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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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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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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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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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의 마법사(2)

DUMMY

“아니, 잠깐만, 아저씨! 그러니까 지금, 아저씨 마법 경지가 서클 원이라는 거예요?”

“아저씨 말고, 스승님.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서클 원은 아니지.”


시드의 황당해하는, 그리고 또 다급해하는 물음에 유논은 가볍게 대답했다.


지금 그가 다룰 수 있는 서클은 겨우 단 한 개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경지까지 고작 서클 원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경지는 예나 지금이나 서클 나인(九)이었다.

똑같은 한 개의 서클이지만, 서클 원의 마력원에 비해 그의 마력원은 훨씬 크고 두꺼우며 또 심후했다.


그는 서클 하나만으로도 능히 바다를 들어 올리고 산을 가를 수 있는 마법사였다.


그의 서클 하나는 평범한 서클 하나가 아니었다.


‘흑색세계에 잔류해 있던 모든 흑색마나들을 수집했는데도, 도플갱어의 폭주하던 흑색마나를 다 내 것으로 만들었는데도···간신히 서클 하나를 움직일 정도에 불과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그의 서클 하나가 무겁고 또 강력하다는 뜻이다.

세상을 능히 멸망시키고도 남을 힘으로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아직도 부족하다고 잔뜩 칭얼댈 만큼.


물론 그 힘을 전부 흡수했다고 해서 유논이 지금 당장에라도 세상을 제멋대로 바꾸거나 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세상을 멸망시킬 만한 힘을 지니는 것과, 그 거친 원력原力을 정제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다루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세상을 멸망시키는 힘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세상을 구하는 힘조차도, 없어도 좋다.

주위 사람들을 지키고 또 구할 수 있는 힘 정도면 족하다.


유논은 주문세계의 공간 속 흑색 서클의 웅웅대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을 제대로 다루려면 이 정도로는 턱도 없을 거라며, 재회한 주인에게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시하는 영성 깃든 반언어적 표현.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참으로 귀엽게 구는 그 모습에 유논은 피식 웃었다.


여전히 여유만만한 표정에 시드가 불안해하며 묻는다.


“뭐···대마법사셨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스승님? 서클 하나로도?”


시드의 걱정에 유논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까지 우려하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흑색세계에서 자신이 대단히 못 믿을 만하게 굴었다 싶은 감회가 들었다.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괴로워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이렇게까지 그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시드가 얼마 전까지는 서클 원의 마법사였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테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클 하나를 다루던 마법사였다가, 갑작스러운 경지의 상승으로 인해 한순간에 서클 파이브의 마법사가 되어버린 시드였다.


서클을 단 하나만 사용할 때의 무력함과 불안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당장 자기 자신도 서클 다섯 개를 다룰 수 있는데, 겨우 서클 하나로는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고.


하지만 결국은 기우였다.


시드는 아직 힘을 회복한 유논이 다루는 서클 하나가 얼마만큼 대단한지, 얼마나 거대하며 또 얼마나 단단한지 직접 현실에서 마주한 적이 없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서클 원, 혹은 서클 파이브의 경지에서 다루는 서클 하나와.

서클 나인의 경지에서 다루는 서클 하나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거늘.


유논은 부드럽게 말했다.


“당연히, 괜찮다. 너는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된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라.

네 스승이 어떠한 존재인지.


반론을 허용치 않는 유논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에, 시드는 미심쩍은 낯으로나마 납득했다.


하기야 되새겨 보면 변종 오크 부족장을 해치웠던 화염구나, 자유도시를 수호했던 불의 비도 전부 서클 하나만을 가지고 발동한 마법들이었다.

이번 정화교 쉘터의 경우에는 숫자부터 훨씬 많은 수십만의 언데드 군단이 적이기에 걱정되는 것일 뿐, 그녀가 유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불완전한 서클이 아닌 흑색마나를 이용한 서클일 테니, 마법의 위력도 전과는 차원을 달리할 터.

지금은 그저 유논의 대마법을 믿는 게 정답이었다. 그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 군단을 전부 싹 쓸어버릴 수 있을 테였다.


