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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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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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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想起) - 6

DUMMY

“그럼 준비도 다 갖춰줬겠다, 슬슬 시작해볼까? 저녁준비를 말이야.”

“저도 돕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있나. 누구랄 것 없이 몸소 나서서 돕겠다고 자청하다니. 아, 평소에도 이랬으면 좀 살만 할 텐데.

아, 맞다.

“저기, 리프렌?”

“왜 그래, 레이?”

“나 지금 네 도움이 굉장히 필요해서 그런데, 조금만 도와주면 안 될까?”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계속 뾰로통해있던 리프렌의 표정이 느슨하게 풀리고 날 바라보는 시선이 아까전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내가 요리하기 조금 벅차서 말이지. 그래서 그런데 너도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

“레이, 지금 나한테 진짜로 부탁하는 거야?”

“부탁하는 거에 진짜 가짜가 어디 있어? 그리고 난 지금 네 도움이 필요해.”

“···훙훙훙. 그래! 내가 도와줄게! 레이가 도와달라는데 당연히 도와야지! 대신 내일 꼭 무릎에 앉게 해줘야해!”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말하면서 어느 샌가 버릇처럼 리프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느닷없는 내 행동에 내 스스로가 놀라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리프렌은 내 손길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줄게!”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고 사뭇 기분전환이 된 리프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그녀의 상태라면 정말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강이었다. 지금 그녀는 우울한 기색 대신 이전의 발랄함을 다시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뭐, 일단 이 정도면 되려나?

“어이, 레이크. 너 의외로 섬세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때 안젤라가 팔꿈치로 찔러오며 ‘요것 봐라? 좀 한다?’라는 식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귀찮다고 밀어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마음에 걸리기라도 한 거야?”

“그 뭐야, 괜히 사소한 일 때문에 분위기 가라앉으면 이상해지잖아요.”

“오호, 너한테도 그런 주변머리가 있다니. 놀랄 노자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됐고 얼른 저녁이나 만들죠. 허기집니다.”

“어? 야! 내 말 지금 무시하냐? 야!”

은근히 놀리고 있는 안젤라를 뒤로하고 오늘 한 끼를 때우기 위한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녀가 뭐라고 하건 일단 주린 배부터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이거 정말 먹을 수 있는 거 맞죠?”

“내가 나만의 요리에 대한 프라이버시가 있다고 했지? 한번 믿어보라니까. 대체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하지만, 이건 요리라기보다는 거의 연성 수준인데···. 대체 음식에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이게, 내가 아주 가만히 있으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야, 나 같은 완벽한 사람에겐 스프 끓이는 건 간단한 일이거든?”

“끙. 하지만 완전 뒤죽박죽인데.”

“내가 직접 고안해서 만든 레시피라 그래.”

하, 직접 고안한 레시피? 이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라고? 조리법이랑 간 맞추는 것도 엉망진창인데다 뭔지도 모를 액체들을 스프에 들이부은 탓에 내 솔직한 감정으로 말하자면 이 스프가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말하기 힘들 듯싶었다. 비록 내가 요리를 잘한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단언컨대 안젤라가 자신 있게 제시한 레시피가 통상적인 요리법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고기는 뭡니까? 언뜻 보니까 개구리 같던데.”

“프록. 개구리를 닮긴 했는데 비상식으로는 제격이지.”

“향신료는 눈대중으로 넣었고.”

“그런 걸 밀리미터 단위로 재면서 언제 다 하냐? 그리고 향신료는 입맛에 맞게 적당히 넣는 거야, 적당히.”

“그리고 아까 넣은 액체들은 뭐죠? 대강 보니까 최소한 6종류는 넘었는데.”

“첨가제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맛이랑 향을 극대로 돋우기 위함이지.”

“채소 모양은 투박···, 으겍!”

“그건 맛이랑 상관없는 거잖아! 칼질이 서투른 거랑은 별개야! 그리고 그 중에 네가 한 것도 있거든!”

안젤라가 주걱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하도 세게 후려쳐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쓰라린 뒤통수를 매만지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결과물을 쳐다봤다.

“저로서는 납득이 안 간단 말이죠. 요리를 연금술로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는 네모났게 조각조각이 난 고기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안젤라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 챘는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핀잔을 줬다.

“프록이 단순히 양서류 개구리 고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프록은 겉모습만 개구리를 닮았을 뿐이지 땅에서밖에 못 사는 포유류라고. 봐봐, 이 고기들을 보면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생겼잖아?”

