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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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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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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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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想起) - 4

DUMMY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변질됐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그 심각성은 안젤라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 그냥 체념하는 게 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날 째려보던 기세와는 다르게 안젤라는 손아귀에 일으킨 데스볼을 없앴다. 그리곤 여전히 불만이 잔뜩 전해지는 눈길을 던지며 다정한 손길로 리프렌의 손을 잡아끌었다.

“넌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이야기하자. 리프렌, 그 옷 말고 내 거 입자. 좀 크겠지만 맞는 게 몇 벌 있을 거야.”

“나 이거 있어서 괜찮은데?”

“절대 안 돼. 이 모습을 그대로 둔다면 내가 아저씨 얼굴을 볼 낯이 없어.”

안젤라가 한숨을 쉬었다. 지금 리프렌의 모습을 그녀의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게 떨떠름한 모양이다. 하기야 나라도 안젤라라면 그럴 것이다.

“내가 안 갈아입으면 안젤라 곤란해?”

“많이 그럴 것 같아 리프렌.”

“그럼 갈아입자! 안젤라가 곤란하면 안 되지!”

참 말 잘 듣는 여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안젤라가 곤란하다는 말에 군말 없이 그녀의 말을 따라주니.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레이크 넌, 후. 모르겠다. 그냥 마실 것 좀 끓여놔.”

약간 경멸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날 쳐다본 안젤라는 이내 크게 한숨을 쉬곤 별 다른 말없이 시킬 것만 시키고 리프렌과 함께 큰방을 나섰다. 다행히 안젤라는 이번 건을 그냥 넘기기로 한 듯하다. 그래도 뭔가 석연찮은 구석들이 많아 보였던 같으니 제대로 해명은 해야겠다.

게다가 나도 그녀한테 물어볼 것도 몇 가지 있으니.

다만 지금은 물을 시기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내 의문은 잠시 뒤로 넘기고 눈앞에 닥친 일들이나 해결하는 게 내 신상에도 좋다.

“아침부터 꼬일 대로 꼬이네. 후, 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지.”

어제는 잘 풀린다 싶었더니 날이 바뀌자마자 사람 열불 터지는 하루가 시작됐다. 신의 농간이 아니고선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여자아이를 헐벗겨놓은 변태가 될 수가 있냐고. 만약 진짜 날 이렇게 만든 신이 있다면 멱살부터 잡을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아침밥도 못 만들었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짜증이 팍 치솟았다,


“후왕, 배부르다. 레이 스프 짱 맛있어!”

“맛있었어? 다행이다, 네 입에 맞아서.”

“식사 감사합니다, 드레이크님.”

“하하···, 그랬다면 다행이네.”

아침에 도착해 아무것도 못 먹었을 것 같아 안젤라가 가지고 있던 옷 중 더 이상 작아서 못 입게 된 옷을 입고 온 리프렌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어젯저녁부터 쫄쫄 굶었다고 해 따뜻한 마실 것 대신 원래 끓이기로 했던 스프를 인원수에 맞게 끓였다.

“식사량이 장난이 아니야···.”

다만 드래곤의 후예라고도 하는 드래고니안을 무시한 탓인지 꽤 많은 양을 준비한 것 같은데도 리프렌은 거의 마시는 수준으로 스프를 들이마셔 남을 것이라 예상했던 스프는 전부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먹는 것에 5배는 넘게 먹었으니 말다했다.

“레이! 스프 나중에 또 해줘! 나 이렇게 맛있는 스프는 처음 먹어봐!”

리프렌이 천진난만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 스프를 굉장히 좋아했다. 굶은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호평을 해주니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칭찬에 헤벌쭉해져선.”

“평소에 칭찬을 듣는 게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무슨 의미야? 어째 비꼬는 식이다?”

안젤라가 ‘이것 봐라?’라는 식의 눈빛을 쐈다.

“그럼 생각해보세요. 지금까지 칭찬을 해준 게 얼마나 있나. 윽박지르고 재촉한 건 있어도 칭찬한 것 거어어의 없을 걸요?”

“뭐래, 내가 입이 무거운 편은 아니지만 마음씀씀이가 헤픈 여자는 아니거든?”

“그럼 말씀해보세요. 최근 일주일 동안에 칭찬한 게 있나 없나.”

