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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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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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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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3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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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D-30

DUMMY

D-30


세영의 이야기


“한 달 밖에 안 남으셨습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너무 놀랐다. 손끝이 떨린다. 귀가 먹먹해진다. 피가 안 통한 듯 먹먹한 감각이 전심을 조여 온다. 등골을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의사가 말한 병명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외울 수도 없다. 망할 의사새끼들. 한국말로 할 수 있는 걸 꼭 영어로 한다.

대충 요약하자면 발병한 후 한 달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병이라고 한다. 전 세계 몇 없는 희귀한 병이라고 한다.

젠장. 차라리 암이 낫지. 요즘엔 암도 조심하면 나을 확률이 높다던데. 이런 병은 이름도 희귀해서 보험금도 안 나온단 말이야.


“치료 방법은 전무합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돈을 병원에 갖다 바치지 않아도 된다니.


“유감입니다.”


씨발. 좆나 유감이다. 난 유감 아닌데. 죽겠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등바등 살지 말고 버는 족족 돈 다 쓸걸.


“약은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다행히 고통이 심한 병은 아닙니다.”


좆나 다행이다. 아프지 않아서. 한 달 뒤에는 어차피 뒤지는 것 마찬가지인데.

이 병의 증상은 벚꽃을 닮았다고 한다. 겨우내 숨어있던 꽃봉오리가 틔듯이 활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다 꽃이 질 때처럼 시간이 되면 순식간에 죽는다고 한다.

남은 시간에 뭘 하지?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건 딱히 없다. 내 나이 32. 해볼 만큼 해보고, 겪을 만큼 겪었다. 아 결혼을 안 해봤네. 그건 좀 아쉽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래. 아쉽지 않은 삶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


태연의 이야기


이제는 조금 마음이 안정이 된다. 벚꽃을 닮은 병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요즘 삶이 재미없긴 했다. 어렸을 땐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목을 맸다. 대학에 입학한 후엔 학점 관리와 장학금 때문에 공부를 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 후엔 취업. 정말 책만 파고든 시간이었다. 덕분에 친구도 많이 없다. 연애도 못 해봤다. 이제 회사생활도 좀 적응되고,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것 좀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제 죽는단다. 벌인가? 좁은 시야를 버리고 좀 더 여유 있게 살았으면 걸리지 않았을까? 아니 주변의 남들을 좀 더 위했더라면 걸리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팍팍하게, 이기적으로 살았던 건 아닐까?

무심코 거울을 바라봤다. 분홍빛 혈색이 도는 얼굴. 정말 활력이 돋는다더니 딱 그 짝이다. 나이를 먹어 빠진 젖살 때문인지, 회사 일에 치여 퀭해진 것 때문인지 예전의 귀여운 맛이 없어져 주변 사람들에게 예전만큼의 반응을 얻진 못하고 있었는데. 활력 때문인지 얼굴도 좀 통통해지고 생긴 것도 좀 더 어려진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의 나처럼.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가? 애들한텐 뭐라고 하지? 회사는? 부모님은? 오빠는? 동생은?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고 걸어 나오는데 한 남자와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담담한 듯 말하는 그의 음성 속에 나는 다른 것을 느꼈다. 꼭 무너지는 하늘 아래 절규하는 사람 같은 그런 거. 다정한 표정으로 미안하다 말하는 남자의 눈엔 내 눈에만 보이는 눈물이 가득했다. 많이 아픈가? 불쌍하다. 이 사람도 젊어 보이는데. 아. 나도 다음 달이면 죽지? 그럼 내가 더 불쌍한 건가?

그가 떨어뜨린 종이를 집어 들었다. 처방전이랑 진단서다. 무심코 진단서 내용을 보는데 익숙한 병명이다. 진단일도 오늘. 그렇다. 그도 오늘, 나와 같은 병을 선고 받은 것이다. 같은 의사에게서.


“저기요.”


내가 부르자 그가 나를 돌아본다.


“이거 정말 인연이네요.”


나는 그에게 내 병명이 적인 진단서를 보여주었다. 의문이 가득한 그의 표정이 진단서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극적으로 변했다.


“그러게요. 정말 인연이네요.”

“우리 서로 소개할까요? 전 김태연이에요.”

“전 이세영이에요.”


세영의 이야기


나는 놀라웠다. 한편으론 반가웠다.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오늘. 그럼 이 사람이랑은 같은 날 죽는 건가?

나 보다는 어려보이는 얼굴.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전 같았으면 여성이 내게 말을 거는 상황이 무척이나 놀랍고, 신기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나와 같이 불쌍한 인생일 뿐.


“잠깐 차라도 마실래요?”

“좋아요.”


나는 그녀와 병원 근처의 찻집으로 갔다. 그녀는 무척이나 달아 보이는 커피를 시켰다.


“히힛. 체중관리 하느라 먹을 엄두도 못 냈는데. 이제 뭐. 필요 없으니까.”


