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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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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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7
글자수 :
128,429

작성
13.09.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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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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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8쪽

D-9

DUMMY

[세영의 이야기]


“졸려.”


너무 일찍 나왔나? 태연이는 아직도 눈을 부비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녀를 애써 다독이며 가속 페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도로는 한산했다. 간혹 지나가는 차가 한 대씩 있을 뿐. 주말이라 빠져나가는 차가 있을 법도 한데 유독 차들이 안 보인다.

차창 밖으론 푸른 기운이 물들고 있다. 붉은 태양이 올라오는데 푸른 기운이라니. 그래서 새벽인가? 일출은 순식간이다. 곧 완전히 밝아질 것이다.

성산대교로 빠진 뒤 노들길을 따라 당산으로 향했다. 벚꽃 축제 기간엔 윤중로 근처를 통제하기 때문에 당산 쪽에 차를 주차해놓고 도보로 여의도로 갈 예정이다.


“아기야. 일어나자.”


살짝 코까지 골 정도로 잠에 빠진 그녀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몇 번을 더 흔들고 나서야 눈도 못 뜨고 몸을 일으킨다.


“가다가 컵라면 하나 먹고 갈까?”

“크래미도 하나 사줘.”


그녀를 부축하다시피 끌어안고 역 쪽으로 발을 옮겼다. 굴다리를 통해 한강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다. 마침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기도 했고.


“아기 뭐 먹을래?”

“나는 새우탕. 오빠는?”

“김치사발면? 이걸로 해야겠다.”


라면에 물을 붓고 크래미의 포장을 찢었다. 그러자 태연이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린다. 그녀의 입에 하나를 쏙 넣어주었다.


“이거 맛있어. 게맛살보다 진한 맛이야.”

“그럼 여기 진짜 게가 들어가?”

“게즙 정도는 들어갈걸?”

“게즙이라니. 으하하하.”


내가 배를 잡고 웃으니 그녀가 눈을 흘긴다.


“진짜 맛은 있네.”

“자기 입맛에도 맞지? 생각보다 맛있다니까.”


오물거리다 보니 벌써 동이 났다. 마지막 하나 남은 걸 태연이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매처럼 바라본다.

장난기가 돈 나는 크래미를 얼른 집어 내 입에 쏙 넣었다.


“내 크래미!”


장난감을 뺏긴 아이마냥 울상을 짓는 그녀가 너무 귀여워 혀를 쏙 내밀어 놀려주었다.


“그러면 못 먹을 줄 알고!”


갑자기 입을 맞추는 그녀. 그러더니 키스하듯 내 크래미를 쏙 빼간다.

갑작스런 그녀의 대담한 행동에 놀라 말을 잇기 힘들었다.


“그래도 먹던 건데…….”


경악에 가득 찬 내 음성에도 그녀는 오히려 이름처럼 태연하다.


“키스도 하는데 뭐가 더럽다고.”


씩 웃으며 새우탕 국물을 들이키는 그녀. 강하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뚱뚱한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사들고 나왔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굴다리 근처는 한산했다.


“여기도 많이 바뀌었구나.”


생명이 없는 거리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는 아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지. 하나의 모습으로 사진처럼 기억되겠지?


“막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이랑 낚시가게, 구멍가게 같은 것만 있었는데, 이제 술집이나 이런 것밖에 안 남았네.”

“그게 돈이 더 되니까. 이제 이쪽도 연인들 많이 오지 않아?”

“응. 여름이면 장난 아니지. 겨울엔 안 그렇지만.”


굴다리를 통과하려는데 벽에 누군가 낙서한 자국이 보였다.


- 선영아. 씨발 사랑한다. -


“아기야. 저거 봐봐.”

“뭐야. 저게. 사랑 고백인가?”

“그런데 되게 임팩트 있지 않아? 욕이긴 한데 정말 사랑하는 것 같이 느껴져.”

“그러게. 저렇게 짧고 굵은 고백은 처음보네.”


사랑이란 단어를 표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많은 미사여구를 사랑한다. 문학이란 것이 생긴 이래 사랑에 대한 주제를 많은 사람들이 다뤄왔다. 하지만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랑은 아직 정의되지 못했다. 그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만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저 ‘씨발’이란 단어. 그 저속한 단어하나가 생각보다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표현했다. 놀랍다.

