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사냥꾼에게도 결혼은 어렵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새글

사람님
작품등록일 :
2024.09.10 20:18
최근연재일 :
2024.09.20 18:42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70
추천수 :
0
글자수 :
71,979

작성
24.09.10 20:22
조회
7
추천
0
글자
12쪽

7화 : 데이트의 끝.

DUMMY

“죄송합니다. 저희는 역시···안 만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누군가에게 거절당한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그 거절이 만약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상에게서의 거절이라면, 그건 생각보다 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네? 아니···갑자기 왜요? 방금 제가 한 말 때문이라면···”


그런 거일리 없다는 것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저 말이 튀어나온 순간부터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것쯤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오늘···무척 즐거웠어요.”

“그럼 도대체 왜···?”


그럼에도 내뱉었다. 지금, 이 순간이 부정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늘 내가 느꼈었던 감정들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정하게도 말한다.


“제가 너무 부족해서요.”


오늘 우리에게 있었던 일은 오직 너만의 감정일 뿐이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올려다 본 그의 표정은 무뚝뚝했고 또 무표정했다.


‘원래···저런 얼굴이었나?’


살짝 올라간 입꼬리마저 어색하게 보였다. 도저히 영화관에서 보여주던 그 설레는 미소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상했다. 어색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 모든 것이··· 자신이 오늘 보았던 것들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


‘아···그렇구나.’


날뛰던 심장이 조용해진다.

요동치던 맥박이 차갑게 식는다.

새하얗던 머리에 이성이라는 글자가 돌아온다.


“네. 알겠어요. 그쪽이 말하는 의미.”


살짝 휘어지며 웃던 눈꼬리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상대를 노려본다.


“아, 그리고 미리 말씀드릴 게 있어요.”


헤프게 웃던 입꼬리는 다시금 붉은 입술 사이로 모여들어 사무실에서 내뱉던 사무적인 어조로 변해 있었다.


“저희 우연히라도 다시 보지 말도록 하죠. 오늘···거짓말로라도 즐거웠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그럼.”


뚜벅 뚜벅


여태 단 한 번도 들리지 않던 구두 굽 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은 심장 소리에 맞춰 울리기 시작한다.


*****


“대체 뭔데요.”


요기까지 흘리며 이 상황을 설명하라 요구하는 그에게 짧게 답한다.


“봤던 대로야. 약속했던 것들은 걱정할 거 없어. 시민권도 준비해 뒀으니까. 그거 갖고 가면 돼.”

“아니···그 말이 아니잖아!!! 지금 장난해?”

“······”


거대한 요기가 터져 나온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인간? 우리 같은 존재에게 약속이 어떠한 의미인지?”

“······”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그의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후우···알겠으니까. 그만.”


그의 말에 거짓말처럼 사라진 요기.


“그럼 말해 봐요. 대체 왜 그딴 짓을 했는지. 여전히 난 이해가 안 가니까. 애초에 형님이 연애시켜 달라 한 거잖아요?”

“······미안해서.”

“···?”


무관심한 사람이라 해서 타인에 대해 완전히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선순위가 후 순위로 밀려 있을 뿐이다.


“애초에 그냥 내기로 만난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맞선 상대라고 했지만, 연애에 대해 몰랐기에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몰랐다. 그래서 상대와의 만남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영화를 보고 있었을 때도, 그 어느 순간도 그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금태양’ 이 녀석이 요구했던 것에 맞춰 움직였을 뿐, 어디에도 진심이라곤 담겨있지 않았었다.


‘그랬었지···’


꼬옥···


따듯한 온기가 손가락을 통해 전해져 왔다.


‘···?’


그 온기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처음으로 그녀를 마주 봤다.

떨리는 눈동자, 조심스럽게 뻗은 손, 긴장으로 숙여진 고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녀가 보낸 진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녀가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긴 뭘 몰라.


‘하아···그거였구나?’


모쏠 중에 이런 애들이 가끔 있다. 연애에 무관심하고 둔감했던 인간이 연애를 하면서 상대의 진심을 느끼고 그에 부담을 느끼는 유형.

