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건곤정협행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夜月香
작품등록일 :
2016.05.31 21:37
최근연재일 :
2016.06.01 19:32
연재수 :
140 회
조회수 :
867,436
추천수 :
5,579
글자수 :
895,016

작성
16.05.31 21:48
조회
12,603
추천
88
글자
12쪽

숙명을 만나다 2

DUMMY

예의 그 선비뿐 아니라 소년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지켜보는 그때, 뜻밖에 소년의 입에서 터져 나온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장중을 울렸다.


“이보시오들, 이 행렬이 비록 어가의 행렬이라고는 하나 나는 단지 저 여자아이에게 볼일이 있어 다가갔을 뿐이오. 저 아이가 공주라 했던가? 그렇다면 공주도 백성을 어여삐 여겨야 할 신분, 아무리 나이 어리다 하나 나도 이 나라의 백성이거늘 어찌 연유도 알아보지 않고 이렇듯 폭력을 행사하는가?”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으나 당당함이 그 넓은 공간을 절로 압도했다.


“허, 이놈이? 감히 황제의 어가를 멈추게 하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느냐!”


자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눈길에 당황한 호위무사가 당장이라도 소년을 쳐 죽일 듯 손을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마차 안에서 맑고 또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를 해하려 한 게 아니고 단지 물건을 돌려주려했다 하지 않은가. 비록 행색은 남루하나 저 아이의 말처럼 이 나라의 백성임이 틀림없다. 호위무사는 물러나라!”


공주라 불리 운 소녀가 호위무사를 질책하는 목소리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싱긋 웃음을 흘리던 황제가 말머리를 돌리자 행렬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화려한 어가 행렬은 어느덧 눈앞에서 사라지고 화영루 앞 공터에는 어두움만 남았다. 그 자리 한구석에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소년을 가운데 두고, 이 당돌한 아이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신기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바로 그때, 군중들 틈 사이에서 그 선비가 황급히 뛰어 나와 소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얘야, 괜찮으냐?”


잔뜩 긴장해 걱정스럽게 묻는 선비를 올려다보는 소년은 오히려 태연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허, 이놈 보게. 허나 다행이다. 너를 앞으로 데리고 나온 내 잘못이 크구나.”


황제의 용안 한번 보게 하려다 자칫 잘못되었으면 아이의 목숨을 잃게 만들 뻔 했다. 그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것에 겨우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소년은 뜻밖의 말을 뱉었다.


“마침 기다리던 아이가 눈에 뜨이기에 달려갔을 뿐입니다. 그 일이 어찌 그게 어르신의 잘못입니까?”

“그게 무모한 짓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러다 탈이라도 나면 어찌하려 했느냐?”

“에이, 어르신.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그들이 절 어찌하겠습니까.”


졸지에 얻어맞아 얼굴에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든 아이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어른스럽게 대답하는 모습에 군중들 모두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얘야, 그 행렬이 어떤 행렬인지 내가 분명히 일러주었다. 황제의 용안이라 한번쯤 보아두라고 한 일인데···, 어쩌자고 네놈은 그리도 분별없이 달려들었느냐?”


선비 역시 그 당시 아이의 행동에 기가 막힌 듯 억하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앞뒤 살피지 않고 뛰어든 이면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는지 물어본 말이었다.


“얘, 어르신. 제가 오래토록 기다린 아이가 그 마차에 있었습니다. 공주라던 그 아이에게 꼭 돌려주어야 할 물건이 있었지요. 마침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기에 물건을 돌려주려 달려 나간 것입니다.”

“물건을 돌려주려 했다? 그 물건이 무언지는 모르나 그 아이는 황실의 공주다. 공주에게 그토록 무례하게 달려든다면 목숨이 남아나지 못한다.”


앞뒤 분간 못하는 어린 아이의 짧은 소견이라 여겨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려는 선비를 똑바로 쳐다보던 소년이 오히려 얼굴을 붉혔다.


“어르신. 제행동이 무모한 짓이라니요? 아닙니다. 당시 저는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습니다. 무작정 제게 폭력을 행사한 황제의 잘못이지요!”


어리지만 당당했다. 그리고 자신을 폭행한 호위무사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고 황제의 잘못이라 말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년선비는 이렇게 말을 하는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 다시 물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너에게 폭행을 가한 호위무사의 잘못이 아닌 황제의 잘못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어르신. 그 이유는 그 행렬을 이끄는 인물이 황제이기 때문입니다. 황제란 백성위에 군림을 하는 자가 아니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보위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위정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황제는 자신을 위해 쓸 권력은 없지요. 다만 그 권력으로 백성이 편히 살 수 있도록 보살필 임무뿐이지요. 그런데 황궁의 기강이 무너져 호위무사까지도 어린 공주에게 아부하는 꼴이, 저의 눈에는 그저 거들먹거리는 황제의 행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 잘못은 황제에게 있는 거지요.”

