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5,571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1.01.22 20:05
조회
745
추천
43
글자
17쪽

드워프(4)

DUMMY

갖가지 생김새의 난쟁이들이 가이드 피켓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

스스로 지저도시에 빠삭하다며 믿고 맡겨 달라는 자격 없는 안내인들은 물론이요, 지저도시 특산품이라며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불량품들을 들이미는 장사꾼들까지.


가려는 길을 통째로 뒤덮은 채 아우성대는 소인들의 물결에 유논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요즘 지저도시의 경기가 안 좋은가 보군?”


그게 아니고서는 지저도시에 저런 호객꾼들이 판을 칠 리 없었다. 방문자들을 가려 받는지라 일거리도 얼마 없을 것인데.


노아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명백히 한심스러워하는 눈빛.


“요즘 지하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말입니다. 도시 근처의 가도에 고블린들이 나타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괴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침공의 전조가 아니겠냐는 말들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유논은 고개를 주억였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가 거쳐 왔던 시라센 괴물둥지와 자유도시 갈란, 그리고 정화교 쉘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환상세계 전체가 괴수들의 준동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세상에 또 한 번의 대격변이 찾아오기라도 할 듯 모든 것이 빠르게 뒤바뀌고 있었다.


“덕분에 지상과의 연결이 뜸해져 그쪽 문물들이 귀해졌죠. 저들은 할 줄 아는 거라곤 사기 치는 것들밖에 없으니, 호객행위로 어떻게든 지상의 물건을 뜯어내려는 심산일 겁니다.”


우뚝.


문득 멈춰선 유논의 눈길이 무리지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는, 이리저리 손을 내밀며 옷깃을 붙잡고 달라붙는 소인들을 지나쳤다.


거칠고 진득하게 구는 난쟁이들의 뒤편에는 핼쑥하고 지친 몰골의 키다리 사내들이 힘없이 서 있었다.


‘사실 저것을 가지고 키 크다고 말하기는 뭣하다.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신장인데, 이 난쟁이들이 너무 작아서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일 뿐이니···.’


어찌 된 일일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지저도시는 드워프들이 세우고, 드워프들이 운영하며, 드워프들이 거주하는 도시다.

그 밖의 다른 인종들은 어디까지나 곁다리에 불과하다. 두더지들 세력의 핵심 종족인 드워프들의 자비에 빌붙어 사는 하층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저도시의 상류층인 이 드워프라는 종족이 지닌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대표적으로 작은 신장과 멋들어진 수염. 땅딸막한 몸매와 호탕한 성격, 술을 좋아하는 주당의 면모···그런 스테레오타입들이 있다.’


실제로 만나본 드워프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정관념에 맞추어, 지저도시의 주민들은 상류층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식을 담아 드워프스러운 외모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드워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작은 키가 우대받는 사회가 되어, 키 큰 이들은 천대받고 키 작은 이들은 멋쟁이랍시고 신뢰받는다.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반대로 키 작은 이들이 무시 받는 사회에서 생활해 본 적 있었던 유논 입장에서는 그저 희극에 불과해 보였다.


‘진짜’ 드워프인 척을 하려고 일부러 몸을 낮추고, 수염을 기르고, 불균형하게 영양을 섭취해 땅딸막하고 통통한 몸을 만들고···.

그런 하등 무의미한 노력을 하고, 그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자기네들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키다리들을 무시하고 짓누르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노아가 저들을 경멸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던 것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였을 터.


몸을 구부려 키를 낮추고, 약재들을 써가며 수염을 기르거나 하는 등의 하잘것없는 일들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무력을 기르고 위험한 지저를 탐험하는 방법을 숙련하던 그에게 저들은 숨 쉬는 쓰레기들 따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꺽다리 놈! 꺽다리 놈! 믿을 거, 못된다!”


돌연 난쟁이 하나가 눈을 까뒤집고는 노아에게 달려들었다. 노아의 큰 키가 그들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


“지저도시는 드워프에게 맡겨라, 꺽다리, 안내자 못한다!”


