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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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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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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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D-19

DUMMY

[세영의 이야기]


“역시 여행은 평일이지.”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은 언제 해도 신난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있다 보면 마치 내 몸에 밧줄에 묶여있는 것처럼 답답한데 말이다.

태연이도 신이 나는지 살짝 창을 열고 팔을 기댄 채 밖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흥얼거리는 그녀의 노랫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그녀를 닮은 고운 음색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저 고운 음색으로 날 사랑한다 말하면 얼마나 듣기 좋을까?

문득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날 신뢰하는 거 같긴 한데. 날 사랑할까? 그녀와의 키스에선 무언가 느껴졌는데.

우습다. 무얼 바라는 건가? 이대로도 괜찮지 아니한가? 내 욕심인가? 바라는 것이 많은가? 바라는 것이 많으면 더 큰 벌을 받게 될까?


“오빠는 강릉 가봤어?”

“응. 학교 동기가 거기 살았거든. 지금은 서울에 있지만. 방학 때 그 친구 덕에 몇 번 가봤지.”

“기대 된다. 그런데 터널이 엄청 길다.”

“응. 덕분에 가기도 편해졌지. 대관령 쪽은 정말 편해졌어. 나 스무 살 때만 해도 거기 구도로 정말 꼬불꼬불했거든.”

“지금은?”

“그냥 슝 지나가면 돼.”

“그럼 우리 대관령 쪽으로 해서 가보자. 궁금해.”


태연이의 말에 구도로 쪽으로 빠져 대관령을 넘기 시작했다.


“여기 겨울엔 위험하겠다.”

“체인 없으면 못 올라가. 그 동기는 겨울에 고속버스타고 집에 가다가 결국 대관령 못 넘고 내려서 집까지 걸어갔다더라. 그 때만해도 여기 겨울엔 눈이 과장 좀 보태서 머리까지 쌓이고 그랬다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터널 막 생기고 그러면서 그게 줄었다데. 어른들은 산신이 노하셨다고 그런다더라.”

“강원도 겨울은 유명하지 않나?”

“아무튼 구불구불해서 이 동네 자동차학원은 도로주행을 이쪽으로 온대.”

“왜?”

“핸들링 연습에 도움이 된다나 뭐라나. 대관령 하루, 정동진 하루, 소금강 하루 이렇게 간다더라.”

“여긴 도로주행 연습도 여행이네.”

“그러게. 서울이랑은 다르게 그런 면에서도 운치가 있어.”


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큰 건물이 나타났다.


“와. 여긴 저런 건물도 있네. 되게 높다.”

“저거 강릉 시청인가 그래. 관공서야.”

“정말?”

“아마 이 근방에서 손에 꼽히는 삐까뻔쩍한 건물일 거야. 저 정도면 욕도 제법 먹었을 것 같아.”

“오빠. 나 배고프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일단 동해안 입성이니까 해산물은 먹어줘야 하지 않나?”

“회 먹으러 갈까?”


내 물음에 태연이는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나 내륙에서 자라서 그런지 날생선은 잘 못 먹는데.”

“오. 나랑 닮았네. 나도 그런데. 비린 거 정말 못 먹어. 멸치 육수 낸 것도 가끔 비려서 못 먹을 때도 있어.”

“그래? 어쩌다가?”

“우리 엄마가 내륙사람이었거든. 원래 가족입맛 따라 가잖아.”

“오빠 되게 좋아한다. 입맛 비슷한 게 그렇게 좋아?”

“그럼. 공통점이니까.”


그렇다. 연인 간엔 사소한 공통점도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무언가 인연 같으니까.


[태연의 이야기]


“그럼 해물찜이라도 먹으러 갈래?”

“그러자.”


오빠는 가까운 곳의 해물찜 가게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신기하게 바닷가의 가게가 아니라 무슨 아파트 근처로 택지 같은 곳이었다.


“원래 이런 데가 무난하지.”


작은 사이즈의 해물찜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역시 한국인은 매콤한 음식이야.”

“맞아. 밥에 매운 음식이지.”


대화를 나누다보니 음식이 나왔다. 제법 푸짐했고 색도 먹음직스러웠다.


“우리 아기 아~ 해봐.”


오빠가 익숙한 솜씨로 소라에서 살을 발라냈다. 젓가락으로 살 부분을 쿡 찌르더니 껍데기를 빙빙 돌린다. 껍데기의 나사모양을 따라 살이 줄줄 돌아가며 빠져나온다.


“신기하다. 되게 신기하게 발라내네.”

“그래야 우리 아기 먹여주지.”

오빠가 소라도 빼주고, 게살도 발라주고, 새우의 껍데기도 벗겨주었다. 나는 입만 벌리면 되었다.


“오빠가 해주니까 더 맛있지?”

“응.”


이런 작은 부분까지 챙겨주는 오빠의 모습이 좋다. 내가 불편한 거, 신경 쓰이는 부분 등을 알아서 먼저 해준다.

이런 걸 여자들이 센스라고 말하는 건가? 가끔은 익숙하게 챙겨주는 모습에서 오빠의 전 여자들과의 관계가 떠오르곤 한다.

질투라고 해야 하나?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그런 사람들이 괜히 싫어지는 걸 보면 내 마음이 오빠에게 많이 쏠려 있는 것 같다.


“아기 입에도 묻었네.”


휴지를 뽑아 입을 닦아주는 오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어서 그런지 가끔 이런 상황에선 오빠 말마따나 내가 아기가 되는 기분이다. 물론 나쁘지 않다.

이래서 여자들이 돈 없는 남자랑 여자 때리는 남자보다 모태솔로인 남자를 더 싫어하는 것일지도. 그 때 그 통계 기사를 보고 여자인 나도 많이 놀랐는데. 남자들도 그랬겠지?