연애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상대의 진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니.


‘겁이 나고 두려웠겠지.’


게다가 저 인간은 지금 상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저런 성격이면 평범한 회사원이었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준비가 안 됐던 거네.’


연애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냐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연애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한 행위도 없다.

흔히들 이러한 고민이나 준비가 싫은 인간들이 가벼운 만남을 추구한다면서 별 이상한 단어들을 만들고는 하는데.


‘그게 쉑프랑 뭐가 달라?’


뭐, 사랑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저러한 만남 속에서도 사랑을 느끼는 이들은 존재하지만.


‘적어도 저 인간은 아니었던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나름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감당 못 할 거 같아서. 미리 선을 그었다?”

“······대충은 비슷하네.”

“뭔 대충은 비슷해요. 딱 그 소리구만.”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다.


“에휴···뭐 별 수 있나. 이미 약속을 했고 약속을 해버린 인간 놈이 이런 놈인걸.”


원래는 대충 이 인간 놈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애초에 잡혀 온 거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저 인간의 대답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저거 완전 천연 소재잖아?’


연애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요즘 시대의 인간 놈들도 그 정답이라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이라는 행동을 평생 유지하는 인간은 없다.


고작해야 몇 시간 혹은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만나 연애의 공식에 맞춰 상대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은 노력만 하면 가능한 일이지만, 평생을 유지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인간들이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


그래서 보통 아름다운 연애를 하며 평생을 함께하는 인간들은 서로를 숨기지 않는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할 수 있겠지만.


‘배려는 하지만, 자신을 숨기지는 않는 거지.’


실제로 자신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었던 해외 심리학 박사와의 실험에서도 연애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커플들은 대다수 크게 싸운 후에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저 인간은 내가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운 연애를 하기에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갖췄다.


‘자신을 아는 것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말로만 듣기에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저런 인간은 정말 극소수다.

대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놓치기 싫어 무리를 하다가 그걸 상대에게 터트리곤 한다.

또는 정말 관심이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이거나.


‘저 인간처럼 놓치기 싫은 걸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스스로 놓는 경우는 드물지.’


그래서 보고 싶어졌다. 과연 저 인간은 대체 어떤 연애를 할지.


한때는 음란서생이라 불렸으며, 의자왕에게 3천 명의 여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게 만들었던 요괴. 그리고 지금은 금태양이라 불리는 존재.

S급 대요괴 ‘금태양’ 천년이란 시간 동안 완벽한 연애를 찾아 헤매던 요괴가 오늘 새로운 제자를···


“뭔, 개소리야. 당연히 이젠 연애할 생각 없는데?”

“······네? 아니 왜요? 그 내기인가 뭐시기인가 그거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여자한테 진 건 좀 내키지 않지만, 별수 없잖아. 진짜 내가 연애를 못 했던 건데.”

“······”


이게 아닌데?


*****


여우의 귀와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요괴인 ‘미호 일족’은 그 역사가 깊은 존재들이다.

대혼란의 시대를 종식 시켰던 영웅 중 한 명이 미호 일족의 전대 수장이기도 했으며 홍익의 이념이 이 땅에 스며들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숭배 받던 토지신이기도 하였다.


“그런 위대하신 일족의 현 수장님께서 이런 일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홍익의 대표가 직접 차를 건네며 미소 짓는다.


“그야 저희 일족의 일이니 제가 직접 와야겠죠.”


안경 아래로도 느껴지는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인 외모가 자상한 청년처럼 보이지만, 이 요괴가 현 미호 마을의 수장으로서 수백 년을 살아온 특급 요괴 ‘구미훈’ 본인이었다.


“그래서 직접 그 아이를 변호하실 생각입니까?”

“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직접 올 필요가 없었겠죠.”


후우···이거 골치 아파졌네.


난감한 상황이었다. 현 미호 마을의 수장은 자신의 일족을 끔찍이 아끼기로 유명한 요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중을 말해 보지만.


