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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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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3,079

작성
16.07.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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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추천
12
글자
12쪽

73화-에르 가(El 家)(2)

DUMMY

방금 닿은 손가락을 문지르면서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는 스피카를 보고는 작게 웃음 지었다.


“큭큭.”


“왜, 왜 웃어요!”


“아니, 뭐. 그냥.”


“이익!”


어째서일까. 자신이 변한 만큼 그녀 역시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음의 앞에서 돌아온 경험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변해버린 그녀의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그녀의 성격마저 조금 변해 있었다.


“그저······”


그의 손이 곁에 있던 그녀를 당겨 안고, 은색과 녹색이 섞인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스피카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지만 그의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네가 좀더 활달해지고 밝아진 것 같아 마음이 편하네.”


“아······”


그의 말에 그녀는 나지막한 탄성을 뱉었다. 그를 만나고 잠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여전히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죽음의 앞에서 위태로이 서 있었다.

그 탓에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한다면 언젠가는 남겨질 그가 너무나 슬퍼할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적어도 자신이 그보다 먼저 수명이 다할 일은 없을 것이다.


“후후.”


“······”


어느새 완전히 자신에게 기대어 눈을 감고는 햇살의 온기를 만끽하는 스피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릎을 베고 누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잔하게 웃음을 흘렸다.


“어때?”


“글쎄요.”


“좋지 않나?”


“속이 쓰린데.”


“좋은 그림이네.”


“아, 커플지옥 솔로천국 만만세다.”


편안한 한때를 보내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저 뒤편의 복도에서 그의 아이들이 작게 소감을 교환했다.

한가로운 가족의 모습에 어울리는 한가로운 감상들. 하지만 그것을 보며 게럴트는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가씨께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젖는 시리아를 보며 게럴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그에게는 지금껏 보지도 못했던 큰아가씨보다 그가 직접 보살폈던 작은 아가씨 솔리투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화목해 보이는 가족의 풍경에 그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주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지 첫번째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법이고, 더군다나 첫딸이 납치되었다가 간신히 찾아 이제야 겨우 함께 있게 된 것이라면 그 감정은 더욱 각별할 터였다.

하지만 자신은 어째서 저 가족의 모습이 너무나 완벽해 보여 가슴이 아픈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 * *


“괜찮으십니까?”


“······응.”


작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슈바이젠(Schweigen)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가 아주 작은 유년기 때에부터 지켜보며 그녀를 돌봐온 몸. 그녀가 표현하는 아주 작은 감정의 편린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재차 이어지는 그의 질문에 솔리투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기분이 나쁘다는 종류의 것이 아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라 어색한 움직임을 보이는 근육 탓에 생기는 애석한 표정.

그것은 곁에서 지켜보는 슈바이젠의 얼굴에 기묘한 일그러짐을 만들어냈다.


“왕이시여······”


애석하고 애잔했다. 이 작은 그의 왕이 너무나도 불쌍했다. 그녀의 보호자라 자처하는 저 인간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무엇이 보호자인가. 스스로의 감정에 휘둘려 정작 보호해야 할 이를 보호하지 못하고 슬픔에 상처 입게 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보호자라는 말인가.

꽈악.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그에 대한 사랑으로 무엇이건 배려하려는 왕의 모습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왔다.


“슈바이젠.”


손을 잡아오는 작은 온기에 시선을 내리자 그의 왕이 그를 올려다보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이미, 충분.”


“······”


“감정, 강요, 싫어.”


“왕이시여······”


작고 가녀린 목소리로, 아직 채 성숙하지 못한 감성으로 자신을 타이르는 그녀가 너무나도 크게, 하지만 연약해 보여 절로 무릎이 꿇어졌다.

사소한 어리광조차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못하는 그녀가 너무나 불쌍했다.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녀의 강함에 이끌려, 그녀의 행사에 매혹되어. 그들은 언제나 그녀와 함께 전장에 나섰고, 그녀의 명령을 따랐다.

하나의 명령이 내려질 때마다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생들이 사라져갔다. 그들은 비록 기쁘게 끝을 맞이했을지 모르나 그녀에게는 그 모든 것이 상실로서 다가왔다.

그녀가 살아왔던 오랜 시간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상실을 겪었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한 충성스러운 이들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그저 그녀의 사소한 감정에조차 충성을 바치고 역시 사라져갔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아인즈에게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어리광조차 부리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그조차 자신을 위해 행하다 사라져 버릴까 봐.

그조차도 떠나갈까 봐.

그조차도 자신에게 상실로 다가올까 봐.

이제야 겨우 가족의 온기를 알았고, 그 소중함을 마음 깊이 만끽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상실이 두려웠다.

이 온기가, 이 포근함이, 이 평온이. 자신으로 인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괜찮아.”


언제나 곁에서 들어왔던 말. 마계의 그 혹독하고 잔혹한 전장을 누비며, 처절한 혈전의 한가운데에서 항상 걱정만 하는 자신에게 무수히 해 왔던 말들이다.

그때에는 너무나도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웠던 말들이 어째서 지금은 이토록 슬프게 들리는 것일까.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에 솔리투도가 손을 얹고 그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사랑하는 보호자가 그리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그림자 아래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만을 생각해 주는 이 충직한 이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배웠던 그대로 행해 주었다.


“내, 문제, 내가, 해결.”


