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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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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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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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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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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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섯 골프 브라보 2

DUMMY

좌측문 강하자들이 일어서는 걸 보고 김하사도 일어나려고 했으나 여전히 몸이 묶여 꼼짝 못한다. 적어도 자기 몸 체중을 제외하고 최소 80kg을 끌어 올려야 한다. 앞과 옆에서 걸리는 하중을 생각하면 100kg은 족히 넘는다.


앞사람은 별로 대화를 나눈 적 없는 타 지역대 대위. 고통의 비명을 지르던 대위는 갑자기 김하사를 봤고, 피 묻은 양손으로 자기 군장을 위로 잡아 들기 시작했다. 김하사더러 나가라는 말이다. 대위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뼈를 깎는 안간힘을 쓰며 그 무거운 군장을 들었다.


김하사가 하나 둘 셋 스퍼트로 치솟아 몸을 일으킬 때 등 척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끄어어어~!’ 굵은 철사를 끊고 나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뼈가 풀리는 소리가 아니다. 예전에 어떤 중사님으로부터 들었었다. 무장구보 도중 완전히 힘이 나간 상태에서 몸을 돌리며 군장을 위로 한번 쳤는데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고, 나중에 엑스레이 찍어 보니 척추 하나에 금이 갔었다고. 김하사 척추 작은 증상 아니었다. 그러나 김하사는 아픔을 느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순간 비틀며 올라가던 수송기는 다시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락의 공포가 온몸을 전율한다. 김하사는 기체가 떨어지는 걸 느끼고 또 부르르 떨었다. 이제 죽는다. 죽어. 프로펠러 피치가 변한다. 결국 으악 씨발 끄~~응 일어나 우측문을 향해 강하자들 사이로 엎어졌을 때, 김하사는 무의식적으로 산악헬멧을 벗어던졌다. 산악헬멧 시야가 너무 답답하고 상황이 잘 안 보였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앞이 보였고, 자신처럼 문을 향해 기듯이 나가고 있는 사람 서넛이 보였다.


다시 몽둥이로 양철판 두들기는 소리가 나면서 기내 비명이 추가로 절규했고, 퍼버버버벅 펑! 뭐가 터졌다. 이번에는 기체 좌측에서 사선으로 올라왔고, 창문이 깨지고 외벽에 구멍이 뚫리면서 뭐가 터져 파편이 기내에 비산한다. 건너편에 일어섰던 강하자들이 푹푹푹 고꾸라진다. 핏방울이 김하사 얼굴로 튀었다.


‘허... 이런.... 이런...’


슝슝 뚫린 구멍들 사이로 바깥의 바람소리가 추가된다.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여기저기 끝없이 길게 이어진다. 이대로 기내에서 추락하면 군장이건 낙하산이건 사람 몸뚱이건 여기저기 부러지고 떡이 되어 죽는다... 사람 형체가 망가질 거다. 척추와 목이 부러지고 모든 관절이 비틀리면서 기이한 모양으로 죽는다. 사람과 사람 몸이 떡으로 뭉쳐 처참하게 죽어... 그리고 그 조차도 불에 타 더욱 엉겨 붙을 것이다.


기회는 한번이다.


그때 조종석 뒷문이 열리면서 테라스로 누가 나와 고함을 질렀다. 하사가 고개를 돌리니 공군장교는 후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나가라고 하고 있었다. 강하자와 군장의 엄청난 무게를 못 버리면 비행기 못 살린다. 남으로 도망 못 간다. 내장이 터져라 지르는 비명이 귀로 이해되지 않았으나 분위기는 명확했다. 그 역시 오른팔에 승무원 낙하산을 들고 있었다.


김하사는 다시 사력을 다해 일어서다 꼬리를 향해 넘어졌고, 강하자 착석 열 중간 군장들 위로 엎어져 또 어디가 걸려 딱 한 포인트가 자기 몸을 잡았다. 김하사는 사력을 다해 몸을 비틀며 흔들었고, 그러기를 대여섯 번 그 포인트가 풀렸다. 김하사 앞에 기는 사람둘이 밖으로 나가 사라지고, 김하사도 계속 기었으나 자기 군장과 다른 사람 군장이 계속 걸린다.