안젤라가 스프와 고기조각을 국자로 떠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녀 말처럼 분명 프록이라는 이 동물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생긴 육질을 가졌다. 그냥 이 상태로의 프록고기를 봤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맛나게 먹었겠지만 프록이 가공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선입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알겠으니까 도로 넣으세요.”

“남자가 고작 이런 거 가지고 쫄기는. 그렇게 프록이 무섭냐?”

국자에 든 스프를 다시 솥에 쏟은 안젤라가 비아냥거렸다.

“무서운 게 아니라 징그러운 생각이랑 겹쳐서 그래요. 솔직히 제가 있던 곳에선 개구리를 먹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여기 와서도 프록은 비상식이라 거의 먹을 일도 없어서 지금 처음 먹어보는 건데 어떡해요.”

게다가 프록 가공과정을 보면서 절대 프록은 먹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나도 귀공자처럼은 아니었지만 금이야 옥이야 키워져 기생충의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이런 음식은 거의 먹기는커녕 보지도 못한데다 이런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도 말라고 단속을 받은 탓에 내 입장에선 개구리를 닮은 프록을 먹는 건 꽤나 거부감이 드는 일이었다.

“그럼 지금 먹어보고 결정하면 되겠네. 자, 마침 완성도 됐겠다···.”

그 말과 함께 국자를 스프에 담그고 휘휘 젓던 안젤라가 국자 대신 숟가락을 바꿔들어 스프를 뜨더니 좀 전까지 솥에서 펄펄 끓어 뜨거운 스프가 식도록 입김을 불어 스프를 식히기 시작했다. 이 시나리오, 설마 이 상황은···.

“먹어봐. 설마 내 성의를 무시한다는 망언은 하지 않겠지?”

먹여주기. 그것도 이성이 직접 만든 요리를 손수! 이 얼마나 로망이 가득한 전개일까. 죽기 전에도 이런 건 엄마한테만 받아봤는데. 아, 괜히 슬픈 기억이 떠올랐어···, 흑. 돌이켜보니 나 여자복이나 로맨틱한 일이 없잖아···.

이런 방법으로 나온다면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 본심에 물어봐도 이런 전개는 나라면 한번쯤 일어났으면 하는 작은 소원인지라. 심지어 성격은 조금 더럽지만 미모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안젤라가 직접 해주고 있으니. 소원성취는 제대로 이뤘네.

소원을 이뤘는데 요리가 무슨 탓이랴. 그리고 좋든 싫든 일주일은 이런 보존식이나 비상식으로 때워야할 텐데 그때마다 투정 부릴 수 없는 일이니 지금 눈 딱 감고 먹어보자.

“손 떨리니까 빨리 입 벌려. 확 얼굴에 끼얹는다?”

“알겠다고요. 그럼 뭐···.”

평소에는 인상을 찡그리는 걸로밖에 안 보이던 안젤라의 얼굴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새침하게 보이고 그녀가 먹여준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걸 보면 새삼 그녀도 천상여자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재촉하는 안젤라에게 얼버무리듯 대답하며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이는 스프를 먹었다.

···이 맛은.

스프가 미각을 타고 올라와 뇌리를 자극했다.

안젤라의 스프의 맛은 너무나 맛있는 것도, 그렇다고 심각하게 맛없는 것도 아니었다. 순식간이었지만 머릿속에 번개가 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녀의 스프는···.

“합성조미료···?”

익숙했다. 심지어 지구에서 먹던 인스턴트 스프랑 맛이 아주 판박이였다. 최근 들어 매일 천연재료로 우려낸 스프에 길들여진 혀가 잊은 줄 알았던 그 강렬한 맛을 기억해낸 것이다.

“어때? 맛있다고 했지?”

안젤라가 자신에 찬 얼굴로 자랑스레 웃어보였다. 아마 합성조미료 맛에 놀란 내 표정을 보고 ‘착각’한 모양이다.

“잠깐, 어디서 밑장빼기입니까? 합성조미료 넣고서 실력이라 우기면 곤란합니다.”

“밑장빼기? 그리고 합성조미료는 또 뭐야? 맛난 거 먹고 나서 하는 말이 고작 헛소리밖에 없어?”

“맛나기야 하겠죠. 합성조미료로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실수를 커버 쳤는데 이 맛도 안 나오면 심각한 거죠.”

“···뭐라니 얘.”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는 뉘앙스인 게 날 한심하게 보는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아, 됐어. 네가 하루 이틀 이상한 짓거리하는 것도 아니고. 괜히 진상 부리지 말고 곱게 먹어. 아니면 굶든지.”