“아시고 계실 거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미호족이라도 사냥꾼들의 법을 어긴 이상 처벌이 필요합니다.”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법정에서 저희 측 입장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아···


‘결국 물러날 생각 없다는 뜻이잖아?’


저쪽에선 물러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라온 그 녀석이 없어서 다행이네.’


일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요기를 쓴 사건이었지만, 그 행동 자체가 인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기에 큰 처벌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도 현 수장이 직접 찾아와 해당 사건을 변호했고 결국 무죄에 가까운 판결을 내리게 될뻔 했지만.


‘그때 그놈이 법을 어겼으면 그에 맞는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었지.’


예외를 두는 순간 그건 이미 법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한 증거라고, 그럼 너도나도 그 예외를 근거로 두며 자신이 저지른 짓을 정당화할 거라고.

그래서 그때도 찾아왔던 수장과 대판 싸우며 한동안 홍익의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지금도 이 자리에 그 녀석이 있었으면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게 뻔하다.


‘진짜 누군진 모르겠는데, 그 녀석 사건 처리하라고 보낸 놈한테 보너스라도 두둑이 챙겨줘야겠네.’


아 그러고 보니까···


‘하린이 그 애도 함께 갔었지?’


이것 참 운명이라도 있는 것인지 기가 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서 시간 끄실 건가요?”


싱긋


물론 우연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해야 했지만 말이다.


“하하하···일단은 일족의 아이부터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혹시나 하지만, 벌써부터 범죄자 취급하며 저희 일족의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판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미호족으로서 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게 이 회사는 대표가 일반 사원들보다 더 구르는 거 같은 건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얼른 라온 그 녀석한테 대표 자리 넘기고 쉬던가 해야지.’


한편, 같은 시각 차기 홍익의 대표는 지금 무얼 하고 있었냐면.


“퉷! 꺼져. 당신들 도움 필요 없으니까.”


이제 막 성인이 되기 직전의 그러니까 고등학생 3학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소년이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너희들 같은 더러운 어른 도움 받을 생각 없으니까! 꺼지라고!!!”


마른침을 맞은 남성이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안 억울하냐?”

“뭐?”

“네가 그렇게 화내는 이유는 네 스스로 잘 못이 없다 생각해서잖아.”

“······실제로 잘못 없어. 애초에 그 새끼들이 먼저···!”

“그만. 네가 무슨 상황인지는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넌 묻는 말에만 대답해.”


무표정한 얼굴로 손수건을 도로 접어 올려놓은 그가 묻는다.


“복수를 원해? 아니면···후회하지 않길 바래.”

“······뭐?”

“선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


요괴 사냥꾼들은 보통 인간 사회에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괴 사냥꾼이 아닌 인간으로서 관여하는 건.


“부탁을 받아서.”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요괴 사냥꾼에게도 결혼은 어렵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14화 : 재판의 결과. NEW 5시간 전 2 0 14쪽
13 13화 : 이야기를 팔겠습니다. 24.09.18 2 0 12쪽
12 12화 : 재판(1). 24.09.17 5 0 11쪽
11 11화 : 유죄를 받은 죄인은 나쁜 사람일까? 24.09.16 4 0 10쪽
10 10화 : 해야 할 일을 하고 후회하지 않을 방법. 24.09.13 7 0 11쪽
9 9화 : 여우의 보은 방식은 사랑에 가깝다.(2) 24.09.12 6 0 10쪽
8 8화 : 여우의 보은 방식은 사랑에 가깝다. 24.09.11 5 0 10쪽
» 7화 : 데이트의 끝. 24.09.10 8 0 12쪽
6 6화 : 영화관 데이트. 24.09.10 7 0 11쪽
5 5화 : 모쏠. 24.09.10 5 0 11쪽
4 4화 : 3시간 늦은 사람에게 해야 할 말. 24.09.10 3 0 13쪽
3 3화 : 맞선. 24.09.10 3 0 11쪽
2 2화 : 내기. 24.09.10 5 0 12쪽
1 1화 : 요괴. 24.09.10 9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