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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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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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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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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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83)

DUMMY

벨린 데 란테는 총을 어깨에 걸친 후 까트린의 기병도를 여러 각도로 살폈다.

그가 다시금 기병도를 살펴보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까트린은 빌랜드 첩자 생각은 뒷전으로 하고,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저 자는 지금까지 그녀를 완전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고작 보병 따위에게 무기를 뺏긴 꼴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벨린 데 란테의 간계에 속아 더러운 협박에 굴복해버렸다는 거였다. 그녀는 술집에서 겪었던 그 일이 아직도 무척 창피하고 민망했는데, 그 일을 꾸민 지옥에 떨어질 당사자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니 더더욱 분노가 치솟았다.

벨린이 그녀의 기병도를 한손으로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까트린이 주먹을 꾹 쥐고 못마땅한 얼굴로 그 잘생긴 총사를 노려봤다.

녀석은 파렴치하게도 느긋해보였다.

"해가 지기 전에 모닥불을 피워야겠어. 이 근방은 옛날엔 대구잡이 선착장이었다는군. 지금은 바스크인들 때문에 대구잡이 산업이 망해서 이 주변은 얼씬거리는 이들이 없다는군."

까트린은 긴장한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에는 모닥불을 피운 흔적과 땔감으로 쓰려고 모아둔 것이 분명한 나무조각들과 어선으로 쓰였던 버려진 범선들, 그 사이로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낡은 그물이 널린 나무 선착장이 보였다. 석양에 물든 그 풍경들은 그녀의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황량하면서도 호전적이었다. 마치 칼부림하기 좋은 전설 속의 결투장처럼.

까트린이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벨린은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밤이 되면 내 친구들이 마차를 가지고 이리로 올 거야. 그걸로 동방회사의 전용 부두로 들어가야지."

"나를 그때까지 포로로 잡아둘 셈이군."

그녀가 차갑게 대꾸했다. 벨린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

"우리 곁에서 얌전히 허드렛을을 도와준다면 이 일이 끝난 후 네 검을 돌려주겠어. 좋은 경험으로 삼아야지 어쩌겠어? 험한 꼴 안 당한 걸 감사히 여겨야지."

까트린 데 세비아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저 자는 그녀가 완전히 기가 꺾였다고 판단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천하의 까트린 데 세비아노를 뭘로 보고.


까트린은 이를 악물었다. 저 자를 처치하려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검을 되찾아야 했다. 벨린 데 란테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모닥불을 피울 장작을 발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나를 도와 장작 좀 모아주겠어? 네 검을 들고 있으니 장작을 들 손이 없군."

하지만 그녀는 냉랑하게 한마디 했다.

"그런 일 가지고 내가 굴복하리라 생각해?"

"술집에서 내게 애걸복걸했던 때를 생각해봐. 뒤늦게 용기가 살아나셨나?"

벨린이 장작을 주우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사람을 깔보는 듯한 그의 행동에 그녀가 드디어 폭발해버렸다.

"천만에! 그 말이 진심이었을리 없잖아! 숙녀를 그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협박했으면서 이 나쁜 자식!"

"그건 네가 숙녀답지 않게 굴어서 그런 거야. 말괄량이 아가씨."

벨린이 그녀의 기병도를 어깨에 걸치며 딴청을 피웠다. 그녀의 푸른 눈이 벨린 데 란테를 단호히 노려보았다.

그녀가 또 한번 소리쳤다.

"네가 정녕 사내라면 검으로 제대로 한판 붙어! 비겁하게 뒤에서 마법걸린 총이나 쏴대는 보병 나부랭이 주제에!"

마법걸린 총이라. 벨린이 고개를 저었다. 평민들 중에는 총사들의 총에 정확도를 향상하는 마법이 걸렸다고 믿는 자들이 있었다. 벨린은 그녀의 성화에 시선을 마주바라보기는 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내가 왜 네 검을 돌려주고 너와 겨뤄야하지? 계속 그렇게 반항하면 총으로 쏘면 그만인데."

벨린 데 란테가 팔짱을 꼈다. 까트린은 모멸감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이 멍청이, 바보! 명예도 모르는 천민 따위가 감히!"

"귀여운 욕도 할 줄 아는군. 경고하는데 얌전히 있는 게 좋아."

벨린이 간단히 응수하며 지나치려 했다. 까트린이 재빨리 몸을 움직여 그의 앞길을 막았다.

"나는 추기경 각하의 헌병군이야! 당장 내 검을 돌려주고 결투에 응하지 않으면 추기경 각하께 모두 보고해버릴 거야!"

"마음대로 하시지, 덕분에 내 적들이 몸을 떨겠군."

벨린 데 란테가 끄떡도 없자 그녀는 더욱 약이 바짝 올랐다. 어떻게 하면 녀석을 도발할 수 있을까. 곧 저 자식의 신상에 모욕을 준다면 조금이라도 움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벨린이 그녀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약이 오른 그녀가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듣자하니, 너! 여러 여자들하고 추잡한 밤을 보낸다며? 밑바닥으로는 창녀서부터 가장 높은 곳에는 황녀까지 있다지? 너 같은 쓰레기와 빠져든 여자들이 불쌍해. 여러 여자들을 매일 밤 갈아치우면서 고상한 신사인 척 뻐기고 다니는 것도 모르고. 하긴, 더러운 피를 물려받았으니 그 기질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네 어머니가 요염한 아르메니아 창녀 출신이라서 좀 잘 나가던 총사와 눈이 맞았으니..."