안젤라가 싫으면 관두라는 식으로 말하며 숟가락을 거뒀다. 그때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을 놓치면 내 공복을 채울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뇨, 제가 공짜로 입이 뚫려서 허언을 했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리프렌 데려와. 킨, 마차 안에서 그릇이랑 꺼내줄래?”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내 불길한 예감은 적중인 듯하다. 휴, 먹기 거북해도 굶는 건 사절이다. 어차피 먹는 음식인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리프렌은 근처에 있는 냇가로 갔을 테니까 그쪽으로 가봐. 아까 우리가 물 떠온 데.”

“자아알~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뜸들이지 말고 얼른 갔다 와! 스프 식으니까! 내 걸작을 망치지 말란 말이야! 하여간에, 말하는 거 진짜 맘에 안 든다니까.”

또 짜증 부리긴. 내 말투가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는지. 뭐, 됐다. 난 내 할 일이나 하자.

신경질을 부리는 안젤라와 그런 그녀를 돕는 킨을 베이스캠프에 두고 냇가로 갔다던 리프렌을 찾으러 숲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걔는 무슨 일로 냇가로 갔데. 물 뜨러 간 건가? 물이라면 넘치도록 퍼왔을 텐데. 아니면, 멱이라도 감나. 뭐, 그런 기적에 가까운 일이 나한테 일어날 리 없지. 인생이 소설도 아니고 말이야.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숲길을 헤쳐나아가다 보니 거치적거리던 수풀과 푹신한 흙 대신 자갈의 울퉁불퉁함과 딱딱함이 신발밑창너머에서 전해졌다.

“오, 여기는 그늘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달빛이 잘 들어오네.”

잎새 사이로 간간히 보이던 숲과는 달리 탁 트인 냇가로 나오니 하늘에 걸린 달이 더욱 밝게 비춰지는 것 같았다. 특히 적막을 조용히 흩뜨리는 냇물에 반사된 월광과 바다 같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어우러진 야경은 정말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캬. 절경이네, 절경. 서울에서 이런 절경은 보기 힘든데 말이지.”

스카이라인이라든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서울도 천혜의 자연 앞에선 어쩔 수 없네.

그나저나 리프렌 얘는 어디 있니? 설마 진짜로 냇가 어디에서 멱 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오랴!”

“뭐지, 이 익숙한 기합성은.”

한참 야경에 심취해있는데 분위기를 무참히 깨버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작은 위안이 됐다면 목소리의 주인이 문명이랑 담을 쌓고 수행에만 몰두하는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닌 발랄함 넘치는 소녀의 목소리였다는 거였다.

그래, 이 목소리는 분명히···.

“오오오오랴아아아아!”

퍽!

응? 방금 뭔가 서로 부딪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워얼처어억이이다아아!”

“월척?”

뭐인가 싶었던 그 의문의 말은 곧 이해할 수 있었다.

달과 별이 수놓아져있던 밤하늘을 덮친 유선형의 물체. 언뜻 검은색 달같이 보이기도 했던 그 물체. 자세히 보니,

팔딱거리고 있다. 설마, 생선? 연어?

일단 중요한 건 방금 그 물체가 살아 움직이는 검은색 달이든 하늘을 나는 연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그 팔딱거리는 물체가 시선을 가릴 만큼 커졌다. 즉,

“으겍!”

내 면전에 날아왔다는 거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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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상기(想起) - 10 16.05.03 284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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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상기(想起) - 8 16.05.02 295 1 14쪽
23 상기(想起) - 7 16.05.02 301 1 11쪽
» 상기(想起) - 6 +2 16.04.27 267 1 13쪽
21 상기(想起) - 5 +2 16.04.24 306 2 11쪽
20 상기(想起) - 4 +3 16.04.13 283 3 12쪽
19 상기(想起) - 3 +4 16.04.08 312 4 13쪽
18 상기(想起) - 2 +3 16.04.07 286 4 13쪽
17 상기(想起) - 1 +3 16.04.06 290 4 13쪽
16 뜻밖의 전개 - 4 +4 16.04.05 352 3 14쪽
15 뜻밖의 전개 - 3 +2 16.04.01 289 2 13쪽
14 뜻밖의 전개 - 2 +2 16.04.01 301 2 13쪽
13 뜻밖의 전개 - 1 +2 16.03.28 329 2 12쪽
12 아이덴티티, 그리고 적응 - 7 +2 16.03.27 35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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