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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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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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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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막간-피오네(Fionne)(3)

DUMMY

쉘터의 아침은 맑았다.


하지만 피오네는 그 맑음을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깨끗한 하늘은, 쉘터의 쓰레기장 역할을 하는 독기의 골짜기 덕분일지도 몰랐다.


다른 곳에서라면 소각하거나 매립했을 온갖 종류의 오염된 쓰레기들을 쉘터에서는 골짜기로 전부 흘려보낼 수 있었고, 그랬기에 다른 지역들에 비해 비교적 공기가 맑고 깨끗했다.

쉘터의 정화교 신도들에게 있어서는 참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옳은 일은 아니었다. 결코 깨끗한 일은 아니었다.


어떤 것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것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결코 정화라 부를 수 없다.

피오네는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쉘터의 모습에 분노했다.


피오네가 대뜸 내뱉었다.


“이곳, 쉘터는 제 고향입니다.”

“그랬군.”


유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가는 그들의 시야에 쉘터의 두 구역을 가르는 경계가 보였다.


신도의 직급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뉘는 거주지.

상등 시민들의 백색 구역White Area과, 하등 신민들의 어두운 구역Dark Area.

그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이 뒤섞였기에, 정화교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쉘터를 부르는 별칭은 언제나 하나였다.


회색의 도시.


“태어난 곳은 쉘터가 아니었지만, 유년의 시절을 보낸 곳은 쉘터였습니다. 어린 눈으로도, 양쪽 구역의 차이가 선명히 보이더군요.”


오히려 그 순진하고 해맑은 시절의 눈동자였기에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가 보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백색 구역과 어두운 구역.


한쪽은 밝고, 깨끗하고, 웃음이 넘치고, 건강하고, 따뜻하며 부유하다.

다른 한쪽은 어둡고, 더럽고, 언제나 우울하고, 각종 병마와 벌레, 추위와 가난에 몸부림친다.


그 어떤 대단한 종교나 신앙도, 그녀가 받들어 모시는 정화의 신조차 저 양극화를 해소하지는 못했다.


“저는, 당연하지만 백색 구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두운 구역의 땅을 밟아 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날 때부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고통을 제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리 없겠죠.”


가난과 부는 성별 다른 쌍둥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반대의 성질을 지닌 것 같다가도, 알고 보면 비슷한 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똑같이 대물림된다. 똑같이 벗어날 수 없다.


하급 신도들은 쓰레기 같은 환경에서 자란다. 말 그대로 쓰레기다.


벌레와 쥐떼로 가득해 무너져가는 집과 술과 마약에 취해 폭력을 일삼는 부모.

어떠한 교육도, 지원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먹을 걸 훔치고, 돈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훔치고, 마약을 팔고, 사람을 팔고···.


그런 이들에게는 부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더러운 일을 일삼아서 돈을 벌어도 어두운 구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상등 시민이 지니는 부의 조건은 돈보다도 신앙이기에.


그러나 애초에 신앙이 생길 수 있을 리 없다.

정화되지 않은 쓰레기들 속에서 쓰레기처럼 살아온 이들이, 정화를 사명으로 한다는 교단에 공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이리 생각할 것이다. ‘정화교단이라면서. 왜 우리가 살던 곳은 정화해주지 않았는데. 그러고도 너희가 정화교단이야?’


그렇기에 그들은 영영 상급 신도가 되지 못한다. 마약과 술에 빠져, 그들의 부모와 똑같은 빈곤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언제나 정화신의 품 바깥에 있다.


반면 상급 신도들은 언제나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다음 세대의 유망주들과 함께 인맥을 쌓으며 든든한 지원을 힘입어 자라난다.

그런 이들에게는 가난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는 부가 찾아온다. 명예와 신앙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정화신은 그들을 사랑한다.


피오네의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후자의 삶을 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정화교의 대주교였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정화교의 가장 축복받은 인재로서 총명하고 부유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며 자랐다.


호기심을 충족할 최고의 교육시설과, 배고픔을 달래줄 최적의 식단, 많은 경험을 쌓게끔 해 주었던 수많은 친구들과 여러 가지 체험활동···.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부와 명예, 신앙을 지닐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존재였다. 그녀는 정화교의 딸이었고, 정화신의 가장 따뜻한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물론 그런 그녀라고 해서 살면서 고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많았다.


교단의 까마귀가 되기 위해 받았던 이단심문관 훈련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정화교의 전투병기가 되었다. 정화를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포함해 그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괴물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망설임 없이 타인을 죽이는 방법, 적대세력을 각종 공작들을 통해 손쉽게 무너뜨리는 방법, 빠르고 확실하게 정보를 캐내는 고문법···.


그 수많은 피 묻은 지식들은 단순히 배우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이단심문관으로서 배운 모든 것들을 전장에서 실제로 활용하며 몸에 체화시키는 과정을 겪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진득한 핏물에 절여져 있다. 동료들과 교단을 지키기 위해 벌인 싸움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스스로를 마냥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더럽힌다면, 그것은 정화가 아니니까.


피오네는 스스로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투명한, 굳은살과 상처가 남아 있는 익숙한 인생의 흔적.


