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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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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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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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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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골프 브라보 6

DUMMY

떠오른다. 아군 시신에 연관되는 총은 모두 노획했지만, 자기들 누군가 맞은 사람의 부상자 혹은 시신과 소총만 회수하고 권총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권총을 생각하기 전에 아군 소총 세 정을 이미 노획한 거다. 둘러보니 자리에 화약냄새가 나고 흑자주색 물감이 여기저기 보인다. 하사는 재빨리 버튼을 눌러 탄창을 확인했다. 탄창에 네 발. 슬라이드를 당겨 보니 약실에 한 발, 총 다섯 발. 첫 탄창인지 모르지만 권총의 주인도 몇 발을 쐈다.


하사는 이상하게 안도했다. 그래도 총은 총이다. 대검을 집어넣고 권총을 잡는다. 일단 탄창과 약실 총알을 다 뺀 뒤에 점검했다. 자물쇠 기능 위치. 슬라이드를 당겼다 밀어 공이 격발. 권총 기능은 서양의 각별한 커스텀 외에는 대동소이하다. 뺀 총알을 다시 탄창에 넣고 탄창 삽입. 후퇴전진해서 한 발 넣고 자물쇠를 안전으로 건다.


다시 이름 모를 세 전우가 있는 곳을 본다. 아직 적에게 억하심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 죽이고 죽는 과정에 들어왔음을 하사는 피부로 느꼈다. 발을 붙이고 거수경계를 올렸다. 단결...


갑자기 어찌됐는지 모르는, 아니 어찌 되었을 팀 동료들이 생각난다.


‘저 하늘과 이 땅은 알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살아 있음도...’




5. 간밤에, 드디어, 멀지 않은 곳의 총소리를 들었다. 총소리는 섞였지만 그 구분이 확실했다. 훈련 때 약간 쏘기도 했지만 보총 소리는 남쪽 총에 비해 구분된다. 그 소리를 들은 김하사는 3~5명의 아군과 적어도 소대급의 교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총소리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주시했다. 소리는 이동하고 있었다. 부대는 교전 자체가 목적이 아니므로 항상 이동한다. 그 이동하는 방향을 추정하면서 교전이 점차 소강상태로 빠지는 걸 알았고, 그때 자신이 이동할 방향을 상상으로 그렸다. 그렇다고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어떻게 방향을 잡을까 하다 GPS를 꺼내 자기 위치와 총소리 난 방향을 본다. 그리고 거기에 얹힌 산과 능선을 보고 연구했다.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까. 어디로 갈까. 총소리는 산의 중앙인 정상에서 꽤나 멀었고, 아마도 이 근거지 산은 5G가 버린 듯하다. 이미 노출된 산이라고 생각하고 어쩌다 지나갈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들을 잡을까 생각하다 하사는 봉우리와 연결되지 않는 능선길을 두어 개 골랐다. 다시 이동. 무전기가 원수 같다. 허리가 하사더러 누우라고 자꾸 비판한다.


그리고 그 능선 근처 수풀 속에서 하사는 이제 아침을 맞이한다. 저 멀리 밝아오는 태양에 모자란 잠을 멀리하고, 일어나 먼저 권총부터 들고 혹시나 스위치 확인. 귀를 열어 사방 소리를 듣는다. 아주 사소한 소리까지 저게 뭔가 고민하고 다음 소리로 넘어간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혼자가 되니 무척 민감해졌다.


사방을 둘러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한 하사는 수통과 특전식량을 꺼낸다. 이제 남은 특전식량 두 봉지. 이틀 이상 넓혀서 나눠 먹기로 했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 봐도, 가슴과 팔을 만져 봐도 벌써 살이 많이 빠졌고 혁대는 조금씩 계속 조여진다. 물도 최소한만 마신다. 먹고 마시는 걸 갑자기 늘이면 몸이 반응해서 급격하게 소모하기 시작한다. 군화는 침투한 뒤로 한 번도 벗지 못했다.


