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성역의길) - 프롤로그& 1화
-프롤로그-
글쎄... 너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진실로 말하는데 말이야, 사람이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더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어느새 망가진 내 모습이 보이더라고. 후우... 진짜 미치겠는 건... 이러면 안되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 강현수의 독백 중에서 -
“야, 가진거 내놔 새키야.”
짙은 검은색 머리칼, 그리고 독수리의 그것과 같이 날카로운 눈이 다른 학생을 향하고 있었다.
멱살이 잡혀있는 학생은, 독수리에 잡혀 옴짝 달싹 못하고 죽기를 기다리는 사냥감과 같아보였다.
“혀... 현수야. 내가 이번 주는 가진게 이것 뿐이없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손에 쥐어나온 돈을 확인한 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퍽퍽
순식간에 뻗어나온 주먹은 미쳐 피할시간도 주지 않은 채 멱살에 잡힌 학생을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 악! 제, 제발... 어쩔 수가 없었...!”
무언가라도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현수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그것을 방해했다. 멱살이 잡히다 어느새 바닥에 구르던 학생은 말할 힘도 없는지 배를 잡고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현수는 다리로 학생의 머리를 툭툭치며 입을 열었다.
“ 잘 들으라고 새키야. 일주일에 5만원이라고 했잖아. 그것도 내가 니 사정보고 10만원에서 몇 번씩이나 깍아준거 몰라? 너 자꾸 이사정 저사정 핑계대면서 이런식으로 나오면 학교생활 더 힘들어진다. 알겠냐? 남은 3만원은 이자쳐서 받을 테니 그리알고 다음 주까지 준비해라.”
강현수는 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일진이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그의 이러한 일탈, 아니 어쩌면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수 있는 반항과 마음 속의 불만을 현수는 솔직하게, 그리고 거칠게 표현하는 아이였다.
“ 시발... 2만원가지고 10시간을 버텨야하나...”
현수가 향하는 곳은 동네 피시방이었다.
“ 왔냐?”
“ 자리있냐?”
“ 뭐, 늘 그대로.”
현수는 알바생이 말해준 자리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이곳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낸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갔다. 친해진 알바생이 서비스로 주는 음료수를 마시며 그는 모니터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이,
어찌보면 모든 것을 잊고 싶다는 듯이 게임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은 다소 신경질 적으로 보였다.
마우스의 탁탁 거리는 소리가 거칠어 진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주변에 영향을 받아 선하기도 악하기도 변하기 마련이다.
어느 지루한 수업시간에 현수는 이러한 글귀에 잠시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다. 도덕 시간이었던가?
공부에 뜻을 버린지 오래였던 그가 이러한 수업내용에 귀를 기울인 것은 어찌보면 신기한 기적과 같은 일이기도했다.
그러나 세상에 우연이란, 기적이란 것은 없다.
사람이 알지 못할 뿐, 지각의 영역에 넘어 있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이다. 현수도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데 는 이어지는 옛날 생각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의 생각 속에 곧 옛날 자신의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이 잠시나마 스쳐지나갔다.
옛날에 자신은 어땠을까?
지금의 강현수는 누가봐도 못된 놈이라고 말할거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그리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히 남아있는 그의 기억에는 자신도 옛날에는 이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던 자신의 모습, 친구의 장난스런 농담에도 쉽게 상처받던 여린 마음씨,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하며 거짓말을 못하던 그런 모범적인 아이.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었는데...
‘젠장...’
현수는 욕지걸이가 자연스레 나왔다.
자신의 예전과 지금의 모습은 너무 거리가 있었기에, 대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예전부터 고민이라도 해왔던 것일까?
인간에게는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어쩌면 이러한 나의 콤플렉스가 그 지루한 수업시간에 인간의 선악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라도 한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사람이 선하게 태어난 존재든, 악하게 태어난 존재든, 혹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든,
사람이 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 너냐? 우리 아이 건드렸다는 놈이?”
웃기는 일이다.
항상 어깨에 힘주며 나타나는 녀석들의 공통점의 특징중 하나는 ‘입만 살았다’는 것이다.
현수는 매번 똑같은 패턴에 그냥 무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 야이 XX새끼야! 묻잖아!”
자신의 학교 후배, 혹은 친한 친구들을 건드리면 뭐 지가 영웅이라도 되는줄알고 이렇게 줄줄이 찾아온다. 물론 입보다는 주먹이 먼저라는 사실은 잊고 말이다.
쉬익!
현수는 눈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정형적인 양아치의 표상- 녀석이 입을 놀릴때 주먹을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동시에 허벅지를 향한 그의 발길질에 입을 놀리던 녀석은 세상이 도는듯한 착각과 하반신의 충격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 뭐... 뭐야?”
