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검선(華山劒仙) - 시험 2.
‘음? 저 할아버진?’
그런 운현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장문인인 정진자의 바로 윗자리였다.
일전에 상궁을 오르면서 마주한 일이 있던 노도사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뛰어난 신법으로 운현을 놀라게 했던 그때의 그 노도사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속가제자들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귀한 손님이셨구나…….’
화산을 찾은 귀빈들도 연무장 밖에 줄지어 서 있는데, 노도사는 장문인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운현의 놀람은 당연했다.
하지만 운현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장문인이 시험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연설을 마친 장문인이 향근관의 교두 원현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원현이 소리친다.
“제 일. 육합권법. 출수!”
“하-앗!”
백여 명이 넘는 속가제자들이 동시에 기합으로 답한다. 그와 함께 육합권이 시작됐다. 백여명이 넘는 어린 속가제자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펼쳐내는 육합권법은 귀빈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운현도 속가제자들의 흐름에 몸을 맞기며 오랫동안 단련해온 육합권법을 펼쳤다.
이후 칠성권, 매화권을 차례로 펼치고 나서야 단체 연무가 끝이 났다.
운현은 마음을 거칠어진 호흡을 다잡았다.
‘이제부터야.’
지금부터 개인시험이다.
시험을 치루는 속가제자들은 하나씩 앞으로 나서 장문인이나, 장로들이 요구하는 권법을 펼쳐 보인다.
벌써부터 속가제자들의 흥분한 숨소리가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시험은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자리다.
운이 좋아 장로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다면 바로 본산제자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니 어린 속가제자들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현이 소리쳤다.
“일번. 양경!”
그러자 양경이란 아이가 앞으로 나서 꾸벅 인사를 올린다.
“화산 속가제자 향근관 소속 양경이라 합니다!”
긴장과 흥분이 섞인 외침에 장문인은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하거라. 매화권을 보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넷!”
장문인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한 양경이 매화권을 펼친다.
긴장한 듯 굳은 모습이었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무공을 익혀왔던 지라 큰 어려움이나 실수 없이 매화권을 펼친다.
그 후 양경을 시작으로 하나둘 차례가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세 권법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실수를 연발하는 아이도 있었고, 또 어떤 아이는 발이 꼬여 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히 진행되는 분위기다.
“다음 운현!”
아이들의 시연을 지켜보던 운현의 귓가에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걱정 하지마! 잘 할 거야!’
운현은 애써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운현이 원현을 스쳐 지나 앞으로 나설 때였다.
“긴장하지 말고 잘 하거라!”
나지막한 소리로 원현의 응원이 들려온다.
긴장이 한결 풀렸다.
“네! 사형! 읍!”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운현의 반응에 원현은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시험 중이다. 사형이라니!”
나지막한 훈계와 함께 어른들의 안색을 살핀다.
혹여나 운현에게 불이익이 갈까하는 걱정에서였지만, 다행히 어른들도 그저 귀여운 재롱으로 넘어가는 듯 했다.
“휴! 다행이구나. 여하튼간 이번에도 떨어지면 볼기짝을 때려 줄 테니 그리 알아라!”
“네! 사…… 아니, 교관님!”
“어서 가거라!”
평소 엄한 원현의 농담에 웃으며 답한 운현은 떠밀리듯 연무장 중간에 섰다.
“화산제자 운현이라합니다!”
“아! 그래. 정명 사제의 제자로구나.”
운현의 인사에 장문인이 먼저 아는 척 이야기를 걸어왔다.
운현은 오랜만에 듣는 스승의 도호에 헤헤 웃음을 지었다.
“헤헤. 네!”
“그래 너는 칠성권을…….”
“육합권법을 보고 싶구나.”
장문인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를 좇던 운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노도사님?’
비록 장문인인 정진자보다 상석에 자리 했지만, 일전에 보았을 때 노도사의 소매에는 매화를 상징하는 수가 놓여 있지 않았다.
그럼 외인이란 것일 텐데 장문인의 말을 자르고 이렇게 육합권을 요구하니 당황스러웠다.
운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장문인과 노도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런 운현을 향해 장문인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육합권으로 하자구나.”
“옛!”
갈등이 해결되자 운현의 목소리는 한결 밝아졌다.
‘육합권이라면 가장 자신 있어!’
더욱이 육합권은 운현에겐 가장 의미 있는 권법. 때문에 그 수련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운현은 자신 있게 육합권을 펼쳐보였다.
“하-앗!”
운현의 낭랑한 기합성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
운현의 육합권이 펼쳐진다.
운현은 온전히 육합권에 몰두한 표정이다.
틈틈이 들리는 기합소리를 제외하고 연무장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흐음. 여섯 번째라 하였던가.’
장문인인 정진자는 운현의 육합권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틀린 곳도 없고, 서투른 구석도 없어. 긴장된 기색도 보이지 않으니 이번엔 충분히 통과 할 수 있겠구나.’
장문인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사실, 지난 다섯 번의 시험을 지켜보는 동안 정진자는 운현의 차례가 되면 긴장하곤 했다.
길어진 스승의 출타.
그로 인해 속가제자들과 함께 기초권공을 익히고, 하지 않아도 될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럼에도 싫은 소리 없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장문인은 운현이 잘 되길 바랐다.
하지만, 운현의 지난 다섯 번의 시험에서 운현이 펼친 권공은 차마 모른 척 통과시키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때문에 매번 운현이 시험을 치르게 되면 조마조마해진다. 긴장해서 실수나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육합권에 몰입한 운현은 뛰어나거나 특출하진 않아도 모자람은 없다.
그것이면 되었다.
그것만 된다면 얼마든지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좋구나! 좋아!”
기꺼운 감탄이 정진자의 상념을 깨웠다.
정진자의 고개가 상석으로 향했다. 감탄의 주인은 상석에 앉은 노도사다.
“청송 사백조께서는 운현이의 권공이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정진자는 미소를 지으며 물음을 건넸다.
뛰어나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모자람은 없는 운현의 권공이 칭찬을 받고 있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허허! 내 일전에 화산에 돌아오다 금무수련을 깨트린 일이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느냐?”
“아! 그때 그 아이가?”
정진자는 놀라 되물었다.
오래도록 화산을 떠나 세상을 떠돌던 청송자다. 그런 청송자가 처음 화산으로 돌아왔을 때 첫 마디가 화산의 가르침이 아직 바래지 않았음에 대한 치하였다.
헌데 그때 그 아이가 운현이라니.
정진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청송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아이다. 그때 내 표식을 달지 않았으니, 그저 외인으로 알았을 터인데……. 저 아이는 이 늙은 도사를 돕는데 망설임이 없더구나. 내 그때 저 아이를 통해 화산의 어짊이 아직 남아 있음을 깨달았거늘, 오늘은 또 저 아이로 인해 화산의 공부가 남아 있음을 깨닫는구나.”
‘공부가 남아 있음이라니?’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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