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뜨랑제 근황과 관련하여…
초인의 길을 재연재하면서 제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 드렸습니다만, 다시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공지란을 빌어 독자 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공지는 초인의 길에도 같이 합니다)
1. 출간 관련 진행사항
에피소드 하나.
출간이 약간 늦어지게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네요. 7월 중순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8월 정도로 약간 늦어질 것 같습니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조금 더 잘해보려니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더 들어가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선 연재했던 내용을 많이 수정하고 보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 사장과 필자간에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었습니다. 다툼은 아니고, 작품의 ‘품질’과 관련한 관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굉장히 건설적인, 그러나 격렬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출판사 사장께서는 에뜨랑제가 보다 유장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다듬어진 상태로 출판하기를 원했고, 첫 교정본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게 제가 최종 교정을 본 후 2개월 정도 걸린 작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바뀐 원고를 보고 강하게 반대를 했답니다. 문장과 서술이 대단히 아름답고 매끄러우며 부드럽게 되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거의 순수문학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그 매끄럽고 친절한 설명방식에서 ‘재미’라는 부분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그걸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제 관점으로는, 에뜨랑제가 가진 고유의 재미를 유별난 화법에 있다고 보았던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죠.
연재를 보신 독자 분들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에뜨랑제를 풀어가는 화자의 문장은 거칠고 사납습니다. 시점도 바뀌고, 시제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비속어와 비문도 섞여있고, 의성어 의태어도 꽤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주술구조를 없애버린 것도 있고, 단어 하나로 처리한 문장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작품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도 있었고, 출판하는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으로 느끼셨나 봅니다.
그렇지만, 저는 신춘문예에 등단하려는 작가도 아니고, 스스로 어깨 힘주며 문학 형식의 고결함을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과 기꺼이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아마추어 이야기꾼에 가깝죠. 저는 제 소설이 양복 단정하게 입고, 머리에 기름 바르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점잖은 이야기가 아니라, 시크하고 먹물 조금 먹은 양아치가 껌을 짝짝 씹어가며, 때론 욕설도 섞어가며, 주먹 제스쳐도 써가며 거친 숨소리와 현장감이 느껴지는 그런 무용담 같은 이야기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그게 훨씬 신나 보였습니다. 그렇게 신명 나게 썼고요. 그 기분을 버리기는 싫었습니다.
결국 출판사 사장께서는 양보를 해주셨지만, 아마 걱정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제 의사는 명확했습니다. 필자가 독자에게 주려는 유일한 가치는 ‘재미’다. ‘재미’와 ‘글의 품질’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면 저는 당연히 재미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오타와 비문이 난무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건 저도 용납을 못하지요. 단지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영화적 기법, 랩과 같은 톡톡 튀는 운율, 도치, 생략에 의한 강한 속도감, 충분히 숙고하여 의도한 욕설과 비문, 불편한 문장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유머, 때론 불친절한 아이디어의 단절… 등등이 모두 동원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뜨랑제의 문체가 바로 그러했지요.
제 대답은 단 하나였습니다.
“내가 왜 나의 독특한 장점을 버리고 ‘그들만의’ 일반적인 작법을 따라야 하는가요?”
그러므로 출판 후 거칠고 조악한 문장과 파격적 서술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전적으로 제게 있다고 미리 말씀 드립니다. 양아치가 이야기하는 게 다 그렇죠 뭐…
에피소드 둘
제법 많은 부분을 손 봤습니다. 연재를 읽으셨던 분들도 조금 생소한 느낌을 받을 만큼 설정도 꽤 달라졌다고 봅니다. 여기에 영화 시나리오까지 제가 쓰면서 에피소드 1의 내용도 대폭 바뀐 상태가 될 겁니다. 엔딩 쪽도 꽤 다른 상황을 보강했습니다. 읽기에 숨가빠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회사 일은 언제 하냐…)
에피소드 셋
아직 기획 단계입니다만, 원소스 멀티유즈의 개념에 따라 출판본에도 영화에 사용될 포스터와 스틸 이미지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 작업이 꽤 진척되고 있고 7월 중에는 최종안이 확정이 될 겁니다. 에뜨랑제의 로고, 이미지, 캐릭터등이 통일된 형태로 기획되고 있습니다. 책의 표지, 폰트도 영화의 폰트와 일치시키게 될 겁니다. 국내 최고라는 시각 특수효과 제작회사에서 작업하고 있으니 기대가 많이 됩니다.