“으음···. 너의 생각이 그렇더냐?”


선비의 눈 속에 번뜩 섬광이 스쳤다.


어린아이의 여겼더니 섬뜩하리만치 예리한 소년의 말이었다. 소학의 명륜편 책자를 언제나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가 기특해 한동안 지켜보았건만, 어린 생각이 이렇게도 깊은 속내를 가졌을 줄은 몰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무언가 사연이 숨겨져 있는 듯한 소년의 눈을 한동안 주시하던 선비가 알듯 모를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네 이름이 무어냐?”

“예, 유운(溜雲)이라 합니다.”

“유운이라···. 그래, 성씨는?”


할아버지에게서 누누이 들었던 말, 위엄과 기품이 남달라 세상에 더없이 존경받던 상관가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력을 밝히지 말라 당부에 또 당부를 하며, 상관(上官)이라는 성은 잊고 오로지 유운(溜雲)이라는 이름만으로 살아라 말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 순간 떠올라 눈 주위가 저절로 젖었다.


소년은 선비에게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어르신. 이놈, 고아로 혼자 떠돌다 보니 성을 잊은 지 오랩니다.”

“어허, 잊었다? 밝히기 싫다는 것이겠지. 알았다. 더 이상 묻지 않으마. 대신 내가 너에게 제의를 하나 하지.”


선비가 정색을 하며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 동안 혼자 지내느라 무척 힘들었을 게다. 이제 나를 따라 내 집으로 가서 글도 익히고 함께 지내지 않겠느냐?”


아이의 담대한 성품이 어쩌면 자신의 뜻에 꼭 맞는 인물로 키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그냥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마음 들어 은근히 권한 말이었다.

지금껏 의지하던 할아버지와 가솔들을 여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유리걸식 떠돌던 소년 상관유운(上官溜雲)이다. 어쩌면 배불리 먹고 편히 쉴 곳이 생기는 일이 아닌가? 듣고 보니 별로 손해를 볼만한 일을 아닌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쉬 대답을 한 후 선비를 따라 이윽고 당도한 곳은 낙양의 동쪽의 백마사 아래에 조용히 자리한 저택, 그곳은 누대(屢代:여러 대)를 이어온 명문(名門), 서문가였다. 그 저택 높은 대문위에 무상서문가(無想西門家)라 일필휘지로 쓰인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내 집이니라. 들어가자.”


자랑스럽게 현판을 올려다보며 소년의 손을 이끄는 선비, 화영루 앞에서의 그 혼란한 와중에 이 선비가 어전 전시(殿試)에 급제하고 무과까지 장원을 해 문무를 겸비한 영걸이라고 수군거리는 주변사람들의 소리를 흘려들었다. 그러나 유운이 지금 본 바로는 현판의 글에서도 느껴지듯 세상에 영화(榮華)에 현혹되지 않고 이곳 낙양에서 풍류를 즐기며 무심히 세월을 보내는 인물처럼 보였다. 그 서문가의 당대의 가주 서문인걸(西門仁杰)이 어린 유운의 당돌함에 반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서문인걸의 뒤를 따라 대문을 들어서는 유운의 눈앞에 예쁘장한 소녀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아버님, 다녀오셨습니까? 어머, 이 아이는 누군지요?”

“오냐, 이제부터 우리 집에 기거하며 함께 공부를 할 아이다. 네가 잘 돌봐 주어라.”


힐끗 눈길을 돌려 소년을 바라보던 소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아버님, 이런 거지 아이를 집에 들여서 어찌 하시려고요?”


서문가에 들어서자 듣는 첫마디가 자신을 향한 모욕의 한마디, 그러나 유운은 시익 웃음을 흘리며 화령이라 불린 아이의 얼굴을 주시했다. 자신보다 두세 살쯤 위로 보이는 소녀다. 귀엽고 아리따운 모습이기는 하나 유운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 속에는 얼핏 간교한 빛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어허, 화령아!”


오랜만에 보는 딸아이를 맞아 웃음꽃이 피던 서문인걸의 얼굴에 언뜻 노기가 떠올랐다. 동시에 격한 목소리로 화령이라는 그 소녀를 꾸짖었다.


