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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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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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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66화-Rosis-Fillias-Polleo-Moles ta-Haeresis(4)

DUMMY

“아아아아, 이게 뭐냐고.”


털썩. 간신히 일으켜 세웠던 몸이 다시 침대에 파묻혔다. 뭐랄까. 몸이 무기력하니 머리도 덩달아서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런 감상도 없이 멍하게. 색으로 말하자면 탁한 흰색이랄까. 하얀 상념의 끝에 문득,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티없이 맑은 웃음. 별을 닮은 순수한 눈동자.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보호자 같은 매력이 있던 한 사람.


“아시오르······”


길고 긴 생애의 가운데에서, 반복하고 반복하던 여러 생애의 틈새에서 만난 남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소년이었지만 어느새 그는 남자가 되어 있었고, 그녀는 남자가 된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었다.

그가 홀연히 사라지기 전까지.


‘미안, 아스.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한테 아니, 어쩌면 너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이해해 줬으면 해.’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짧은 문장의 쪽지만을 남겨둔 채 그는 사라졌다.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면조차 미룬 채 그를 찾아 헤맸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작정하고 숨으면 그녀가 찾을 수는 없다. 그의 마법은 이미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그 후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그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과 애증뿐. 그가 남긴 마탑도 인연도. 그녀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단지. 그를 다시 보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 뿐.

물론 이제는 거의 접어버린 기대이지만.


“그러고 보니 그 마법의 패턴은······ 역시 포이멘인가?”


포이멘. 그가 남긴 가장 거대한 유산. 목동들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마법사들의 조직. 그에게 마법을 가르친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눈이 부실만큼 대단했고, 그의 방향대로 바뀌어 마침내에는 별을 닮은 마법이 탄생했다.

그는 목동의 아이이면서 별의 아이였으니까.

그의 걸음 걸음마다 별의 길이 그 곁을 지켰고, 그의 가는 방향마다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에게 흘러 들어간 지식이 목동과 별의 지혜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곳에서 그의 흔적과 마주한 것은 소감이 남달랐다.


“아아아! 뭐야, 괴물의 후계는 당연히 괴물이 나온다는 것도 아니고.”


아시오르야 별의 사랑을 받는 별의 아이였으니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그는 뭘까. 그에게서는 아무런 축복도, 저주도, 영능의 특이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그 능력. 그런 것이 세계에 탄생한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데?’


얼핏 보면 세계는 무척이나 허술해 보이고 빈틈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계의 한 단편일 뿐. 실상 그 안은 철저한 규칙과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있다.

세계의 균형을 해치는 이레귤러는 결코 인정하지 않고 어딘가에 대적자를 내려 보낸다.

인과에 비틀림이 생기고 파장이 일어나면 애초에 그 인과를 없던 것으로 한다.

천망회회(天網回回) 소이불실(小異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기나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세계를 이루는 기본 매커니즘의 철직이며 세계의 근본 이념이다. 업(業), 카르마(Karma)로 칭해지는 세계를 이루는 어떠한 인과의 구조에 의해 그 균형이 맞춰진다.

그런데 신의 권능에 비등하는 이능이 선천적으로 주어졌다?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 단언컨대 결단코 그런 힘이 한 존재에게 허락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버젓이 그런 존재가 나타났다.


“아아아아아! 짜증나! 도대체 뭐냐고! 그 자식!”


알 수 없다. 불가해(不可解). 모든 마법사가 그렇듯이 그녀 역시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마법사는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 모든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당연하게도 알 수 없는 어떤 것.

냉철한 이성으로, 지식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창출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야기한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언제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계산에 넣고 대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다가오면 그들은 의외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약한 것. 약점을 보이는 것. 상대적으로 아래에 있다는 것. 대부분의 지성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위해를 입는 것에 의한 생존본능이 그것을 싫어하고, 기피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그 틀 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알 수 없는 요소를 몸에 지닌 아인즈는 짜증뿐 아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아······”


계속 짜증을 내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지금 그녀는 초보 검사라도 우습게 죽일 수 있는 상태. 무슨 생각을 하건, 불평을 하건 지금의 처지에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한숨을 내쉬던 그녀에게 문득 엎어져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막 깨어난 상태라 눈여겨보지 않았던 탈색된 듯한 하얀 머리칼의 여자.

만사가 편한 듯한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을 보니 왠지 심술이 부리고 싶어진다.


“흠······”


콕콕. 손가락 끝으로 볼을 질러보니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뭐지?”


콕콕, 콕콕. 이번에 찌르는 것은 이 전번과는 달랐다. 마력을 흘려 존재를 감지, 탐색하는 종류의 기법. 세계의 존재는 그 실체가 감지되기 마련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흐음······ 뭐지? 뭐냐.”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들어간다. 드래곤의 지식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무수한 정보가 모여있기에 평소에는 도서관과 같은 형태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 기억의 서가에서 원하는 기억을 찾아내는 것은 제법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음, 음······ 으음······ 음?”