그렇기에 시드는 더는 서클에 관해 묻지 않았다. 대신 현재 상황에 관해 물었다.


“그나저나, 도플갱어는 죽은 거 아니었어요? 왜 도플갱어가 죽었는데 놈이 지배하던 시체들이 정화교 쉘터로 움직이지.”

“좋은 질문이다.”


유논은 손에 이름 없는 지팡이를 쥔 채 허공에 몇 번 흔들며 말했다.

갑자기 주위가 확 어두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플갱어가 죽기 전에 네크로맨서로서의 지배력을 함께 폭발시킨 모양이더군. 휘하의 시체 군단을 향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라 명령한 것 같았다.”


그러니 생명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 정화교 쉘터로 언데드들이 몰려들어 공격할 수밖에.


“그런 거구나···.”


유논의 설명에 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세상이 정말로 확 새카매진 것 같았다. 사방이 전부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유논이 펼치는 흑색마법의 영향인가 싶어 그를 쳐다보니, 아랑곳하지 않고 은빛 지팡이만 매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건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별 하나 없는 새카만 밤하늘이 된 듯 아무것도 없었다.

구름도, 달도, 별도 없이, 암흑의 장막이 하늘을 가린 것만 같았다.


더는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유논을 부르려던 때였다.


“다 됐다.”


유논이 은빛 지팡이로 허공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쿠구구궁─


실제로 발밑이, 대지가, 또 대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시드는 순간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으나, 그런 그녀의 손목을 유논이 잡아챘다.


“조심해라.”


그리 말하는 유논의 손에 쥔 지팡이 끝에는 검은 점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흑색마법黑色魔法


서클 원 기본계열,


[구멍─다리Hole-Bridge]


검은색 점이 갑작스레 크기를 불리며, 들어가라는 듯 공간과 공간을 잇는 통로의 입구로 변한다.

아마 저 구멍 너머에는 현재 격전을 벌이고 있을 정화교 쉘터가 있을 터.


“······!”


시드는 유논의 저 간단히 발휘한 마법에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분명 마법이, 그것도 유논이 발견하고 수련한 최강의 마법인 흑색마법이 발동되었다.

그러나 시드는 그 기미를 어디에서도 눈치 채지 못했다.


‘기껏해야 주위가 어두워졌다는 것 정도는 말고는···.’


분명 서클 원의 마법이었는데, 서클이 단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상태로 있는 건가?


혹시 모를 투명 서클의 존재를 의심하며 손발 휘젓는 시드의 어깨를 유논의 손이 툭툭 두드렸다.

이내 하늘을 가리킨다.


‘하늘에 서클이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아까 봤을 때에는 아무것도···.’


무심코 위쪽을 올려다본 시드는 자기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머리 위의 하늘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이 새카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이 애초에 하늘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늘은 저렇게 흑색으로 가득하지도 않고, 진동을 발산하며 돌아가지도 않는다.


수많은 흑색마나들이 상공의 검은 막에 붙어 영차영차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드는 깨달았다.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진 것.

하늘이 새카맣게 변한 것. 영문 모를 지진이 일었던 것.


전부 저것 때문이었다.


“미친···.”


저도 모르게 상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만큼이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지금껏 그녀가 아는 마법의 상식을 깨는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그냥 말로만 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막대한 검은색 고리.


하늘을 전부 감싸고, 자전하는 것만으로도 대지 속 지하를 통째로 움직일 만큼 비대한 흑색의 마력원이 세상 전체를 굴리고 있었다.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진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저것'이 태양을, 빛을, 천공을 아득히 가리고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저게 바로 유논의 서클이었다.


단 하나의 서클, 시드가 너무 약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그것.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시드를 유논이 팔 붙잡고 이끌었다.


“가자. 피오네와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지.”

“···아아악.”


유논은 사람의 언어를 잊어버린 듯한 시드를 검은 구멍 속으로 밀쳐서 넘겨 보낸 뒤, 자기도 뒤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공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단숨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카만 고리 모양의 천체만이 남아 웅웅대며 회전하고 있었다.




