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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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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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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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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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외전 1. Superior Progress : 소렌이 나아갈 길

DUMMY

소렌은 본래 외모를 잘 가꾸지 않았다. 머리만 해도 언제나 죽 늘어트리기만 할 뿐 별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늙은 보모는 외면을 다듬지 않고 입학식에 나가려는 소렌을 엄하게 꾸짖었다.


“폰테일의 영애께서 그런 모습으로 외인들에게 모습을 보이시는 건 몹시 외람된 일입니다. 제가 있는 한 그런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답니다.”


미들스쿨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통해 그녀는 마침내 다른 이들과 자신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어리석고 나약한 이들이었다. 일국의 공작에 앉은 그녀의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의 능력을 질시하고 경계하며 또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다른 이들에게 너무 기대를 건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서 소렌은 보모의 말이 절반 정도는 타당하다 여겼다. 그러나 소렌은 마치 보모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듯 별다른 갈등을 겪지 않고 보모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한데 어울릴 수 없다면 차라리 오롯이 홀로 설 생각이었다. 소렌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상, 아직 어린아이들은 그 고귀한 외견에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으리라. 더군다나 그 외견에 내실까지 탄탄하다면 더더욱.

지금 외견을 다듬는 것은 그 첫걸음이었다. 오랫동안 폰테일 공작가를 보필한 그녀라면 소렌 자신을 지체에 걸맞은 영애로 꾸며줄 수 있을 것이다. 소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뎠다.


“다 되었어요. 어때요, 예쁘지 않나요?”


소렌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들스쿨에서 고립되었던 그녀는 이미 소녀다운 감성이 메말라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거울에 비친 모습이 퍽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뭇 달라진 딸을 본 롤랜드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예쁘구나.”


“감사합니다.”


롤랜드가 벅찬 마음을 간신히 추슬러 그 한마디에 담아냈다면, 소렌은 보이는 그대로 무뚝뚝한 모습만을 내보일 뿐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롤랜드는 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가 그리워졌다. 저런 모습 하나까지 모두 엘레나를 닮아있다는 것이 우습기까지 했다.


“갑자기 말을 바꾸어서 미안하구나. 오리엔트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아닙니다. 하이스쿨에서도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합니다.”


문득 롤랜드는 소렌의 태도가 정말로 딱딱해졌음을 깨달았다. 이젠 아비인 자신에게도 부드러운 말투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하이스쿨에 가는 것이 역시나 달갑지 않은 것이리라. 하기야 자신이 소렌이라도 미들스쿨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과 다시 부대끼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흐음, 그래. 그래야지. 너무 걱정은 말거라 아마 기대한 것 이상일 게다.”


기대라는 말에 소렌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기대는 오래전에 접었다. 그 대신 소렌은 어떻게 덜 실망할지 궁리하기로 했다. 단지 하이스쿨을 졸업하지 않으면 공작위를 물려받을 수 없기에 소렌은 하이스쿨에 진학했을 뿐이다. 롤랜드는 그런 그녀의 심중을 모른 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소렌 역시 롤랜드의 미소를 보지 못하고 짐을 챙겨 저택을 나섰다.

저택 주위에 자리한 검사들이 소렌을 알아보고 눈길을 주지만 누구도 섣불리 소렌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들조차도 소렌의 괴물 같은 천재성에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 유일하게 소렌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가 있었다. 비룡검객 유한겸은 순수하게 소렌에게 경의를 표하며 멀찌감치서 오리엔트의 인사법을 취하고 있었다.

이에 무관심을 일관하던 소렌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을 한 그가 새삼 달리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역시 자신처럼 다른 이들에게서 경원시 되기 때문일까? 그 동질감을 친밀함으로 표현한 것일까?

그 모습을 본 소렌은 오리엔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일었다. 자신 같은 사람을 저렇게 순수하게 바라보는 오리엔트에 대한 동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리엔트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로베른 하이스쿨의 교장 블로펜은 꼬장꼬장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배경이 화려하고 그 실력이 뛰어나다는 기록이 있더라도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그 덕에 소렌은 첫날부터 그녀의 엄청난 실력을 다른 이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하, 합격...”


시험관이 할 말을 잃고 소렌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편 보모가 정리해 준 머리카락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최고의 성적으로 시험을 마친 소렌은, 롤랜드의 말을 떠올리고는 입학생들의 면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과연 그 면면은 미들스쿨에 다니던 때와는 달랐다. 평민이 절반 이상이던 미들스쿨과는 달리, 하이스쿨에는 귀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실력 면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이곳은 소렌을 감당할 수 없는 곳이 분명했다. 마지막 가능성이 무너지고 소렌은 하이스쿨에 걸었던 일말의 기대를 접었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어머머. 이 머릿결 좀 봐. 소렌님께서는...”


