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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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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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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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D-15

DUMMY

[태연의 이야기]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 시작이다.

반환점을 돌아선 첫날의 아침. 나쁘지 않다. 너무 무서웠는데.

날 안고 자고 있는 오빠의 모습. 어제 계속된 우리의 사랑 때문인지 조금은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들어오는 햇살이 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봄비가 어느새 그쳤나보다.

품에서 살짝 빠져나와 침대 아래 떨어져있는 옷가지를 주워 입었다. 타는 듯한 갈증에 냉장고로 가 잔에 따르지도 않고 통 그대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수분이 몸에 채워지는 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재료가 제법 있었다. 모처럼 내가 요리를 해봐야겠다. 기운이 나려면 뭘 해 먹여야하지? 남자한테 계란이 좋다던데. 계란말이, 계란탕. 좋아. 너희 둘로 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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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처음 입는 거 아냐?”

“내가 그랬나?”

“응. 우리 만나고 나서는 계속.”

“사실 치마 불편해서. 보이나 신경도 쓰이고.”

“길게 입으면 되잖아.”

“애매하게 길면 안 예쁘단 말이야. 가뜩이나 키가 작아서 어중간한 거나 긴거 입으면 완전 안 어울려. 짧게 입어야해.”

“그래서 그러지. 나만 보고 싶은데.”

“으이그. 그러셨어요? 신경 쓰여요?”

“쳇.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오빠 친구들한테 예쁘게 보이면 좋지 뭘 그래.”

“뭐하려고 예쁘게 보이려 해. 내 눈에만 예쁘면 되지. 난 우리 아기 거적때기만 둘둘 감싸고 있어도 예쁘단 말이야.”

“그게 더 야하겠다. 다 벗고 거적만 두르고 있으면.”

“뭐야 그게. 그런 소리가 아닌 거 알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오늘은. 바지입기엔 좀 그렇단 말이야. 불편하고, 아프고.”


살짝 토라진 듯 불퉁거리는 오빠를 애써 날래본다. 내 상황을 이해하는지 이내 표정이 좀 풀어진다.

이 사람 은근히 보수적인 것인가? 아니면 남자들의 공통된 심리인 건가?

보수적인 것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지난 보름 우린 서로를 온전히 끌어안고 매일 잡을 청했다. 그럴 때 마다 내게 사랑이 가득한 입맞춤을 해주곤 했지만 육체적으로 나를 넘보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아무렇지 않아한 것은 아니다. 잘 모르는 나이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약간은 고지식한 모습. 그렇기에 내가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자. 진짜 남자니까.


“오늘 만나는 친구들은 몇 명이야?”

“두 명. 나 중학교 때부터 알 던 애들. 하나는 전에 말한 매일 늦는다는 재훈이고, 다른 애는 오늘 만나보면 알아. 이름은 종경이야. 둘 다 원래 주말에 더 바쁜 애들인데 우연히 둘 다 오늘 시간이 났어. 원래 다른 약속들이 있었는데 내가 우리 아기 소개시켜준다니까 바로 취소하고 나 만난다고 한 거야.”

“그래?”

“응. 나도 시간 더 끌기 부담스럽고.”


버스에서 내려 도로를 하나 건넌 후 조금 더 걸어가니 닭집이 하나 나왔다.


“여기가 약속장소야?”

“응. 우리 여기서 많이 만나.”

“그래? 은근히 건전하네.”

“우리 또래 중에 우리만큼 건전하게 노는 애들도 없을 걸? 만날 일차는 치킨, 이차는 한강 매점에서 맥주니까. 중간에 햄버거집이 낄 때도 있고. 20대 땐 더 심했어. 술도 잘 마시지 않고, 저녁 한 끼에 세 끼니씩 때려먹고 그랬으니까.”

“오빠는 그럼 클럽이나 나이트 이런 곳도 안 가봤어?”

“응. 아직 안 가봤어.”

“궁금하지 않아?”

“별로. 난 그렇게 복잡하고, 시끄러운 데 싫어해. 뭐 잘 못 노는 성격도 있고. 아기는 가봤어?”

“나도 아직. 나도 싫어해. 궁금하지도 않고.”


사실은 가 봤는데. 한 번. 추근거리는 남자들과 특유의 냄새, 미묘한 분위기 때문에 학을 뗀 후 그 뒤로는 안 갔지만. 내 친구들도 나랑 비슷해서 그런 데 싫어하기도 했고. 그런데 눈치가 가봤다고 하면 싫어할 것 같아 살짝 거짓말을 했다.

뭐 하얀 거짓말이니까 이해해주겠지? 원래 이런 건 모르는 것이 더 약이다.

그래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어색한 기분이 들어 주제를 돌리려고 이런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으려는데 다행히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빠가 일어서서 반갑게 맞아주는 것을 보니 친구 중 한 사람인가 보다. 오빠보다 작은 체구였는다. 옷차림이나 외모는 또래에 비해 젊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스스럼없는 말투. 당찬 표정.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해 보이는 사람.


“이 친구가 종경이야. 인사해.”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그.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해나가기 시작했다.


“재훈이는 아직 안 왔냐?”

“걔가 벌써 오겠냐? 한 30분은 더 있어야 될 걸?”

“그럼 미리 시키자. 베이크 먹을까?”

“그래. 늘 시키던 걸로.”

“소주? 맥주?”

“우린 소주 먹고. 태연이는 맥주 시켜줄까?”


오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소주 마실래.”


