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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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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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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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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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34)

DUMMY

까트린은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노려봤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

사나이가 경멸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외침에 지휘관들이 술렁였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라면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총수를 말하는 것이었고, 그는 새 여제가 톨레도로 대관식을 치르러 가기 전에 반역죄로 수배한 자였기 때문이다.

"신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거기 계신 숙녀께서는 잠시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게 어떨지요?"

주스티안이 까트린 데 세비아노에게 눈짓했다. 까트린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가 까트린에게는 모욕처럼 들렸다.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무슨 낯짝을 가지고 여기 나타난 거지! 빌랜드의 힘을 빌린 반역자 따위가!"

주스티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추기경과 같이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꽤나 거친 아가씨군. 아무렴 그럼 계속 그렇게 서 계시던가."

주스티안이 지휘관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 기병대 장교가 말한 것처럼 저는 주스티안 데 모리체라고 합니다. 제국의 재무장관이자 히스파니아 동방 회사 총수, 중앙은행 총재이기도 하지요. 우리의 존경하는 새 여제 폐하께서 저에게 수배령을 내렸는데, 사실 제가 무고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휘관들이 또 한번 술렁였다. 그들은 주스티안이 반역혐의를 부인하지 않고, 도리어 인정한다는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주스티안이 그 반응에 만족하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저는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부터 오랫 동안 사활을 건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일이 다름이 아니라 새 여제 폐하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런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른 바, 혁명이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벌떡 일어났다. 벨라트리스였다. 수염을 기른 그 기병대 지휘관이 말했다.

"우리에게 협조를 구하겠다 이 말인가?"

"여기 계신 신사분께서는 그저 조용히, 가지고 계신 무기만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주스티안이 말했다. 그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게 까트린 데 세비아노는 문득 신기했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자리에 나타나 협박을 한단 말인가? 그저 간단히 검을 뽑아 그를 체포한다면 저 자가 원하는 혁명 따위는 끝장나지 않겠는가?

주스티안이 다시 한번 까트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까트린이 허리에 찬 기병도를 뽑았다. 그녀가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헌병군의 권력으로 이 자리에서 널 체포하겠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바로 그때였다. 멀리서 둔중한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대포소리였다. 어디서 쏘는 지 알수는 없었지만, 그 연속적으로 울리는 대포 소리는 분명한 것을 모두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하나, 주스티안 데 모리체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으며, 둘, 그가 이미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안 스피놀라가 외쳤다.

"나와라, 동지들!"

푸른색 제복 차림의 총사대가 회의장 안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이 장전된 머스킷총을 의자에 앉아 있던 지휘관들에게 겨눴다. 이로서 까트린은 벨라트리스의 충고와 자신의 직감이 맞아 떨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총사대도 믿을 수 없었다. 혁명군의 편에 선 주안 스피놀라가 이미 변절된 총사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주스티안이 말했다.

"그자 신사답게 손만 들어주신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무의미하게 피를 흘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가 피를 흘리게 만들 대상은 단 하나 뿐이지요."

지휘관들이 경악에 찬 얼굴로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하지만 까트린은 검을 뽑은 채 여러 명의 총사들과 대처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가 믿는 사람이 딱 한명 있었다.

'벨라트리스 중령!'

그녀가 상관을 힐끔 바라보았다. 두 손을 든 벨라트리스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돈 주스티안. 당신은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했을 테니. 우리의 병력을 가지고는 당신이 수도를 점령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겠구려."

주스티안이 냉소를 지으며 벨라트리스를 쳐다보았다. 총사들이 지휘관들을 연행하고자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기병대 중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흉갑기병대!"

그와 동시에 타앙!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총사들이 쏜 것이 아니었다. 총소리는 창가에서 났다. 창문이 깨졌다. 총사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근처의 유리창이 깨지면서 말발굽소리가 까트린의 가슴을 망치처럼 때렸다. 그와 함께 그녀에게 총을 겨누던 총사들이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졌다.

까트린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쥔 채, 벨라트리스를 향해 뛰어갔다. 벨라트리스도 허리에 찬 검을 뽑은 채였다. 그를 가로막던 변절한 총사 한 명이 그의 검에 찔렸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타락해가고 있었다.