시험을 마치자마자 수많은 소년소녀가 소렌에게 몰려들었다. 미들스쿨에서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반면교사삼아 소렌은 억지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마주 인사를 건네주었다. 미들스쿨과는 달리 이곳에서 이루어진 인맥은 평생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렌은 오히려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지나치게 뛰어난 자신이 미들스쿨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교훈으로 삼아, 소렌은 입학시험에서도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나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사실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소렌은 그런 생각을 감추고 계속해서 인사에 응대하고 있었다.


“우와, 저걸 봐.”


그때 시험장 한쪽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렌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색적인 것이 있었다.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시험장에서 유독 새까만 것이 있었다. 그 검은 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만점이래.”


“만점이라면 소렌 님하고 똑같은 거 아니야?”


작게 소곤대는 소리였지만 소렌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하며 소렌은 롤랜드의 얼굴을 떠올렸다. 혹시 모른다. 접어 두었던 기대가 다시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렌은 돌연 그녀를 둘러싼 인파를 헤치고 시험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렌에게 밀려나고 밀쳐진 이들이 어쩔 줄 모르고 나동그라지는 와중에도 소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관 앞에 당도했다.


“완벽하십니다. 훌륭하군요.”


시험관이 박수까지 치며 그 앞에 서 있는 소년을 칭찬하고 있었다. 방금 만점을 받아낸 소년과는 다른 이였다. 그러나 시험관은 아까보다 더욱 격렬하게 소년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것은 명문가의 자제에게 보내는 아부이자 찬사였다.

그러나 소렌이 보기에는 영 아니었다. 잘못된 점을 짚자면 당장 다섯 개나 댈 수 있었다. 은은하게 달아올랐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랬다. 이 조잡한 시험에서 우수하다 한들 그녀와 비견될 자가 된다는 건 아니었다. 괜히 들떴던 것이 부끄러워서 소렌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는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오랜만입니다. 저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럽기 짝이 없는 차림새를 한 그 소년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당당히 소렌의 앞으로 걸어와 예를 갖추어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소렌은 모르는 척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이에 명망 있는 후작가의 장남은 흠칫했다가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 렌서스의 장남 에럴드 렌서스입니다. 이렇게 다시 뵈어 만나뵙게 되어....”


소렌은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미들스쿨에서 유독 돋보이던 소년이다. 그리고 소렌 역시 그가 혹시 자신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머릿속에서 지운 자였다. 거기까지 떠올린 소렌은 하이스쿨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다짐한 것도 잊고 차갑게 몸을 돌렸다. 다시 살아난 기대는 여지없이 부러져 나갔다.


“어, 어엇!”


렌서스의 장남이 박대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렌서스 후작가는 어지간한 공작가 이상의 위세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렌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그대로 시험장을 나섰다. 하이스쿨은 미들스쿨과 다른 곳이 아니었다. 똑같았다. 아마 에럴드 이전에 시험을 치른 이도 미들스쿨에서 거들먹거리던 귀족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더 이상 시험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저런 자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소렌은 그 길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너는 롤랜드의 딸이군.”


시험이 끝난 후, 소렌은 곧장 교장실을 찾아갔다. 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매서운 눈길이 소렌을 맞이했다. 소렌은 그 시선을 받고 난생처음으로 긴장이란 것을 느꼈다. 강하다. 그것이 블로펜의 첫인상이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 숨겨진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소렌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로펜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의 모습을 한차례 훑어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지? 곧 만날 사람이 있어 오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두르게.”


블로펜은 입학시험 성적을 한차례 살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독 두 사람이 두각을 보이고 있었다. 그 두 사람 중, 블로펜은 남자 쪽에 신경을 쓰고 개별 면담을 준비했다. 아무 가르침도 받지 않고 이만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가 유명한 가문의 일원이었다면 따로 만나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나는 사적인 부탁 따위를 들어주지 않는다. 네 아비가 그렇게 하라고 일러두던가?”


블로펜에게서 날카로운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소렌이 아무리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천재라 해도 아직 마나는 물론이고 진검도 접하지 못한 소녀다. 살기를 받고 태연하게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소렌은 일순간 주춤했을 뿐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제가 미들스쿨에서 어떤 학생이었는지 잘 아시겠지요?”


블로펜은 점차 기세를 거두고 조금은 다른 눈으로 소렌을 바라보았다. 얼핏 짐작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금 과하게 행동했건만 소렌은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주며 그를 놀라게 했다. 저만한 나이에 소드마스터의 살기를 견디는 소녀라니. 왕국 제일의 천재로 이름난 엘레나도 이 정도로 터무니없는 소녀는 아니었다. 과연 양친 모두가 뛰어난 검사인 덕일까? 블로펜은 그런 생각을 감추고 차분히 일렀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수련을 하고 싶습니다.“


간결하지만 터무니없는 청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블로펜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나 블로펜은 잠깐 침묵을 지켰을 뿐, 조금도 불쾌해하거나 난색을 보이지 않고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이 소렌의 면면을 지켜보았고 지금 확인까지 마쳤기에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


“교사도, 학생도 필요치 않다는 말인가?”


“네.”