전장은 가혹했고, 피오네는 어린 나이부터 그곳에서 여러 고통들을 경험했다.


보급이 끊겨 몇 주간 음식 하나 없이 나무뿌리를 뜯어먹으며 버텼던 적도 있으며, 온통 오염된 지역에 갇혀 식수를 구할 길도 없어 오줌을 받아 마시며 살아남은 적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이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그녀가 겪은 고통이 어두운 지역의 빈민들, 하급 신도들에 비해 모자라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적어도 더 나은 존재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지니지 못하는, 그들의 삶 속 뿌리박힌 가능성의 결핍을 겪어보지는 못했다.


적어도 그녀는 정화교의 이단심문관 활동에 스스로 환멸을 느껴 방랑사제가 되어 물러나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며, 또 유논의 일행이 되어 자유도시와 쉘터를 구하고자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니까.

그것들 전부가 어두운 구역의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기회들이었다.


백색 구역의 아이들과 어두운 구역의 아이들이 서로를 데면데면하게 무시하며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피오네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놀이를 하다 어두운 구역 근처까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하급 신도의 아이를 만났지요.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어릴 적의 피오네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고, 어두운 구역 쪽으로 가지 말라는 말을 참 잘 들었었다.

그렇기에 그때가 빈민을 마주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도와주고 싶어서 충격을 받은 거였다면 좋았겠지만···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는 그 아이가 더럽고 불결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아 도망쳤지요. 제 자신이 겁을 먹어 도망쳤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기에,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시절 피오네의 시선이 그러했다.


마치 다른 세상의 생명체를 보는 듯했다.

비쩍 곯고 말라서 괴물처럼 보이는 외관. 땟국물이 그득한 피부와 탐욕과 무력함으로 얼룩진 눈동자.

그것은 어린 시절의 피오네가 알고 배워왔던 세상과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날 저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처음으로 마주했습니다. 교단이 말하는 ‘정화’의 이면을 목격했죠.”


유논은 자신의 어릴 적 부끄러웠던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털어놓는 피오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은 백색 구역과 어두운 구역 사이의 회색지대를 따라, 두 구역의 경계를 바로 옆에 두고 걸어가고 있었다.

길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과 유흥업소들. 판자로 된 집들 사이를 지나치던 때에 불량배들이 길을 막아섰다.


깡마른 체구의 사내들이 연기를 뿜으며 위협적인 동작을 취하다가, 피오네의 옷차림을 보더니 움찔하더니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대충 사제복인 것 같으니 튀어야 한다, 사제면 어떠냐 돈도 많아 보이고 게다가 여자인데 확 덮쳐 버리자, 미쳤냐 사제를 건드렸다가 뒷감당을 어찌하려 그러냐···.

그런 류의 귓속말들이었다.


피오네 또한 인간 같지 않은 감각의 소유자인 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녀는 그들을 귀찮고 껄끄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안쓰러워하는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피오네의 무감각해 보이는 눈빛에서 저렇게 많은 심정까지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군.’


유논이 그간 피오네와 함께한 적지 않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던 때였다.


짤랑─


피오네가 다섯 명의 불량배들에게 각각 정화코인 하나씩을 던져 주었다.


조금 전까지 수천만에 달하는 정화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니 그 가치에 무뎌진 감이 있지만, 정화코인 한 개면 어두운 구역에서는 며칠을 푸짐하게 먹고 놀 수도 있을 돈이었다.


사내들은 황급히 정화코인을 받아들고 진품인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확인이 끝났는지, 이내 밝은 낯으로,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드러내며 다가오기 시작한다.


피오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뱉었다.


주먹을 들어, 옆의 벽면을 찔렀다.


후드드드득.


꽤나 두꺼운 편이었던 돌로 된 건축물의 정중앙에 큼지막한 홈이 생기면서,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불량배들에게 어서 가라는 뜻으로 손을 휘휘 젓는다.

유논은 허겁지겁 도망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이런 일이 꽤 익숙한가 보군?”

“회색지대나 어두운 구역에 들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요.”


피오네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저들은, 어두운 구역의 빈민들은···몹시 근시안적입니다. 오로지 눈앞의 쾌락과 이익만을 생각하는, 남을 위하거나 도울 줄 모르는 끔찍한 사람들입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빈민촌의 어두운 그늘이 피오네의 얼굴을 감쌌다.


“방금 만난 저 패거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에야 저에게 겁을 먹어 정화코인 하나로 만족하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러지는 않겠지요.

그 돈을 남들에게 마구 자랑하고 다니다가 죽거나, 혹은 금방 탕진하고 돈의 맛을 알아버려 큰돈을 노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도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서 제게 받은 정화코인들을 욕심내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피오네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가 저들에게 베푼 정화코인은 저들을 돕기 위한 선의가 아니라 저들을 파멸시킬 악의였을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유논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돈은 왜 주었나?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면 될 것을.”

“그렇지만, 저만한 돈은 그 자체로 저들에게 있어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돈을 위해 동료와 싸우건, 그 돈 때문에 죽게 되건···.”


어느 시대에나 없는 자들에게 돈은 기회였다. 한 사람을 파멸시킬 수도, 성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양면의 기회.


