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 총사(129)
까트린 데 세비아노 대위는 말에서 내렸다.
선량한 인상의 그 갈색머리 여자가 기병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염려하는 듯한 겁에 질려 불안에 흔들리는 눈빛이었다.
까트린이 말고삐를 한 손으로 잡은 채 그녀 앞에 섰다. 갈색머리 여인이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절을 했다. 우울하고 불안한 심정을 증명하듯 가냘프게 떨면서.
"벨린 데 란테가 전쟁터에 갔다고?"
여 기병대원 까트린이 급하게 물었다. 갈색머리 여인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답답한 까트린이 재차 물었다.
"너는 누구지? 왜 그 총사를 주인님이라 부르는 거야?"
"저는 그 분의 하나뿐인 시종이랍니다."
갈색머리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떨면서 대답했다. 까트린은 어안이 벙벙했고, 곧이어 급한 마음의 불을 껐다. 벨린의 시종이라는 저 여자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부는 싸늘한 봄날씨도 이 젊고 가냘픈 여자를 흔들리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까트린이 차분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너 이름이 뭐지?"
갈색머리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나직이 말했다.
"아리엘이에요."
아리엘이 복장이 화려한 여 기병대원을 천천히 올려보았다. 우수에 잠긴 듯한 그녀의 갈색눈이 그 금발머리 기병의 벽안과 마주쳤다. 기병은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 차가운 눈빛에 단번에 질린 아리엘은 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윽고 그 여 기병대원이 인정하기 싫다는 투로 차갑게 말했다.
"너, 그의 여자구나.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여자. 그러고 보니, 살롱 데 이스타나에서 벨린 데 란테 옆에 네가 있었지. 창녀 같은 드레스를 입은 채로."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것은 비단 까트린만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아리엘도, 저 여 기병대원이 누구인지 그제야 눈치챘던 것이었다. 주인님이 혼내줬다던 그 여자 아니던가. 주인님의 '혼내준다'는 말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뜻이긴 하지만.
아리엘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조금이나마 용기가 살아나서 말했다.
"저는 창녀가 아니에요."
그러자 까트린이 아리엘을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욕구불만을 창녀 말고 누가 해소해 줄 수 있겠어?"
"저는 그런 시종이 아니에요."
아리엘이 항변했다.
"그 분과 전쟁을 함께 했고 그분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어요. 그분께서 저를 외국에서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어요. 시종 역할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신 거지요."
까트린은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벨린 데 란테의 시종을 주시했다. 질투심 어린 치기 같은 것이 그 아름다운 여기병의 낯에 살아나 그녀의 피부를 달아오르게 했다. 반면 아리엘은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용기가 살아나는 모양이었다.
여 기병대원이 다시 대꾸했다.
"그래, 네가 그의 시종이라면 참 이상하구나. 왜 그가 이번에는 너를 전쟁터로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대체 그 전쟁터가 뭐길래."
"그게 뭔지는 저도 조금만 알 뿐이에요." 아리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중간에 말을 멈추는 식으로 주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분은 분명 이곳으로 돌아오실 거예요. 그분이 어디서 새로운 전쟁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살아서 돌아오실 거예요. 그것은 틀림 없어요."
그 말을 경청하던 까트린은 화가 나기보다는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까트린은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러 총사들의 시선을 느꼈고 이만 이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전히 그녀는 벨린의 동료들에게 불청객이었다.
여 기병대원이 거인 총사 알레한드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내가 당신들을 위해 도와야 할 일이라도..."
턱수염을 기른 알레한드로가 단호히 고개를 저으려던 찰나였다.
"로보 카사도르들이 왔군!"
누군가 총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들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총사대 막사에서 어깨에 금술 견장을 단 총사대 중령 한 명이 나오고 있었다. 콧수염을 멋드러지게 기른 그 중령에게 알레한드로가 대답했다.
"주안 스피놀라 중령!"