전혀 무섭지도 않은 주먹으로 외골격을 마구 때리며 소리친다.

그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에 다른 소인들도 동조해 유논 일행의 앞길을 막아서고 고함을 지른다.


“꺽다리 버려라! 드워프, 골라라!”


그 사나운 외침들에 유논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노아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한다.


“자네를 버리라는데?”

“그리 하는 게 나은 선택일 것 같다면 그러시지요. 제가 맡은 임무는 마법사님의 일행을 도시까지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시 안의 안내는 저들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못마땅해 하는 심기를 애써 감추며 사무적으로 말하는 모습.

그래도 그간 함께한 정이 있어서인지, 시드를 흘낏 바라보며 말을 얹는다.


“저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질이긴 하지만···미운털이 박히면 집단으로 몰려와 화풀이할 지도 모르니까요. 물불 안 가리는 사나운 개들이나 다름없어서, 차라리 돈 몇 푼 주고 떼어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인이 저들과 척을 지면 골치 아픕니다.”


나름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유논은 자칭 드워프들의 꾀죄죄한 몰골들을 훑어보았다.

한 번 둘러본 것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었다.


‘목청이 터져라 꺽다리를 버리고, 드워프를 안내인으로 선택하라 외쳐대고는 있지만···사실 저들 중에 진짜 드워프는 한 명도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저도시의 권력자로 우뚝 선 그들 자부심 높고 장인정신 넘쳐나는 종족의 일원이 기껏 호객행위나 하고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게는 달리 할 생산적인 일들이 많을 터. 저 소인들은 결코 드워프가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키가 작지만,

그렇다고 해서 키 작은 모든 난쟁이들이 드워프인 것은 아니다.


저 소인들은 드워프 흉내를 내는, 드워프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 해서 결코 드워프가 될 수는 없는 흉내쟁이들에 불과하다.


‘하플링, 레프러콘, 픽시, 노움 등등···전부 소인종에 속하는 약소 규모의 이종족들이다. 거기에 더해 몇몇은 태생적으로 작게 태어났거나, 혹은 어렸을 때부터 구부정하게 몸을 굽힌 바람에 저리 변한 인간들이군.’


지저의 고블린들, 그 새카만 꼽추 괴물들보다도 몸이 비뚤어진 채 어딘가 어긋나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날뛴다.

유논은 가짜 드워프들의 행패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쪽에 제대로 된 안내인이 없었더라면 저들을 고용하는 선택지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우리에게 진짜 드워프가 있는데, 굳이 돈 들여가며 그보다 못한 가짜 드워프들을 고용할 이유가 없지.”

“······.”

“안 그러나?”


대답 없이 고개 돌려 시선을 회피하는 노아의 모습.


유논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나저나, 참 많이도 몰려들었군.”


얼핏 봐도 사방이 어설픈 소인들의 행렬로 득시글했다. 거의 일백에 가까운 숫자. 이쪽에 만만해 보이는 일거리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이는 어쩌면 저만큼 폐인들이 넘쳐날 지경으로 지저도시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라.


“안내인, 해결 못 하겠나?”

“글쎄요. 제가 보란 듯 슈트를 입고 있는데도 전혀 못 알아보는 것을 보니 전부 도시 변두리의 깡패들인 데다가, 죄다 눈이 돌아가 버려서 말로는 해결이 힘들 것 같습니다만···무력이라도 동원해 볼까요.”


그가 그리 말하며 폭도들을 상대로 강철의 증기 뿜어져 나오는 주먹을 들어 올린다.


한 대라도 맞으면 즉시 나가떨어질 것 같은 그 흉기 쥔 ‘꺽다리’의 모습에 소인들이 잠시 주춤하다가도, 이내 괘씸하다는 듯 한층 거세게 달려든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 셈이었다.