귀엽게 웃고 있지만 눈이 슬프다. 붉고 작은 그녀의 입가에 눈물이 걸렸다.


“그럼 이것도 먹을래요?”


나는 치즈 케이크를 받아와 그녀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발을 동동 구르며 애써 밝게 웃는 그녀. 그 모습이 꼭 내 조카 같았다. 그 애들은 잘 있으려나? 보고 싶네.

포크로 케이크의 끝을 잘라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가 살짝 놀란다.


“먹어요. 나 팔 아파요.”


그러자 그녀가 씩 웃으며 케이크를 받아먹는다. 입을 벌리는 그녀의 모습이 꼭 새끼 새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 먹여주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어색하고 이상할 법 한데 그녀는 이내 적응이 되었는지 내가 주지 않으면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았다.


“몇 살이에요?”

“서른둘이요.”

“그럼 저랑 일곱 살 살 차이인가요?”

“뭐야. 스물다섯이나 되었어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자 그녀가 웃으며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맞죠? 스물다섯.”

“그러네요.”

“그럼 우리 말 편하게 할래요?”

“네?”


내 물음에 그녀가 애교가 가득한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말 편하게 하면 안 돼?”

“이미 편하게 하고 있는데요?”

“억울하면 오빠도 놔. 뭐 어차피 같은 날 가는 처지에.”

“콜. 알았어.”


원래라면 쉽게 말을 못 놓는 성격이었지만 이제 쉽게 놓아진다. 하긴 뭐 곧 죽을 건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물음에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넋두리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모르겠어. 일단 퇴사를 하고. 가족들에게도 말을 해야 하는데. 말 안 하면 안 되겠지? 가족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솔직히 말하고 싶지 않아. 한 달이라도 편하게 보고 싶어. 이런 생각하면 이기적인 걸까?”

“아니. 그렇지 않아. 지금 상황에선 넌 너만을 생각해. 그게 맞는 것 같다.”

“오빠는?”

“나는 딱히.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누나는 외국에 있으니까. 당장 내 주변엔 나만 있어.”

“진짜 나쁜 생각인데 부럽다. 난 가족들에게 실망하게 만드는 소리 못하겠어.”

“실망 아냐. 힘든 건 너일 건데. 그런 생각하지 마.”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까만 나뭇가지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붉은 꽃봉오리. 내가 너희를 닮아가는 구나.


“나 한 달만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네. 앞만 보고 사느라 못해본 거 너무 많은데. 한 달 동안 다 할 수 있을까?”


태연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물론이지.”

“오빠는 어때?”

“나는 딱히. 나도 죽는다는 소리 듣고 나서 그 생각부터 나더라. 나는 뭐했나. 뭘 하고 싶나. 그런데 딱히 하고 싶은 건 없더라고. 생각보다 내 삶이 단조로웠던 건 아닌가봐.”

“연애도?”

“응. 해봤지. 나이가 몇 개인데.”

“부럽다. 난 모태 솔로인데.”

“네 얼굴에? 주변에 남자가 들끓었을 것 같은데.”

“난 요즘 보기 힘들다는 여중/여고를 나왔거든. 대학교 때는 집안 형편 때문에 장학금 때문에 학점 관리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정신없었고. 정말 졸업하면서 빚 안 진 것이 내 위대한 업적 중 하나가 되었지.”

“고생 많았겠네.”


내 말에 담겨 있는 위로를 그녀도 느꼈는지 불퉁했던 표정이 조금 편안하게 변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입을 비쭉 내밀며 중얼거리던 그녀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이렇게 하면 어때?”

“뭘?”

“오빠랑 나랑 같은 날에 발병했잖아. 그럼 같은 날에 죽겠지?”

“그렇지. 스위스 시계만큼이나 정확한 병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우리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적어서 같이 다 해보는 거야.”

“같이?”

“같이.”

“나쁘지 않네. 정말 특별한 동반자가 되겠어.”

“그런 의미에서 오빠 나랑 사귀자.”


그녀의 말에 놀란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뭐?”

“뭘 놀래?”


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연애를 해보고 싶은 거야? 내가 연애를 몇 번 해본 입장으로서 연애는 단순히 남녀 간의 만남이 아냐. 조금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이것만큼 특별한 사이가 어디 있어? 전 세게 손꼽히는 발병률을 가진 병. 그것도 같은 병원, 같은 날에 이렇게 만날 확률 얼마나 될 것 같아? 오빠 이 세상에 우리보다 특별한 커플이 또 있을 것 같아? 첫눈에 반하는 사람들보다, 첫사랑에 성공해 결혼을 하는 사람보다 우린 특별해.”

“그건 또 맞는 말이네.”


나의 수긍에 그녀가 아이처럼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오늘부터 1일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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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동방존자
    작성일
    13.09.17 18:42
    No. 1

    시작합니다. ^^
    내용은 애틋한데 글은 감칠맛 나네요.. 근데 이런 병은 실제 있는 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09.17 22:29
    No. 2

    실제로는 없습니다. 소설적인 장치로 봐주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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