뭐긴, 얻어맞고 있는 거지.
녀석과 같이왔던 다른 친구들도 현수가 내지르는 주먹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라고는 보기 힘든 완력.
현수는 중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단련해온 자신을 생각했다.
잦은 부모님의 싸움.
물건이 날아들고 욕이 방안을 가득채울 때마다, 현수는 가슴이 찢어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다.
상황이 그럴진데, 부모님이 밥이나 제때에 챙겨는 줄까.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싸주신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을 때, 자신은 항상 같은 동그랑땡과 김치, 김이라는 메뉴로 혼자 밥을 먹어야했다. 누군가 같이 먹자고할 때면 창피해서 피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점심을 챙겨주는 날은 조금 낫다.
못먹을 때가 더 많았으니까.
그럴때는 나가서 물로 배를 채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별난’ 친구들은 피하고, 무시하고, 때로는 멀리하면서 왕따를 시켰다.
퍽퍽!
“ 그... 그만해! 우리가 잘못했...!”
퍽! 퍼억!
“ 헉... 헉...”
현수는 어느새 피를 흘리며 꿈틀대고 있는, 그래도 10분 전에는 영웅같은 포스를 풍기고있던 녀석들이, 지금은 벌레처럼 바닥에 엎드려 꿈틀대고 있는 세 마리의 녀석들을 보면서 묘한 흥분을 느꼈다.
한 때는 저런 녀석들에게 얻어맞고 벌레같았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그 때의 고통을 잊지않고 그대로 돌려주고 녀석들의 포식자의 위치가된 자신을 발견하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의 원망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변한 것인지 몰랐다.
현수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더욱심한 왕따 - 찌질하다고, 항상 기분나쁘게 새침하다고 등등의 이유로 - 를 당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혼자 있는 외로운 시간이 더욱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 새키들아. 자신이 없으면 더 데려오던가. 아니면 혼자서 당당하게 오든가. 난 말이지... 너희같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한놈만 괴롭히는 새키들이 정말 싫거든?”
현수의 살기어린 말이 녀석들의 가슴을 휘집었다.
낮고 저음의 목소리.
진실로 분노할 때 인간이 낼수 있는 음성이라는 것을 녀석들은 처음 들은 것이다.
“ 하여튼 내 시간 잡아먹었으니 그 대가는 치러라.”
현수의 손에는 세 개의 지갑이 들려있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이 주는 가혹한 두려움은 현수에게 있어서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세상에 혼자 살아갈수도 있다는 절망감. 더군다나 학교에서 이어지는 왕따.
그것은 현수에게 지독한 고독감과 절망감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고, 현실의 냉혹한 측면을 너무나 빨리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강해져야해.
그것은 현수가 중학교 입학하고 반년이 지난 때였다.
현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의지할 곳은 없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도 없다.
세상은 나를 가혹하게 몰아친다.
혼자서 살아남아야한다.
운동은 이때즈음 시작했다.
하루에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앉았다 일어서기, 아령 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팔굽혀펴기도 20개 겨우 하던 것이, 하루에 1~2개씩 조금씩 늘려가다보니 1학년 마칠때즘엔 200개를 할 수 있었다.
가끔 집안에서 심한 부부싸움으로 운동을 할수 없을 때에는 뒷산의 산을 타며 머리와 마음을 식히면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또래에 비해서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그 동안 쌓인 분노를 무심히 주먹으로 내지른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평소 괴롭히던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사건.
그것은 현수 자신에게 있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 가는대로, 세상에 내지른 첫 시도였다.
“ 그토록 쉬웠던 것을.”
물론 자신의 행동이 옳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찌할 수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그 방향에 대한 선택은, 용기있는 자가 한다는 사실도 깨달은 것이다.
첫 시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더 대담해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돈은 점점 필요해졌고, 집에서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자신은 양아치들이 흔히 쓰는, 그리고 힘있는 학생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수 있는 ‘삥뜯기’ -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 를 하기 시작했다.
힘이 있는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태의 권력사용을 현수 자신이 직접 보여주면서, 이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냉혹한 현실.
그래도 가정만큼은 따뜻하기를 바랬다.
청소도 안된 휑한 거실.
현수는 무심한 집안을 살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지도 1년이 넘었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와 함께 살고 있었다. 가끔 돈이 필요하면 어디서 막노동이라도 하는지, 안보이기도 했지만 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냉혹한 바깥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자신이 집안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가치도 없다고 느끼는 그것이었다.
“ 씨발. 또 술 처먹네.”
그의 말이 거실을 메웠다.
술을 마시던 아버지의 귓가에도 멤돌았을 것이다.
현수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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