굴다리를 빠져나와 둔치의 산책로를 따라 여의도 방향으로 걸어갔다. 멀리 국회의사당 주변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벚나무 군락이 보였다.


“저거 봐. 완전 흐드러지게 폈다.”

“그러게. 그림 같다.”


멀리서만 봐도 기대된다. 가까이 가면 무엇이 있을까?

그런데 문득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비닐봉지 같은 것이 보였다.


“누가 쓰레기 버렸나?”

“그러게. 그런데 바람도 안 부는데 봉투가 막 움직이는데?”

“저거 거북이 아냐?”

“에이. 무슨 거북이가 저만해.”

“아냐.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손바닥 반만 한 붉은귀거북이 생각보다 크게 자란다고.”

“설마.”


가까이 다가가보니 진짜 거북이였다.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모습. 집에서 기를 때 보이는 특유의 밝은 청색이 아니라 무척이나 시커먼 그런 느낌.

태연이 놀란 얼굴로 거북이를 손가락질한다.


“그 작은 게 진짜 이렇게 커진다고?”

“그렇다니까. 성격도 사나워서 토종 생물도 막 잡아먹고 그런데.”

“하긴 붕어랑 같이 기르면 붕어 살점 뜯어 먹는다는 말은 본 것 같아.”

“누가 방생했나보네. 방생이 그 의미가 아닌데.”


귀엽다고. 혹은 호기심으로. 쉽게 애완동물 가게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사왔을 저 거북이.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버려진 거북이. 어찌 보면 너무나 불쌍한 거북이.

버림받는 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인간은 너무 잔인하다.

태연이도 거북이가 안쓰러운지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야. 여기 있다가 자전거 같은 것에 치이면 어떻게?”

“그럼 강물 쪽으로 밀어줄까?”

“손으로는 잡지 마. 물리면 어떻게? 야생에 있어서 물리면 큰일 날 거야.”

“방법이 있지.”


나는 거북이에게 다가가 발로 살살 밀었다. 다른 방향으로 간다 싶으면 툭툭 쳐서 한 방향으로 몰았다. 내가 건드려서인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기어간다.


“와. 빠르네.”

“이미지보단 제법인 것 같아.”


거북이를 한쪽으로 몰아주고 나서야 우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이 길 따라 가면 되는 거야?”

“응. 가다보면 큰 주차장 나와. 거기서 올라가면 돼.”

“거기가 전에 무한도전에 나온데 아냐?”

“맞아. 스피드 특집이었나? 막 홍카 박살내고 그랬던 편.”


제법 긴 거리를 걷고 나서야 우린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리로 올라가면 신호등 나와.”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각도 때문에 가려졌던 윤중로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와!”


태연이의 감탄사가 들려온다. 말을 잇지 못하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파란 하늘을 지붕 삼는다. 바닥엔 분홍색 카펫이 빽빽이 깔려있었다.

바람이 분다.

분홍 꽃비가 내린다. 우리의 온 몸을 적실 것 같이 꽃비가 내린다.


“자기야.”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엔 한 편의 동화가 담겨있었다. 꽃다발을 받은 소녀처럼 볼이 빨갛다.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을 살짝 당긴다.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길게 뻗은 도로처럼 긴 입맞춤이 이어진다.


“너무 예쁘다.”


그녀와 손을 마주 잡고 윤중로를 따라 걸었다. 분홍빛 세계로 발을 내딛는 기분. 엘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발을 내딛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분홍빛 터널을 걷는 우리. 손을 마주잡은 우리.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걷는 우리. 분홍빛 비단길을 걷는 우리. 꽃비를 맞는 우리.

이 터널의 끝이 저 멀리 보인다. 그곳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터널의 끝을 기다리는 우리 둘. 그것에 설레는 그녀와 나.

고래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녀도 나를 돌아본다. 씩 마주 웃는다. 손에 든 바나나 우유에 꽂힌 빨대를 빤다.

얼마 남지 않은 꽃길이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다. 손에든 우유가 여유롭다. 마주잡은 두 손이 굳건하다.

이 길은 행복과 낭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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