오빠는 날 배려한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주량은 오빠보다 내가 세다. 그저께 확인한 바로는 말이다. 오빠는 생긴 것과 다르게 술이 약해보였다. 그것도 마음에 든다. 밖으로 돌지 않고 가정적일 것만 같은 느낌?

종경이 말했다.


“처음이다 야. 네가 우리한테 여자친구 소개시켜주는 건.”

“그러게.”

“재주도 좋네. 이렇게 미인을.”

“재주라니. 나랑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해줘.”

“어울리긴. 누가 보면 납치라 그럴 걸? 그래서 그런가? 얼굴빛이 많이 좋아졌는데? 사랑의 힘이냐?”

“당연하지. 억울하면 너도 좀 사귀어라. 아 넌 이런 말 할 필요 없지?”

“그럼. 난 내 머리 잘 깎는다. 지금도 누구한테 작업 들어가는 중이다.”

“누구? 몇 살?”

“그냥 어떻게 알게 된 사람. 스물 셋.”

“역시. 넌 남자야.”


오빠는 대화를 하면서도 내 손을 잡아주거나 내 눈을 바라봐준다. 어색해 할까봐 그런가?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 받지 않게 하려고 그런 것이겠지? 그 의도라면 성공이다.

고향은 어딘지 나이는 몇인지 흔히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술을 두 잔 째 넘겼을 때 흰 피부에 덩치가 큰 사람이 찾아왔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작은 이목구비가 독특했다.


“미안하다. 늦었다 야.”

“이젠 기다려지지도 않는다야. 와서 앉기나 해라.”


재훈이란 사람이 맞은편에 앉았다. 무엇이 어색한 것인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쭈뼛거린다.

그 모습에 오빠가 내게 말해주었다.


“너 싫어해서 그런 거 아냐. 원래 여자한테는 그래. 눈도 잘 못 보고 말도 잘 못하고. 그래서 모태 솔로야.”

“아. 그래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연이에요.”

“장재훈입니다.”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숫기가 없다. 순수한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괜찮았다. 친구는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지 않던가? 저런 모습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돌고 돌자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 때다 싶었는지 오빠가 말을 꺼냈다.

병에 관한 이야기. 남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 나에 대한 이야기. 우리에 대한 이야기.

남자라서 그런가? 그 둘은 내 친구들에 비해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두 눈엔 큰 경악과 깊은 슬픔이 담겨 있어보였다.

종경이 오빠에게 말없이 술을 따라준다. 어깨를 두드리며. 재훈이 큰 한 숨을 쉬며 빼며 마시지 않던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아마 저것이 남자의 대화겠지.


“세영아…….”


덩치 큰 재훈이 눈물을 글썽인다. 그 모습에 오빠가 웃으며 말한다.


“나도 너처럼 만날 지각할 걸 그랬다. 그러면 저승사자가 와서 같이 가자고 그래도 한 3년 뻐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칼날 위에 서 있어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남자라 했던가. 의연하게 표현하는 오빠의 모습이 역시나 든든하다.


“마시자. 마시자. 둘의 사랑을 기원하면서. 오늘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거야.”


종경이 다시 분위기를 주도한다.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가끔 무리수를 던졌지만 그것도 유쾌했다.

자리가 파하고 나오자 만취한 종경과 재훈이 서로에게 기대 터덜터덜 걸어간다. 그들의 모습이 자꾸 흔들린다. 저 사람들 엄청 취한 건가?


“태연아. 정신 차려봐.”


아. 내가 흔들리는 거구나.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드는데 모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 우리 저기 가자.”

“엥? 택시타고 가자. 여기서 택시타면 집 별로 안 멀어. 금방 가. 가서 편히 쉬자.”

“아냐. 나 저기도 한 번 가보고 싶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그, 그러지 뭐.”


오빠가 날 부축해 간다. 모텔이 다가올수록 정신이 갑자기 또렷해진다. 그리고 입구에 선 나는 정신이 확 들었다.


“여기 입구가 너무 오픈마인드인데?”


입구 앞엔 가게가 즐비했는데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 사람들이 다 이쪽을 보는 것만 같았다.


“머뭇거리면 더 이상할 거야. 당당히 들어가자.”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성큼성큼 들어간다. 난 무언가 민망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값을 치룬 후 특유의 커다란 열쇠를 든 채 승강기에 탑승했다. 좁은 승강기 안에서 우린 아무 말 없이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지난 밤 우린 선을 넘었지만, 이곳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무언가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붉은 싸구려 카펫이 깔린 복도. 어두운 조명. 어색한 발걸음으로 방을 찾아 들어갔다.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등병처럼 우린 각을 잡고 앉아 정면만을 보고 있었다.


“먼저 씻을래?”

“그, 그럴까?”


대답을 한 내가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데 오빠가 내 손을 잡았다.


“같이 씻을까?”


난 놀라 잠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제는 분위기에 취해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 지금은 감성보다 무언가 이성이 또렷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숨 쉬는 것조차 어색했다. 마치 횡격막에 매번 신호를 보내 의식적으로 움직여야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선을 한 번 더 넘을까? 아니면 여기서 잠시 스톱?

에라 모르겠다. 남은 시간은 보름. 첫 발을 내딛은 아이처럼 조심스러워할 시간은 내게 없다. 어차피 여기 오자고 한 것도 나다.

난 허들 선수다. 거침없이 뛰어넘겠다.


“그러자.”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이 타이밍엔 못 이긴 듯 끌려가야하겠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미영이랑 주현이에게 물어봐 둘걸. 아 걔네들도 모태 솔로지.

으……. 부끄러워. 불 끄고 화장실 들어가면 위험하려나?

아 몰라, 몰라. 못 먹어도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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