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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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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3,079

작성
16.06.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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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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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2쪽

27화-왕녀와 마법사. 그리고 망나니(3)

DUMMY

아인즈가 별에 답을 얻을 때 이리안은 여러모로 귀찮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공주님.”


“이리안님.”


“왕녀님.”


수 없이 많은 귀족가의 자제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고 책잡히는 곳 없이 완벽한 예법을 보여야만 했다.


“네, 오랜만이네요.”


그들을 대하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그들이 비록 권력의 중심에 선 귀족은 아니지만 차후 귀족이 되어 권력의 중추가 될 이들.

이곳, 연회장은 이미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하아, 피곤해.”


이리안이 겨우 인파로부터 도망쳐 음료를 들고 서 있자 일리아나가 곁에 다가왔다. 그녀는 짜증으로 가득한 이리안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아, 뭐.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잖아?”


애초에 귀족과 왕족에게 여식이란 결국 정치의 도구일 뿐. 아니, 그들의 인생 자체가 정치역학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리안 역시 14살이 되던 해, 사교계에 데뷔하고부터 수없이 많은 연회를 겪어 왔다.

그러니만큼 이런 연회는 크게 색다른 느낌은 되지 않았다. 다만 조금 피곤할 뿐.

부채로 열을 식히던 이리안이 연회장을 둘러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오라버니는 정말 참가만 하실 생각이신가 보네.”


그녀의 위치에서는 연회장의 대부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인즈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말대로 어딘가의 테라스에서 와인을 즐기고 있을 뿐일 터였다.

그렇게 한숨을 쉬던 그녀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일리아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응? 리아. 왜 그래?”


그녀의 표정에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이리안은 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말았다.


“젠장.”


미묘하게 인상을 찡그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였다.


“오랜만이군요, 프린세스 이리안.”


“그렇군요. 오드사 파텐트(Hordsa-Fathent) 공작자제.”


그녀의 냉담한 반응에 그는 과장스럽게 가슴을 움켜잡았다.


“아아, 슬프군요, 여전히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실 의사는 없으신지요?”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태도에 이리안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분명 그녀는 일국의 왕녀. 언제나 스스로의 표정을 관리하고 예를 잃지 않을 수 있지만 눈앞의 남자에게만은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왕국 제1의 부호이자 정계의 거두, 파텐트 공작가. 그런 가문의 후광만을 믿고 날뛰는 차기 공작가의 가주 오드사 파텐트. 이제 19살이 된 그의 여성편력은 이미 살롱에 소문이 자자했다. 거기에 그는 파텐트의 뱀이라 불릴 정도로 암수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그런 그에게서는 항상 추악한, 구역질 나는 감정이 넘쳐났기에 그녀는 그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될 수 있으면 멀리하려 했다.


“그대가 그토록 무례한 짓을 계속해서 행한다면 언제나 그대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을 겁니다.”


“아아, 그런가요?”


여전히 익살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그가 입가에 미소를 맺더니 서늘하게 웃었다.


“언제까지 그런 도도한 태도가 먹힐 거라 생각하지?”


“뭐라?”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리안이 반응하자 그는 더욱 서늘하게 웃었다.


“착각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왕의 총애를 받는다고는 해도 결국 왕녀일 따름이야. 그리고 왕녀는 왕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싼값에도 넘길 수 있는 상품이지.”


“뭐, 뭐?”


그의 갑작스런 폭언에 이리안이 당황을 드러내자 그의 웃음이 진해졌다. 그의 웃는 눈동자는 지나치게 서늘해서 어째서 그가 파텐트의 뱀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내가 적당하게 봐 줄 때 넘어오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네 신세는 길바닥의 창녀보다도 하찮아질 수 있거든.”


“무, 무슨······!”


그의 갑작스러운 모욕적인 언사, 폭언에 이리안은 결국 화를 참지 못했다. 자신은 일국의 왕녀 결코 작위도 가지지 못한 일개 공작자제 따위에게 폭언을 들을 위치가 아니었다.

짝!

갑작스러운 살이 마주치는 타격음에 홀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연회를 즐기던 그들의 시선의 끝에는 고개가 돌아간 오드사와 휘둘렀을 것으로 생각되는 손을 잡고 있는 이리안이 있었다.


“하, 이것 참.”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침묵은 오드사의 한마디와 함께 깨어져 나갔다. 그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이리안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에 이리안은 잔뜩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지나쳤다. 이곳은 연회장. 아무리 폭언을 들었다 해도 이건 큰 스캔들이다. 절대 왕의 총애로 무마할 수 있을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하, 공주마마. 마마처럼 고귀하신 분께서는 저 같은 하찮은 귀족자제는 이런 방식으로 모욕을 주어도 상관없는 모양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는 귀족. 비록 작위가 없다고는 하나 그가 귀족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그의 뺨을 때렸다. 그것은 중대한 모욕행위였다.


“나, 나는······!”


“이것 참!”


