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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딩동
작품등록일 :
2024.09.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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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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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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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노인

DUMMY


유한은 우선 낡은 노트북을 꺼내 대본을 살폈다.


“어떤 대본이든 서브 퀘스트에 해당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현재 룬은 2개고.”

[그렇습니다.]


유한은 틈만 나면 대본을 정독해서 룬을 하나 더 얻었다. <속독>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못할 일이었다.


“어차피 오디션 연습은 해야 하니까.”


유한이 마음을 다잡고 낡은 노트북을 켜서 대본을 봤다.

2인극이라는 말답게 등장인물은 2명이었고 유한의 역할은 한 청년의 넋두리를 듣게 되는 노인의 역할이었다.


“비록 대사 비중은 없지만, 2인극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는다면 주연급 조연 이상이라고 볼 수 있어.”


이건 억지가 아니다.

2인극은 두 사람만의 연기력만으로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역할을 따내면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유한의 연기력이 오른다.

지난 9년간 멈춰있던 성장이라는 걸 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젠 모든 기회가 전부 간절해.”


유한은 멈춰있던 9년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어느샌가 무대의 빛나는 조명은 유한을 비추지 않았고 그건 마음의 불마저 꺼버리게 했다.


“정말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거라면, 난 뭐든 할 수 있어.”


유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대본에 몰입했다.

고맙게도 초회 특전으로 얻은 스킬 <속독> 덕분에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대학로에 이런 수작이 또 있었구나.”


분명 극의 규모는 작았고 배우도 단 두 명이다.

하지만 대본엔 청년과 노인의 대조로 인생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노인은 말을 들어주기만 하는 역할이 아니야.”


스킬 <속독>은 유한의 대본 이해력을 엄청나게 높여뒀다. 그랬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보단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사람이 청년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는 거지.”


즉, 이 작품은 노인이 자신의 과거를 만나 세월과 인생을 돌이켜보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지나가던 청년이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 일방적으로 인생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노인은 처음부터 그 청년이 자신의 과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야.”


<속독> 덕분인지 간절함 덕분인지 유한은 자신도 모르게 감독의 의도를 깨우쳤다.


“낯선 청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비밀스러우면서도 그리운 심상이어야 해.”


유한이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실제 연습에 나섰다.


“······우연은 운명이지. 운명은 우연이기도 하고. 자네는 정말 인생의 모든 것이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가?”


대사는 쇠약한 노인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될 정도로 발성을 유지해야 했다.


“어떻게 아냐고? 한때는 나도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야. 지금? ······그건 말해줄 수 없다네.”


유한이 작은 원룸에서 열연을 펼치자, 서브 퀘스트의 진행도 막대기가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현재 진행도는 43%······ 내일까지 룬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비록 기계음처럼 일정하고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언젠가부터 이 목소리가 유한의 응원군처럼 느껴졌다.

혼자 원룸에서 열연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 자신을 배우로서 지켜봐 주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


유한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을 들이켰다. 아까의 술기운은 싹 가신 지 오래였다.


“어떻게 노인의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분장이라는 직접적인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배우의 방법이 아니다.


“늙고 지친······ 까마득한 길을 걸어왔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순간, 유한의 심장 어딘가가 저렸다.


“노인은 나였어.”


유한도 대본의 청년처럼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던 때가 있었다.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굳게 믿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때로 운명은 노력을 배반한다.

의지도 열정도 결국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시스템을 만나기 전의 나.”


당장 연기력은 C급에 불과했지만, 얼마 전까지의 자신을 연기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이런 걸 메소드 연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얼마 전까지 굽은 등을 하고 소파에 기대 남들의 활약을 안주 삼아 소주나 부어대던 유한의 모습은 굳이 연기라는 걸 할 필요도 없었다.

유한이 해야 할 일은 지나간 자기 모습을 노인의 모습에 투영해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속독>으로 대본을 돌파한 유한의 판단은 그랬다.


“내일 3시라고 했지.”


유한이 낮게 읊조렸다. 내일, 할 일이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유한은 힘이 났다.


“연극 특성상 이입력이 중요해.”


유한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특히 관객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소극장에선 배우의 숨소리나 땀방울까지 그대로 듣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배우가 역에 얼마나 이입했는지도 모두 고스란히 전해지고 만다.


“적어도 30명에게는 내가 역에 이입한 모습을 보여야 해.”


만일 무대가 크거나 방송이라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유한이 원하는 작품은 관객이 많아야 30명이었다.

그 작은 관객들에게조차 배역에 몰입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뭐가 배우인가.


“그러나 이입력이 상승하는 건 오디션에 붙었을 때지.”


유한이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브 퀘스트를 반복해서 룬을 모으는 일이었다.


“지금은 쉴 때가 아니야.”


그간 강제로 휴식을 취한 지가 오래였다. 이제 유한에게 휴식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적어도 지금의 노력은 유한을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



오디션장에 도착한 유한의 얼굴이 퀭하고 피곤해 보였다. 그 사이 룬은 이미 5개가 되었다.


“선배,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 아니죠?”


호석의 말에 유한이 고개를 저었다.


“대본이 좋아서 몰입했더니 잠을 좀 설쳤어.”

“혹시 몰라서 소품 좀 준비했는데······.”

“아냐.”


유한은 호석이 들고 있는 지팡이와 노인의 중절모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오디션은 연기로만 볼 거야.”

“그야 그렇지만, 선배도 아시다시피 새로 온 우리 감독님이 좀 예민하잖아요. 특히 지상파 배우한테는······.”


