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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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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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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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다섯 골프 브라보 7

DUMMY

짧은 순간, 하사는 뭐가 떠올랐다.

‘뭐라도 지연시켜야 돼!’


군관 누운 시체를 엎어지게 돌리고, 조끼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 뽑고 안전손잡이를 꼭 잡은 다음 시신 한쪽을 들어 밑에 수류탄을 놓고 천천히 살포시 덮었다. 그리고 예비 탄창 수거.


‘이게 되나?’


하사는 첫 번째 북한 군복이 사라진 쪽으로 뛰었다. 힘든 느낌이 안 든다. 군관 뒤에 누가 있다는 공포가 몸을 가속시킨다. 일단 멀어져야 한다. 멀어져야 한다. 무조건 멀리...


2분 뛰었을까... 뒤에서 꽈릉~!!! 폭음이 들린다.


‘적이 있었어... 뒤에...’


순간 하사는 길에서 수풀로 들어갔다. 낮게 숨죽여 엎드렸다. 그러나 적은 곧바로 그리로 오지 않았다. 수류탄 폭발로 피해가 났나?


그 수풀 속에서, 만약 적들이 달려오고 자기가 간파되면 그냥 쏘겠다고 AK 총구를 들었다. 문득 새로 노획한 AK를 보던 하사는 놀랐다. 듣거나 느낄 경황이 없었지만, 그 보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자물쇠가 안전에 걸려 있었다. 자신은 당연히 사격 위치라고 생각해 총을 만진 적이 없고, 조심스레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지 않고 뛰었다. 총구를 들면서 무심코 남쪽 AK 훈련 때처럼 엄지로 자물쇠를 더듬다 깜짝 놀랐다. 총을 쏜 건 하사 혼자였다. 하사의 권총만 총알이 나갔다.


김원기 하사는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꼈다. 발사되었다면 하사는 분명 죽었다.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생사가 한번 교차된 것이다... 기다린다. 그러나 시간은 점차 흐르고 적은 안 온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사방을 본다.


‘길을 피해 저 방향으로 가자...’


하지만...

앞서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가다가다 이제는 방향에 혼돈이 온다.


정오가 지나 오후로 가고 있다.

다섯 시간을 걷고 뛰었다.

체력에 한계가 오고 허리가 끊어진다.


군장 무게에 못 이겨 하사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주저앉는다.


더 이상 앞서 뛴 사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누가 듣던 말던 쌓인 분노로 고함을 질렀다.


“야이 씨발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나한테 왜 이래~~~!!!”


메아리가 산악을 울린다.

산만 고요히 듣고 있다.





6.


[송신 : 4763 수신 : 8723. 내용 : 00산 도착 수색 중.

5G 아직 연결 못함. 팀 은거지 발견 신원미상 아군

전사 3. 5G는 00산에서 은거지 이동함. 계속 찾아

5골프 개통 완수하겠음. 통일.]


[송신 : 8723 수신 : 4783 내용 : 명령하달 2일 후 5G 7C

보고전문 1회. 골프 규합 시 교전발생. 이후 다시 교신두절.

은거지 이동 미상. 골프작전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함. 필시

연결하여 개통 할 것. G장과 조우하면 필요시 골프작전에

당 B(브라보) 병력증원 가능함을 통보 할 것. 북쪽에서 당 B

다른 골프 정찰조가 5G를 수색하고 있음. 정찰조 암호 돌고래.

반드시 연결돼야 함. 통일.]


7. 김하사는 공상한다. 왜 그렇게 북한군복 입은 사람이 도주하고 군관이 쫓아갔나. 앞서 뛴 북한군이 탈영병이라도 되나? 아닐 거다. 북한군 여건이 아무리 안 좋아도 그렇게 남루할 수 없고, 산중에서 작전하다 도망을 가? 조준경 달린 거 분명히 봤다. 그렇다면 총은 남쪽 것인데 이상하게 총은 기억 안 난다.


특전조끼는 안 입었고 , 대신,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군의 전통적인 장구류가 없었다. 하전사 복장에 추격부대라면 장구류가 달려 있어야지. 그에 비해 군관은 지도가방과 권총집 탄창집 수통 등 장구류를 달고 있었다. 앞에 뛴 사람이 전사 하전사라면 흔히 보는 AK용 탄창 베스트라도 있어야 했다. AK 탄창은 호주머니에 넣어 휴대하기에 크다. 좀 더 일찍 머리를 내밀고 조준경으로 살필 수 있었다면 금방 알아챘을 것인데... 이제 추정으로 상상할 뿐.