50kg도 넘는 그것. 그렇다고 군장을 풀 수도 없다. H-결속 벨트만 풀어봤자 내림줄이 자기 하네스와 연결되었고, 그 무거운 군장의 상공 분리를 지탱하기 위해 낙하산 하네스 허리에 꽁꽁 묶은 그 내림줄을 풀 시간도 없으며, 하네스에 묶은 걸 풀지 않고 군장만 풀어봤자 결국 군장은 몸에서 떠나지 않고 나가는 몸을 잡는다. 군장이 안 빠지면 못 나간다. 우측문 공군 근무자가 김하사를 본다.


‘일어서야 산다...’


김하사는 놀랐다. 어느 순간 자기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서 발로 다른 사람 군장을 밟고 손으로 정박줄 하나를 잡았다. 장갑을 꼈지만 손바닥이 강철 케이블에 찢어질 것 같다. 고함소리를 듣고 밑을 언뜻 보니 한 강하자 어깨를 자기가 밟고 있었고, 산악헬멧 안구에서 구슬픈 비명이 울린다. 우측문 근무자는 김하사를 향해 어서 오라 손짓한다.


너무 멀어 보인다. 50미터는 넘어 보였고 근무자가 개미 만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손짓은 김하사에게 크나큰 자극을 주었다. 오라 한다. 오라잖아. 오라면 가! 이유도 몰랐고 자기 행동도 몰랐으나 손짓하는 근무자는 점차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몸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그저 근무자가 점차 커지고 공포에 대항하는 악에 받힌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뒤에서 존나게 따라 나가다가 강하자들이 기체문에 이제 다 왔다는 증표, 수송기 외벽 90도 각이 있는 구역을 넘어섰고, 어느 순간 밟히던 군장이 사라지고 정말로 하사는 수송기 바닥을 딛고 섰다. 뛰어내린 거다. 군장을 밟은 상태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딛는 순간 하사는 정박줄 잡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기울어진 기체에서 아무 거나 잡으려고 손으로 벽을 바득바득 긁었다. 고등산악 자유등반에서 힘 다 떨어지고 홀드가 없어 바동거릴 때와 똑같았다. 결국 뭔지 모를 작은 걸 움켜쥐고 문으로 향한다. 바닥은 피가 흘러 군화가 자꾸 미끄러진다.


그때 수송기는 기수가 밑으로 향해 더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하사는 뒤로 다시 미끄러져 빽도할 위기에 처했다. 중력이 뒤에서 하사를 잡아끈다. 두세 명이 나가지 말라고 잡아끄는 것 같다. 너만 살 거냐고 분노하는 것 같다. 순간 옆을 보니 한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죽은 사람 같지 않다. 산악헬멧으로 인해 십자로 용접된 헬멧의 안구만이 검게 보인다.


저 심해에서 산소가 떨어져 조용히 죽은 잠수사 같다. 그 검은 안구 안에서 뜻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도 살고 싶다. 나도 나가고 싶다.’ 두정안이 살아 숨 쉬며 말을 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안구가 흔들리며 뜻이 바뀌었다. ‘넌 살아라. 너라도 나가.’ 그 검은 안구가 팔을 들어 하사를 문 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그 힘은 미약했으나 김하사는 폭풍 같은 탄력을 받았다. 누군가가 중요하지 않다. 선택된 게 자기란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 검은 안구는 고맙다고 말로만 할 그것 엄청난 이상이었다. 흔들리는 안구는 포기와 좌절로 오열하는 듯하다.


조종실을 향해 앞으로 기운 각에서 조금 완만해졌을 때, 김하사는 드디어 문 근처에 섰다. 또 다시 양철판 때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두두두둑 또 밑이 뚫리고 내부는 먼지와 파편이 비산한다. 내장을 끊는 비명과 욕설이 들린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람 눈을 현혹하고 공포로 몰아넣는... 불! 노란색 불이 일어났다. 분명 코에 날카로운 항공유 냄새가 온다. 군장의 탄약에 맞을 수도 있다.


어깨를 누가 움켜쥔다. 고개를 돌리니 공군 근무자 악을 쓰고 있으나 알아듣지 못했다. 불은 다시 몸을 얼게 만들었다. 하사 앞에서 기던 사람들은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사 뒤에 기어오는 사람은 없다. 메인패스트 앞쪽 몇 명이 군장을 해체하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 김하사 역시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오라! 빨리 오라! 그러자 근무자는 하사의 어깨를 퍽 쳤고, 문으로 끌어 하사를 밀었다. 마지막, 하사 몸이 문가에 걸렸을 때 근무자는 분명 발로 밀었다. 김하사는 이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자기를 밀어준 그 산악헬멧 검은 안구를 바라봤고, 안구는 이제 자신을 보지 않고 자기 정면을 보고 있었다. 헬멧이 꺼이꺼이 흔들린다. 가슴도 들썩인다.


