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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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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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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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수 :
12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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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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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D-16

DUMMY

[세영의 이야기]


봄비가 내린다. 계절에 비해 제법 많이. 내리는 소리도 들리고 바닥에 고인 것도 보인다.

날이 좀 쌀쌀해졌다. 비 때문인 것 같다.

태연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어제 술을 많이 먹었는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옅은 주향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태연이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

한 시간 정도 더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깨어났다. 얼굴엔 식은땀이 가득했다. 밤새 잠꼬대를 하던데. 많이 취해서 그런 가 했는데 아닌 것 같다. 안색이 너무 안 좋다. 술병은 아닌 것 같다. 뭔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무언가 충격을 주었던 것일까?

자는 동안 끓인 북엇국을 건넸다. 흰 밥을 살짝 말아 조금씩 먹여주었다. 애써 웃으며 받아먹고 있었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는 것 같다. 파랗게 질린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조금 더 잘래?”

“응”

“이리 와 봐.”


그녀를 품에 안고 이불을 덮었다. 마치 한겨울 홑이불 하나 없이 노숙하는 사람처럼 바들바들 떤다. 그녀를 좀 더 깊숙이 안았다. 갓난아이처럼 내 품에 안겨온다.

젖은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촉촉한 느낌. 젖은 잔머리를 살짝 쓸어 넘겨주었다.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잠은 들지 못하고 있었다. 감은 눈꺼풀 속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땀을 너무 흘려서 그런지 그녀의 몸이 축축할 정도다. 아무래도 수건이라도 가져다주어야겠다.


“우리 아기 잠깐만 있어봐.”


[태연의 이야기]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내가 죽는 다는 사실. 알고 있었고 두려워했고, 걱정했다. 그런데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친구들의 대성통곡이 나를 건든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각오했던 일이다. 난 그날 의연했다.

반환점이 눈에 보인다. 곧 남은 길이 꺾어진다. 남은 날 보다 지난날이 많아질 것이다. 물 컵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눈에 띄게 줄었다.

몸이 떨려온다. 눈이 흐리다.


“이리 와.”


침대 한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오빠가 뒤에서 꼭 안아준다. 뽀송하게 마른 수건으로 날 닦아준다. 그는 항상 따뜻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온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이 무섭지?”

“응.”


날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날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날 안고 있는 그대.


“오빤 괜찮아?”

“응.”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태연하고 평온한 얼굴. 날 향한 걱정이 담겨있을지언정 두려움이라곤 조금도 볼 수 없는 그의 표정.

그가 내 몸을 들어 자신의 무릎에 앉힌다. 두 다리를 뻗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조금 묘한 자세라 기분이 이상하다.

그가 날 꼭 끌어안고 등을 쓸어준다.

눈물이 난다. 참을 수 없는. 엉엉 운다. 아이처럼.

마음의 둑에 균열이 생긴 걸까? 애써 가려왔던 진실이 틈 사이로 빠져나오는 기분이다. 그 물살은 크고 거세서 내 작은 마음으론 다시 가릴 수 없다.

얼마나 울었을까. 나를 다독이는 손길과 낮은 그의 음성에 조금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다.

눈가에 닿는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마음이 피부를 통해 전해져온다.


“오빠는 어떻게 그래?”

“뭐가?”

“오빠 보면 나랑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맞나 싶어. 분명 같은 날 죽을 사람인데, 어쩜 그리 아무렇지 않아? 내가 너무 겁이 많은 건가?”

“아냐. 나도 무서워.”

“항상 그래. 오빤 날 감싸주고 위로해주지. 내가 그러진 않았어. 오빠가 늘 날 지켜봐주기만 하니까. 그게 가능한 거야?”

“있잖아. 그게 가능한 사람. 너의 눈앞에.”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그.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동자. 평온한 시선. 평온한 숨결. 그게 가능한 사람. 바로 당신. 그대.


“노하우가 뭐야? 나도 가르쳐줘.”

“사랑이지.”

