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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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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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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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의 도시(5)

DUMMY

[그게 무슨 소리지? 흑색의 마법사는 너였다. 흑색의 마법사는 한 사람이 아닌 것인가?]


아직까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혼란스러워하는 지저인의 모습.

시드는 쿡쿡 웃으며 말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별 생각 없이 바라본 창공.

기계로 된 안면의 정교한 렌즈 사이로 바라보는 하늘은, 낮과 밤이 뒤바뀌어 버린 듯 새카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서늘하게 맑은 상공이었건만.


이상한 점은, 분명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세상을 가렸음에도 주위 상황은 어렵잖게 식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물리법칙과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검은 세계.


지저인은 문득 깨달았다.


[이게···흑색마법.]


그러나 세상이 어두워지고, 물리법칙이 달라지는 기현상조차 신경 쓰지 않는 난폭한 것들도 있었다.


변종 미어캣들.


시드의 말마따나, 약 스무 마리가 한꺼번에 떼를 지어 미끄러지듯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다.

체감상 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미터의 거리를 좁혀오는 느낌.


금방이라도 그 날카로운 앞발톱이 몸을 가를 것만 같아서, 지저인은 긴장한 채 검과 총을 들어올렸다.


흑색의 마법사고 뭐고,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소녀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라 단언하기는 했지만, 난생 처음 보는 꼬맹이의 말에 모든 걸 믿고 맡길 수는 없었다.


준비해놓은 마정석은 이미 가슴의 코어에 흡수시킨 뒤.


외골격의 회로에서는 전류가 튀었고, 코어에서는 ‘친구’가 현재의 그로서 가능한 최적의 전투 동선을 렌즈에 제공해주었다.

금방이라도 미어캣들을 베어가를 수 있게끔 준비를 취하고 있던 때였다.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어···?]


흙먼지와 얼음 조각들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돌격하던 미어캣들의 머리 옆쪽에 하나둘씩 검은색 구멍이 불현듯 나타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집중해서 바라보던 도중, 빛이 번쩍였다.



───────────────.



다음 순간 볼 수 있는 것은, 흑색 구멍을 통해 빠져나와 다시금 흑색 구멍으로 들어가는 은빛 얇은 실이었다.


그것들이 구멍에서 빠져나와 미어캣의 머리를 관통해, 뇌를 찌르고 구멍으로 들어간다.

다시 다른 구멍에서 나와 또 다른 미어캣을 찌르고, 또 다른 미어캣에게 연결된 구멍으로 들어간다.


그러한 방식으로 죽은 변종 미어캣들의 수만 스물넷.

전부 아무런 외상도 없이 뇌만 터진 채 쓰러졌다.


시드와 지저인을 그리도 괴롭히던 변종 미어캣들이 단 한 번, 그 조용하고 은밀한 일격에 전부 명을 달리한 것이다.


[······.]


장신의 지저인은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외골격 코어 속 친구는 눈앞의 괴수들에게서 더는 생체 반응을 확인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치열하던 미어캣 괴수들과의 전투가 이리도 싱겁고 가볍게 끝나 버린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어른이 끼어든 것만 같았다.


소녀가 사용했던 마법이 너무나도 화려한 금빛의 이적이었다면, 이런 게 마법이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면.

이번 것은 순식간에 끝나버려 이게 마법인지 뭔지도 잘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이게, 훨씬 더···무섭다.’


대놓고 두려워하라는 듯, 무릎을 굽히고 경배하라는 듯 내려다보던 그 금빛의 폭발적인 마법보다도.

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어두운 색깔의 마법이 훨씬 더 공포스러웠다.


인간의 본연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어둠, 그 미지의 물질에서부터 튀어나오는 은빛의 실로 된 칼날.

누구라도 저기에 닿는다면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어느새 날이 맑아져 있었다.


언제 어두웠던 적 있었냐는 듯 환히 해가 뜨고, 숨죽여 멈춰있던 세상의 소음이 되돌아왔다.