* * *




정화교단의 대주교, 요한나는 칼날 개미의 머리에 꽂힌 창을 뽑아들었다.


끼기긱─!


단단한 갑각에 쓸려 무뎌진 창날이 간신히 빠져나왔다.


아마 본래대로였다면 그녀는 멀찍이서 정화교 군대의 지휘를 맡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그녀조차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이나 급박하고, 누구라도 무기를 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힘들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요한나는 속으로 푸념했다.


그녀는 무력이 특출한 편이 아니었다.


황야에서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되지만, 그저 그뿐이다.


지금 저기 전선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피오네나 윌리엄 스왈로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피오네는 쉘터 성벽의 가장 위태로운 지점에서 싸우며, 수백에 달하는 강철 말벌과 칼날 개미들을 단신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충격파가 일 때마다 수십 벌레들이 한꺼번에 튕겨져 나갔다. 적어도 그녀가 지키고 있는 곳에서만큼은 벌레들이 결코 쉘터로 접근할 수 없었다.


가끔은 물리적 에너지의 방출만으로는 성벽에서 떨어뜨리기 힘든, 언데드들끼리 서로를 집어삼켜 덩치를 키운 괴물들도 나타났지만, 피오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도플갱어와의 싸움에서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이전보다 흡수한 충격을 훨씬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언데드 괴물들을 대적할 때면 모아두었던 에너지를 일점에 집중해, 그것을 주먹으로 뻗는다.

바위를 부수고 도플갱어를 쓰러뜨렸던 일권이 오염된 거대 언데드의 살덩어리를 단번에 폭파시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 자신의 딸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저 늘씬한 몸에서 나오는 가공할 파괴력에 의문스러웠다.


‘이러니 교단의 다른 이들이 합심해, 일찍부터 저 아이를 차세대의 이단심판관장으로 낙점해 놓았겠지···.’


그녀는 본래 피오네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다. 자신의 딸이 교단의 여러 정치적 사정들에 휘말려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평생을 몸담은 세력이고 종교이지만, 교단의 민낯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딸이 그것을 알게 되고 제 어미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삶이었고, 그렇기에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저 빛나는 재능을 끝까지 감출 수는 없었고, 그녀는 교단을 위해 그 무엇이라도, 심지어 그것이 제 배로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희생해야만 하는 대주교의 자리에 있었다.

결국 그녀의 딸 피오네는 이단심문관의 일원이, 교단의 새카만 까마귀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곳에서도 여지없이 재능을 발휘해 까마귀들의 왕이라 불리는, 여태까지 존재한 적 없었던, 피오네라는 한 이례적인 존재 때문에 생겨난 직위.

수석 이단심문관이라는 자리를 꿰찼다는 이야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안심했건만.


돌연 교단의 일에 회의를 느껴 방랑사제가 되어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뒤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딸은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나, 무력적인 측면에서나.


자식은 언젠가 부모의 그림자를 뛰어넘기 마련이었고, 요한나는 그 날이 이제 머지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곧···피오네에게 모든 것을 말할 날이 오겠지.’


어쩌면 이미 전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속이 깊은 딸아이니까.


요한나의 시선이 이번에는 피오네의 반대쪽 성벽에 선 채 휘하의 정예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윌리엄 스왈로우에게로 향했다.


피오네와 사제들이 복부에 큰 상처를 입은 그를 데리고 돌아와, 치료사제들을 투입해 죽어가던 그를 기적적으로 살린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윌리엄 스왈로우는 그를 살리기 위해 투자한 인력과 여러 자원들의 값어치를 톡톡히 해냈다. 아니,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가 다루는 언데드들은 흡사 성벽의 일부분처럼 변해 일당백의 기세를 뿜으며 시체 군단을 막아내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하는 덩치 큰 데스나이트와 죽은 뱀파이어의 활약이 실로 대단했다.


죽음을 먹고 성장하는 데스나이트는 돌진할 때마다 시체들을 흡사 분쇄기처럼 갈아 버린다.

