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조회수 :
587,267
추천수 :
10,871
글자수 :
1,513,856

작성
15.03.17 00:05
조회
790
추천
14
글자
18쪽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9)

DUMMY

쿠궁!


진천이라는 이름 아래 달아오르던 분위기는 한 차례의 굉음과 함께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방이 흔들리며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막대한 기파가 몰려와 사방의 안개가 한 겹 벗겨진다.

한층 옅어진 안개 너머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그림자가 손에 든 기다란 뭔가를 휘두를 때마다, 사방 모든 것이 부서지며 안개가 눈에 띄게 옅어지고 있었다. 심하령이 그 현상의 의미를 알아채고 경악했다.


“진법을 이런 식으로 파훼하다니...”


“얼마나 남았습니까?”


서둘러 진형을 갖추게 하고 심하령에게 물었다. 심하령이 딱딱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는 말했다.


“반 각 정도. 아니, 그것도.....”


그때였다. 안개를 뚫고 퍼런 무언가가 쏘아져 나와 멍하니 서 있던 한 무인의 목을 휘감았다.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퍼런 무언가는 무인의 목을 조르며 그를 안개 안으로 집어삼켰다. 동시에 짙은 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주위 정황이 확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피비린내가 몰려온다. 이선엽의 사방은 그야말로 선혈이 낭자했고, 말라붙은 피가 불길에 휘말려 타들어 가며 매캐한 연기를 내고 있었다.


“저것이 일기당천.....”


누군가 침음성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꼿꼿하게 서 있는 사내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일기당천은 피가 엉겨붙어 색이 바랜 끈으로 끌고 온 무인의 머리를 한 손으로 터트려 버리며 무표정하게 동평왕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숨어 있었군.”


그 한마디와 함께 싸늘한 기세가 우리를 덮쳐왔다. 소름이 돋은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선혈이 낭자한 장소에서도 피한점 묻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는 이선엽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세상에, 저런 괴물이랑 싸웠다고요? 소천검 당신 꽤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가장 먼저 종리연이 그 특유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되찾고 말했다. 이어서 장위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면에서 싸우는 건 철추(鐵錘)를 메고 바다에 뛰어드는 꼴이겠군요.”


본래 의도는 지친 이선엽을 난전으로 끌어들여 시간을 버는 것이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진형도 구축하지 못하기도 했고, 이선엽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살기등등하게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선제공격은 포기해야겠군요. 모두 천천히 물러나면서....”


휘익!


제길, 늦었다. 이선엽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몸을 날려 쇄도했다. 한번 푸른 끈을 휘두르자 일단의 무리가 힘없이 갈라진다. 그 앞에서 숱한 무인은 그저 잡초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모, 못 간다!”


푸른 도포를 휘달리며 한 청년이 검을 뽑아들고 이선엽을 막아섰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이 마찬가지로 이선엽을 막기 위해 움직일 때, 바람을 가르는 굉음과 더불어 푸른 도포를 입은 청년의 머리가 통째로 터져나갔다.


“사라져라. 어리석은 자들아.”


이선엽이 휘두른 푸른 끈이 길게 호를 그리며 다시 그에게 되돌아간다. 푸른 끈에 묻어 있던 불그스름한 것들이 비오듯 후드득 떨어져 나온다. 모두가 그 광경에 놀라서 우뚝 멈춰 섰다. 진천이라는 이름으로 달구었던 사기가 싸늘하게 식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강호의 의기? 정도문파의 긍지? 그런 것만 믿고 달려들기에, 이선엽의 힘은 너무 강대했다.


“나를 막는다면 모두 국법에 따라 처단하겠다.”


그 한마디에 박탈감과 절망이 퍼져나갔다. 이제 이선엽을 막으려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젠 방법이 없다. 나라도 다시 무작정 달려들 수밖에. 내가 시간을 벌고 심하령이 동평왕과 소연화를 피신시킨다.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던 때였다.


“도망치면 죽음이다. 저자는 결국 우리 모두를 반역도 취급하여 죽일 것이다!”