이리안이 무언가 말을 하려 하자 오드사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말을 하는 그의 눈은 먹이를 앞에 둔 뱀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아무리 이 나라의 왕족이 고귀하다고는 하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귀족을 모욕하다니요! 거기에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여전히 시선을 자신에게 둔 채 연기를 하듯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는 그의 태도와 시선에, 그의 몸짓에 따라 자신을 찌르는 사람들의 시선에. 이리안은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공주마마.”


“나는, 나는······”


“그만하세요! 결례는 그대가 먼저 범하지 않았습니까! 오드사 공자!”


보다 못한 일리아나가 나섰지만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제가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뭐, 뭐라고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대가 먼저 공주님께 모욕적인 언사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언제요?”


“무슨?”


일리아나는 오드사의 뻔뻔한 태도에 기가 막혔지만 이미 흐름은 그에게 있었다.


“제가 한 적도 없는 일을 가지고 저에게 죄를 만들려 하시다니······ 사가실 백작영애. 그대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러한 일을 행하시는 겁니까?”


“뭐라고요?”


오드사의 눈은 영활하게 움직였고 그의 머리에는 이미 모든 계획이 완성되어 갔다.


“그러고 보니 사가실 백작영애께서 공주님과 평소 친하게 지내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의 시선을 완전히 자신이 쥐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혹여, 두 분께서 그렇고 그런 사이인지라 상대의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나서신 것은 아니신지요?”


“큭큭큭.”


“킥킥.”


“후후.”


중대한 모욕. 평소라면 이런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하는 상황에서 저런 말을 꺼내었다가는 당장에 왕족을 모욕한 죄로 처형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이곳의 상황은 오드사의 손에 넘어가 있었고, 그녀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리안의 손이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부채를 세게 쥐었지만 그녀는 오드사를 노려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이곳의 주도권은 그에게 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진 것이다.


“이, 이리······”


주위의 시선에 분노로 몸을 떠는 그녀를 일리아나가 걱정스레 말을 걸었지만 그런 행동조차도 오드사에게는 좋은 먹잇감일 뿐 이었다.


“오호, 사가실 백작영애. 그대의 파트너가 걱정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를 어쩌나. 그녀는 더 이상 그럴 기분이 아닐 듯 한데요. 어찌, 저라도 어울려 드릴까요?”


“그 무슨!”


“큭큭.”


“푸훗.”


주변의 웃음소리에 일리아나는 완전히 깨달았다. 지금 자신들은 그저 저들의 좋은 가십거리이고 구경거리일 뿐이라는 것을.

그것을 깨달은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본래 그녀는 이리안처럼 당당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저 곁에 이리안이라는 믿을만한 친구가 있기에, 그녀가 도와주기에 애써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것일 뿐. 본래 그녀는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모멸감에 눈물을 떨구려 할 때. 전혀 색다른 존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라?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갑작스런 그의 목소리에 홀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이리안과 일리아나의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남자가 서 있었다.

은실로 수를 놓은 군청색의 단정한 정장. 은빛의 모노클. 아인즈를 본 이리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오······라버니······”


“네? 무슨 일이신가요?”


얼굴에는 여전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그의 시선에 그녀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오라버니······”


갑작스러운 그녀의 눈물에도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이런, 숙녀가 이렇게 함부로 눈물을 보이면 쓰나요.”


“오라버니!”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결국 그녀는 그를 부둥켜 안고 소리 없이,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었다. 그런 그녀를 차분히 쓸어주던 그의 귀를 거슬리는 목소리가 자극했다.


“이런, 두분 이서만 즐기신 것이 아니라 세분이셨나 봅니다? 하긴, 세분 모두 한창때이니 어쩔 수 없나요?”


“하하하.”


“후후후.”


“큭큭큭.”


오드사의 말에 장내의 모든 이가 제법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미 모든 흐름은 오드사가 가져왔고, 반역에 준하는 일이 없다면 이곳에서 있었던 일로 왕이 처벌을 내리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들은 태생이 서로를 상처주기 위해 태어난 이들. 이런 상황에서 소리 내어 웃는 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모욕이 되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흐음.”


그런 그들의 태도에 오연히 그들을 쓸어보던 아인즈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는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 오드사가 빙글거리며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자, 이제 어쩔 테냐, 라고 말하는 듯한 그를 잠시 응시하던 아인즈는 좌중을 둘러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흐응, 제법 쓰레기가 많군요. 이곳은.”


“뭐, 뭐?”


“저자가 뭐라고 하는 것인가?”


“감히!”


아인즈의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귀족들이 흥분하자 오드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짓에 거짓말처럼 소란이 가라앉고 그가 서늘한 눈으로 아인즈를 바라보았다.


‘뭐, 예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차피 상관없지. 오히려 잘 된 건가?’


“그래, 그대는 누군가? 누구기에 귀족들을 상대로 그리 모욕적인 언사를 행하며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인가?”


여전히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일별한 아인즈는 시선을 다시금 이리안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이미 진정이 된 듯. 더 이상 몸을 떨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대화를 모두 들은 듯, 그 작은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아인즈는 작게 웃었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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