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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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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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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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19)

DUMMY

벨린 데 란테와 자코모 다빈치는 달빛이 드리워진 아스티아노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들의 대화는 자코모 다빈치의 말을 벨린 데 란테가 경청하며 대꾸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다빈치의 화술은 한번 말문이 열리면 계속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 스타일이었다.

"떠나기에 앞서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에 대해 문헌을 뒤져봤지."

"정확히 말하자면 돈 주스티안이 총수로 선출된 후의 히스파니아 동방회사겠지요. 박사."

벨린이 대꾸했다. 그들은 황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 루첸가에서 이어지는 황궁 앞의 아스틴 광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길목마다 헌병군들이 부단히 순찰을 돌고 있었다. 2인 1조로 구성된 주홍빛 제복차림의 이 무장병력들은 총사대 대위에게 예의를 표하고서는 외곽지역을 순찰하기 위해 횃불을 든 채 나아갔다.

자코모 다빈치가 말했다.

"돈 주스티안 데 프리안 모리체. 나이는 서른 둘이고, 카탈루니야의 상공업자 출신이라지. 히스파니아 내전이 끝난 후인 1699년, 선제이신 페란테 황제 시절에 히스파니아 동방회사를 설립하는데 기여한 자야."

"재무 장관으로 그를 기용한 건 이사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거기서부터 징조가 불길했던 걸세."

다빈치가 웃으며 설명했다.

"이 제국은 부가 없이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지. 강력한 군대도, 대양을 누비는 함대도, 준엄한 법과 치안도, 문화와 예술도, 마법과 과학도 부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아. 그런 면에서 그 자는 대단한 무기를 손에 넣은 거야. 자네 혹시 아스티아노의 밀값이 불과 1주일 사이에 10배로 뛰었다는 소리 아나? 나는 이미 몇 명을 족쳐서 그 짓에 대한 증거를 입수했어."

벨린은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 자들, 통화량을 조정하고 있는 거죠? 아마도 황실 대행으로 해오던 제국의 생필품 현물 구매를 의도적으로 막아서..."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는 거지." 자코모가 한마디 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황실의 빚까지 모두 떠안아서 제국의 경제를 모두 휘어잡았으니까."

"그 자는 많은 동맹을 맺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동맹을 이루는 핵심 축으로 빌랜드가..."

"빌랜드. 그 멍청한 섬나라 놈들. 내 그것에 대해 할말이 있네."

자코모 다빈치가 여기까지 말할 즈음, 그들은 황궁의 정문 앞, 아스틴 광장에 드러섰다. 광장은 임시적으로 군대의 집합소가 되어 있었다. 마차 행렬들과 그 주변에 말을 타고 서 있는 용기병들, 머스킷총을 든 총사대 총사들과 그들의 군기, 드럼을 두드리는 소리가 밤의 조용함을 깨고 있었다.

벨린과 자코모는 총사대를 사열하는 장교들 가운데서 주안 스피놀라 중령을 발견했다. 콧수염을 기른 그 총사대 지휘관은 말을 탄 용기병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무언가 떠들던 중이었다.

총사대 대위와 마법사가 다가오자 스피놀라가 그들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벨린 데 란테, 다빈치 박사님. 폐하의 명으로 당신을 계속 찾았다오."

"로보 카사도르의 아지트에 있었습니다." 벨린이 말했다. "중령, 당신이 내가 나간 동안 그들을 보살펴줘야 되겠어요. 조안 데 아스티아노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거든요."

"그게 정말인가? 조안이 회복했어?"

"얼마나 회복됐던지 정신이 나가서 아리엘을 덮치려 들더군요. 죽기 전에 진정한 사랑이라도 해보고 싶었겠지요."

주안 스피놀라는 벨린의 그 무덤덤한 말을 농담으로 안 듯했다. 그가 유쾌한 어조로 내뱉었다.

"그들을 황궁으로 불러들일 거야. 이번 사태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새 황제폐하께서 제국의 안정을 되찾으실 때까지 말일세." 스피놀라 중령이 작게 덧붙였다. "아스티아노의 치안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누가 지하에서 반역을 선동하는 것 같아."

"폐하는 어디에 계신가? 중령."