좌중을 압도하는 우렁찬 호한(豪漢)의 외침의 울려 퍼졌다. 이선엽의 신형이 우뚝 멈춰서고 그의 시선이 호방한 외침이 들려온 쪽을 향했다.


“그러니 싸워라! 싸운다면 살 수 있다. 거기 세 명! 좌현으로 가라. 그리고 다섯은 오른쪽으로. 나머지는 정면에 나란히 서라! 무림을 우습게 보는 이에게 본때를 보여줄 차례다!”


깊은 바다처럼 시퍼렇게 빛나는 박도가 빛을 발하는 그곳에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유약한 모습을 부정하는 일대의 도객이 서 있었다.


“해풍도......”


지금까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면모만 보였던 그다. 그러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그는 일기당천 못지않은 위압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싸움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해풍도는 남해왕의 군세를 이끌고 해로를 장악한 자.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싸울 때는 성정이 급변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심하령이 점차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과연 저 참모습을 알고 있다면 그 누가 함부로 그 앞에서 검을 뽑을 수 있을까? 장위의 노련한 지휘에 힘입어 순식간에 일련의 무인들이 이선엽을 포위해갔다.


“흥, 건방진.....”


그러나 이선엽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푸른 끈을 휘둘러 무인들을 떨쳐냈다. 이번에는 단단히 방비하고 있던 터라 일격에 목숨을 잃는 자는 없었다. 허나, 단번에 진형이 붕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정도용봉회는 공주마마 쪽으로 간 듯하니, 문 소협과 설 소저. 그리고 심 소저 세 분께서는 동평왕 쪽을 맡아 주십시오.”


“어디로 피하면 되나요?”


“아니요. 섣부르게 움직이면 오히려 빌미가 될 겁니다. 그냥 만약을 대비해 자리를 지키는 게 낫습니다.”


한상염을 들쳐 업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설초아의 물음에 답해준 것은 심하령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동평왕 쪽으로 향하고, 나는 나대로 체력을 회복하려 애쓰며 이선엽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아직은 아니다. 좀 더 상황이 어려워질 때 움직여야 효과가 크다. 샬라메 콘트리오를 상대할 때 소렌이 그렇게 말했었지. 공교롭게도 이선엽의 무공은 샬라메 콘트리오의 것을 꽤 닮아 있군.


“으아악!”


“제기랄! 피해!”


“물러서지 마라!”


온갖 소란과 군상이 이선엽이 만들어내는 여파에 휘말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그러나 해풍도는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이들의 수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노련하게 진형을 구축하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위가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덕에 상황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진형이 무너지면 장위는 자신을 중심으로 또다시 진형을 구축하고 자신도 그 진형에 가담해 이선엽을 상대했다.

한상염 혼자 싸울 때와는 달리, 장위는 제법 이선엽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것은 주위에서 함께 싸우는 이들 덕분이었다. 아마 한상염도 천검대를 이끌고 왔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겠지.


“정말로 귀찮게 하는구나.”


그런데 이선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뭐지?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 밀리는 것으로 보여도...


“이런!”


생각보다 일찍 나설 수밖에 없겠군. 나는 다급한 심정으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선엽이 노리는 것은 동평왕 일가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에 이선엽은 슬금슬금 동평왕 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선엽이 동평왕을 노릴 겁니다! 몰아붙이지 말고 포위해서 억눌러야 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달려나가며 혼잡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뱃속에서 온 힘을 끌어내 소리를 질렀다. 이에 사정없이 뒤로 밀리던 이선엽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한순간 내 쪽에 시선을 주었다. 무시무시한 귀신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본래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것 같아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또 네놈이냐?”


이선엽이 휘두른 푸른 끈이 올올이 풀려 나온다. 푸른 끈이 쪼개지고 또 쪼개져 본래의 색을 잃는다. 그렇게 풀려나온 하얀 실낱들이 멋대로 춤추며 포위진을 전체를 휩쓸었다.