정황으로 볼 때, 앞서 뛴 사람은 아군이 맞는 것 같다. 맞다면 그건 거의 5G. 그렇게 가깝게 군관과 레이스를 벌인 것은, 어떤 상황에서 북한군복 입은 대원이 북한군과 가까이 있다가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어둠 속에서 붙어 있다가 동이 트니 튄 건가? 위험상황에서 북한군에게 붙었다가 동이 트자 도주해? 그런데 왜 군관은 추격하면서 일찍부터 총을 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그 이전에 총을 쏴야 했던 것 아닌가? 군관과 조우했을 때도 그렇지만, 아무리 얼굴이 남한사람 같다 북한사람 같다 해도 한반도에 비슷한 얼굴은 있다.


알게 모르게 풍기는 뉘앙스가 분명 있었다. 앞에 뛴 사람은 그냥 무의식적으로 남한사람 아군 같았고 군관은 군관. 무의식중에 몸 냄새라도 맡는 것일까? 0여단을 가본 적은 없지만, 뛸 때 분명히 왼쪽 어깨에 걸친 총의 총구를 쥐고 뛰었다. 김하사도 단독군장 산악구보 할 때 그렇게 뛴다. 흔드는 팔은 그래도 오른팔이 힘을 낸다. 김하사로 인해 뒤에서 총소리까지 났으니 달리던 북한군복은 그때부터 더욱 더 전력으로 도주했을 것 같다. 여기서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뭐가 일어난다는 걸 김원기는 터득했다. 평상시는 지루하지만, 사건은 그 지루함 와중에 훅 온다. 지루함이 오래 되어 적응될 때가 위험하다. 이 지루함이 지속될 거라고 착각하다가 순간 당한다는 것.


김하사는 이동하면서 아군 게 분명한 흔적을 봤다. 밑창이 확실한 발자국과, 특히 표식 가지. 그런 표식은 교리처럼 통합된 게 아니라 여단이나 대대 지역대 별로 서로 약정한 것이다. 바닥에 놓인 분명한 표식 가지도 봤고, 일부러 머리 위 가지를 반 정도 부러트려 방향을 지시한 것도 봤으나, 시간이 흘러 꺾인 부분의 물기가 바짝 말라 딱딱해져 있다.


머리 위 꺾인 가지를 보고 김하사는 참 머리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게 수평을 주로 본다. 특히 수풀 수목이 많은 곳에서는 머리 위쪽을 잘 못 본다. 꺾인 곳이 말랐다는 건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고, 계속 이동하는 전술로 볼 때 그걸 따라간다고 표식자를 만날 수 없다. 최근 게 필요하다. 산악의 크기로 볼 때 장비를 은익한 무인포스트 같은 건 못 찾는다. 그렇다고 저 밑으로 내려가서 5G가 타격하는 걸 기다릴 수도 없다. 내려가고도 싶지만, 항상 통신을 생각하다보니 앞이 트이고 높은 능선이 마음에 든다. 남에서도 그런 곳을 지날 때면 나침반을 꺼내서 사령부를 향해 방위각을 한번 보곤 했다.


‘그나저나 내가 이상한 놈인가? 사람 죽이면 뭐 계속 떠오르고 죄책감 느낀다던데. 난 별로야. 잠만 잘 와. 잠이 모자라서 걱정이야. 꿈에는 뭐 아무 것도 안 나와. 군관 얼굴은 희미해지고 AK 발사 안 된 거 다행이란 생각만 계속 떠올라. 사람마다 다른가? 총은 참 편리한 물건이야. 죽였다는 기분과 좀 별개야. 사회에서 사람 죽였다 그러면 칼로 찌르고 뭐로 때리는 건데, 총은 뭐...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총이 죽인 거 같아. 견장 기억 안 나.'


