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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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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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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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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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다섯 골프 브라보 5

DUMMY

김하사 지역대와 옆 지역대의 모든 작전은 사실 끝난 거나 다름없다. 수송기를 나간 많아야 열 명. 뭘 할 수 있나. 그것도 각자 흩어지고 목표지역에서 너무 떨어졌다. 올바른 작전이 되려면 1개 지역대도 한 수송기에 많다. 수송기가 북한상공 체류시간이 좀 길어져도 작전을 위해서는 팀강하로 돌아다니며 뿌려야 한다.


북한군 방공망 표적이 되겠지만. 억지로 한 비행기에 우겨 넣고 DZ를 축소 합병한 편리주의가 낳은 비극이다. 적재적소 2개 팀 정도를 정확한 곳에 꼽아 넣고 특수전을 바라야 한다. 그런데 그럴 자원도 공군의 지원도 어렵다. 북한에 자극을 받아 1970년 중반부터 계속 창설된 특전여단들. 일단 ‘북한으로 많이 넘어가라. 일단 많이 살아남아서 지지고 볶아라. 후방전선에 영향을 주어라. 많이 죽여라. 많이 때려 부숴라.’


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 많은 전문 보고서 중에 김하사 것 하나가 끼었을 것 같다. 중간에 다른 통사가 등장해 교신한다. 아무래도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사 하나 거취를 어떻게 할까 토의하고 이렇게 하라고 하달을 내려? 그런 군대라는 걸 김하사도 믿지 않는다. 지금 북한 전역에서 엄청난 작전들이 벌어지고 있다. 무전 대기를 몇 시간 할 수도 없고, 그 몇 시간 안에 사령부가 움직여 정확히 넌 이렇게 하라 내려올 가능성이 과연 몇 %인가. 만약 추가 하달이 없으면 김하사는 일단 북으로 계속 가야 한다. 가서 자기 팀 목표를 찾아서 흠집이라도 내야 작계이고 받은 명령의 수행이다. 군말 없으면 그대로 해야 한다.


‘아무래도 무리지? 나 하나 어떻게 하냐고 묻는데 대답을 줘?’


김하사는 안테나 걷고 무전기를 끈 다음 계속 북으로 가다가 내일 정도 다시 시도하는 게 올바르다 생각했다. 그러면 개통 즉시 하달전문을 곧바로 송신해줄 거다.


그렇게 김하사가 포기하려 철수하려는 순간. 걱정은 기우였다. 정말 놀랐다. 김하사 호출부호가 타전되더니 수신전문 받으라 한다. 일단 숫자로 받은 전문 길이가 적지 않았다. 김하사를 부르는 사령부 통사의 호출부호는 정말 감격이었다.


수신이 끝나자마자 볼펜이 종이 위를 난다.


'오...'

한글 나온다.


[송신 : 8723 수신 : 4763

내용: 귀 통사는 작계목표와 TOT를 포기하고. 0X 2B 5G와

합류할 것. 침투 3일차 작전보고 후 지역대 통신 두절.

그들을 찾아 합류해 무선보고를 재개할 것. 위치: 평안남도

성천군 00리 00산. 5G 작계는 보안이며 사령부는 상황을

강하게 우려하고 하고 있음. 5G 목표는 필히 달성되어야 함,

합류할 경우 지역대장/지휘관에게 통보해, 반드시 목표달성을

촉구하라. 추후 지원이 필요하면 귀 통사가 요청할 것. 반드시

이 명령은 수행되어야 함. 5G 암구어 멧돼지. 이상. 전진통일.]


'뭐라고?'


하사는 난감했다. 자기 여단이 아니다. 다른 여단 제대에 가란다. 대체 5G는 어떤 상황이고 목표가 무엇이길래? 상황이 어떻기에 무전기가 모두 먹통이 되었단 말인가. 모든 팀 무전기가? 김하사는 일단 GPS를 꺼내 알려준 걸 일반명칭으로 찍었다.


고민 고민 추산한 결과 김하사와 그 5G는 불과 20km 거리. 자신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바로 그 거리였다. 여단이 달라도 아주 별다르지 않다. 모든 여단들은 서로 떨어져 뭘 하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동기나 누구를 만나보면 사령부에서 내리는 훈련강령이나 훈련과목이 똑같다. 여단마다 약간 특징적인 것이 (특히 창의력이 화려한 여단장) 들어가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한 사령부 관할에서 돌아가는 교육사단 제대와 비슷하다.