다시금 바람이 흐르고, 그 차가운 대지와 대기에 몸이 시렸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장신의 지저인 청년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 사내가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그의 눈앞에 서 천천히 외골격 입은 차림새를 뜯어보는 남자.


검은 머리칼 사이로 서늘한 빛을 발하는 새카만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자 마음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꽁꽁 감춰둔 심중 가장 깊은 곳의 비밀까지도 꿰뚫어보는 것 같은, 얼음장 같은 검은 눈.


대면하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법 쓰던 소녀는 사기꾼에 불과했다. 흑색의 마법사는, 지저의 도시에까지 널리 소문이 퍼진 정화교 쉘터의 대영웅은 따로 있었다.


저자가 바로 흑색의 마법사였다.




* * *




“아저씨, 왜 이렇게 늦었어요!”


유논은 지저인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볼 부풀리는 시드에게 말했다.


“내가 늦은 게 아니라, 네가 늦은 거지. 기다리느라 지쳐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이런 간단한 임무도 그렇게 오래 걸리다니, 아직 한참은 멀었구나.”


얼핏 들으면 제자에게 말하는 것 치고는 굉장히 냉정한, 상처 받을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이쯤 되니 이제 시드도 유논의 화법을 알았다.


저 유논 특유의 말하기 방식은 겉과 속이 달라서, ‘내가 직접 올 때까지 버티다니 많이 역시 실력이 늘었구나. 굉장히 어려운 임무였는데 수고했다.’ 쯤으로 해석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괴수종도 아니고 무려 황야에서 가장 무섭다는 미어캣 사십 마리를 상대하며 지저도시의 안내인을 구출하고 버티는 데 성공해낸 것이다.


유논이 내준 과제를 그냥 완수한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봐야 했다.


시드는 기쁜 낯으로 함께 격전을 치룬 전우인 키 큰 지저인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그는 본 체도 하지 않고 차갑게 몸을 돌려 유논에게로 걸어가는 게 아닌가!


묘하게 화를 내는 듯한 그 뒷모습에 시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흑색의 마법사 아니라고 제때에 안 말해줘서 삐진 건가···?’


그런 걸로 다 삐지다니, 속이 좁다고 해야 하나. 지저인들은 원래 다 이런 건가. 좁은 지하에서만 살아서 그런가?


시드는 혼자 투덜대며 유논과 지저인의 대화를 뒤에서 지켜보았다.


놀랍게도,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

“&*@#)%$.”


유논과 지저인이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대화 나누는 것을 들으며, 시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해져 중얼거렸다.


“와, 나 완전 따돌림 당하는 느낌이네. 저건 또 뭐야. 지저세계 언어야? 아니, 아저씨는 나한테 그런 거 안 알려줬으면서···.”


시드가 억울해하던 바로 그때, 유논은 그녀의 추측대로 지저세계의 언어를 통해 지저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지상의 언어에 별로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데. 괜찮다면 지저의 말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저의 언어를 아시는군요.]


놀랍다는 듯 기계적인 안광이 번뜩인다.


유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저도시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실은 현재 지저의 언어라 불리는 것은 현재 두더지들 세력을 이끄는 종족인 드워프들의 언어가 조금 바뀐 형태에 불과하고, 유논은 그 과거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런 사정까지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그나저나 그건 그거고···.


유논은 검은 눈을 치켜떴다.


“요즘 지저에서는 사람끼리 대화를 할 때,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유행인가? 적어도 내가 지내던 때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는데.”

[······.]


지저인은 침묵하다가, 이내 금속 마스크의 목과 얼굴이 연결되는 결합 부분 뒤쪽의 버튼을 꾹 눌렀다.

그 뒤 얼굴 가리던 부분을 손으로 떼어낸다.


그리하여 드러난 얼굴은 시드가 본 적 있었던 그대로, 앳된 인상의 청년이었다.