사령부 전문 받고 3일이 지났다. 어제 경과보고라도 하려고, 저 남쪽의 전파를 느끼려고 교신을 시도했지만 방위각이 안 맞아서인지 주파수대 교란이 심해서인지 실패했다. 그 중간에 5G 어느 팀이라도 무선보고가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그랬다 치더라도 이제 김원기 하사의 원래 목표와 TOT로 단독으로 이동해 작전하는 건 너무 먼 이야기 같다. 그래도 종종 하늘을 날아가는 제트엔진 소리는 위안을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공권은 아군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규모 항공단을 파견하는 일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렇다면 정말 말마따나 3차대전이란 말인가? 노바소닉으로 상공을 관통하는 기체는 대한민국 공군이나 미군이 확실했다.


특전식량 1/3 정도를 먹은 하사는 잔유물을 정리하고 다시 조준경을 들어 보다 먼 사방을 천천히 관측한다. 밤에 관측한 곳은 낮에 반드시 재관측해야 한다. 밤과 낮의 지형은 많이 다르다. 밤은 지형의 반을 상상력으로 인지한다. 밤에 입력한 상상의 관측을 낮에 적용하면 안 된다. 하사가 생각해보니 이미 5G는 일주일 넘게 작전했고 병력 손실이 있었을 거다. 몇 명 남았는지 모르지만 한 30명 남았다 해도 이 넓은 산과 섹터에서 만나는 게 쉬울 수 없다. 그럼 어쩌는가? 다시 GPS를 꺼내 이 산을 중점으로 다시 지역을 골똘히 바라보며 생각한다. 일단 작계 목표도 모르고 집결지 은거지 다 모른다. 하사가 목격했던 건 크기나 시기나 팀 은거지였다.


인근 산악도 계속 훑는다. 자신이 지역대장이라면 현재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적은 아마도 일대에서 추격작전을 벌이고 있을 거다. 그들은 토벌작전이라 하겠지. 감이 안 온다. 이대로 계속 추정하며 돌아다녀? 밤까지 이 능선에서 이동하는 걸 기다려? 과연 나타나기나 해? 아니 북한군이 나타나는 거 아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냥 제대 작전에 속해 있다면 이렇게 골치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훅. 훅. 휙.

김하사는 권총을 움켜쥐었다. 바람을 타고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기운이 밀려온다. 본능적으로 권총 자물쇠를 사격으로 돌리고 천천히 수풀 밖으로 시선을 내민다.


그때였다. 누군가 훅 앞으로 지나간다. 하사와 능선길은 10미터. 순간 하사는 군장을 빨리 지려고 했다. 훅 지나간 그림자는 전력질주에 가깝게 뛰어 지나가 버렸다. 분명 북한군 복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복장은 북한군인데 뭔가 좀 남루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군 총을 휴대한 것 같았다. 분명 총에 조준경 같은 게 있었다. 하사가 잠시 생각해도, 아군이 북한군 복장을 입고 있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사 팀의 화기와 경계조는 항상 넘어가면 북한군복 취득에 관해 말하곤 했다. 어쩌면 갈아입은 아군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이 능선을 뛰는 사람이 과연 북한군일 수가 있을까? 일단 따라가 보기로 결정하고 급하게 군장을 지었다. 그리고 능선길로 발길을 내딛어 다가서는 순간...


능선길 오른쪽에서 누군가 또 뛰어온다. 나무에 의탁해 몸을 비스듬히 바라보는데, 좀 떨어졌지만 군복은 또 북한군이다. 같은 제대, 혹은 같은 팀?


‘어떻게 의사를 전달하지? 그냥 멧돼지! 불러? 진짜 북한군이면?’


군복 물체는 계속 뛰어오고, 하사는 아무래도 5G를 발견한 것 같다. 빠르게 다가오는 그림자는 놀랍게도 어깨에 견장이 있는 군관 복장이었고 AK 보총을 들고 있었다. 북한군 소대장 중대장이 전투에서 AK를 든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기분이 든다. 그럼 확실하다. 확실한 것 같다. 이 시간에 북한군이...? 그리고 하사가 기억하건데 어젯밤 저 멀리 총성이 울렸던 방향에서 오고 있다. 전형적인 도피탈출!


