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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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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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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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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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

DUMMY

17.

“어? 나?”

나는 그녀가 정신 차리기 전에 허리를 굽힌 상태로 아이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말했다.

“작은아버지에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작은아버지.”

아이가 공손한 자세로 인사하자.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몸을 돌려 약간 놀란 눈들을 한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분은 내 형수님이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자가 아이들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이자, 나는 다음으로 비서를 가리켰다.

“이분은 내 형님 비서.”

내 소개에 먼저 고개를 숙인 건 비서님이셨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 아이는 아까 들어서 알지? 내 형 아들이야.”

“안녕~”

“넘 귀엽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서로 인사시킨 사이,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입 다물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늘 여행 가신다는 말씀은 형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 가려고 했어. 그렇지 최 비서.”

“모시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봐요.”

이제는 여유롭게 인사까지 하는 그녀였다.

“안녕히 가세요.”

친구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비서님은 내게 열쇠를 전달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집으로 들어간 나는 예상보다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를 보고 놀랐다.

아이가 머물렀다고 생각되는 곳은 물론이고, 내 방이랑 옷 방이 죄다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두 방에서 잔다는 말을 들어서 깨끗하게 정돈 된 침대 방이 하나 더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알기론 집안 청소는 눈곱만큼도 안하는 여자였는데, 바뀌었다는 비서 말이 사실인가. 아니면 이혼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제로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와. 대부분 최신식이다.”

“우리 어머니도 가지고 싶어 하시던 거였는데.”

우웅.

핸드폰 진동이 느껴져서 펼쳐보니 안에 비서님이 보낸 문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변명도 없는 비서님의 문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밑에 사람이 뭔 죄냐. 나같이 배배꼬인 놈이 죄인이지.

-가족사진 치우란 말은 없었는데, 센스 있게 치워주신 거 감사합니다.-

-혹시 몰라 치웠는데 다행이군요.-

-일정은 변경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똥 치우느라 고생 많으신 비서님에게 더 감사할 따름이죠.

라는 장문의 글을 쓰기엔 시간이 없었다.

“빨리 나가서 동대문으로 놀러가자.”

“동대문은 왜.”

“올해 그곳 운동장이 사라진다니까 아버지가 그곳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어.”

“수지 아버지가 예전에 그곳에서 고등학교 대표로 뛴 적 있으시댔지?”

“응 육상부에서 뛰셨었어.”

나는 아이들의 대화내용을 듣고 급히 문자를 작성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내가 짐을 내려놓고 나갔다.

“다들 짐은 다 내려놓은 거야?”

“응.”

“호텔보다 여기가 훨씬 좋아 보여.”

“다행이다.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갈까?”

“수지 아버지가 동대문 사진 좀 찍어오라고 하셨어. 그래서 동대문에 가려고 그러는데 괜찮지?”

나는 이미 들은 내용이라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좋아~ 그럼 동대문으로 고고.”

양훈의 큰 고함과 함께 우리들은 집 밖으로 나갔다.

*8*

*8*

올해 철거가 시작된다는 동대문 운동장 주변에는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풍물시장과 옷가게. 폐쇄된 야구장 외곽을 돌며 사진을 찍고 먹거리를 사 먹으며 웃고 떠들었고, 어느새 우리 머리 위는 파란 하늘이 아닌 어둠이 가득 찬 깊은 바다색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두 여자애가 재잘거리면서 즐겁게 있는 건 보기 좋았지만,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양훈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우리가 왠지 짐꾼이 된 거 같아.”

“같은 게 아니라 짐꾼이 맞아.”

“아니 우리가 왜 이걸 들어야 해. 그냥 자기들이 들지.”

“들어다 주겠다고 설레발 친 건 너였다.”

“반대하지도 않고 수지 꺼 바로 들어 준 건 너였잖아.”

원망이 가득 찬 양훈의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미안하다. 친구야.

내가 수지 미소에 정신이 팔려 너까지 고생이다.

마음속으로 사과하며 거리를 지나가는 와중에 나는 검은 고양이 하나를 발견한다.

나에게서 이 미터 떨어진 곳에 두 개의 노점상 사이에서 웅크리고 앉아있었는데, 녀석의 머리 위에 숫자가 있었다.


1


검은 색!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고, 저 멀리 도로가 아닌 인도로 자전거를 차고 오는 남성을 볼 수 있었다.

동대문 시장 외곽이라서 약간 한적한 거리라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주고 있었고, 내 앞까지는 거의 텅 빈 곳이어서 속도가 제법 빨랐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탄 남성의 몸에 검은 기운이 휩싸여 있어서 모를 수 없었다.

막는 법은 간단하다.

“에비!”

할아버지가 예전에 내가 더러운 거 만질 때마다 으레 지르곤 했던 말을 고양이에게 썼고, 고양이는 내 행동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양이 머리 위 숫자는 사라졌다.

딩딩. 딩딩.

“고마워요 학생~”

남자까지 지나가고 나서야 맘을 놓은 나는,

“거기서 뭐해~”

“간다~”

앞에서 부르는 양훈의 목소리에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8*

*8*

동대문 외곽에서 유명한 한식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미수의 안내에 따라 그곳에서 우리는 늦은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고, 돌아가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우리는 철거 반대 시위대가 경찰에 의해 밀려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야구 역사의 중심지가 철거라니, 웬 말이냐. 웬 말이냐.”