“사랑?”

“응. 널 사랑하는 마음.”

“그게 뭐야.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넌 남자친구 사겨본 적 없다고 했지?”

“응.”

“미안하지만 난 몇 번 있어.”

“거기서 그 말이 왜 나와.”


오빠가 다시 나를 꼭 안아주며 낮은 음성으로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이었어. 여자라곤 모르던 내가 대학에 가니 막 여자와도 친구로 지내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그냥 마음이 끌리더라. 상상속의 연애. 그것이 현실이 되니까. 뭐랄까. 남들 해보고 싶은 건 대 해보는 그런? 그렇게 내 풋사랑이 시작되었지. 그 뒤로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 연애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경험이 쌓이더라.”

“무슨 경험?”

“사랑하는 법.”

“그것도 경험이 필요해?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해서 겪은 만큼 느낄 수 있고 베풀 수 있어지더라고. 단순히 호기심에 혹은 욕심에 했던 사랑이, 나중엔 정신적인 교감과 정서의 공유에 초점이 맞춰지더라.”

“정말?”

“응.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난 뒤 시간이 꽤 지나서였을 거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럴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거라고. 단지 한 블록의 거리를 걷는 만큼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그것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만족이 된다고? 몇 분의 시간만으로도?


“이해 안 되지? 난 그래. 다른 사람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난 그래. 몇 걸음을 걷는 시간 사랑하는 이와 행복할 수 있다면 내 평생을 다해도 좋다고 생각한 적 많아.”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한다.


“난 너를 사랑해. 정말 사랑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널 사랑해. 그래서 난 무섭지 않아. 흔들리지 않아. 너란 사람 품에 안고 있는 이 순간마저 나는 행복해. 단 몇 분의 시간만이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난 만족해. 널 만나서, 널 볼 수 있어서, 널 느낄 수 있어서.”


처음 들어보는 말. 사랑해.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 무엇보다 그에게 처음 들은 말. 사랑해.

느끼고 있었지만 확인해 주는 말. 사랑해.

그가 하는 말은 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입에 발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도 나만큼 초조한 상황일 것이다. 우린 확률에 의지하는 그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종점에 도착하면 멈춰버리는 버스처럼 우린 끝이 있는 영화필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반 이상 돌아가기 시작한.

그런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말이 허세가 담겨 있거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그런 종류의 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오빠 나 많이 사랑해?”

“사랑해.”

“얼마나 많이?”

“표현할 수 없는 만큼.”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확인받고 싶다. 알고 싶다. 알고 있지만 알고 싶다. 증명 받고 싶다. 말해줘. 한 번 더.


“내가 알고 있는 언어로는 너무나 커다래서 설명할 수 없어. 우주의 끝을 말 할 수 없듯이.”

“정말 말은 청산유수라니까.”


그가 날 보며 말한다.


“너는 나 사랑해?”

“나도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나는 아무 말 없이 입고 있는 상의를 벗었다. 그리곤 그의 몸을 당겨 침대 위로 누웠다.


“나를 다해서 사랑해. 그러니 나 안아줘.”


그가 내 몸을 어루만진다. 피부에 느껴지는 그의 손끝. 그 끝에 담겨 있는 그의 마음. 저릿한 따뜻함.


“괜찮아?”

“이게 내 대답이야. 사랑해. 오빠도 나 사랑해줘. 보여줘.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해. 사랑해.”


내게 체중을 싣는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후회는 없다.

나는 그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어떻게 사랑을 해야 몇 분의 시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날 사랑하고 있고,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안다.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만 생각하자. 잊을 수 없을지라도 그것만 생각하자.

난 두렵지 않다. 난 사랑하고 있다.

난 두렵지 않다. 난 사랑받고 있다.

오늘 난 그에게 내 모든 사랑을 고한다. 내 사랑 고백은 안도와 희열의 고통이다.


작가의말

후딱 엔딩을 봐야겠어요. 그렇다고 날림하진 않을 겁니다. 자존심이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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