눈 깜짝할 사이였다. 벨린 데 란테가 뒤로 확 돌아보더니 들고 있던 검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사브레를 뽑았다.

갑작스레 검을 받아든 까트린도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하고 기병도를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쇳소리에 주변의 공기가 극도로 긴장했다.

그가 삼각모를 푹 눌러쓰는 바람에 까트린은 벨린의 눈밑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극도로 냉랑해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도발은 성공이었다.

"징징거리는 게 짜증나 죽겠군. 뭐, 그래. 내가 그랬긴 그랬지."

소문을 섞어 내뱉은 중상모략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까트린은 속으로 놀라웠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라고 다를 바 있는 줄 알아? 천만에, 꽃다운 나이에 남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권태로운 인생을 산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너까짓 게 뭘 안다고!"

까트린이 검을 바짝 들이댔다. 벨린 데 란테가 자신의 권총과 머스킷을 저 멀리 집어던졌다. 어머니까지 모욕한 자를 한방에 죽일 의향이 없다는 뜻이었다.

"불쌍하군. 데 세비아노."

벨린이 의례 적에게 했던 것처럼 비아냥거렸다.

"너, 평소에 무시당한다는 피해망상을 지니고 있지? 상광에게는 골칫거리로 찍혔고, 부하들은 여자라고 깔보겠지. 그래서 만만해 보이지 않도록 더욱 사내처럼 굴지만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고 있지? 어때? 내 생각이 틀렸나?"

그녀는 대답을 행동으로 보였다.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기병도가 벨린의 목을 치고 들어왔다. 총사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칼날이 그의 삼각모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곧바로 반격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검이 파쇄음과 함께 부딧치면서 미세한 떨림이 두 남녀의 흥분을 고조케 했다.

보기드문 접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레이피어처럼 찌르는 검이 아닌, 군도를 가지고 싸우는 싸움은 사람들을 훨씬 악이 받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둘 다 검을 다루는 데 능숙했고, 좋은 검으로 무장했으며 이상하게도 우아한 대련이 아닌 우악스런 실전으로 변모해갔다. 감정이 실린 싸움. 보기드문 미인과 싸우는 것 치고 벨린 데 란테가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도 이상했거니와,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가 까트린의 기세에 점차적으로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까트린이 양손으로 검을 쥐고 그의 검을 부러뜨리기라도 할 새로 덤벼들었다. 여성이 그렇게 파워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더러, 톨레도산 강철로 단련된 벨린의 검이 그녀의 검날에 파이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나를 죽이려 하는군."

벨린 데 란테가 커다란 화물 상자 뒤까지 몰려서는 한마디 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응수했다.

"감히 나를 능욕한 것도 모자라,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해?"

벨린은 그 상황에서도 웃어보였다.

"진짜 할 생각은 아니었어. 기껏 잡은 망아지를 길들이다고 남에게 주기는 아까우니까."

"닥쳐!"

까트린이 기합을 지르며 일격을 가했다. 벨린이 원을 그리듯 피했지만 그는 곧 그녀의 공격이 성공하였음을 느꼈다. 리본으로 묶은 그의 긴 머리칼이 갑자기 풀어졌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의 기병도 끝에 벨린이 머리를 묶을 때 쓰던 푸른 리본이 걸려 있었다. 벨린 데 란테의 짙은 갈색 머리칼이 순식간에 산발이 되었다.

까트린이 꼴좋다는 투로 이죽거렸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겨가지고 뭐가 어째?"

필시 머리칼이 풀어진 것에 벨린 데 란테의 사내답지 않게 여성스러운 이목구비를 접목시켜 놀리는 것이리라.

"제법이군, 카발리스."

벨린이 인정했다. 그가 차가운 눈매를 드러내며 사브레를 고쳐쥐었다. 까트린의 공격이 생각 이상으로 날카로운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검으로 하는 결투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검을 고쳐줬다.

벨린이 삼각모의 창을 잡아 경의를 표하는 척하다, 쓰고 있던 삼각모를 바닥에 던졌다. 정돈되지 못한 그의 머리칼이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그가 물었다.

"내가 이기면 어쩔거지?"

까트린이 자신있게 말했다.

"기꺼이, 네 부하가 되어 주지, 너에게 존칭을 붙이고,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해주겠어."

"그럼 너는?"

"네 목숨을 거둬갈 거야, 데 란테. 대가를 치뤄야지. 안 그래?"

"그거 좋은 조건이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벨린이 균형을 깼다.


-------


휴, 힘든 한 주였습니다..

암튼 까트린은 그딴 일 가지고 굴복하기엔 너무 기가 센 여자라 2라운드로 돌입이죠. 허허, 참 고민에 고민에 고민하고 이은 스토리입니다.. 머리가 핑핑 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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