자코모 다빈치가 물었다. 스피놀라가 건너편으로 손짓을 했다.

"마차에 계십니다. 박사님. 총사대장 각하께서는 일부 총사들과 함께 말에 오르시더군요. 산 펠리노에서 육군 원수 겸 공작인 호세 데 카라카스를 만날 때까지 경계를 늦추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스피놀라는 갈색머리 총사와 늙은 마법사를 광장 깊숙한 곳의 마차로 인도했다. 그 마차는 황실의 문장이 각인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견고하고 투박한, 평범한 여행용 마차에 불과했다.

그들이 마차에 다가서자, 주안 스피놀라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 총사대 중령이 벨린을 바라보며 말을 마무리지었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인 것 같네. 이제는 수도와 함께 황궁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지."

"방심해선 안됩니다. 중령." 벨린이 한마디 했다. 스피놀라가 자신의 콧수염을 손으로 꼬며 웃었다.

"걱정 말게나, 아미고. 내전때도 우리는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성공적으로 수도를 사수했으니까 말일세. 또 한번의 내전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번만 이겨내면 황실과 제국을 거스를 자는 더 이상 없네."

"행운을 빕니다."

"아디오스." 주안 스피놀라가 몸을 굽혀 절을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자코모 다빈치가 몸을 돌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사이, 마차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는 여성 특유의 높고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지극히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벨린 데 란테가 마차 안을 들여봤음에도 드레스 차림의 이사벨 여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총사대 제복 차림의 사나이가 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보통의 총사대 제복 차림처럼 목에는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수장과 견장이 달린 녹색 코트에 갈색 바지, 하얀각반을 차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허리까지 따서 리본으로 고정하고, 삼각모를 쓰니 손색없이 훌륭한 히스파니아 총사의 차림새였다.

그러나 벨린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폐하." 마차에 오른 벨린이 총사대 제복차림의 가냘픈 사나이에게 절을 했다. 벨린이 그 사람의 손목을 잡자 황실 인장반지를 낀 마른 손이 드러났다. 이윽고 구리빛 피부를 한 총사는 순백의 피부를 지닌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에 천사처럼 아름다운 얼굴. 이사벨 데 아라고른이 분명했다.

뒤늦게 마차에 오른 자코모 다빈치도 단번에 눈치챘다.

총사대 제복으로 변복한, 이사벨 여제가 우아하게 말했다.

"어서 오거라, 다빈치 박사. 짐은 그대를 못 찾고 톨레도로 떠날까 노심초사하던 차였다."

"제복이 잘 어울리시는군요. 폐하." 마법사 겸 황실 주치의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사벨 데 아라고른은 야전총사대의 녹색 제복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소화해내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으니 드레스의 풍만함에 가려 나타나지 않던 각선미가 타이트한 차림때문에 잘 드러났다.

이사벨 여제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녀가 몸에 뿌린 향수냄새가 마차 안으로 은은히 퍼져나갔다.

"짐이 타고 다니던 황실 마차는 얼마 전에 출발했지. 한시간이 지났으니, 이미 아스티아노를 벗어나 있을 거야. 우리는 다른 길을 통해 그 마차를 호위하는 셈이고. 이 사실은 총사대장과 주안 스피놀라 중령 외에 아무도 모른다."

총사대 대위와 마법사는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이사벨은 머리에 쓴 깃털달린 삼각모를 벗어 무릎 위에 올렸다. 머리칼을 평소처럼 엄숙하게 틀어올린 대신 등 뒤로 땋아내리니 마치 앳된 소녀 같은 인상이었다.

이사벨 여제가 팔짱을 낀 채 대뜸 물었다.

"그대가 그 책을 썼다면서?"

"알아차리셨군요. 폐하."

노마법사가 공손히 대답했다.

"짐의 충실한 사냥꾼이 알아냈다고 주안 스피놀라가 보고하더구나. 그대가 스스로 인정했다고 말이다."

"저를 광장에 매다실 겁니까?"

자코모 다빈치가 웃으며 물었다. 이사벨이 딱 잘라 말했다.

"아니다."

그녀가 벨린 데 란테를 한번 흘겨보고서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그 책의 내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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