이제, 밀던 근무자 몸이 하사에게 완전히 붙었다.


김하사는 공군 근무자와 같이 공중으로 나왔다. 갑자기 암흑으로 훅 내던져졌다. 엄청난 지구 중력이 그를 내리 끌었고, 상황은 근무자나 김하사나 똑같았다. 립코드! 립코드! 예비산 개방손잡이!


그 상황에서도 하늘의 별은 빛났고, 김하사는 등이 땅으로 간 상태에서 서서히 돌고 있다는 걸 별을 보고 알았다. 군장은 땅을 향해 쏠리며 돌고 있었고 손은 예비낙하산 개방손잡이를 더듬었다. 공군 근무자는 붙어 있다가 서서히 공중에서 멀어졌고, 멀다 싶을 정도로 1미터 격리되었다.


귀를 가득 채우는 고요와 함께 바람소리의 등장. 엔진소리가 사라지고 얼굴은 서서히 별이 없는 곳으로 돌려지고 있었다. 땅을 향해 돈다. 손은 슬로우비디오처럼 더듬어 립코드를 잡았다. 그런데 또 뭔가 걸린다. 움켜쥐었지만 당겨지지 않는다. 다시 팔꿈치를 몸 앞으로 들어 다시 당겼고, 그러자 립코드가 쑤욱 밖으로 당겨져 나간다. 예비산 립코드를 따라 나오는 철끈이 하사 눈앞에 보였다.


'이게 꿈은 아냐?'


처음이었다. 예비낙하산이 열리면서 보조낙하산이 하사 몸을 옆으로 타고 나간다. 그 보조낙하산은 공수교육 시범 때 보고 처음이었다. 하사는 반신반의였다. 슈트가 제대로 전개될지 모른다. 슈트와 산줄이 군장에 걸리는 게 가장 위험하고, 걸리면 그걸로 끝이다. 할로처럼 충분한 하강속도와 장력이 보조산을 꺼내주지 못하고, 그러면 보조산이 산줄과 카나피를 꺼내주지 못한다. 공수교육대로 개방된 예비산 안에서 카나피 덩어리를 뜯어 앞으로 던지려 했다.


그때 쓸데없이 장갑을 꼈다는 걸 사무치게 후회했다. 맨손이어야 예비산 뜯어 던지기 쉽다. 그러나 세상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 멈춘 그림에서 눈앞에 예비산 카나피 나가는 게 천천히 보였다. 하사는 어느 순간 꽉 묶였던 호흡이 풀리면서 동시에 퍽 산개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좌우로 계속해서 뱅뱅뱅 돈다. 혼돈에서 55% 안정이 되돌려졌다. 남은 45% 때문에 아직 끝은 아니다.


시체처럼 매달려 조종줄도 빼지 못한 상태에서 하사는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화이바 없는 머리에 물기가 흥건하다. 땀으로 인해 머리는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 멀어져가는 수송기가 보인다. 수송기는 훈련 때처럼 어둡지 않았다. 환하다. 노랗다... 완만한 각도로 떨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분명 수평으로 날고 있지 않았다. 하사는 무의식적으로 수송기를 향해 손을 뻗어 멈췄다.


떨어지면 안 돼.

떨어지지 마.


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한 바람. 북한 상공의 바람소리... 차가운 바람이 멍한 하사의 얼굴에 쏟아 붓는다. 눈을 크게 감았다 뜨고 머리를 털고, 손이 라이자를 타고 올라가 조종줄을 더듬는다. 생각에 의존하지 않는 몸이 알아서... 착각. 니미 조종줄 없다. 이건 MC-1이 아니라 예비산 멍텅구리다.


조종줄을 잡았지만 몸은 꼬인 산줄 때문에 계속 돌고 있었는데, 그 도는 360도 아무리 돌아보아도 공군 승무원 낙하산이 안 보인다. 먼저 낙하산을 펴서 위에 있을 리가 없었다. 하사는 속에서 넘어오는 두려움과 슬픔을 악물고 씹는다. 침을 삼키려 해도 침이 고이지 않는다.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진짜 공포가 온다. 온 몸이 후들후들 떨리는 두려움. 멈추지 않는다. 북한... 고립무원. 김일성광장 열병식. 무장공비. 총폭탄정신. 이런 씨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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