“참네. 너 말이야, 하나라도 나오면 그때 한번 보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자는 식의 도발이었다. 안젤라는 그 도발을 눈치 챈 듯 눈에서 레이저를 쏠 기색으로 째려보며 내게 칭찬한 사례를 찾으려 빛의 속도보다 더 따른 속도로 머리를 굴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생각에 잠겼다.

“···으으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젤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게 뜻하는 건 단 한 가지. 생각하고자 하는 게 떠오르지 않을 때였다.

“없죠?”

확인사살도 할 겸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조용히 해봐. 생각 중이잖아.”

“오, 그래요 그래. 생각 중이죠.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안젤라님한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요.”

뭐, 이렇게 시간을 준다고 해도 떠오르진 않을 테지만. 결국 시간낭비였다. 그래도 안젤라과 무슨 궤변을 내놓을지 꽤 궁금했다.

“음···, 그보다 리프렌. 아까 아저씨가 날 찾으신다고 했잖아?”

“하지만 변명은 못 찾으셨죠.”

“많이 급한 일 같던데, 자세히 좀 말해줄래?”

역시나 시간을 줘도 못 찾자 슬그머니 화제를 돌려버리는 안젤라. 그 모습에 핀잔을 줘도 모르는 척하며 리프렌에게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마음씀씀이가 좋긴 개뿔. 생각이나 해보고 말하지.

“아빠가 자세히 말해주진 않아서 모르겠는데, 일단 빨리 불러오라고 했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했어.”

“중요한 일? 음, 날 찾으실 만한 일은 처리하고 왔을 텐데.”

안젤라는 리프렌의 아버지가 무슨 사람인진 모르지만, 두 사람 사이에선 왠지 비즈니스 쪽으로나 아니면 다른 관계로서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았다.

“뭐하시는 사람입니까, 리프렌의 아버지라는 분은.”

이렇게 놓고 보니 아직 안젤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것들이 많음을 느꼈다. 예를 들어 안젤라의 진짜 성에 대한 거라든지. 이 문제는 그녀에게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어 괜히 벌집 쑤시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리프렌의 아버지와 안젤라가 무슨 사이인지는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네가 알아서 뭐하게?”

“그냥요. 뭐 알아서 탈되는 거라고 있어요?”

“그럼 알려고 하지 마.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안젤라는 건들기도 싫은 주제를 다루는 양 내 질문에 대해 딱 선을 그었다. 뭔가 많이 민감한 문제인 듯했다.

벌집은 들쑤시지 않는 게 상책. 아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건 당연한 얘기다.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게 좋겠다. 휴, 이러나저러나 지금 상황에선 애물단지 신세네.

“리프렌님, 주인님. 그럼 바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이 찾으시라는 거라면 예삿일이 아닐 듯싶습니다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킨이 슬며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가 걱정이 돼서 한 말은 내 질문을 완전히 무산시키기엔 충분했다.

“응응. 아빠가 되도록 방학이 끝나기 전에 와달라고 했어. 그래야 일처리가 편하대.”

“그럼 당장 준비해야겠네. 방학 끝나기 전까지 10일 정도 남았으니까, 지금 그쪽 편도로 가는 마차를 예약해야겠네.”

“그럼 제가 예약을 하고 오겠습니다. 지금이라면 수도로 가는 아침 편도마차가 한두 대쯤 남아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준비하고 있을게. 되도록 빠른 시간대로 부탁해.”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킨이 마차를 알아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섰고, 이내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의 외모가 많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녀의 정체는 마을사람들도 잘 알고 있으니 괜찮을 듯싶다.

“레이크 넌 농땡이 피울 거야? 얼른 집안일 마무리하고 짐 챙겨. 그리고 리프렌 옷도 네가 책임지고 출발하기 전까지 말려놔. 나도 내 연구자료랑 물품 챙겨서 올라올 테니까.”

안젤라가 삿대질을 하며 퉁명스럽게 시킬 것을 말하곤 뒤도 안 돌아보고 연구실로 내려갔다. 쳇,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할 생각이었는데. 화만 나면 저렇게 으름장을 놓으니.

“내 신세가 그렇지 뭐. 됐다, 그냥 하기나 하자.”

분명 내 잘못도 있다지만, 좋은 측면은 확인도 안 해보고 말이야. 뭐, 그게 내가 아는 안젤라이기도 하고. 왠지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 같은 기분 탓이겠지?

“레이, 나 때문에 혼난 거야?”