“예를 갖추지 못한 것을 사죄드립니다. 좀 전에는 너무 당황한 탓에···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노아Noah. 지저의 주민이자 문지기입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며 말하는 모습.

유논은 눈 마주치며 그리하는 키 큰 청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흑색의 마법사, 유논이다.”


마찬가지로 인사하며 청년의 신장을 가늠한다.


‘듣던 대로, 나보다도 약간 크군.’


유논의 신체 조건이 지구에서의 탁월한 영양 섭취와 그 이후의 마력 개조까지 이루어져 최적의 수치를 유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다.

소드마스터로의 경지 상승과 함께 환골탈태를 겪은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도 유논과 눈높이가 완전히 맞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눈앞의 청년은 유논과 키가 비슷하거나 약간 클 지경이라는 것 아닌가.


멸망 이후 신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기에 족한 영양분을 공급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저 청년이 어떤 종족의 일원인지를 생각해보면···.


상념에 빠져있던 유논은 지저인 청년, 노아의 말에 퍼뜩 귀를 열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저 흉측한 괴수들을 상대로 더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유논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저인은 자기가 한 말의 어느 부분이 저 흑색의 마법사를 웃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적어도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지구에서는 귀여운 동물이라 여겨졌던 미어캣이, 멸망한 환상세계에서는 흉측한 동물이라 불리는 것을 본 차원이동자라면 누구나 그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별말을. 나는 다만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었을 뿐이고···내가 오지 않았어도 내 제자와 함께 알아서 괴수들을 전부 처리했을 것 같더군.”


빈말이 아니었다. 지저인 노아와 유논의 제자 시드가 함께 싸우는 방식은 실로 효율적이었다.

지저인이 이질적으로 완벽한 몸놀림과 숙련된 사냥기술로 미어캣들을 쓰러뜨리면, 그 명줄을 시드가 태양수호자로 끊어낸다.

혹여나 지저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변종들이 시드를 둘러싼다면, 시드는 마법을 이용해 자력으로 탈출한다.


변종 미어캣들을 전문으로 잡는 사냥꾼 2인조라고 봐도 될 정도로, 의외로 행동이 잘 맞았다.


‘본래는 그런 협력을 기대하고 시드를 보낸 게 아니었지만···추가 소득이라고 쳐도 되겠군. 이것도 나쁘진 않지.’


무엇보다, 이번에 내준 과제를 통해서 시드의 몸 속 감춰져 있는 힘의 편린을 살짝이나마 엿보았다.


본래 목적을 이룬 셈이다.


현재 시드의 실력으로는 아슬아슬하거나 약간 무리에 가까운 숫자인 변종 미어캣 마흔 세 마리를 상대로 지저인 노아를 구출하라는 숙제를 내준 이유도 애초에 그것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의하면···저 영악하고 또 게으른 제자 녀석은 평상시에는 그다지 가파르게 성장하지 않는다. 물론 하라는 공부나 암기는 어느 정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스스로 생각하거나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면 달라진다.


유논이 없었을 때 독기의 골짜기에서 단번에 서클 네 개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이적을 보여주었듯이, 시드는 극적인 상황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인다.


한마디로 실전 타입의 인간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번 변종 미어캣들 정도면 시드가 스스로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여태껏 배운 것들을 몸에 체화시키게끔 함과 더불어 그녀가 지니고 있는 비밀까지 파악할 기회라 여겼었다.


‘그리고 덕분에···이제 조금은 알겠군.’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시드는 싫어하겠지만, 교차확인의 용도로 비슷한 성격의 과제를 몇 번 더 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유논이 그리 생각하던 때였다.


지저인 노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저···소녀가 마법사님의 제자입니까?”

“그렇다만.”


그가 주저하는 투로 경고했다.


“외람된 말이지만, 그녀를 너무 믿지는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논의 눈썹이 꿈틀했다.


작가의말

내용이 그다지 알차지 않은 것 같아...5분 뒤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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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막간-피오네(Fionne)(1) +14 21.01.08 839 4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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