군복은 빠르게 다가오고 하사는 혹시 몰라 권총을 들고 소리칠 준비를 한다. 무의식중에 원형 챙 위장모도 머리 뒤로 넘겼다. 뛰는 물체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근 10미터까지 가까워졌을 때 하사는 숨을 크게 들여 마신다. 군관은 계속 다가오고 하사는 목구멍을 열었다. 그리고 5미터. 3미터.

'

“멧돼지~~~!!!”


김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길가를 향해 다가섰다. 그러자 놀란 그림자는 뛰다 멈추면서 하사를 본다. 하사는 몸을 세워 그를 본다. 말과 생각이 멎었다. 서로가 같다. 북한군? 5G?


상대는 생각보다 복장이나 상태가 후출하지 않았다. 마른 몸에 광대뼈, 그리고 눈. 놀란 눈. 눈은 하사와 정면으로 응시했다. 북한군은 뛰기 위해 오른손이 AK 총열덮개를 잡은 상태로 멈췄다. 순간, 군관의 눈이 하사 얼굴에 고정된 상태로 왼손이 오른손과 교대해 총열덮개를 잡았고 오른손은 권총손잡이를 잡으려 한다. 하사는 미완의 의식과 마주했다. 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사 자신도 모르게 권총 든 손을 들었다. 상대의 보총 총구도 수평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 무거운 공기. 갑자기 무거워진 대기의 중력이 시간을 느리게 한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얼굴. 파란을 예고하는 눈. 어깨의 벽돌 견장. 단 2초가 흘렀다. 뭐가 다르다. 하사가 동료들에게서 느꼈던 공기와 다르다. 완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다르다. 한 마디로, 전우로 보기에 이상하다. 군관 눈은 점차 넓어져 김하사 복장을 본다. 눈알이 갑자기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벌어지는 입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 어...


‘적!’


둘은 동시에 당겼다. 푸엉 푸엉 푸엉... 광풍이 휩쓸고 화약이 코를 찌른다. 귀가 멍할 뿐 소리에 구분이 없다. 하사 귀에는 자기 권총 소리만 들린다. 앞뒤로 철컥거리는 권총 슬라이드. 도리질 치며 약실을 탈출해 공중으로 날아가는 탄피. 노리쇠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고요와 대비되는 굉음과 충격. 뭔가 다른 냄새. 눈이 먼저 싸우고 서로 행동으로 죽인다. 사람에 대고 처음 총을 쏘다... 자기가 죽을 수도 적 같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하사는 총알을 맞는다는 생각에 쏘는 중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이어지는 권총의 반동 속에 마지막으로 철커덕 강하게 기계가 걸린다.


정적. 방아쇠를 당겨도 반응하지 않는다. 하사는 순간 몸 어디가 문제인가 느낌으로 본다. 잘 모르겠다. 하사가 천천히 군관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린다. 몸이 소스라친다. 그 소스라침 속에서 자기 몸에 아주 큰 이상이 없다는 걸 알았다.


하사는 보았다. 자기 앞에 널브러진 사람을. 더욱 강력한 보총 총알은 하사를 적중시키지 못했다. 하사의 권총 슬라이드는 뒤로 젖혀져 고정되었고 빈 약실은 하얀 연기를 토한다. 상대 상체에, 눈에만 구멍 네 개가 적중되었다. 거리가 워낙 가까웠다. 그리고 네 개 중 하나는 이마에 구멍을 냈다. 군관은 쏘기 전 입을 벌린 그 상태로 갔다.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하사는 아군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켓을 뒤졌다. 수첩. 신분증... 사진과 이름! 아군이 아니다. 아닐 거야. 정말 아닐 거야. 아군이 이 시기에 신분증까지 위조할 수 없다. 누가 일부러 증명사진을 가져와 거기 붙였겠는가. 적이었다. 몸을 뒤진다. 북한 군번표. 군번표와 신분증이 일치한다. 위조는 불가능이다.


‘그냥 적이잖아! 이게 무슨 상황야?’


하사는 첫 북한군이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권총을 수풀 무성한 데 멀리 던지고 AK를 잡았다. 죽는 순간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총이 군관 양손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확 당겨서 총을 낚아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찰라.


‘뒤에 적이 더 있어... 이 군장으로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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