“으악!”


“살려 줘!”


하얀 실이 만들어내는 극심한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진형이 통째로 붕괴 된다. 그나마 그 변화에 맞서는 자는 거칠게 박도를 휘두르는 장위와 그 옆에서 분전하고 있는 종리연 뿐이었다.

이선엽은 하얀 실 몇 줄을 멀리 뻗어내서 그 실을 발판 삼아 장위와 종리연의 머리 위를 지나쳐갔다. 두 사람은 이선엽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두 손이 묶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디 함부로 사술을 부리느냐!”


이선엽이 날렵하게 포위진을 벗어나 착지하려는 순간, 놀랍게도 하얀 실이 자아내는 변화에 옴짝달싹못하는 줄 알았던 남궁준과 두 검각주가 나섰다. 남궁준은 가느다란 검신이 낭창대는 세검으로 단번에 이선엽의 요혈을 노렸다.


“큭!”


숨죽이고 기회를 엿보던 남궁준의 일격은 이선엽으로서도 허를 찔린 셈이었다. 한 줄기 실에 올라타 있던 이션엽은 결국 그 실에서 내려와 적수공권으로 남궁준과 두 명의 검각주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만검봉쇄진(萬劍封鎖陣)을.”


협의를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남궁준 역시 명문의 후계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름만 후기지수인 정도용봉회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이다. 막대한 내공을 가진 나도 어느 정도 긴장할 정도로 남궁준의 세검은 날카롭게 이선엽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이선엽의 몸이 다시 동평왕 쪽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네놈은 또 무엇이냐!”


이선엽이 격분하며 주먹이며 발을 내뻗지만, 일격을 한 사람이 받아내는 경우는 없었다. 세 사람은 절묘하게 일격과 일격을 동시에 받아내어 각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이선엽과 호각으로 싸우고 있었다.

마침내 이선엽이 억지로 진을 뚫는 대신, 진형을 헤집어놓는 하얀 실을 불러들였다. 이선엽의 주의가 얇아진 지금이 기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격전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협공하겠습니다.”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역할을 다 했으니 이만 빠지지요.”


내가 도착하자마자 남궁준이 흥미를 잃었다는 듯 검을 거두고 물러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이선엽에게 몰려오던 하얀 실낱들이 일제히 한걸음 물러선 남궁준에게 쇄도했다. 남궁준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황해서 굳어버렸다. 하얀 실이 한데 모여 붉은 천으로 화해 더욱 빠르게 날아들었다.


“소각주!”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검각주 하나가 몸을 날려 온 힘을 다해 붉은 천을 양단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지만 실은 붉은 천이 둘로 갈라진 것에 불과했다. 둘로 갈라진 붉은 천은 이내 다시 하얀 실로 나뉘어 한순간에 검각주의 온몸을 뒤덮었다.


“오검각주!”


남궁준이 목이 터지라 외쳐 보지만 그 전에 하얀 실로 이루어진 감옥이 한순간에 조여들었다. 출중한 무인이 마치 무른 과일처럼 짓이겨져 육편으로 화했다. 처참한 광경에 저 멀리 신음하던 이들도, 숨을 헐떡이던 장위도. 그리고 여유만만하던 남궁준도 할 말을 잃고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하얀 실뭉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역도를 참하였노라.”


하얀 실 뭉치가 다시 한데 뭉쳐 붉은 천으로 화해 이선엽의 손에 쥐어진다. 이선엽이 그것을 휘둘러 나를 밀쳐내고 동평왕 쪽으로 몸을 날렸다. 지금까지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그 일격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만큼 무거워서, 나는 채 대응하지 못하고 그만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놈을 멈춰 세워라. 사검각주!”


그러나 그때였다. 미증유의 살기가 폭사되며 사검각주가 그 살기에 떠밀리듯 맹렬히 이선엽에게 쇄도했다. 이선엽이 귀찮다는 듯 움직임을 멈추고 푸른 줄을 휘둘러 사검각주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러나 그 빈틈을 타고, 남궁준이 달려들었다.