“알겠다. 수련장을 하나 쓰도록 허락하지. 하지만 그 외에 편의를 바라지 말도록. 그리고 학교 행사에는 빠지지 않도록 하게.”


생각보다 수월하게 얻어낸 호의에 소렌은 내심 안도했다. 그러나 반대로 몸은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몸이 피곤하니 자연히 마음도 심란해져 갔다. 또 미들스쿨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억누르며 소렌은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교실로 향했다. 이렇게 쉽게 미혹을 떨쳐내는 것 역시 소렌을 완벽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로베른의 전임 근위대장 크레베스입니다.”


교실에 앉아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키에 인상 좋아 보이는 사내가 들어와 자신을 소개했다. 로베른에서도 유별나게 이름난 검사가 나타나니, 교실을 가득 채운 아이들은 잔뜩 들떠서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다만 소렌은 전혀 크레베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일까? 더욱이 소렌의 눈에 크레베스는 그리 뛰어난 검사가 아니었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때 돌연 크레베스의 기세가 돌변했다. 마치 소렌의 생각을 바꾸려는 듯 뛰어난 검사다운 기세가 교실을 뒤덮었다. 하지만 크레베스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렌은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크레베스는 소렌 자신을. 그리고 다른 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대체 누구를 본 것일까?


“도군. 그리고 소렌 폰테일,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이상한 이름의 소년. 그 순간 소렌은 시험장에서 본 그 소년을 떠올렸다. 틀림없다. 도군은 분명 에럴드 이전에 만점을 받았던 소년이었다. 지루함이 싹 달아났다. 크레베스가 지명한 소년을 보는 순간 소렌의 가슴이 요동쳤다. 검사의 덕목인 평정심을 깨우치고 자신을 다스리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느낌이었다.


삐걱.


조용히 울려 퍼지는 걸상의 소음과 함께 소렌은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가슴이 두어 번 크게 요동치고는 금세 가라앉았다. 그러나 금방 겉으로 금방 진정된 것과는 달리,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불쾌함? 아니다. 기쁨?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대체 무엇일까? 소렌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숨긴 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두 명은 서로 거울삼아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야 합니다.”


크레베스의 말에 소렌은 아무도 모를 정도로 잠깐 기묘한 외모를 가진 소년을 바라보았다. 오리엔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 그러나 오리엔트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대단해 보이지 않아다. 기대가 점점 식어간다. 들뜬 가슴이 차분해지며 소렌은 크레베스의 안목이 형편없다고 확신했다. 어차피 에럴드와 마찬가지로 겉만 그럴듯한 귀족이겠지. 그렇게 기대를 접고 실망한 채 소렌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렌은 관심을 끊으려 했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다. 그것도 교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렌은 블로펜의 부름을 받고 다시 교장실을 찾았다. 질책하는 듯한 매서운 시선을 받으니 문득 한순간 도군을 보고 들떴던 자신이 떠올랐다. 검사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 감정 말이다. 그걸 알아차린 블로펜이 그녀를 책망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소렌은 안간힘을 써서 몸가짐을 바로 하고 똑바로 서서 그를 응시했다. 다행히도 블로펜은 소렌을 질책하는 대신 곧장 용무를 밝혔다.


“도군이라는 학생을 아나?”


“같은 반에 속해 있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소렌 자신은 몰랐지만 소렌은 영리하게도 이미 블로펜이 그 이름을 언급한 까닭을 깨달았다. 단지 소렌은 그것을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품을 감정. 그 감정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가슴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도군과 함께 수련하도록.”


“어째서입니까?”


억눌러 두었던 기묘한 감정이 여지없이 폭발했다. 애써 가두어 둔 느낌이 검과 수련으로 가득 찬 잔잔한 호수를 휘저어 흙탕물처럼 혼탁하게 바꾸어버린다. 소렌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 처음으로 웃어른의 결정에 반문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도군도 너와 마찬가지로 유난히 실력이 탁월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니 둘이서 서로를 거울삼아 정진하도록.”


“크레베스 선생님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도군이라는 사람과 함께 수련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소렌이 유난히 토를 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블로펜은 조금 언성을 높여서 소렌을 윽박질렀다.


“더 떼를 쓰고 싶다면 집으로 돌아가라. 여기는 네 투정을 받아주는 곳이 아니다.”


추상같은 불호령에 소렌은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였다. 자신의 행동은 곧 폰테일 공작가를 나타내는 거울과도 같은 것. 블로펜 정도 되는 이의 결정에 토를 다는 것은 명문귀족의 자제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또한, 이대로 하이스쿨을 포기하는 것 역시 위대한 폰테일의 이름에 누가 될 것이다. 소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 다른 무언가가 고집을 피울 용기를 앗아간 것은 아닐까? 소렌은 그녀 특유의 고집으로 그 의문을 불식하고 교장실을 나섰다. 오로지 검과 수련으로 점철된 삶만을 살아온 소녀에게, 이런 미묘한 감정을 직시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생각보다 여러 편이 나오겠군요. 이래서야 본편은 언제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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