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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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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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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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D-27

DUMMY

세영의 이야기


“준비 다 되었어?”

“응. 짐도 다 싸고. 가스랑 전기도 확인했어.”


오늘은 경주에 가는 날이다. 가방을 메고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 보니 어제 저녁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수학여행도 못 갔네.”

“수학여행? 왜? 무슨 일 있었어?”

“나 그 때 요로결석으로 병원에 실려 갔었거든. 어찌나 아프던지. 막 데굴데굴 굴렀다니까.”

“그거 나도 걸려본 적 있는데. 진짜 아프지 주사 맞기 싫어하는 나도 막 주사 맞고 수술 받고 싶어지더라.”

“아무튼. 그래서 못 갔어. 전교에서 나만.”

“어디로 갔는데?”

“경주.”

“경주? 보통 너희 때부터는 제주도 같은데 많이 가지 않았었나?”

“그렇긴 하지.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곳을 눈으로 확인해봐야 참된 공부가 된다면서 경주를 고집하시는 바람에.”

“뭐 교육자로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럼 뭐해. 결국 못 갔는데.”

“그럼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경주를?”

“그래. 바로 내일 쏘자!”


숙소를 예약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비수기 평일이라 그런지 빈 방이 있었던 것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고.


“오빠 문단속하고 빨리 나와.”


-----------


“히히. 기대된다.”


아이처럼 웃는 그녀에게 삶은 달걀을 까서 내밀었다.


“완전 맛있어.”


차가 있었지만 우린 일부러 고속버스를 탔다. 수학여행의 묘미는 조금 불편한 이런 버스에서 짧은 시간 이용하는 휴게소 군것질에 있으니까.

나는 오렌지 주스의 뚜껑을 따 태연에게 건넸다.


“이것도 마셔. 좀 신 걸 먹으면 멀미도 예방된데.”

“오빠도 먹어. 딱 알맞게 삶아졌어. 노른자가 촉촉해. 완전.”


내가 입을 벌리자 태연이 먹던 계란 반쪽을 입에 쏙 넣어준다.


“오. 먹던 것도 잘 먹네?”

“네가 먹던 거니까.”


내 대답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녀의 손을 잡고 창밖을 내다봤다. 풍경이 지나간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산이 삭막하다. 조금은 차가운 풍경에 속이 상할 법 하지만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 꽃이 피고 질 때쯤엔 나도 땅에 떨어질 테니.

문득 어깨에 태연의 머리가 와 닿는 느낌이 든다. 눈을 감고 혀를 쌀짝 내밀고 있는 모습. 잠이 든 모양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눈이 뻑뻑하다. 나도 살짝 그녀의 머리에 내 머리를 기대보았다.


---------


눈을 떠보니 아직 차는 달리고 있다. 창문을 가린 커튼을 젖혀보니 여전히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깥을 응시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으레 볼 수 있는 산들이 전부 자갈밭으로 바뀌었다. 끝없이 펼쳐진 자갈밭. 그러더니 자갈밭에 서서히 물이 차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이런.’

“오빠.”


뭐지?


“오빠!”


날 흔드는 느낌에 나는 벌떡 몸을 세웠다.


“오빠 휴게실 다 왔어.”

“응, 응? 응.”

“뭐 그렇게 깊게 자. 빨리 일어나. 나 화장실.”


나는 지갑을 챙겨 그녀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빠져나왔다. 상쾌하고 쌀쌀한 공기가 폐부에 스며든다. 정신이 좀 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꿈이었구나. 꼭 죽는 줄만 알았다. 가라앉을 때 그 심장이 눌리는 느낌은 다시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다. 거기다 지하로 내려가다니. 보통 때라면 개꿈이라 생각했겠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화장실을 갖다오고 잠시 기다리니 태연이 젖은 손을 흔들며 내게 뛰어온다.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을 닦아주었다.


“헤헤. 만날 이렇게 손 적셔서 나와야지.”


손을 다 닦아주자 품에 쏙 들어오는 그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먹을 것을 사러 갔다.


“역시 휴게소엔 호두과자랑 통감자야.”

“나는 소시지도 먹고 싶어.”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사들고 버스로 돌아온 우리. 그녀는 연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호두과자에 열중한다.


“호두과자 좋아해?”

“응. 난 팥들은 건 다 좋아해.”

“그래서 경주가 더 아쉽겠네. 거기 경주빵에 팥 들었거든. 보리빵도 유명하다던데.”

“정말? 기대된다.”

“우리가 묶는 숙소 근처에 원조집 체인점이 있나보더라고. 거기 가서 사먹자.”


제법 많은 양의 음식을 전투적으로 때려 먹은 우린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서로에게 기댔다.


“등은 따시고, 배는 부르고, 오빠 품은 따뜻하고. 좋다.”

“나도.”


내게 기댄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옅게 남은 샴푸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살짝 입술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동그란 눈. 하얀 얼굴. 분홍빛 입술. 향긋한 체리향이 가득한 그녀의 표정. 바로 사랑스러움.

내가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볼을 붉히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팔을 들어 그녀를 안아본다.

작은 체구. 그러나 크게 느껴지는 그녀의 마음.

햇살이 우릴 비춰준다. 아까의 꿈을 볕에 날려버린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경상도 까지 내려오는 거니까.”


나는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그녀의 작은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여긴 높은 건물도 적고 무언가 나무 그늘 같은 것도 적거든. 막 다 직사광선이야. 얼굴 타니까 이거 써.”


