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NEW YORK! 1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은 높은 빌딩 숲들과 거리의 현란한 조명,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이 겹쳐지면서 영화장면처럼 몇 년 전의 회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트럭운전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왕초보 시절, 그 험하다는 뉴욕 맨하탄을 자원했다.
트럭 드라이버들은 뉴욕 시내를 꺼린다.
위험하고 트럭 제한 길이 많고 또 지나갈 수 없는 낮은 다리가 널려있어서 사고가 많은 것이 주된 이유다.
낮은 다리는 1년에 8번이나 트럭이 부딪히는 사고 기록도 있다.
브루클린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것 또한 골치 아픈 문제이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회사 중에는 싣고 내리는 닥이 없는 곳도 많아서 그냥 차들이 다니는 차선에 트럭을 세우고 그 자리에서 싣고 내린다.
차량은 물론 행인들이 오가는 한가운데에서 지게차로 화물을 내리고 싣는다.
당연히 주차위반 티켓도 각오해야 한다.
라이프 머니(Life Money:생명의 돈)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함은 물론이고 야간 운전 시에는 차 창문을 항상 닫고 다니며 빨간 신호등 앞에서도 완전 정차하지 말고 슬금슬금 앞으로 움직여서 강도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충고도 들었다.
이러니 웬만한 베테랑 트럭운전사들도 가기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뉴욕 시내 배달만큼은 따로 보너스를 준다.
하지만 뉴욕 시내를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최소한 하루 이상의 시간이 꼬박 소비되므로 그만큼 손해가 되는 것이다.
비록 초보지만 나는 이제 아메리카 대륙을 달리는 트럭 드라이버다.
뉴욕이 무섭다고 피한다면 진정으로 나 자신을 북미대륙을 횡단하는 트럭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호기심 반에 바보 같은 만용 반을 더해서 트럭운전으로는 첫 뉴욕 시내에 배달을 다녀오게 됐다.
그 유명한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를 대형 트랙터 트레일러를 운전하며 마치 로마를 정복하러 간 칭기즈칸처럼 용감하게 전진하였다.
바로 뉴욕의 상징인 삼거리였다.
타임스퀘어 가든 그리고 뮤지컬극장들을 지나고 나자 바로 정면 앞에 영화에서 수도 없이 많이 본 그 전광판이 정면에서 번쩍거리고 있다.
실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유명한 곳,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 삼거리를 내가 53피트짜리 대형 트레일러를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 후로 1년이면 여러 번 뉴욕을 가게 됐지만 맨해탄까지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고 브롱크스, 브루클린, 또는 롱아일랜드여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런 뉴욕이 트럭운전과 함께 이상한 인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 인연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직 나 혼자만이 가슴속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두고 고이 간직했던 숨겨진 비밀이다.
이 이야기는 3년 전, 한 친구 부부가 우리 집을 예고 없이 방문함으로써 시작된다.
***
M은 캐나다에 이민 온 지 10년쯤 되고 내가 그를 알게 된 지는 8년쯤 된다.
M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나와 비슷한 성격으로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 밤을 새울 정도로 대화가 통하고 의기가 투합되었다.
M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캠핑도 함께 가고 자주 만나게 됐지만, 내가 트럭운전을 하고부터는 거의 만나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 M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집에 있다고 하자 다짜고짜 부부가 함께 우리 집으로 쳐들어 왔다.
생홍합 두 봉지와 포도주 한 병을 사 들고 밤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나는 심각한 문제나 있는 줄 알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일은 아니었다.
그는 뜻밖에도 트럭운전을 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2년 전, 여러 가족이 함께 캠핑 갔을 때 트럭운전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었다. 이때는 트럭운전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직업인가 호기심만 갖는 정도였고 M은 자기는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M은 결코 트럭운전사 타입이 아니었다.
더구나 M은 토론토에서 1시간 거리의 조그만 마을에서 가게를 오랫동안 하고 있었고 가게도 그럭저럭 잘 운영되는 편이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도 아니므로 트럭운전을 할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미국에서의 장거리트럭운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야, 꿈도 꾸지 말고 하던 가게나 열심히 해”
“울프, 너는 몇 년째 하고 있으면서 나는 왜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 왔지만, 만약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인 줄 알았더라면 트럭운전을 하지 않았을 거야. 우선 대한민국 땅에서 운전하는 것과는 스케일이 완전히 달라, 마치 외항선 타는 뱃사람처럼 한번 떠나면 2주일에서 한 달 가량 운전만 하고 돌아다니다가 겨우 집에 한 번 와서 한 이틀 쉬고 또다시 길을 떠나는 생활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운 삶이다."
나는 계속해서 트럭운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였다.
"비단 하루에 10시간 이상 운전하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여기 북미에서도 트럭운전은 3D 업종으로 인정되어 있는 데다 우리는 영어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데다 교통시스템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날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오직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생길지 모르는 안전사고의 위험은 온 가족을 불안에 떨게 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나는 동료 트럭운전사의 예를 들어가며 열심히 설명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M은 단단히 결심한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게도 오래 해서 지쳤고 매상도 자꾸 줄어들고 강도 위험도 있고 해서 자기는 트럭운전을 하고 부인은 틈틈이 다른 가게에 헬퍼로 일하면서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싶어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조금만 운전하면 졸린다면서 어떻게 그 먼 장거리를 운전하려고 그래?”
“5 Hr 에너지가 있잖아, 그거 마시면 하나도 안 졸려 걱정하지 마!”
그의 부인도 만류하였지만 이상하게도 M이 고집을 피워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가게도 복덕방에 내놓아서 곧 팔릴 것이라고 했다.
“하고 싶으면 해도 돼! 하지만 나는 절대 반대야. 안 돼!”
내가 마지막으로 빗장을 찔러 박듯이 강하게 내저었다.
M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그걸 본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M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다. 그가 내민 것은 트랙터 트레일러 운전 면허증이었다.
“어떻게? 언제 땄어?”
“말도 말아. 이것 따느라고 엄청 고생했어. 필기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는데 그놈의 실기 주행테스트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떨어진 끝에 겨우 딴 거야”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를 만류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그래 그럼, 바로 서류 준비해서 회사로 찾아와 내가 매니저에게 이야기해 놓을게.”
그제야 M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의 부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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