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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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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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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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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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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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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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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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지막 날.

DUMMY

[세영의 이야기]


“고고씽!”


물건을 바리바리 싼 우리는 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크지 않은 차의 뒷좌석이 꽉 차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 아기 여보 표정 많이 풀렸네.”

“응. 눈 부은 것도 우리 남편이 찬물로 마사지 해줘서 풀렸어.”

“제주도에서 산 물건들 식구들이 좋아해야 할 텐데.”

“걱정 마. 가족들 취향 생각해서 산 것이니까.”

“그런데 저 감귤 초콜릿은 먹어보면 영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꼭 사게 되는 것 같아.”

“제주도의 향기가 물씬 나잖아.”


운전을 하면서 달리는데 반대쪽 차로는 꽤 막혀 있었다. 태연이는 그것을 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좋아한다.


“난 저런 장면만 보면 이상하게 신나더라.”

“뭐? 차 막히는 거?”

“응. 반대쪽은 막히는데 우리만 뚫리는 거.”

“나도 그래.”


개구쟁이 같은 말을 하는 그녀와는 다르게 상행선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마치 다시는 탈 수 없는 차선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양방향 차로지만 나는 일방통행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올 일이 내겐 없으니까. 어제와 달리 기분이 나아진 그녀를 다시 속상하게 할 수 없기에 애써 웃으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지만.

무리 없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우린 전주에 도착했다.


“그래도 한 번 와봤다고 길 잘 찾네.”

“나 원래 길 잘 못 찾는데 우리 아기 여보네 집이라고 하니 찾아가지는 것 같아.”


나의 이야기에 태연이가 대견하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이긍!”


초인종을 누르자 아버님이 나와 우리를 반기신다.


“어서 와라. 어서 오게.”

“아버님. 이것 좀 받아주세요.”

“어이쿠. 뭐가 이렇게 많아.”


내 두 손이 모자라 태연이의 작은 손까지 빌린 물건들을 아버님이 놀란 얼굴로 받으신다.

태연이 웃으며 말한다.


“제주도에서 사온 거랑 우리 결혼사진이랑 사진들이야.”

“일단 들어가자. 배고프지? 들어가서 식사하자. 엄마가 백숙해놨어.”

“말로만 듣던 사위에게 주는 씨암탉인가 보지? 덕분에 나도 포식하겠네.”


식탁으로 가니 커다란 닭 두 마리가 하얀 속살을 내보이며 누워 있었다.

어머님이 닭죽을 퍼 오시며 말씀하신다.


“힘들었지? 다녀오느라.”

“아니요. 쉬다 온 건데 힘들 거 없었어요. 즐겁게 보내다 왔습니다.”

“많이 들어. 음식은 많아.”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지난날의 사진들과 결혼사진을 펼쳐들었다. 입을 맞추는 모습이나 비슷한 닭살스러운 사진 등이 있어 어른들과 보기 조금 민망했는데, 오히려 아버님과 어머님은 좋아하신다. 그분들의 얼굴에 핀 환한 미소를 보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그러나 사진을 보며 점점 굳어지는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점차 마음이 무거워져간다. 그런 모습에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에이. 엄마, 아빠 왜 울고 그래. 여기 봐봐.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 더 안심이 되지? 딸 얼굴 봐봐. 이렇게 환하잖아. 표정 봐봐. 이렇게 행복해하잖아.”

“그래. 그래. 그래 보인다. 정말 다행이다.”

“그러니까 마음 놓아. 나 누구보다 행복했어. 딸 복 받은 사람이야.”


어머님은 끝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녀를 안고 펑펑 우신다. 그 슬픔에 전염되어 태연이도 마음이 상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어머니를 안고 오히려 달래고 있었다.


“자네는 지금도 태연이 걱정을 하는 군.”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말씀에 난 놀라 반문하고 말았다.


“네?”

“계속해서 눈을 못 떼고 있으니까. 걱정스러운 표정도 그렇고.”

“제 사람이니까요.”

“정말 다행이야. 자네 같은 남자를 만나서. 정말 고맙네.”

“아니에요. 당연한 일인 걸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내 손을 잡고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아버님의 침중한 얼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님도, 어머님도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지. 그러고 보니 지난 모습보다 더 수척해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도 사진 한 번 찍죠.”


사진기를 흔드는 내 모습에 울던 어머님도, 눈시울을 붉히던 아버님도 애써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디카랑 달라서 한 번 찍으면 끝이에요. 그래서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죠.”


아버님이 내 말을 곱씹으신다.