그때 옆에 조용히 서있던 리프렌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장 마음 조리고 있을 사람이 리프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저지르고, 안젤라가 화를 내고, 그 사이에서 끼어서 애를 먹은 건 어쩌지 못하는 건 그녀일 텐데. 내가 약간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전혀. 원래 나한테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마. 매사에 저런 식이니까. 나름의 호감표시겠지.”

“호감?”

“그···, 래. 그럴 거야. 아마···.”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긴 안젤라가 수줍음을 많이 타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

왠지 하면 안 될 말을 한 것 같지만···, 일단은 리프렌이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그리 나쁜 상황으로 전개되진 않겠지. 아마도···.


“안녕하시오? 당신들이 우리 상단의 마차에 타고 싶다던 사람들이오?”

채비 꾸리고, 리프렌 옷 겨우겨우 말리고, 중간중간에 안젤라 꾸중 몇 번 듣고 난 뒤 돌아온 킨이 소개해준 몽벨랑 상단의 상단주인 몽벨랑 시바. 그가 느끼해 보이는 인상으로 쳐다보며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당신이 몽벨랑 상단주군요. 우선 동승을 허락해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우리 같은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상단은 먼 연방에서 자란 식료품이나 특산품을 수도로 판매해 수도가 우리 안방 드나들 듯 다니니 뭐, 고작 태워주는 거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안젤라가 나서서 몽벨랑과 이야기를 했다. 몽벨랑은 뭐가 그리 소중한지 콧수염을 쉬지 않고 만지작거리며 으스대듯 그녀를 쳐다봤다. 저 시선만으로도 갑질 좀 하게 생긴 진상처럼 느껴졌다. 다행이라면 그런 아니꼬운 몽벨랑의 태도에도 안젤라는 평소처럼 왈가닥하지 않고 참았다는 거였다.

“사례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뭐, 굳이 주고 싶다면야 나중에 꼭 받도록 하겠소. 내가 오는 돈 사양하는 사람은 아니라오.”

아오, 진짜 밥맛이다. 굳이 저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있나? 왜 자발적 구타유발자가 되려는지 이해가 안 되네.

“흠, 그나저나 일행이 참 특이하시구려. 언데드에 드래고니안, 그리고 팔이 잘린 장애인까지. 오, 미안하오. 그냥 본 대로 말하는 게 버릇이라서. 하하. 이런 그룹으론 수도까지 무사히 가기엔 무리일 수도 있겠소. 가다가 몬스터 밥이 안 되면 다행이지.”

괄시어린 시선, 비웃음이 담긴 입. 이건 명백한 비아냥거림이다. 이 몽벨랑이라는 인간, 아무래도 안젤라를 포함해서 우리들을 얕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엔 우리가 그저 어떻게든 멀쩡하게 수도로 가고 싶은 떨거지로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와 함께 용병들의 호위 속에 안전하게 되었으니 걱정 마시오. 우리가 그렇게 박정한 사람은 아니오.”

“깊은 배려에 감사합니다.”

안젤라가 몽벨랑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세상에, 내 기억 속에 안젤라는 이런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사실 마차건 뭐건 간에 데스볼부터 날릴 줄 알았던 내겐 그녀의 태도는 실로 놀라웠다.

안젤라의 태도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몽벨랑 또한 그녀의 공손한 태도를 예상하지 못한 듯 짐짓 놀란 표정을 짓다 자신의 표정변화를 느꼈는지 얼른 표정을 바꾸며 헛기침을 했다.

“커흠. 당신들은 짐과 함께 저 뒤편에 있는 마차에 타시오. 마침 이곳에서 재고가 떨어져서 공교롭게도 빈 마차가 생겼소. 당신들에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렇겠군요. 참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하, 이외구려. 아,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하니 마차에 타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안젤라가 다시 고개 숙여 예의를 차렸다. 몽벨랑은 그런 그녀에게 차가운 시선을 흘기듯 주며 돌아섰다.


작가의말

많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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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상기(想起) - 2 +3 16.04.07 28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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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뜻밖의 전개 - 3 +2 16.04.01 289 2 13쪽
14 뜻밖의 전개 - 2 +2 16.04.01 301 2 13쪽
13 뜻밖의 전개 - 1 +2 16.03.28 330 2 12쪽
12 아이덴티티, 그리고 적응 - 7 +2 16.03.27 35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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