밥을 먹고 나온 우린 시내로 잠시 나가봤다.


“지방 시내는 다 비슷비슷하다.”


규모의 차이일 뿐. 대로변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 그 뒤로 낮고 오래된 건물. 조금 걸으면 끝날 정도의 길이.


“그래도 많이 바뀐 거야. 홈플러스도 생기고. 그 덕에 주변에 있던 극장들이 날벼락을 맞았지. 저 뒤로 시장도 있는데 거기도 그러지 않을까?”

“극장?”

“응. 영등포에도 그런 극장 몇 개 있었는데 없어졌거든. 오래되고 조그만 극장. 신기했던 게 여기는 지정좌석제가 아니었어. 작은 극장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표사고 아무 곳이나 가서 앉으면 되는 거지. 시내 나갈 때도 신영극장 앞이요 하면 되었다던데 이제 그 극장이 없어졌으니까. 무언가 지표가 되던 것이 사라진다는 거 조금 서글픈 일이야. 세월의 흐름이겠지만.”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겠지. 마치 사람의 인생처럼.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가족들도 이 정도니. 나도 한 30년 지나면 가족들이 내 이름을 점점 잊어갈까?

이름 하니 갑자기 생각이 난다.

가수 김경호의 노래 중에 이런 가사를 가진 노래가 있다. 마지막으로 부를 이름이 누구인가? 하는. 내가 죽을 때 부를 이름이 너였으면 하는 거였나, 네가 될 것이면 하는 것이었나. 아무튼 그런 내용이다.

그 노래를 들을 때 감성에 빠져 눈시울을 붉힌 경험이 있다. 내가 죽을 때 생각나는 한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닌 지난 추억속의 누군가가 될 건인가?

고개를 돌려 오빠를 바라봤다. 내가 마지막 부를 이름은 이 사람일까? 이 사람이 마지막 부를 이름은 나일까?


“그럼 이 근방에 극장은 이거 하나야?”

“아마 그럴 걸? 그래서 웃지 못 할 일이 생긴다더라.”

“무슨 일?”

“현재 사귀는 사람과 극장에 가서 전에 사귀던 사람과 강제로 만나는 거. 구애인 강제정모라고.”

“뭐야 그게.”

“웃기지? 막상 그 상황 되면 안 웃긴데. 좁은 바닥이라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던데. 아무튼 뭐 그렇다더라고.”


불편한 진실? 모르는 게 약? 판도라의 상자?

내가 오빠를 볼 때마다 전에 만난 사람이 누군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조금의 일도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까?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마치 뒤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오르페우스 같이.

잠시간 시내를 둘러본 우린 정동진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보니 커다란 배 같은 것이 땅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와. 신기하다. 저거 뭐야?”

“선크루즈 호텔. 꼭 배 같이 생겼지? 오늘은 저기서 자려고.”

“정말 신기하다. 느낌 있네. 바닷가에 있는 배 모양 숙소라니.”

“나도 오가면서 보기만 했지 들어가 본 적은 없어. 뭐 안은 비슷하겠지.”


호텔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좁았다. 낡은 모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실망했어?”


내 표정이 살짝 어두운 걸 오빠가 느꼈나보다.


“조금?”

“기대랑 보기가 좀 다르지? 뭔가 자연이 펼쳐져 있을 것 같고, 낭만이 있을 것 같고. 뭐 관광지가 다 그렇지 뭐.”

“그러게. 너무 관광지답다.”


차를 주차하고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위층에 위치한 카페로 갔다. 카페는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전망이 썩 괜찮았다.

커피를 시키고 오빠와 대화를 나누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찾는데 가방이 없어졌다.


“어? 내 가방이 어디 갔지?”


내 말에 주변을 둘러보던 오빠가 크게 웃었다.


“우리 아기 가방 저기 있네.”


내 가방은 조금 떨어진 곳의 창가에 있었다.


“어? 저게 왜 저기 가 있지? 누가 가져다 놨나?”

“아냐. 여기 바닥이 통으로 돌아가거든. 그래서 창가에 물건 두면 자리에서 점점 멀어져.”

“어쩐지 풍경이 좀 변한다고 했어!”


벌떡 일어나 달려가 가방을 들었다. 다행히 평일이라 카페 안에 사람이 거의 없어 다행이었다. 누가 보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 창피해.”


자리에 돌아와 앉으려는데 오빠가 내 팔목을 잡아 당겨 자신의 옆에 앉게 했다.


“왜?”

“나란히 앉아보자고.”


그러더니 나 어깨를 안아준다.

그러고 보니 연인끼리 나란히 카페에 앉아 꽁냥거리는 것도 내 로망 중 하나였는데 그동안 못해봤구나.


“치.”


살짝 오빠를 흘겨보지만 내심 기분이 좋다. 알아서 날 리드해주는 사람.

몸을 틀어 품에 기대봤다. 푹신한 소파와 푸른 배경 때문인지 오늘따라 품이 더 포근하다.


“좋다. 풍경도. 오빠도.”


고개를 들어 오빠를 바라보니 바다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새삼 들어오는 그의 옆얼굴. 선이 제법 예뻤구나. 과하지 않지만 바로 선 코와 큰 눈. 그리고 입술.

손을 뻗어 오빠의 얼굴을 내게로 돌렸다.

입술.

양 손을 모두 뻗어 오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살짝 잡아당긴다. 오빠의 눈이 살짝 감겼다. 나도 눈을 살짝 감는다.

여행이 주는 마력 때문일까? 그래. 가끔 먼저 다가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입술. 그리고 온기.

낮은 음악이 귓가를 흐른다. 그의 체온이 내 입술 위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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