“물러서! 이놈은 내가 죽인다.”


남궁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며 세검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피가 터져 뚝뚝 떨어져 나온다. 이선엽이 분노에 휩쓸려 살기를 폭사하는 남궁준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가 가볍게 한차례 공격을 흘려내고 다시 동평왕 쪽을 향했다.


“이 케케묵은 귀신이!”


남궁준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순식간에 이선엽의 눈앞에 다가가서는 이선엽이 채 대응하기도 전에 세검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선엽도 대비를 해 두었던 것일까? 이선엽의 하반신을 타고 올라온 푸른 줄이 세검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들어오는 힘을 이용한 부드러운 방어였다.


“제법이군. 허나....”


“죽어라!”


이선엽이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남궁준이 정신없이 이선엽을 압도하며 세검을 휘둘렀다. 가볍고 빠르며 위력적인 검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나는 정말로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은연중에 그를 깔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남궁준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고수였다.


챙챙챙챙!


이선엽의 기문병기와 남궁준의 세검이 연달아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푸른 끈이 때로는 붉은 천이 되고, 때로는 하얀 실로 쪼개지기를 수 합. 나는 기묘한 마음으로 그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이긴다면 분명 좋을 터였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이리 마음이 무거운 것일까?


“어쩌면.....”


“이길지도...”


하얀 실에 억눌려 있던 이들이 차츰 정신을 차리고 이선엽과 남궁준의 격전을 지켜보았다. 그들 중 몇몇이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는 와중에, 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을 꾸짖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내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단약 따위를 먹고 거들먹거리는 이상 그럴 자격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점점 희망을 품기 시작한 이들의 생각이 빗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늘이 그런 나를 벌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궁준이 위력적인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이선엽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공격을 상쇄하고 있었다. 남궁준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었지만, 이선엽의 힘은 궤를 넘어있었다.

점점 남궁준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다. 첨밀(尖密)하던 검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남궁준은 점점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며 무리하게 공격을 이어갔지만, 그럴수록 이선엽의 우세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미약하게 피어오른 희망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사람들이 침 삼키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그 대결을 지켜보고 있다. 약간은 긴장한 기색을 내보였던 이선엽은 점점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급기야 이선엽이 붉은 천을 감은 손으로 남궁준의 세검을 잡아채기에 이르렀다.


“큭!”


“여기까지다. 분노에 몸을 맡기다니 형편없군. 차라리 대학사의 증손이랍시고 날뛰던 그 애송이가 훨씬 나아.”


이선엽이 힘을 주자 단번에 세검이 부러져 나간다. 이어서 이선엽이 손등을 내리쳐 남궁준의 정수리를 후려치고, 이어서 힘껏 복부를 걷어찼다.

배를 맞은 순간 끔찍한 소리가 나며 남궁준의 팔다리며 허리가 단숨에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누군가 그를 붙잡아 엉망으로 구겨버린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위력이 얼마나 심오했는지, 남궁준의 몸이 멀리 날려가는 대신 그 육신이 흉물스럽게 이선엽의 다리 위에 축 늘어졌다.


“소각주!”


이선엽이 가볍게 다리를 털어 남궁준을 쓰레기처럼 내던지니 살아남은 검각주가 다급히 달려와 남궁준을 받아냈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이선엽을 올려다보는 검각주. 그런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든 이선엽.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착각도 유분수라 하였다. 너희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다.”


이선엽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차가운 목소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래, 일벌백계라 하였지. 끝도 모르고 어리광을 부리는 신민을 먼저 벌하는 것은 황상께서도 용인하실 터. 하물며 그들이 역도를 돕는 무뢰배들이라면 더더욱.”


역시 그랬군. 이선엽은 한 번도 진심으로 여기 있는 이들을 상대한 적이 없었다. 단지 그는 조속히 동평왕을 벌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싸움은, 죄인을 쫓기 위해 행인을 밀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정신 차려요!”