2. 영화관련 진척 사항
영화는 일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소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놀랍게도 ‘시나리오’였습니다. 시나리오가 있어야 국내외 투자도 받고, 쓸만한 배우도 섭외하고, 배급사도 잡고, 그래픽 작업 및 기타 공정들을 조직하면서 일이 진행되게 됩니다. 에뜨랑제의 경우, 원작을 기초로 만든 임시 스크립트로 여태까지 이 일들을 진행하고, 국내에서 이름난 전문작가들에게 본격 시나리오 작업을 위임했던 상태였는데, 여기서 차질이 생겨버린 것이지요.
차질의 원인을 짚어보면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의 현실. 작가들의 현주소. 역량. 환경 등등이 보였습니다. 잘 모르니 뭐라 코멘트할 입장은 아니지만, 몇 가지는 확실해 보였습니다. 기존 영화의 제작단계에서 시나리오의 무게와 감독의 재량은 반비례한다는 것. 시나리오가 허술할수록 감독의 재량은 늘어나겠지요. 또한, 일천한 경험. 한국에서 SF와 판타지 분야 시나리오를 써본 작가가 전무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액션, 로맨스, 멜로, 조폭, 공포 등등은 나름 흥행코드가 있어서 이를 기가 막히게 그려내는 선수들이 많은 반면, 이 분야는 거의 미개척 분야나 마찬가지 더군요.
다른 문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원작을 기반으로 영화가 연작으로 기획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 원작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1편 시나리오가 모순 없이 흘러갈 텐데 그럴 고민을 해줄 작가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있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지요 (작업만 6개월? 농담하십니까? 감독의 절규). 특히 감독의 의도, 기획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가 모순 없이 흘러가도록 동적으로 이야기를 재 구성을 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하더군요.
덕택에 제가 팔자에 없는 영화 시나리오까지 다 썼답니다. (지난 2주간 죽는 줄 알았습니다. 회사 일도 아주 바빴었지요. 연재는 꿈도 못 꿨고요.)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되, 그 속에서 크리에이티브한 구성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한국 영화 제작사상 최초로 사전기획이 치밀하게 잘된 영화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서 제가 참 감동을 했지요. 어쨌든, 며칠간에 걸친 아주 긴장된 아이디어회의와 기획단계를 거쳐 제법 모두가 만족스러울 만한 스크립트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원작보다 스케일과 극적 구성, 세계관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훨씬 나아졌다고 느낍니다. 거의 블록버스터 SF에 가까워졌다고 할까요.- 이번에는 에피소드 1이 영화화가 됩니다.)
영화 스크립트도 출판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제 이름으로요…@.,@;;) 연극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사서 보게 될 거랍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만큼 제대로 된 스크립트 하나가 없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조금 그랬습니다. 한국 영화제작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리…)
그리하여, 7월 중에는 번역된 스크립트를 가지고 북미시장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할 계획이라 하며,
이미지작업 등이 완료되는 대로 제작발표회를 한다고 합니다.
3. 초인의 길 연재…
앞으로도 최소 1주간은 어려울 것 같네요. 에뜨랑제 재-재수정본을 퇴고하려면 꼬박 일주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시간을 끌어 좋을 일이 아닌지라 참… 그렇습니다. 연재를 기다리시는 독자분들께는 미안하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군요.
4. 그리고…
고맙습니다.
출간 전후로 한번 모시도록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요삼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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