“어디 꺼어어억다리 따위가 드워프님들께 감히! 너 내가 얼굴 똑똑히 기억했어! 지저도시를 이끄는 게 누구인데 함부로 입을 놀려! 어어? 주먹 안 내려? 쫓겨나고 싶어서 작정했네!”


노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저리 많은 수가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피를 보지 않고 제압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또 도시의 수호자 된 입장에서 거주민들을 거리낌없이 피떡으로 만들기도 꺼려질 것이다.


유논은 인상을 찌푸렸다.

슬슬 들어주기 힘들 지경으로 시끄러워지는 작은 것들의 소음. 신장과 목청은 비례하지 않았다.


그는 더러운 호객꾼들을 피해 다니며 ‘이것들을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눈빛으로 부글부글 주먹 쥐고 있는 시드를 보며 말했다.


“내가 처리하지.”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 같은 모습으로 보아, 저대로 두었다가는 제자 녀석이 폭발해 대뜸 무력을 쓸지도 몰랐다.


요즘 감정이 들쑥날쑥하고 반대로 힘은 넘쳐나는 녀석인지라, 조절을 잘못했다가는 사람 몇 명쯤 가볍게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시드의 정신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요, 한동안 지저도시에서 지내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생길 터.


깔끔하게 무혈로 끝내는 게 나았다.


그렇기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손가락을 튀긴다.

좌중 모든 소음을 잡아먹고 울려 퍼지는 묵직한 핑거 스냅.



딱────────.



소리가 파장이 되어 공간을 짓눌렀다.

그 일파一派만으로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널브러진 난쟁이들을 지나쳐 걸어간다.


유논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동작을 취하자 식겁해서 막아서려던 노아는 단 한 방에 깔끔하게 정리된 주위의 풍경에 헛웃음을 흘렸다.


“왜, 내가 전부 죽이기라도 할 줄 알았나?”

“뭐···그렇지요.”


그는 변종 미어캣들을 한 번에 몰살시키던, 그리고 지저도시로 가는 길에 유논이 한 번 보여준 적 있었던 살벌한 기세를 아직까지 잊지 못했다.


저 사내가 혹여나 호객꾼들에게 화가 났다면, 손가락 튕기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들 수십 명이 죽어나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황급히 저지하려던 것이었는데.


‘결국은 기우였군.’


충분히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능력과 베짱이 있는데도 살생을 쉽사리 하지 않는다.

흑색의 마법사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자였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바로는 악인은 아닌 것 같았다.


요즘 세상에서는 드문 일이다.

힘 있는 자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니.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인물.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선인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스스럼없이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이유 없이 선을 행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 유논에게는 일정한 경계가 있었다.


사람이 지닌 마음의 경계라고 해야 하나. 타인이 그 경계를 서슴없이 넘어버리면 곧바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저 소인들이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경계를 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넘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선처한 것일 터였다.


그 빗금 친 의식의 선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제자 시드뿐이었다.


‘거래상대로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런 자의 요청이라면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왕께서도 대략은 알고 계시겠지만···.’


유논은 상념에 빠져 있는 노아의 귓가에 대고 또다시 손가락을 튀겼다.


딱-!


다만, 이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좀 전 몰려 있던 난쟁이들을 전부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던 공간의 진동 없이, 그저 평범하게 손가락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천둥같이 울리는 소리에 정신 차린 지저인을 향해 말한다.


“뭐하나, 지저의 왕자. 어서 우리를 안내해야지. 괜찮은 숙소도 소개해 주고, 왕에게도 내가 이야기한 것을 잘 전달해 주려면 출발해야하지 않겠나.”

“아, 아. 예.”


노아는 당황한 탓에 유논이 한 말을 제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지도 못하고 허둥대며 움직였다. 그가 자신을 무엇이라 지칭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안내한다.


그 어수룩한 모습에 유논은 웃으며 손을 휘둘러, 검은 마력으로 낙엽처럼 길 가리는 난쟁이들을 치우며 따라갔다.