그때 종리연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며 겁도 없이 이선엽에게 달려들었다. 해일과도 같은 도세(刀勢)를 자랑하는 장위가 뒤를 잇는다. 이선엽은 어느새 허리로 돌아온 요대에 손을 얹고 뇌까렸다.


“겁을 상실한 모양이군.”


“물러나!”


내공을 격발해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접근해 이선엽과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단번에 상당한 양의 내공이 소진되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선엽의 허리에서 쏘아져 나온 붉은 천은 뛰어난 명검인 내 검을 꿰뚫고도 둘로 나뉘어 두 사람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또 네놈이군.”


이선엽이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의 경계심을 섞어 중얼거렸다. 내가 남궁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잊으려 애쓰며 나는 붉은 천이 꿰뚫고 간 검을 움켜쥔 채 두 사람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함께 싸워야 합니다. 힘을 회복한 다음 다시 싸워서 시간을 벌어 주십시오. 일단은 제가 막겠습니다. 이어서 여러분이 다시 주축이 되어 일기당천을 막아 주십시오.”


“그, 그래요.”


“....알겠습니다.”


종리연과 장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단 뒤로 물러섰다. 이선엽도 붉은 천을 회수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 동평왕을 해치기 위해 무작정 움직이는 대신, 우리를 처치해 후환을 없애려 하고 있었다.


“오너라.”


이선엽이 조용하면서 위협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말 한마디에 묻어있는 기세가 완전히 다르다. 건성건성 방해꾼을 쳐내던 이선엽이 마침내 제 실력을 드러내려 한다. 이선엽에게서 후끈한 바람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 바람을 가르며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엑스트라급 조연에게 희망고문중. 안타깝지만 2부는 주인공이 활약할 때라 말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Inferior Struggl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1 8. 등하불명(燈下不明) (2) +7 15.10.04 825 15 14쪽
200 8. 등하불명(燈下不明) (1) +9 15.10.01 917 13 20쪽
199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6) +8 15.09.22 845 11 20쪽
198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5) +5 15.08.07 831 16 14쪽
197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4) +9 15.06.28 944 23 12쪽
196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3) +5 15.05.09 928 18 16쪽
195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2) +4 15.04.26 858 16 14쪽
194 7. 일보후퇴(一步後退)하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라. (1) +5 15.04.11 977 24 18쪽
193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3) +6 15.03.31 1,057 20 14쪽
192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2) 15.03.27 924 15 12쪽
191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1) +2 15.03.24 751 26 13쪽
190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0) 15.03.20 845 17 11쪽
»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9) 15.03.17 791 14 18쪽
188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8) +2 15.03.13 830 15 14쪽
187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7) +3 15.03.10 844 17 11쪽
186 1. Superior Progress : 암중의 음모 +3 15.03.06 902 17 12쪽
185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6) +4 15.03.03 812 17 15쪽
184 외전 1. Superior Progress : 흑마법사 +1 15.02.27 671 10 15쪽
183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라스탄트 공습 +4 15.02.24 585 12 14쪽
182 외전 1. Superior Progress : 회동(會同) +2 15.02.20 764 17 11쪽
181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5) +4 15.02.17 814 22 13쪽
180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대접전 +5 15.02.13 754 14 17쪽
179 외전 1. Superior Progress : Highest Overwhelm +4 15.02.10 779 14 20쪽
178 외전 1. Superior Progress : 깨달음. 그리고 비극. +5 15.02.06 713 14 14쪽
177 외전 1. Superior Progress : Before Dawn 15.02.03 654 14 20쪽
176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4) +7 15.01.30 863 15 14쪽
175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변화 +4 15.01.27 693 15 18쪽
174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모든 게 처음이었다. +6 15.01.23 684 13 24쪽
173 외전 1. Superior Progress : 소렌이 나아갈 길 +6 15.01.20 727 10 17쪽
172 외전 1. Superior Progress : 폰테일 공작의 고뇌. +4 15.01.13 748 14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