“결국 어느 쪽으로든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선택을 하게 될 테고, 그런 선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만에 하나의 확률로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빈민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유논이 물었다.


“그 돈 덕분에 실제로 불우하던 처지를 벗어난 빈민을 만난 적이 있나?”


피오네는 침묵했다.


“······.”

“······.”


침묵 또한 일종의 대답이었기에, 유논 또한 더는 그 화제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피오네였다.


“저는 제 고향인 쉘터를 좋아합니다. 저는 이곳에 정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쉘터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었죠.”


‘물론 유논 님이 나타나셔서 단번에 도플갱어도, 시체 군단도 없애 주신 덕에 제가 한 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만.’


피오네는 그리 겸양하며 말을 이었다.

도플갱어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먹였으며, 또 유논이 도착할 때까지 쉘터가 버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음에도. 이번 전쟁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교단을, 정화교를 좋아합니다. 제가 평생에 걸쳐 믿어온 신앙이니까요. 저는 언젠가는 세상이 정화될 것이라고, 방사능이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피오네는 한 걸음 나아가, 판자촌의 내리막길 바로 앞에 선 채 말했다.

바람과 함께 찰랑이는 그녀의 푸른 머리칼 너머로, 땅과 하늘의 경계를 비스듬히 내려가는 빈민들의 구역이 훤히 보였다.


“저는 정화교를, 쉘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런 이들, 빈민들을 볼 때면···.”


피오네는 고개를 돌려, 아직 어두운 빛 남아있는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들의 연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백색 구역의 신도들은 저들이 탐욕스럽다고, 사악하다고, 사람을 죽이고 납치해 재산을 훔치고, 노예로 팔고, 그들의 인육과 장기를 파는 글러먹은 족속들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지금 저 오물과 벌레들로 가득한, 그늘지고 빽빽한 골목길과 판잣집들 속에서는 얼마나 많은 반인륜적인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게 과연 온전히 저들의 책임일까요? 저들이 저지른 잘못을 저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요. 저들의 삶은···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저렇게 정해진 것은 아닐까요.”


다른 것도 아닌.

정화교단, 그리고 쉘터가 만든 제도 아래에서.


저들은 하급 신도이자 빈민으로 분류되었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신분을 상승시키려면 돈과 신앙이 필요하다. 전자를 얻기 위해서는 후자를 버려야 하고, 후자를 얻기 위해서는 전자를 버려야 한다.


사실상 상급 신도가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빈민으로 태어난 이들은 거의 다 빈민으로 죽는다.

그 순환되는 신분의 고리를 깨는 것은 정말 특출하게 운이 좋은 경우거나, 정말 특출한 재능을 타고나는 경우뿐이다.


저들이 저런 끔찍한 삶을 사는 것을 저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정화교단이 그들에게 저런 삶의 틀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


저기서 일어나는 모든 더러운 일들은, 정화를 위한다는 교단과 쉘터의 책임인 것 아닐까.

우리는, 교단은 정화라는 명목으로 도리어 세상을 더럽히는 오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쉘터가 밉습니다. 그리고 교단이 밉습니다. 정화교가···밉습니다.”


피오네는 새벽빛 떠오르는 하늘의 반대편, 온갖 빛을 뒤에 두고 어둠에 잠긴 빈민들의 판자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자신이 미워지더군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제 자신이···.”


그 미움과 의문 사이에서 참으로 오랜 세월을 고민했었다.

정화에 의심을 갖지 않도록 가르치는 교단의 방침과는 언젠가부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자신,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정화라는 말 하나로는 설명하기 힘든 교단의 민낯들.


지금조차 그 의심과 의문, 고민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그 혼란 속에서 약간이나마 길을 발견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저는 교단을, 정화의 신앙을, 쉘터를, 그리고 제 자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계속 좋아하고 싶고, 계속 믿고 의지하고 싶습니다.”


피오네는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여, 어둠에 잠긴 빈민들의 땅으로 몸을 옮겼다.


그저 걸음 하나에 불과했을 뿐인데, 햇빛이 그녀를 무심히 지나쳤다.


그늘이 그녀의 전신을 뒤덮어 이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어둡고 검었다.


피오네는 그 상태 그대로 회색의 도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바뀌고 싶습니다. 바꾸려고 합니다. 쉘터를, 교단을, 정화교를.”


정화교의 가장 빛나는 여인이,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말했다.


“저는 교단을 바꿀 겁니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작가의말

재미삼아 유논이 받게 될 정화교의 채권을 한국식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가...대략 2조 8천억 원 즈음 되는군요.  ㄷㄷㄷㄷ 그래 유논아 너라도 잘 먹고 잘 살아라..!

+흑색의 마법사(2)에 윌리엄 스왈로우가 중상을 입었다가 회복한 것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피오네와 사제들이 복부에 큰 상처를 입은 그를 데리고 돌아와, 치료사제들을 투입해 죽어가던 그를 기적적으로 살린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윌리엄 스왈로우는 그를 살리기 위해 투자한 인력과 여러 자원들의 값어치를 톡톡히 해냈다. 아니,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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