마법사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팡! 팡! 하는 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소인들을 헤에 바라보며, 시드가 마지막으로 더러운 피켓들을 피해 바닥을 밟으며 뒤따랐다.


그게 지저도시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과연 노아는 믿을 만한 안내인이었고, 가짜 드워프들보다 몇 배는 더 지저도시에 대해 빠삭한 토박이였다.


그가 비싸긴 해도 도시 외곽에서는 가장 믿을 만 한 곳이라며 안내한 여관은 드워프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인증된 손님들만이 묵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고급 여관. 노아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곳에서 숙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은퇴한 후의 여흥이라도 되는 것일까.

주인장은 여관에 손님들이 들어오건 말건 일견 관심 없어 보이는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막상 주어진 일거리에는 최선을 다한다.


음식을 주문하면 질 좋은 재료들과 좋은 솜씨로 차려진 요깃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부자리는 서늘하면서 따뜻했고 또 부드러웠다.

목욕물은 굳이 시킬 것도 없이 비싼 요금에 포함되어 있다는 듯 때 되면 맞춰서 나왔고, 비누까지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다.


여관 전체가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청결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이만큼 괴이한 장인정신을 갖춘 족속들이 드워프 말고 더 있을 리 없다.


오죽하면 시드가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불편하다.’ 며 몸서리쳤을 정도.

여관 전체가 너무 완전무결한 예술품처럼 갈고 닦여 있어서, 생활하다가 빵 부스러기 흘리거나 발자국 남기는 것만으로도 뭔가 죄를 지은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관에서의 생활이 한동안 계속되던 동안.


“스승님.”

“왜.”

“그런데 우리 계속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예요?”


시드가 여관 1층의 매끈한 대리석 탁자에 얼굴을 옆으로 문대며 웅얼거리는 소리로 물었다.


“안 될 이유라도 있더냐.”


느긋하게 다리 꼰 채 반문하는 유논에게, 늘어져라 하품하며 말한다.


“지저의 왕이라는 사람 만나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거래할 게 있다고···.”

“그랬지.”

“그러면 그 사람 있는 데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유논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지저의 왕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는 말하는 거냐?”

“아이 뭐···나야 모르지만, 아저씨는 알 거 아니에요. 어디에 있는데요? 여기서 좀 먼가?”

“상당히 멀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요? 그래봤자 같은 지저도시 안에 있을 거 아니에요.”


그 '같은 지저도시'의 범주가 얼마 만큼인지 시드는 짐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저도시는 도시라 불리지만, 실은 도시의 규모가 아니다. 지하세계의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라 불러야 할 광역권. 도시보다는 왕국에 훨씬 가까운 크기이다.

거대 세력과도 비견될 만하다는 두더지들의 인구 전부를 담아내려면 그만한 크기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이 있는 도시의 외곽 지역과 지저의 왕이 있을 도시 중심부 간의 거리 격차는···.


“직선거리로만 300킬로미터는 될 거다.”

“히에에에엑.”


직선거리로만 300킬로미터. 어디까지나 직선거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체감되는 거리는 그것보다도 훨씬 멀 것이다.

시라센 괴물둥지에서 정화교 쉘터까지의 거리가 100킬로미터가 채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대단한 격차.


시드는 기겁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탁자에 찰싹 붙은 채로 그리한 탓에 입술이 장난스럽게 뻐끔거렸다.


“어···확실히 좀, 꽤 멀긴 하네요. 그래도 스승님 마법이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 아녜요?”

“내 마법을 네 편한 대로 쓸 수 있는 만능 도구로 여기지 말랬지.”


딱밤이 정수리를 직격했으나, 시드는 이제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배시시 웃은 뒤 말했다.


“그치만 그게 더 빠른 길은 맞지 않아요? 물론 나는 그 검은 구멍 아직도 무서우니까, 스승님만 혼자 가서 지저의 왕과 이야기하고 돌아오시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그러면 딱 좋지 않을까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런 시건방진 제자 녀석을 다 봤나.”