“그렇지.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이지.”


태연이의 어깨를 토닥이시는 아버님.


“자, 다 같이 찍자꾸나.”


삼각대에 카메라를 연결해 많은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구성원과 다양한 자세로.


“다 잘 나왔네.”


마지막 모든 것을 태우는 촛불처럼 사진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슬프도록 환했다. 아마 그들도 생각했을 것이다. 후에 되새길 이 순간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


“오늘 하루도 다 지났네.”


창가에 비추는 달빛이 우리를 어루만진다.


“진짜.”


우린 한 이불 속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자라며 아버님이 방을 하나 비워 주신 덕분이다.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니 태연이는 재밌을 것 같다며 따라한다.


“그동안 어땠어?”

“좋았어.”

“좋기만?”

“행복했지.”

“나도.”


태연이가 머리에 베고 있던 베개를 치우고 팔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이리와. 한 번 안아보자.”


그녀가 품에 안겨온다. 내게 깊숙이 머리를 묻은 그녀가 팔을 들어 나를 쓰다듬었다.


“좋아. 내 남자의 살 냄새. 포근해.”


희고 고운 손가락이 걸음을 걷듯 내 가슴 위를 움직인다.


“한 달 전의 나는 불행한 사람이었을까?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20대의 꽃다운 처자가 천형을 어깨에 지게 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왜 자기가 내 옆에 왔을까? 나는 불운한 사람일까? 행운아일까?”


고개를 살짝 들어 날 바라보는 그녀. 어둠속에 별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 크고 까만 눈망울.

쪽.

이마에 한 번.

쪽.

코에 한 번.

쪽.

입에 한 번.

쪽.

목에 한 번.

쪽.

그렇게 시작된 봄의 열기. 이마에 맺힌 구슬 같은 땀방울. 더운 숨결.

강을 앞에 둔 두 여행객의 영혼을 다한 몸짓.

아비의 몸에 올라 낮잠을 자는 아기처럼, 내 몸을 침대 삼아 올라가 내 가슴에 얼굴을 대고 있던 그녀가 턱으로 날 간질이며 말한다.


“자기야. 그거 알아? 오늘 일요일이다?”

“그렇더라. 그런데 그게 왜?”

“보통 사람들은 주의 마지막을 일요일로 느끼잖아. 일과의 시작이 월요일이니까.”

“그렇지. 그러니 ‘월화수목금토일’이라고 하지.”

“그런데 의미상으로 보나 달력 디자인으로 보나 ‘일월화수목금토’잖아.”

“응.”

“마지막이라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시작이잖아. 그런 의미에서 난 우리의 마지막 날이 일요일이라 뭔가 의미 있는 것 같아.”


마지막이지만 시작.

우리의 삶은 마지막이지만 또 다른 우리의 내일은 오늘부터 시작.


“나 이제 안 무섭다? 이제 눈 감게 되면 정말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잖아. 혹시나 눈을 뜰 수 있을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영적인 세계가 시작될지, 아니면 그대로 끝일지. 두려움은 미지에서 오는 거라 더라고. 알 수 없으니까. 대처할 수 없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이제 오빠가 옆에 있어서 나는 안 무서워.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는 내 옆에 있을 거니까.”


품 안에 안겨있는 그녀의 몸을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그녀도 가는 두 팔음 움직여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를 움켜쥔다.

젖은 그녀의 몸이 내 피부 위로 미끄러진다. 아직 식지 않은 그녀의 몸이 뜨겁다.


“난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어디에서도, 언제나. 영원히.”

“나도. 항상 오빠 옆에 있을 거야. 지금처럼 딱 붙어 있어야지.”


날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녀. 창가로 스미는 달빛에 반짝이는 그녀의 하얀 얼굴. 이슬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 송글송글 땀이 돋은 코와 인중. 젖어 누운 볼의 솜털.

쪽.

이마에 한 번.

쪽.

코에 한 번.

쪽.

입술에 한 번.

쪽.

볼에 한 번.

쪽.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사랑. 그 형연할 수 없는 이야기.


“사랑해.”

“사랑해.”

“고마워.”

“고마워.”


문득 목에 걸린 목걸이가 손에 걸렸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제법 손때가 묻어 짙게 반질거리는 나무의 결이 어느새 익숙하다.


“그러고 보니 이 목걸이 문양이 좀 바뀐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닳았나?”

“쉽게 닳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다.”