유한이 극단 스피치의 무대에 섰던 건 3년 전이었고 이제는 새로운 감독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는 대중성을 가진 스타들이 적선하듯 연극에 나오거나 물의를 일으키고 연극을 통해 복귀하는 걸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오늘은 그냥 배우로서 온 거니까 혼자 해볼게. 챙겨준 건 고맙다.”

“아니에요, 선배. 오디션 잘 보세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한이 유달리 지쳐 보였다. 슬쩍 보니 오디션장으로 들어가는 걸음을 질질 끌고 있었다.


“갑자기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와서 무슨 오디션을 본다고······.”


호석의 안타까운 읊조림은 유한에게 들리지 않았다.

대신, 뿔테 안경을 쓰고 깐깐한 눈초리로 유한을 바라보는 감독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이유한입니다.”


감독은 턱짓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배우가 유한에게 대본을 건네려고 했다.


“대본은 괜찮습니다.”


유한은 대본의 토씨 하나까지 달달 외운 상태였다.

외우려고 해서 외운 게 아니라 서브 퀘스트를 하느라 계속 읽어댔더니 자연히 외워진 것이었다.


“의외로 우리도 시간이 없으니까, 할 거면 빨리하시죠.”


감독의 눈빛은 처음부터 차가웠다.

유한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감독 옆의 의자를 들어서 작은 방의 한가운데에 뒀다.


“하, 이래서 영화 물든 배우들이란······.”


감독은 대놓고 혀를 찼지만, 유한은 의자를 등에 대고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본에 그런 장면은 없기 때문이었다.


“늙음이 나의 형벌이라면, 자네의 젊음은 누구의 축복인가.”


유한이 허공을 보며 대사를 시작했다. 본래는 상대 역이 서 있어야 할 곳이었다.

그의 앞엔 아무도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꼭 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너무도 빠르고 인생은 참으로 덧없지.”


굽은 등을 의자에 기댄 유한은 무척 지쳐 보였다. 마치 오랜 삶을 살아온 노인처럼 말이다.


“한때는 내게도 청춘이 있었다네. 그래, 바로 지금의 자네처럼.”


그 순간 유한의 눈동자에서 광채가 돌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감독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바로 코 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유한의 연기는 정말로 삶에 지친 노인이 젊음에 열망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그만, 거기까지.”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유한은 언제 그리 지쳤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일어서 의자까지 착실하게 제 자리에 돌려놓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이유한 씨, 이 작품의 극본을 쓴 것도 연출을 하는 것도 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극 중의 노인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요.”


밤이 새도록 이 연극을 연습했다.

처음에는 젊음을 향한 동경, 과거 자신의 청춘을 마주한 그리움, 너무도 순식간에 늙어버린 회한이 유한을 스쳤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건 하나였다.


“없습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노인에게 하고 싶은 말 따윈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인을 청년의 말을 들어주는 단순한 매개체로 본 겁니까?”


감독의 얼굴에 실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유한의 표정은 평온했다.


“처음에는 노인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거기까지는 감독의 의도였다.


“하지만 대사를 뱉으면 뱉을수록 독백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스킬 <속독>은 단순히 읽기 능력을 향상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이해력을 함께 가져다준다.

그 스킬을 가진 채로 대본을 달달 외울 정도로 봤으니, 유한에겐 대본의 공백조차 또렷했다.


“처음부터 청년은 없었습니다.”


주인공인 청년은 노인이 불러낸 환상이었다.


“모든 건, 노인의 혼잣말이었죠.”


언뜻 청년이 노인에게 일방적으로 제 인생을 이야기하고 노인은 그걸 들어주는 역할로 보였지만, 유한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노인이 되어서도 인생의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꾸벅, 유한이 할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결과는 감독의 뜻에 달려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모든 걸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상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유한은 지금 이 자리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흠······.”


그러나 감독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너무 선을 넘어 버렸나.

밤을 새워 연습하고 바로 오디션장에 왔더니 제 감정을 주체하기에 어려웠다.


“그거참 고리타분하고 무가치한 해석이군.”


틀렸다.

감독의 얼굴에 심각함이 가득했다.


“내가 처음 이 극본을 썼을 때 들은 말입니다.”


예상과 다른 감독의 말에 유한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모든 배역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닙니다. 세상 모든 독백에 의미 따윈 필요치 않아요.”


유한이 또 눈을 깜박였다.

다시 보니 감독은 얼굴을 찡그린 게 아니라 진심으로 뭔가를 느낀 표정이었다.


“이 작품, 함께 합시다.”


해냈다.

9년 전 이후 처음으로 노력이 인생을 속이지 않았다.

유한은 오직 그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메인 퀘스트 : 배역을 쟁취하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능력치 ‘이입력’이 D+로 상승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퀘스트 창이 스쳐 지나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한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제게 악수하는 감독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해냈다는 감정이 전신을 지배했다.


해냈다.

다름 아닌 내가 해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쟁취했다.


비록 아직 터널이 남아있었지만, 분명히 그 끝에 환한 빛이 보이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정상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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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돌려 받은 조언 NEW 23시간 전 9 0 11쪽
10 다짐 24.09.17 13 0 11쪽
9 묵언수행 24.09.16 16 0 12쪽
8 거장의 관심 24.09.16 18 0 12쪽
7 다시, 한 걸음 24.09.15 20 0 12쪽
» 청년과 노인 24.09.14 25 0 12쪽
5 계약의 조건 24.09.13 31 1 12쪽
4 돌멩이의 가능성 24.09.12 37 2 12쪽
3 아닌 밤중에 홍두깨 24.09.11 39 2 12쪽
2 은하의 영웅 24.09.10 48 3 15쪽
1 우주에서 온 시스템 24.09.10 7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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