조금도 지치지 않는 것처럼 주먹과 발을 뒤둘러,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벌, 개미, 독인 가리지 않고 모든 언데드들이 터져 나갔다.


반면 죽은 뱀파이어의 무기는 신속한 기동력이었다. 언데드들이 성벽을 공략하기 위해 산처럼 쌓여 서로를 밟고 올라서면, 박쥐로 변해 다가가 산의 아래쪽 중추를 무너뜨린다.


그런 식으로 쓰러뜨린 언데드들의 숫자만 해도 벌써 상당했다. 흡혈의 힘이 통하지 않는 종류의 적들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대단한 성과였다.


‘확실히, 그 자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윌리엄 스왈로우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길 잘했어.’


‘그 자’라 함은 단연 유논이었다.


피오네와 함께 쉘터에 온 외부인.

도플갱어 사냥의 대가로 천문학적인 개수의 마정석을 요구했던 이전 시대의 대마법사.


‘실력만큼은 확실한 자였지···실제로도 도플갱어를 사냥하는 데에 성공했으니.’


그 대가로 자기 자신 또한 목숨을 잃긴 했지만.


며칠 전에 돌아온 피오네는 유논과 그의 제자의 실종을 이야기할 때 그가 분명 돌아올 것이라 첨언했지만, 요한나는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전투사제들의 증언까지 들어보니, 검은 빛이 번쩍임과 함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도플갱어와 함께 사라졌다던데.’


도플갱어의 자폭 공격에라도 당한 게 분명했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고는 해도, 세상에는 이뤄질 수 있는 일과 이뤄질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이번 경우에는 명백히 후자였다.


피오네가 꼭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을 보아 그간 그녀에게 대단한 믿음을 심어준 사내인 듯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

그것은 신화나 전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그런 일이었다.


‘그래도 살아 있다면 지금쯤 대단한 도움이 되었을 텐데···안타깝다.’


그녀는 스스로의 안일한 생각에 쓰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자가 살아 있었더라도 지금의 전황은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대주교 요한나는 혼탁한 전황과,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성벽들, 그리고 밀고 들어오는 시체들의 군단을 바라보았다.


고작 한 사람의 힘으로 뒤집기에는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시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공성전에서는 수비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지만, 그러한 상성관계를 손쉽게 뒤집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숫자의 강력한 괴수 언데드들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정화교 쉘터는 파멸을 앞두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껏 버틴 것도 유논이 도플갱어를 처치해 준 덕분에 언데드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달려들기만 하는 덕이었다.

만약 저 수십만에 달하는 시체 군단이 도플갱어라는 한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쉘터는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피오네나 윌리엄 스왈로우, 다른 전투사제들 등 걸출한 인물들이 곳곳에서 실력을 발휘했기에 여태껏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제는 여러 용사들도 며칠에 걸친 전투에 슬슬 지쳐갈 때가 되었고, 막기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적군은 여전히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고, 쉘터의 수비 병력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여기까지인가···.’


요한나가 체념한 마음으로, 그러나 여전히 죽지 않은 창끝으로 강철 말벌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던 때였다.



끼기기기기기기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간이 통째로 찢겨 나가는 듯한 소음이었다.


일순 세상이 고요하게 멈추는 듯한 정적과 함께, 허공에 새카만 점 하나가 나타났다.


‘저건···.’


점이 점차 커지더니, 사람의 형체를 한 것 두 가지를 뱉어냈다.


검은 머리칼의 사내와 흑발에 금빛 눈을 빛내는 소녀.


유논과 시드였다.


그들이 정화교 쉘터로 돌아왔다.


작가의말

민초우유 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덕분에 요즘 글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뜬금없지만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민트초코류의 음식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초우유님 덕에 요즘은 이따금씩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토마토마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토마토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닉네임이군요. 저는 토마토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가끔씩 과일을 먹다가 방울토마토를 씹으면 기분이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요리 용도로는 자주 씁니다. 

최근에는 토마토달걀볶음우동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후기로 남겼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아무튼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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