미묘하게 바뀐 문양에 눈이 팔려있는데 태연이가 불편한지 몸을 뒤척인다. 익숙하게 몸을 움직여 그녀를 더 깊이 안았다. 그러자 이제 편해졌다는 듯 그녀의 몸이 내게 착 달라붙어 감겨온다. 그리고는 얕은, 그러나 긴 숨을 내쉬며 그녀가 내 품에 파고든다. 피부에 닿는 날숨의 온기가 아늑하다.

강아지처럼 내 가슴을 깨무는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춰본다. 입술에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좋다.

숨을 쉬는 것처럼 익숙해진 그녀의 채취, 그녀의 행동, 그녀의 체온. 눈을 감아도, 몸이 멀어져도, 보고 만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끌어 올려 입을 맞댄다. 옹알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상태로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격정의 피로가 몸을 적신다. 기분 좋은 수면욕이 눈을 감으라고 보챈다.

하나가 된 상태로 잠을 청한다.


“여보. 자? 태연아?”


불러도 대답 없는 그녀. 살짝 그녀를 흔들어봤지만 미동도 없다. 걱정스런 마음에 그녀의 코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손끝에 닿는 따뜻하고 간질거리는 느낌. 어느 새 그녀는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살짝 올라간 입매가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내 정신도 어느 새 몽롱해진다. 눈꺼풀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잠인 걸까? 아니면?


내일의 해가 뜰까?


그것은 지난 한 달간 내가 느꼈던 무서운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관계없다. 그녀와 함께 하기에.

눈이 감겨 온다. 내 품에 느껴지는 그녀의 온기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눈을 감고 그녀를 다시금 끌어안는다.


지금 잠을 청하는 것은 내겐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다. 이것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작가의말

이 글을 지난 저의 사랑에게 바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Personacon 동방존자
    작성일
    13.09.23 19:55
    No. 1

    아, 아름답네요.. 결국 사랑으로 죽음의 두려움도 극복해 내는군요.
    안타깝지만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갈등의 시간조차 아까운 유한성 때문에 더욱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겠죠.
    지금은 말고 멀고 먼 훗날 집사람이랑 세영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날 의지하며 죽음을 맞을 수 있으면 좋갰네요.
    즐감했습니다.
    언제나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09.23 20:23
    No. 2

    쭉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할 땐 반응이 없어서 눈물이 났는데, 덕분에 기운이 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강훈(姜勳)
    작성일
    13.10.23 17:15
    No. 3

    잘 읽고 갑니다.
    아하....추천 한개는 제가 계속 누르고 온 겁니다.. 하하하하...
    대가의 탄생을 기대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24 01:32
    No. 4

    그러셨군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그냥 눌러봤다가 코멘에 감동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할랑살랑
    작성일
    13.10.24 00:33
    No. 5

    잘 읽었습니다
    달필이시네요 두사람마음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Ps.. 존자님 이런데 계셨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24 01:32
    No. 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덧글에 무척 힘이 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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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해가 뜰까요?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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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D-2 13.09.17 380 10 13쪽
28 D-3 13.09.16 336 6 9쪽
27 D-4 +2 13.09.16 313 7 12쪽
26 D-5 13.09.15 359 7 9쪽
25 D-6 13.09.14 212 5 10쪽
24 D-7 13.09.13 463 10 9쪽
23 D-8 +2 13.09.12 299 5 10쪽
22 D-9 13.09.11 270 7 8쪽
21 D-10 13.09.11 990 8 8쪽
20 D-11 13.09.10 210 5 8쪽
19 D-12 +2 13.09.10 321 6 7쪽
18 D-13 13.09.09 471 8 9쪽
17 D-14 13.09.08 341 9 10쪽
16 D-15 13.09.07 346 7 11쪽
15 D-16 +2 13.09.06 392 11 9쪽
14 D-17 +1 13.09.06 356 7 8쪽
13 D-18 +2 13.09.06 324 12 8쪽
12 D-19 +1 13.09.05 300 10 11쪽
11 D-20 13.09.05 368 9 7쪽
10 D-21 +2 13.09.04 657 7 5쪽
9 D-22 13.09.04 996 9 10쪽
8 D-23 13.09.03 486 8 9쪽
7 D-24 13.09.03 2,303 34 7쪽
6 D-25 13.09.02 488 10 14쪽
5 D-26 +2 13.09.02 466 7 15쪽
4 D-27 +2 13.09.01 398 6 11쪽
3 D-28 +2 13.09.01 481 11 9쪽
2 D-29 +4 13.09.01 475 12 14쪽
1 D-30 +2 13.08.31 661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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