쓰기 편했나 봐.”


확실히 매번 러브 씬을 끊어놓을 변명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건 대본을 너덜너덜하게 만들면서 유한도 느낀 점이었다.

하지만 빌런을 한 명으로 만들면 그런 수고가 줄어들면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제법이다.”


감독이 유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들 네가 감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오늘 보니 확실히 아니네. 이유한이 아직 살아 있어.”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유한이 여태 지나오던 터널 속에선 이런 격려의 한마디조차 없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한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날, 유한은 새로운 대본을 받아볼 수 있었다.

‘옆집 남자’가 아닌 ‘홍두깨’라는 이름이 새로 붙은 대본이었다.

그리고 홍두깨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엔 볼펜으로 메모가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느낌으로.’


이건 작가의 코멘트였다.

유한은 단 세 마디짜리 조연에서 이름이 생기고 작가의 관심까지 얻게 된 것이다.


“꿈은······ 아니겠지?”


유한이 볼을 꼬집었다. 그러자 눈물이 찔끔 나게 아팠다.

다시 현장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날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체념했던 터였다.

그런데 꿈보다 더 꿈같은 일을 겪고 났더니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터널이 얼마나 긴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끝에 확실히 빛이 있다는 믿음이 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상태창.”


유한의 말에 다시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또한 꿈이 아니라는 게 확실했다.

어찌 보면 터널 속에서 빛을 보게 해 준 유일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이게 내 마지막 기회일까.”


남자 배우가 29세면 이제 막 전성기가 시작될 때다.

그래, 비록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정신 나간 소리 같은 일이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상태창. 그럼, 난 이제 멈췄던 성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현재 해금된 ‘이입력’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능력치도 곧 해금될지 모른다.

그리되면, 유한은 잃어버린 9년을 뒤로하고 진정 성장이란 걸 다시 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약간의 휴식을 권고합니다.]

“그건 말고.”


휴식은 지난 9년으로도 충분했다. 새로운 가능성이 빛나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서브 퀘스트 진행도를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

서브 퀘스트가 있었지.

진행도가 100%가 되면 ‘룬’이라는 걸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스킬 <속독>의 어마어마한 효과를 본 유한은 주저 없이 대본에 손을 뻗었다.

현재 진행도는 78% 무리하면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는 정도였다.


“좋아, 오늘 내로 100%를 보고 만다.”



배우는 연기로 승부한다.

비록 단역에 가까운 조연이지만, 이제 유한의 역할엔 이름이 생겼다.

그러니 아까와 같이 대본을 읽어도 마음가짐은 전혀 달랐다.


“좋아, 해보자.”


유한은 새로 받은 대본에 손을 뻗쳤다.

비록 유머를 담당해서 ‘홍두깨’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최근에 이름이 있는 역할을 받은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지진이야, 지진!”


죽 대본을 읽던 유한이 촬영 때처럼 제 대사를 크게 소리내서 읽었다.


“이러다 다 죽어요!”


일단 이게 유한의 대사 전부였다. 유한은 진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머리를 감싸고 대피하는 척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유한은 시계를 보는 사실조차 잊고 대본 읽기에 매진했다.

그리고.


[서브 퀘스트 : 대본을 정독하라.]

[진행도 100% 달성.]

[룬을 획득하였습니다.]



상태창 사이드에 화폐 단위처럼 보이는 보석 모양 옆에 1이란 숫자가 떠올랐다.

아마 유한이 방금 얻은 룬의 개수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저 개수를 더 늘려나가겠지.


“상태창, 지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능력치가 있어?”

[지금은 없지만, 향후 퀘스트가 발생할 겁니다.]


[연기력 : C]

[전달력 : D]

[이입력 : D]


스탯은 그대로였지만, 그걸 보는 유한의 자세는 달라졌다.

특히, 이입력 옆에 작게 달려 있던 자물쇠 모양이 사라졌다. 즉, 이입력은 이제 영원히 D에 머물지 않고 발전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거다.

서브 퀘스트는 무한하게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노력으로 대가를 얻는 것이었다.


“일단 룬을 모아가면서 퀘스트를 하자.”


유한이 목표를 정했다.


“어떤 퀘스트든 다 받아주겠어.”


드디어 기나긴 터널의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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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돌려 받은 조언 NEW 23시간 전 9 0 11쪽
10 다짐 24.09.17 13 0 11쪽
9 묵언수행 24.09.16 16 0 12쪽
8 거장의 관심 24.09.16 18 0 12쪽
7 다시, 한 걸음 24.09.15 20 0 12쪽
6 청년과 노인 24.09.14 24 0 12쪽
5 계약의 조건 24.09.13 31 1 12쪽
4 돌멩이의 가능성 24.09.12 36 2 12쪽
» 아닌 밤중에 홍두깨 24.09.11 39 2 12쪽
2 은하의 영웅 24.09.10 48 3 15쪽
1 우주에서 온 시스템 24.09.10 7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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