유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제는 딱밤 때리는 것 정도로는 꿈쩍도 안하는 녀석을 어떻게 혼쭐을 내줘야 하나 고민하며 설명한다.


“스승을 대하는 네 불손한 태도는 둘째치고 이야기하자면, 그랬다가는 길이 엇갈릴 확률이 높을 거다. 이미 노아가 지저왕에게 말을 전하러 갔으니, 지저왕도 지금쯤이면 노아를 통해 우리에게 연락하려 들 터. 굳이 우리가 움직일 필요가 없이, 저쪽이 알아서 찾아올 거다. 오히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서로 꼬일 수 있겠지.”

“아하.”


시드는 입에 넣은 것도 없으면서 볼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결국 결론은 계속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거네요?”

“또 꼭 그러리란 법은 없다.”

“엥?”


유논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시드가 고개를 확 들어올린다. 지루하던 참에 잘 되었다는 듯 안달이 나 묻는다.


“뭐 할 거라도 있어요? 진즉에 말해주지! 좀 쑤셔서 죽는 줄 알았네.”


유논은 애초에 그가 본래 지저도시로 향하고자 했던 목적을 떠올리며 말했다.


“지저도시는 드워프와 장인들의 도시다. 이런 곳에 왔다면 할 일이야 뻔하지.”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신명나게 탁자를 두들기며 대답이 튀어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시드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무기를 살 거다.”


그것도 아주 좋은 품질의 최고급 드워프제 무기를.


작가의말

핑거스냅..!

중학교 때였나. 손가락 튕기며 나는 경쾌한 소리가 너무 멋져 보여서 한동안 연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소용없더군요. 아직까지 제 손가락에서는 맥없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0 시장바닥의 대왕들(2) +12 21.01.24 751 46 25쪽
139 시장바닥의 대왕들(1) +11 21.01.23 752 37 13쪽
» 드워프(4) +12 21.01.22 746 43 17쪽
137 드워프(3) +13 21.01.21 738 40 14쪽
136 드워프(2) +8 21.01.20 728 43 13쪽
135 드워프(1) +12 21.01.19 759 45 14쪽
134 지저의 도시(7) +10 21.01.18 781 42 13쪽
133 지저의 도시(6) +15 21.01.17 784 48 16쪽
132 지저의 도시(5) +4 21.01.17 735 43 12쪽
131 지저의 도시(4) +12 21.01.16 756 45 15쪽
130 지저의 도시(3) +14 21.01.15 769 45 15쪽
129 지저의 도시(2) +19 21.01.14 802 43 17쪽
128 지저의 도시(1) +30 21.01.13 830 50 18쪽
127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3) +10 21.01.12 779 47 18쪽
126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2) +6 21.01.12 737 36 14쪽
125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1) +12 21.01.11 802 47 16쪽
124 막간-피오네(Fionne)(4) +20 21.01.10 812 48 20쪽
123 막간-피오네(Fionne)(3) +17 21.01.09 862 48 17쪽
122 막간-피오네(Fionne)(2) +6 21.01.09 797 37 18쪽
121 막간-피오네(Fionne)(1) +14 21.01.08 840 49 13쪽
120 흑색의 마법사(3) +27 21.01.07 908 57 20쪽
119 흑색의 마법사(2) +18 21.01.06 885 48 17쪽
118 흑색의 마법사(1) +18 21.01.05 888 53 14쪽
117 유논(12) +17 21.01.04 829 52 13쪽
116 유논(11) +9 21.01.04 770 44 16쪽
115 유논(10) +10 21.01.03 797 45 16쪽
114 유논(9) +12 21.01.02 773 40 12쪽
113 유논(8) +7 21.01.01 780 45 14쪽
112 유논(7) +9 20.12.31 807 46 17쪽
111 유논(6) +7 20.12.30 832 4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