마침내 찾아낸 듯. 그녀의 눈이 떠졌다. 하지만 탄성을 내뱉을 새도 없이 당혹에 숨을 들이 마셨다.


“흡?!”


깊고, 어두운. 잔인하고 포악한 살육자의 눈동자. 광기를 안고 살아가는 드래곤인 그녀조차도 질릴 정도의 새하얀 어두움이 거기에 있었다.


“봤구나?”


그 잔혹하고 피비린내 짙게 풍기는 목소리에 그녀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녀가 찾아낸 것은 아주 먼 고대의, 신화시대라 일컬어지던 시기를 살았던 드래곤에게 선물로 받은 지식의 일부.

그곳에 기록되어 있던 슬픈 삶을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가장 촉망 받는 성자였던 그는 한 여인을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불합리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신의 은총은 질서를 거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광기의 연구. 그의 손에서 사자가 걸어 다니고 망자가 깨어나며 죽음의 강이 범람했다. 사상 최초의 네크로맨서(Necromancer).

그는 순식간에 대륙의 공적으로 지정되었다. 분명 그녀를 살리기 위한 연구였던 그의 마도는 어느새인가 변질되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세상을 향해 분노와 절규를 터뜨리는 미치광이가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그가 시작한 죽음의 물결은 순식간에 대륙의 북부 절반을 집어삼켰다. 그의 심각성을 깨달은 대륙의 세력들이 그를 막기 위해 회담을 할 무렵 돌연 그의 군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딸이 한명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와의 사이에서 난 하나뿐인 딸.

그의 딸에게 돌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그는 그간의 연구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딸은 살아남았다. 단지, 인간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리고 잊혀졌던 그의 흔적이 파일리아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의 군주의 외동딸······”


“헤에? 역시 봤구나?”


이름을 불리는 것마저 금지 당한 그가 스스로의 생명을 불태워서까지 만들어낸 궁극의 마서에 그는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딸의 영혼을 담았다.

세계를 구성하는 그 어떤 것에서부터도 안전할 수 있는 영원의 거처를 마련해 냈다. 단지 살고 싶다 말하는 그의 딸을 위해서.


“그럼 이걸 살릴까, 아니면 죽일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잔인한 미소를 지은 그녀를 보며 파일리아스는 그저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는 분명 드래곤이며 또한 고룡이지만 신화시대의 마서를 상대할 만큼의 무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마서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대량학살이 가능한 전략병기나 마찬가지니까.


“나를 죽이겠다?”


“못할 것도 없잖아?”


‘크윽.’


생긋. 싱그럽게 웃는 그녀의 미소가 서늘하게 빛났다. 드래곤의 광기조차 비교되지 못할 강렬한 그 감정에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떨어? 내가?’


공포라는 것.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서 태어난 그녀에게는 생소한 감각이었다. 지금, 이나니스를 보기 전까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이나니스가 입가를 말아 올리며 파일리아스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점점 다가오는 그녀의 손. 평범한, 곱게 자란 아가씨의 손 같지만 저 손에 담긴 것이 죽음을 부르는 권세임을 그녀는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이렇게 심장이 뛰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어쩐지 죽음에 직면해서야 심장의 고동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죽는······거구나.’


질끈 감은 그녀의 시야의 너머로 수많은 영상이 명멸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껏 살면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 수많은 만남들.

그리고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


‘아시오르.’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라졌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애정뿐이다. 그를 잊기에는 그를 사랑했던 마음이 너무나도 강했으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기를 그렇게 기원했지만 결국 이렇게 그를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죽음을 직면한 기분은 어때?”


“허억!”


갑작스럽게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죽음과도 같이 차갑고, 망자의 눈동자처럼 어두운 그 목소리에 눈을 뜨자 오른쪽, 시야의 끄트머리에 어렴풋이 하얀 색이 비쳤다.


“후후후.”


나직하게 웃은 그녀는 이내 일어나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며 낮게 입을 열었다.


“분명하게 알아둬. 내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끝에는 나를 위해 생을 살아가셨어.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게······ 뭐지?”


그 물음에 아주 오랜 기억이 떠오르며 이나니스가 작게 미소 지었다.


“너는 너의 행복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아라.”


“······”


“왜? 의외인가 봐?”


“그래.”


“후훗.”


달칵.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서며 이나니스의 영언이 그녀에게 닿았다.


-나는 단지 나의 반려를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이곳에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나를 건드리지 마. 그러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


“아니마!”


팔을 흔들며 밝게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밝다고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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