김하사는 의문했다. 아니 인접 지역대가 있을 텐데 왜 자신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가. 그 대대 지역대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나? 아니면 5G 단독의 뭣이 있나? 하사는 일단 중요한 것만 수첩에 메모하고 전문을 파기했다. 수첩을 수시로 봐서 암기가 되면 요약한 것도 파기해야 한다. 통신은 항상 포로로 잡힐 때를 대비해야 한다. 지휘관 다음으로 아는 것이 많다.


그래도 김하사의 목표가 생겼다. 아무리 산악이라고 해도 20km는 부대에서 행군거리로 별로 치지도 않는 거리다. 다시 GPS를 찍어 확대해 주요 지형을 지도처럼 수첩에 그린다. 그 산까지의 거리, 접근방향, 민가, 도로, 산에 붙은 산들 구조도. 이것도 암기한 후 조만간 파기해야 한다.


문제는 병기. 대검 밖에 없다. 김하사는 대검을 달았던 위치에서 떼어 빨리 뽑을 수 있도록 특전조끼 허리에 수평으로 결속했다. 아무 의미 없을지 몰라도, 대검을 빼서 반짝이는 날을 확인하고 다서 넣었다. 거기서 방위각을 잡고 먼저 눈에 들어오는 봉우리를 하나 찍었다.


‘저기 가서 다시 GP 찍고 다시 방위각과 참고점...’


김하사는 군장을 지고 일어섰다. 이제 목표가 생겼다. 앞전보다는 마음이 편해졌다. 멧돼지? 내가 다른 여단으로 가다니... 허리가 또 전선이 불타는 듯 뜨겁다.


어디서 들은 것 같다. 타는 목마름으로?


목마름은 타는 것이 아니라 인고하는 것이다. 갈구하는 건 쟁취하는 그날까지 조용히 숨기고 움직여야 한다. 목마름은 방지하는 것이다. 목마름이 오기 전에 물을 참아야 한다. 체질화되고 일상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꾸준히 꾸준히 가는 거다. 가는 게 중요하다. 오래도록 계속 가야 한다. 쓰러지지 말아야 한다. 쓰러지면 진다. 언제까지라도 존재하며 상대를 괴롭히고 조소해야 한다. 엄청난 폭풍 속에서 여전히 살아 상대 상상력을 조롱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험으로 지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단 한 번의 결전을 위해 모든 지혜를 동원한다. 군인. 적을 제압하고 제거하기 전, 그 전에 꾸준히 오래 가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방아쇠는 그 꾸준하게 가는 와중에 종종 당기는 것이다. 결국 군인은 그 순간의 스파크를 위해 조용히 참고 참으면서 흐트러지지 않고 가는 것.



4. 김하사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산 기운이 이상하다. 일대가 긴장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긴장감이 존재한다. 자기 때문인가 반문한다. 그런데 땅. 눌린 발자국들. 심하게 부러진 가지. 떨어진 잎사귀. 나무에 긁힌 상처. 자세히 보니 총알이 때린 거 같다. 수류탄 같은 것도 터졌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 탄피들. 이어 자주색의 흩뿌림. 어울리지 않고 자연을 교란시키는 상한 냄새. 직감. 그걸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그게 뭔지 안다. 김하사는 머리가 띵해지면서 일단 재빨리 수풀로 들어가 사방을 관측한다. 천천히 군장 벗고 수류탄과 대검 챙겨 허리 굽히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은거지였어... 이건...’


김하사는 알아차렸다. 은거지 내습상황이 있었던 거다. 일단 지형 모양과 위치가 딱 은거지 구성에 적격이었다. 그러나 안 보고도 뭔지 아는 것은 단지 아는 것이고,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은 김하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높은 산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저들 입장에서 사살한 게릴라 시신을 저 산 밑까지 헬기도 없는데 운송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적어도 자기들 시신이면 몰라도.


그들은 세 구를 대충 가지로 덮어 놓았다. 짐승이 시신 일부를 뜯어먹었다. 명찰도 계급장도 훈련휘장도 없다. 이들이 혹시 휴대했을 개인적인 수첩이나 가족사진 등 그 모든 걸 그들이 가져가 아무 것도 없다. 사실 가져왔을리도 없다. 금지사항이었다. 아마도 4-5일 전... 일어난 일. 가지를 치우고 그들을 보았지만 아는 얼굴은 없다. 전혀 아는 얼굴들이 아니다. 같은 여단이라면 이름과 계급은 몰라도 얼굴이 낯익을 수 있다.