'계급 뭐였던 거야 그 군관. 나이는 좀 있어 보이던데. 가족에겐 미안하지만 지가 삽질한 거 어쩌라고. 내가 죽는 것보단 낫지 뭐. 아, 이제 물도 어디서 좀 구해야 돼. 지난 번 은거지 근처에서 한번 뜨고 수통 말라간다. 카멜백 들고 온 놈들이 부럽다. 아니지. 내가 아는 카멜백들은 수송기에서 나오지도 못했어. 오늘 밤도 총성이 울려야 할 텐데... 나도 무리에 합류해서 제발 작전 좀 뛰었으면 좋겠다. 명령이라지만 3일간 거의 놀다시피 했더니 씨발 아닌 거 같다. 이젠 먹을 게 없어. 이러다 내가 먹을 거 때문에 내려가는 거 아냐? 미치겠네.’


점차 허리가 더 안 좋아진다.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 그나마 풀밭에 완전히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을 때나 그래도 허리가 안전하다. 척추가 비틀려서 근육이 놀란 건지 힘줄이나 신경을 건드린 건지, 아니면 정말 추간판이 탈출한 건지 너무 힘들다. 말마따나 척추에 금이 갔나? 허리를 아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상태로 힘이 드니 정말 다 죽이고 싶은 살기가 불쑥불쑥 올라온다. 쉬어야 올바른데 그럴 수도 없고, 그냥 산에 혼자 숨어 있는 건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했다.


점찍어 두었던 두 번째 능선길에서 또 밤을 맞이한다. 밤하늘에 또 노바소닉 붐이 북으로 올라간다. 지금쯤이면 항모에서 뜬 미 해군도 날아올지 모른다. 어쩌면 이 전쟁이 미군은 초현대식인데 김하사 부대만 전근대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 땅은 전근대적인 거 맞다.


알려진 중국 군사전문가가 그랬지. 남한이 공군 전투력은 북에 10배, 해군은 100배라고.


그저 듣기 좋은 소리 했다 하고 반까이 쳐도 북한공군과 해군은 정말 노후되었다. 핵미슬 때문에 비행기 탱크 함정 녹슬어가는 거지. 군 전투력을 전혀 모르는 젊은 독재자는 핵으로 진짜 장군 칭호를 받고 싶어 했고, 부임하자마자 장병들 급식향상이라면서 전 부대에 콩을 심고 병사 3인당 염소를 키우라 해서 군대가 빡돌았다지? 키워서 염소 젖을 급양에 쓰라고? 심을 콩 씨앗이 없고 새끼를 깔 염소가 없는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니까 한 마디로 군대를 모르는 거다. 아빠가 준 호위국 없었으면 쿠데타 났을 거다. 그런 군대가 과연 이 전시에 어떤 계통으로 돌아가기는 하는 건지 잠시 웃기다. 경직된 전제정권은 군대를 바보로 만들기 일쑤다.


허리에 힘을 빼고 누워서 손목 야광침을 봐도 시간 참 더디게 간다. 이제 시간만 나면 누워서 허리를 쉬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넋 놓다가는 지난번 같은 일을 또 당하니 편하게 잠이라도 들었다간 또 뭐 훅 지나간다. 밤엔 식별 암구어도 조심해야 한다. 적막한 산의 능선. 아무리 남쪽을 봐도 섬광 같은 게 안 보인다. 아직 전선은 남쪽 멀리 있다.


김하사가 수송기에 오를 무렵 아군이 개성에 근접했다는 말을 들었다. 기뻐하라 했다. 그러나 그게 기뻐할 말이 아니었다. 사나흘이 지났는데 여전히 개성? 그럼 평양은 언제 가고, 김하사가 갈 그 북쪽은 언제 온단 말인가. 기뻐할 줄 알고 전해온 개성이 곧 점령된다는 말에 김하사와 지역대원들은 넋을 잃었다. 어이가 없다. 단기 전격전일 줄 알았다. 중국군이 압록강변으로 몰릴 게 틀림없는데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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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다섯 골프 브라보 6 21.01.15 388 20 12쪽
172 다섯 골프 브라보 5 21.01.13 354 22 13쪽
171 다섯 골프 브라보 4 21.01.11 379 17 11쪽
170 다섯 골프 브라보 3 21.01.08 384 22 12쪽
169 다섯 골프 브라보 2 21.01.06 379 18 12쪽
168 다섯 골프 브라보 1 21.01.04 463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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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개도 잠든 밤 2 20.12.30 397 18 13쪽
165 개도 잠든 밤 1 20.12.28 417 18 10쪽
164 안둘 바라기 2 20.12.25 386 23 11쪽
163 안둘 바라기 1 20.12.23 408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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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태운다 나의 거짓 3 20.12.18 375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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