“ 아비가 그리 가르치지를 않았거늘! 어서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느냐? ”


서문화령(西門華怜)은 지금껏 아버지가 자신에게 이토록 화를 내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흥, 저따위 거지아이가 뭐라고!”


그런 화령을 달랠 생각은 않고 서문인걸은 오히려 얼굴에 찌푸렸다.


“쯧쯧···, 서둘렀으면 시집가서 아이까지 낳았을 나이건만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는구나.”

“몰라욧!”


거지같은 아이 때문에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 화령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홱 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서문인걸이 집사를 불렀다.


“게 있느냐, 이 아이를 깨끗이 목욕 시켜 새 옷으로 갈아입힌 후 내방으로 데려오너라.”


그리고 잠시 후, 화령을 불러 안채에서 함께 기다리던 서문인걸이 목욕을 하고 방으로 들어서는 유운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놈. 훤하게 잘도 생겼구나. 화령아 어떠냐? 이래도 이 아이가 덜떨어진 아이처럼 보이느냐?”

“치이··· 아버님도. 소녀 무어라 했습니까?”


시원스런 눈망울에 수려한 용모, 그의 모습이 화령의 눈에도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여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잘생긴 아이를 본적이 있느냐? 이 아비가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그리도 일렀건만, 아비 말이 틀렸더냐?”

“에이, 아버님. 그 말씀 명심할 테니 이제 그만하세요.”


목욕을 시키고 옷까지 단정히 입히고 보니 때 국물 줄줄 흐를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져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서문인걸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의 말이 흘러나왔다.


“어서 앉거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는 화령과 함께 글을 배우도록 해라. 그리고 화령아, 너도 이 아이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보살피도록 해라.”


허나 화령의 뇌리에는 거지꼴로 대문을 들어오던 유운의 모습이 각인이 되어있는 듯 아직도 업신여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때문에 단단히 당부하는 서문인걸의 말이 별로 내키지 않아 대답 대신 입만 삐죽거렸다. 유운은 화령의 그 같은 태도는 아예 도외시하고 서문인걸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이놈에게 글을 가르쳐 주신다하니 그 고마움이 하늘에 닿습니다. 그러나 그저 배울 수는 없지요. 단 하루를 가르쳐 주신다 해도 이놈에게는 스승이 되십니다. 감히 스승의 예(禮)를 올리고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절 받으십시오.”


어느 어른인들 이렇게 반듯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린 아이의 놀라울 정도로 예절이 바르고 침착한 태도에 서문인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아니다. 저 아이 화령과 겸해 가르치려는 것이니 너무 격식을 차리지 말아라. 허허··· 그놈, 반듯하기도 하구나.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학문을 익히도록 해라. 밖에 집사는 있느냐? 이 아이에게 기거할 방을 안내해 주어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리건곤정협행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第 4 章 음모의 단초 1 +1 16.06.01 9,172 63 16쪽
19 가연해후(佳緣邂逅) 6 16.06.01 9,087 64 14쪽
18 가연해후(佳緣邂逅) 5 16.06.01 9,050 61 16쪽
17 가연해후(佳緣邂逅) 4 +1 16.06.01 9,169 70 16쪽
16 가연해후(佳緣邂逅) 3 16.06.01 9,339 64 12쪽
15 가연해후(佳緣邂逅) 2 16.06.01 9,381 65 14쪽
14 第 3 章 가연해후(佳緣邂逅) 1 16.06.01 10,041 71 16쪽
13 무공, 그 새로운 세계 8 16.06.01 9,925 64 16쪽
12 무공, 그 새로운 세계 7 16.06.01 10,082 72 15쪽
11 무공, 그 새로운 세계 6 16.06.01 10,353 71 12쪽
10 무공, 그 새로운 세계 5 16.06.01 10,423 68 12쪽
9 무공, 그 새로운 세계 4 16.06.01 10,878 69 16쪽
8 무공, 그 새로운 세계 3 16.06.01 10,839 83 14쪽
7 무공, 그 새로운 세계 2 16.06.01 11,119 72 11쪽
6 第 2 章 무공, 그 새로운 세계 1 16.06.01 12,000 75 16쪽
5 숙명을 만나다 4 +1 16.05.31 11,589 84 13쪽
4 숙명을 만나다 3 16.05.31 11,644 78 11쪽
» 숙명을 만나다 2 +1 16.05.31 12,604 88 12쪽
2 第 1 章 숙명을 만나다 1 16.05.31 14,696 80 12쪽
1 第 1 部 천궁전설(天宮傳說) : (1券) 序章 예언과 전설 16.05.31 26,358 9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