"무사해서 다행이군. 알레한드로."
두 총사가 서로를 껴안았다. 알레한드로가 기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이에요. 벨린 데 란테는 폐하를 호위하러 가버렸으니까요."
"내가 자네들을 아지트에서 여기로 불렀지."
스피놀라 중령이 뒤로 한걸음 물러나 총사대원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가 밝고 큰 목소리로 마치 농담하듯 질책했다.
"완전 패잔병 같은 몰골이군! 대체 뭐가 문제인가?"
알레한드로가 기가 죽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대꾸했다.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린 문제가 있었거든요. 이거 말하기 좀 곤란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런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세."
중령이 딱 잘라 말했다.
"지금은 당장 벨린 데 란테가 떠난 동안, 우리가 맡을 임무에 주력해야 한다니까. 황궁을 지키는 일. 바로 그것이지!"
총사들은 섯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주안 스피놀라 혼자 신나 총사대와 심리적 사기가 이격된 분위기었다. 그 낌새를 눈치챈 중령은 고개를 별안간 까트린 데 세비아노에게 돌렸다.
그가 짐짓 예의를 갖춰 말했다.
"폐하께 당신에 대해 들었습니다. 디에네 데 아라고른 마마의 호위기병 아닙니까?"
"인사드립니다, 중령. 카라비나리(헌병군) 기병 대위 데 세비아노입니다."
까트린이 고개를 숙인 채 모자를 벗고 경례했다. 콧수염을 기른 주안 스피놀라가 그녀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나는 벨린 데 란테 대위의 조력자였지요. 과거 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보오.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합쳐 폐하께서 즉위하실 때가지 수도를 사수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소?"
까트린이 상급자에 대한 예의로 꼿꼿이 차렷자세로 섰다. 중령이 총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사벨 폐하께 황궁을 비롯한 수도를 사수하라는 명을 받았지요. 오늘 오후에 수도에 주둔중인 총사대와 헌병군의 지휘관이 모두 모여 수도를 사수할 방책에 대해 논의할 것인데 당신도 마마의 호위기병 자격으로 참여하는 게 어떻겠소?"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중령."
그녀가 긴장한 말투로 재빨리 대답했다. 아스티아노의 군 지휘관들이 모이는 회의라. 그녀로서는 과분한 자리였다. 지휘관 회의라면 총사대 및 각 연대의 대대장들이 모두 모일 터였다. 어쩌면 그녀의 전 상관이었던 흉갑기병대의 지휘관 돈 엔리케 벨라트리스와도 다시 만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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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하나.
이 글은 11월 13일까지는 별수없이 주중 1회 연재합니다. 전역하면 이틀에 한번은 할 예정이니까, 기대해주세요.(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연재는 해야죠. 제 정신의 젖줄인걸요...)
아마 전역하면 남는 시간에 글을 새로 가지치기도 조금 할 겁니다. 묘사도 더 실감나게 하고, 오타 고치고, 문장 고치고.. 초고나 다름없으니 그러면 더 나아지겠죠.
그냥 이건 잡이야기...
문득 이 소설이 2차창작물로 전환된다면 어떨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어요. 소설 뿐만 아니라,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면 어떨까요.. 소설상의 바로크풍 복장(삼각모, 제복, 코트 등)을 현대적 패션감각에 맞게 좀 개조해서 그림체도 약간 클럼프 비스무레하게 하는 거지요. 벨린은 구리빛 피부에 소설상 묘사도 샤프한 미녀인 어머니의 얼굴을 닮았으니, 사악한 미소를 흘리는 꽃미남으로 묘사하면.. 어이쿠..-_-; (전 좋은데, 돌날릴 분들이 많을 듯.)
물론 그냥 꿈이죠. 이럴 줄은 몰랐죠. 출X 제의도 안들어와서 과감한 투고를 할판인걸요. 쩝.
마지막으로 제 블로그 홍보..saruvia.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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