그리고 특전복... 모든 병기와 물품은 빼내 사라졌다. 원래 군번줄은 휴대도 안 했을 것이고 특전조끼도 벗겨갔다. 아무리 뒤져도 그게 5G인지 5G 어느 중대인지 알아볼 뭔가가 아무 것도 없다. 싹 다 들고 갔고 남겨진 건 탄피와 수류탄 안전손잡이 정도. 혹시 중대나 이름 주기가 있을 군화도 모두 벗겨갔다. 김하사는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에 하얀색 뭉게구름. 전쟁. 산새소리만 들리는 산중.


이 사람들이 그 지역대인가? 5G는 어디로 갔나. 이 산에 있을까? 적 추격을 피해 이 산에서 멀어졌다면? 그럼 어떻게 조우하지? 그러나 곧 현실을 깨달았다. 못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만날 수 있다. 왜?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성이 울릴 테니까. 그게 저 멀리 산이면 그리로 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받은 명령대로 그들을 찾아 합류하고 통신을 재개시키는 것이다.


셋을 본다. 여단은 다르지만 그냥 셋이 아니라, 전우다. 한 명은 얼굴을 보니 적어도 중사 고참 담당관 부중대장 같다. 마음 같아서는 묻어주고 싶지만 삼단삽도 없고 세 명을 충분히 묻는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한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건 위험하다. 김원기는 어떤 종교에 다니는 건 아니었으나, 이미 부패되고 있는 세 전우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예우라도 하고 싶었다. 조용히 한 명씩 신께서 아름다운 영면으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려고 똑똑히 봐두었다. 언젠가 실종 상태에서 자신이 참고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얼굴들을 나중에 국방부 증명사진과 대조해 일치시켜야 한다.


‘여기서 더 깊고 이동이 힘든 곳으로 들어가, 총성을 들을 때까지 은폐하다 결정하자. 그런데, 혹시.... 총. 총 없을까? 총이 필요해.’


5.56밀리 실탄은 군장에 넘치는데 총이 없다. 혹시 어디 수풀에 떨어진 총이 없을까? 김하사는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분히 돌아다녔지만... 없다. 혹시나 은거지 근처에 무언가 매몰한 게 없을까 흔적을 찾아봤지만 역시 못 찾았다. 이건 팀 은거지고, 팀작전에서는 그럴 이유도 없으며, 은거지 근처에 묻지도 않을 거다. 전사한 아군 숫자를 봤을 때, 죽은 숫자와 맞는 총을 일부러라도 찾았을 것 같다.


그러니 없는 거다. 결국 허탈하게 군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조준경을 꺼내 사방을 둘러본다. 어디 가서 있을 것인가. 어디서 대기하며 관망할 것인가. 혹시나 자신이 재집결지로 찍어볼만한 곳은 없을까? 아니다. 5골프가 재집결지를 선정했다면 여기서 꽤나 떨어진 곳일 거다. 일단 총소리를 들어야 판단이 선다. 하사는 한 곳을 찍었다. 한 30분 가면 도달할 것 같다.


‘산길을 피해서. 7~8부를 타자... 힘들어도 그래야 안전하다.’


하사는 다시 무거운 군장을 지고 일어섰다. 또 허리가 훅 불타면서 뜨거운 호흡이 넘어온다. 특전조끼에서 위장클립을 꺼내 얼굴을 녹색과 검정으로 칠했다. 모양은 상관없이 빈 곳이 없이 빽빽하게 칠했다. 유일한 무기인 대검을 빼들고 첫 발을 내딛는다. 30보 걷다가 다시 쓰러진 세 사람의 자리를 본다.


‘자리 잘 기억하자. 언젠가 찾으러 다시 올 수도 있어.’


사방을 둘러보며 지형의 특징을 익히고, 수첩에 메모한다.


이동 시작. 걸음이 무겁다. 저 사람들을 저대로 방치하고 떠나자니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든다. 발에 뭐가 툭 채인다.

‘......’

발에 채인 작은 무게감이 이상하다. 하사는 문득 발 아래를 본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 허리를 참으며 굽혀 수풀을 헤집어본다. 뭔가 딱딱한 게 잡힌다.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권총. 권총이다. 아군 것도 아닌 북한군 권총.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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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다섯 골프 브라보 3 21.01.08 384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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