“서민 상권 밀어내는 시장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밀려나면서도 크게 외치는 시위대에 의해 교통이 엉망이 되었고, 정류장에 버스가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만 하시지...”

“그러게... 저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폔데.”

“뭐...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시위대를 보며 친구들이 한마디씩 말하는 사이,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벌써 아홉 시 반이네. 여기서 버스 기다리다가는 집에 열한 시에나 들어갈 거 같은데.

“여기서 기다리다가는 끝도 없을 거 같은데, 조금 더 간 다음에 지하철역으로 가자.”

“으... 버스로 한 방에 가는 건데.”

“그럼 어디로 가야 해.”

“시위대 반대쪽에 있는 동대문역으로 가자.”

미수의 의견을 따라 우리들은 표지판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 블록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건물 사이 골목에서 아까 보았던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그러고서 내 앞에 멈춰 섰는데,

“우와. 너무 귀엽다.”

“눈빛이 너무 순순해 보여.”

“이 녀석 짬뽕은 아닌 거 같고, 품종이 뭐더라.”

관심을 가지는 세 명의 아이들과 다르게 나는 녀석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3


조금씩 하얀색으로 차오르고 있는 녀석의 숫자를 바라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간판도 멀쩡하고, 인도에 침범한 자전거나 오토바이도 없는데. 고양이가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

끼이이익.

귀에 거슬리는 브레이크 소리가 내 앞에서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내 시야에 하얀 두 개의 불빛이 선을 그리며 옆으로 가더니 우리가 가려던 인도를 지나쳐 관광버스가 한 대가 건물 안으로 파고들었다.

쾅.

“애들아! 뒤로!”

내 말에 친구들은 정신없이 뒤로 움직였고, 먼지구름은 우리 뒤를 맹렬하게 추격하다가 하늘 위로 방향을 틀었다.

“다들 괜찮아?”

내 말에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창백해진 친구들의 얼굴을 비롯해 전신 상태를 살폈지만, 내가 봐도 딱히 다친 부분은 없어 보였다.

“나는 신고할 게.”

“나는 안을-”

“안 돼. 연기가 나고 있어.”

친구들이 버스를 신경 쓰는 와중에 나는 내 앞에 앉아서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1


손을 뻗어보지만 녀석은 뒤로 물러났다.

다가가도 마찬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수호야 어떻게 하지?”

“안에 사람들이 보이지는 않아.”

“신고는 했어. 경찰에도 신고해야 할까?”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우선 지금 상황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움직였다.

*8*

*8*

친구들이 눈앞에서 사고를 보고 난 다음 날인 오늘은 조심하자는 의견을 냈고, 근처 영화관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고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고양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친구들끼리 놀게 하고 나는 가족 일을 핑계로 동대문으로 가려고 했다.

내 의견에 애들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가족 일이고 딱히 추억을 만들 만한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라서, 나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를 찾아 다시 사고 현장으로 찾아왔지만,

“박수호?”

찾고 있는 고양이가 아닌, 중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김명호 무리 중 건실한 중소기업 사장 아들인 강신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나보다 살짝 작았지만 근육이 옷 위로 드러날 정도로 건장한 체격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제 버스 사고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너 수호 맞구나. 반갑다. 친구야.”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 옆에 있던 붉은색으로 염색을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신도야 수호라면 네가 전에 말했던 그 애?”

“어.”

“그런데 이렇게 덩치 큰 애가 왕따였다고?”

“그때는 이러지 않았지.”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허리도 올까말까 작은 녀석이었어. 그땐 정말 병신이었거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운동신경도 얼마나 뒤떨어지는 지 녀석 때문에 같은 반 축구 내기하면 매번 졌다니까.”

“어머. 그렇게 병신이었어.”

“그럼. 뭐 지금은 이렇게 키가 보다 더 크긴 한데. 말도 못하는 건 마찬가지 인 거 같고 옷도 길게 입고 다니는 거 보니 여전히 병신이 맞는 거 같아. 그렇지 박수호? 아니 박병신이라고 해야 하나?”

찾았다.


2


여전히 머리 위의 숫자는 회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숫자 2가 반으로 쪼개지더니 두 개의 숫자로 변했다.


1 1


두 개 모두 회색.

“어이 대답 안 해? 어이 병신. 병신이면 예전에 따라와서 헤헤 거렸잖아. 그때처럼 하고 오면 때리진 않을 테니까. 당장 뛰어 와라. 병신. 병신~. 병신!”

나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고함을 지르는 녀석의 뒤에 있는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분 바람으로 허공에 뜬 종이 뭉치를 따라 길을 향해 뛰어갔다.

고양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색이 변했다.


1 1


검은색과 하얀색.

이건 또 무슨 뜻이지?

“이 새끼가 다시 맞아야 정신 차리지!”

나를 향해 주먹을 쥐고 뛰어오는 녀석을 바라봤을 때,

끼이익. 쾅.

날카로운 마찰음과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내 앞쪽에서 들려왔다.

선택지는 두 개.

강신도를 구하거나. 버리거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나에게 달려드는 강신도 뒤로 작은 트럭이 나타났다.

검은 일. 하얀 일.

두 개의 숫자.

죽음과 삶.

내 선택은 어차피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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