벨라트리스가 뒤로 주춤하며 소리쳤다.

"도망쳐, 까트린, 어서!"

"하지만 중령, 여기서 이렇게!"

벨라트리스가 반대쪽에 뒤로 물러나 서 있는 주스티안에게 외쳤다.

"저 자에게 보여줬으니 만족한다! 저 자는 큰 착각을 한 거야.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은 있을 수 없단 말이다!"

혁명에 가담한 총사들이 총을 쏘아댔다. 총탄이 그들의 사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까트린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전속력으로 창문을 향해 뛰었다. 총사 두 명이 까트린을 가로막고 총을 쏘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그녀는 창가로 몸을 날렸다. 운 나쁘게 그녀를 막으려 했던, 총사가 그녀에게 깔려 덩달아 창문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맨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이 전해졌다. 바깥의 밤 공기가 그녀의 뺨에 스쳤다. 까트린은 서둘러 일어났다. 가슴이 미칠 것처럼 아팠지만 일어나야했다. 기병들이 마상에서 총을 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외쳤다.

"어서 도망가십시오, 대위! 당신의 자리를 찾아요!"

까트린은 그들의 말대로 했다.

곧 이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 * *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야음을 틈타 동방회사의 항구와 가까운 산 살바도르 해군 요새로 포격이 가해졌다. 지상에서 가한 포격은 아니었다. 해군으로서는 놀랍게도 히스파니아 함대가 누에보 히스파니아쪽으로 서쪽 식민지 해역으로 출항한 사이, 세 척의 기습적인 프리킷(frigate) 함선의 포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깃발을 숨기는 것이 치욕이라도 되는 듯, 메인 마스트에 국기를 게양하고 다녔다. 그 깃발은 그 프리킷들이 브리타나 연합 왕국의 빌랜드 해군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HMS 햄프론, HMS 멀린, HMS 베이컨. 그들과 대경실색하여 맞서 싸운 히스파니아 해군은 모르겠지만, 이 세 함선의 소속은 일반적인 빌랜드 해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종의 마법 사단이었고, 빌랜드가 그 정체를 극도로 숨겨왔던 비장의 병기였다.

기함인 HMS 멀린의 갑판은 해군 요새로 가해지는 포격에 화약연기가 자욱했다. 귀가 멍멍한 대포소리, 요새에서 가하는 포격에 대포알이 근처 바다로 떨어지는 소리로 사방이 울려퍼졌다. 그 갑판 마스트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검은 삼각모에, 빌랜드 총사들의 상징인 붉은 프록코트 제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긴 갈색머리칼을 땋아내려 리본으로 고정한 차림으로 어깨에는 머스킷총을 메고 있었으며, 허리 벨트에는 권총과 여러 개의 총검을 차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화려한 정장에 깃털달린 모자를 쓴 사나이가 다가왔다. 그는 가발에 하얀 셔츠와 푸른색 주스트로 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부풀려진 옷 때문인지 그의 몸집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얼굴에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부풀려진 몸집 때문인지 머리가 너무도 작아보였다.

붉은 제복차림의 총사가 그를 알아보고 절했다.

"비어든 박사."

"저것 봐."

비어든 박사가 히죽 웃으며 외쳤다.

"요새가 불타고 있군! 오늘 우리의 점궤는 아주 좋다. 밤 하늘의 모든 항성과 행성들이 우리가 운명적인 싸움에 말려들었음을 알려주고 있어. 싸우기 아주 좋은 날이다. 이 기회에 스페냐드들을 멸망에 빠트린다면 내 평생의 소원이 없을 것이다."

붉은 제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어든 박사라고 불린 그 사나이가 외쳤다.

"지옥으로 나아가라, 안젤라. 곧 나도 따라가겠다."

붉은 제복 차림의 총사가 삼각모의 챙을 들어올렸다. 남자라고는 볼 수 없는 여린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총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여성임에 틀림 없는 용모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서린 광기는 그녀를 평범한 여자라고 보게 할 수가 없었다.

'안젤라'라 불리운 머스킷트리스가 대답했다. 그것도 아주 기뻐하는 기색으로.

"예스, 마이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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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재로 바뀌었는데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리플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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