나 또한 똑같은 모양의 모자를 꺼내 썼다. 그것을 보고 그녀가 웃는다.


“오빠. 우리 어디로 가야해?”

“대릉원 매표소.”


택시를 타고 대릉원 입구에 온 우리는 서둘러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여기서 가까워?”

“응. 조금만 걸어가면 된데.”


그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담장이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데 풍경이 낯설다. 낡은 벽. 전형적인 시골길은 아니지만 지방색이 보이는 길.

닦여진 아스팔트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한옥으로 된 민박이 보인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방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툇마루가 있는 방인데 문이 한지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한옥 문이다. 따로 잠금장치가 있지 않고 수저로 문고리를 막는 구조. 안에는 황토로 벽을 발랐는데 대들보가 나무로 되어 있었다. 겉만 그럴 듯한 한옥은 아닌 듯 했다. 대신 에어컨도 달려있었고, 내부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여기 신기하다.”

“응. 경주에 오니 뭔가 한국적인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서. 나도 친구 추천으로 온 곳인데 신기하네.”


짐을 대충 풀어두고 우선 밥을 먹으러 나왔다.


“여긴 쌈밥이 유명하다던데?”

“그래?”


나는 블로그를 검색해 찾은 쌈밥집으로 갔다. 여러 가지 반찬에 푸성귀가 나온다.


“한정식이랑은 약간 다른 느낌인데?”

“그러게. 몸에는 좋겠다. 쌈이 많아서.”


여러 장의 채소를 겹쳐 도둑놈 보따리처럼 쌈을 싸 우물거리는 그녀의 볼이 귀엽다. 그녀는 가끔 저렇게 무언가 욕심을 부릴 때가 있었다. 평소에는 무던한 모습을 보이는데. 왜 그럴까? 남은 시간 때문에? 아니면 집이 어렵다고 그래서?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혹은 누리지 못할 것에 대한 갈증일까? 어느 것이든 마음이 짠하다.


“오빠도 먹어봐. 조금 간간하긴 한데 맛이 괜찮네.”


웃으며 내게 크게 쌈을 싸주는 그녀. 작은 손가락으로 오물조물 쌈을 싸는 모습. 조약돌 같은 그녀의 조막손보다 큰 쌈.

물기 흐르는 그녀의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자 그녀가 씩 웃는다.

밥을 먹고 나오며 그녀가 말한다.


“배부르다. 그런데 저 집 신기해. 종업원이 다 중국말 하는 것 같던데.”

“조선족이거나 중국인 알바 정도 되겠지. 요즘엔 인건비 때문에 많이 쓰는 것 같더라.”

“신라의 고도 한복판에 중국말이라니. 묘하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표를 끊어 대릉원으로 들어갔다. 대릉원에는 생각보다 볼 것은 없었다.


“그냥 다 동산만 있네. 이게 다 무덤이지?”

“그렇다더라. 속까지 볼 수 있는 건 천마총 정도 인가봐.”

“아 그 말 그림?”

“응.”


천마총 앞으로 가니 마침 직원이 천마총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오. 굿 타이밍. 여행 시작의 첫 단추를 뭔가 잘 꿰어 맞춘 것 같은데?”

“그러게. 괜히 기분 좋다.”


대릉원을 구경한 후 숙소에서 좀 떨어진 카페로 갔다.


“여기 분위기 괜찮네.”

“응. 만날 체인점 카페만 가다가. 그러고 보니 예전엔 개인 카페가 많았는데. 특색도 다양했고. 그게 좀 아쉬워.”


시간이 멈춘 듯한 따스한 분위기의 카페. 각 테이블 마다 방명록 같은 것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방명록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듯 한 구석엔 노트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우리도 한마디 적을까?”

“그러자 오빠.”


-첫 경주 여행. 오지 못해 아쉬웠는데 소원 풀고 갈 거예요.-

-따스해지는 계절에도 숨길 수 없는 아늑함과 따스함. 눈이 오는 계절에 언 몸을 녹이러 들어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겨울 속 풍경이 궁금하다.-


어떤 모습일까? 눈이 내리면 멋있겠지? 바람이 불면 더 멋있을 거야. 은빛 눈가루가 바람에 날려 숲을 타고 오르면 보기에 예쁠 텐데. 아스라한 설국의 풍경. 그것을 우린 따뜻한 노란 조명아래서 낡아 잘 비치지 않는 낡은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거지. 목에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따뜻한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서로의 어깨를 가까이 기댄 채로. 내년에 필 벚꽃을 기대하며 다음엔 남산에 가보자고 약속을 잡는 거야.

태연이가 내가 쓴 글귀를 보며 눈물을 살짝 글썽인다.


“진짜 겨울 속의 여기 모습 궁금하다.”


나는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 그녀가 내 품에 안긴다. 살짝 떨리는 그녀의 몸짓이 슬프다. 조금 더 꽉 안아 본다.


“우리 이번 겨울에도 경주에 올까?”


그녀가 얼굴을 들어 습기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손을 들어 눈가에 맺힌 물방울을 거둬 주었다.


“여기 코코아가 정말 따뜻할 거 같아서.”

“그래. 오빠 이번 겨울에 또 오자. 눈 오는 날에. 창밖에 내리는 눈 보면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싶어.”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 애써 눈물을 참고 웃는 그녀.

부드러운 그녀의 얼굴선. 수국 같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며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

입가에 닿는 따뜻한 온기. 입가에 닿는 그녀의 숨결. 혀끝에 닿는 그녀의 눈물.

우리의 첫 키스는 코코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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