“왕이시여.”


“슈바이젠, 끝까지, 함께? 도와?”


“예. 예, 저의 왕이시여. 나의 찬란한 영광이시여. 비록 미력하고 하찮은 이 몸이나마 그대의 끝까지 곁에서 지킬 것입니다.”


그녀의 작은 온기에. 너무나 부드러운 그 손길에. 떨리는 목소리로 오래 전 했던 충성의 맹세를 바치는 기사의 머리칼을, 그의 왕이 단지 작게 쓰다듬었다.


“응. 함께, 가, 슈바이젠, 내, 기사.”


* * *


아드리아에 돌아오고 일주일. 아인즈는 긴장의 끈을 놓고 평온을 즐겼고, 에아와 스피카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그와의 해후를 만끽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손님들이 찾아왔다.


“헤에, 여기가 당신 집이구나아~”


“어, 그러니까······ 어떻게 불러야 하죠?”


성룡으로서 인정을 받고 돌아온 네이라일과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곧장 찾아온 이리안.


“흐음. 확실히 저 남자 정도라면 네 반려로 어울릴 법하다 만은······”


“후훗, 고마워요.”


수천년의 세월의 끝에 다시금 만남을 가지는 파일리아스와 스피카까지.

정원에 마련된 티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묻고, 쌓여왔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게럴트는 언제나 그랬듯이 테이블 옆에 서서 시중을 들고, 시리아와 바이올렛, 그리고 새로이 합류한 니난이 여러 가지 잡일을 처리했다.

케이난과 쿠시르, 루나가 정원의 가장자리에서 주인의 평온을 보장했다. 언제나와 같은 아니, 앞으로 언제나와 같을. 언제나 그가 바라마지 않던 그런 풍경.

자신에게 매달리는 네이라일을 떼어 놓으며, 언제나 말없이 주변 어딘가에 앉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솔리투도를 끌어 곁에 앉히고, 에아를 그 곁에 앉게 하고 아니마를 데려와 역시 그 곁에 앉혔다.

서로 한곳에 모여 여럿이 수다를 나누는 이 풍경이 너무나도 평온해 만족감이 정신을 나른하게 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작게 피어 올랐다.


“아빠!”


덥석 안겨 드는 에아를 안아 올리며 그로서는 드물게 진심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그는 언제나 가족들에게는 진솔했다.

가족에게마저 습관적인 미소를 지어 보인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능멸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는 자신의 품에서 재잘거리는 작은 아가씨의 진심으로 즐거운 듯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 아빠. 우리 밖에 나가면 안돼? 오늘 야시장이라는게 선다는데 나 꼭 가보고 싶어!.”


“야시장?”


응!이라고 말하며 힘차게 머리를 끄덕이는 에아의 모습에 작게 인상을 찡그린 아인즈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양 엄지 손가락을 장난스레 들어올리며 얼핏 보면 멍청한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나니스를 보자 에아에게 바람을 넣은 것이 누구인지 뻔했다.


“하아.”


“아빠?”


작게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에아가 약간 불안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작게라도 웃어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어린 딸은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부린 고집에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마음을 졸였는지. 그 탓에 자신이 고집을 부리는게 그에게 다시 난처한, 힘든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작게 불안을 담고 있는 두 눈동자가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아니, 아니야. 그래, 가지 뭐. 야시장에는 제법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니까.”


“어! 그럼 나도! 나도 갈래!”


외견상 다 컸는데다가, 실제로도 얼마인지도 모를 세월의 속에서 스스로의 사고를 계속했을 그녀가 달성한 목적에 촐싹이는 것을 보고 뭐라 하려고는 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에 그는 결국 또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래, 다 같이 가자.”


“와아!”


“고마워요, 아인즈.”


“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제각기 한마디씩을 하는 이들을 보며 아인즈는 작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 안에서만 머무는 게 그렇게 지루했나?’


다시 생각해 보자면 확실히 이 요새 안의 생활은 평온하고 안락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변화가 없는 생활이니 지루하기는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다지······’


그의 성향은 그 나이대의 청년보다는 오히려 노인에 가까웠다. 도전보다는 평온이. 이익이 따를 위험의 가능성보다는 아무런 손실도, 이익도 없는 현재가 더욱 소중한 그런.

하지만 기뻐하는 가솔들을 보고 있자면 그런 자신의 성향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빠! 그럼 나가서 저녁 먹자!”


“······외식?”


감정의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솔리투도의 뺨까지 약간 붉그스레 달아 오른 것을 보니 아마도 어지간히 가고 싶은 것 같았다.


“그래, 가자.”


“와아!”


“······”


환호하는 에아와 입꼬리가 살짝 떨리는 솔리투도를 스피카에게 넘겨주며 살짝 웃어 보이자 스피카 역시 마주 웃어 보였다.


“자, 그럼 모두 옷 갈아 입고 와야지?”


“그래, 아빠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아이들이지.”


“응, 응!”


스피카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고 그들을 따라 다른 이들도 모두 함께 드레스룸으로 향했지만 시리아만은 조금 어두운 얼굴로 아인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의아함을 느낀 것인지 아인즈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갑자기 달려든 그녀에 의해 이어지지 못했다.


“······”


눈물도, 훌쩍임도 없지만 잘게 떨려오는 그녀의 몸에 그는 작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무래도 들키고 만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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