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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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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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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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섯 골프 브라보 11

DUMMY

따라갈 수 없었다. 무거운 군장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통신장비가 가득한 군장을 버릴 수도 없고, 통신장비 중에서 추려서 버릴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여분이 전혀 없는 세트다. 배터리 하나 버렸다간 큰일 난다. 진짜 큰일은 무선불통과 무전기 개통 불가능. 여전히 40kg은 나갈 원수 같은 군장. 그걸 지고 번개 같이 퇴각하는 그들을 따라간다는 게 무리였다. 하사는 눈을 감는다.


‘그래도 진짜 교전을 했다. 5G를 구했어. 내가 쏘지 않았으면 큰일 났어. 여기서부터 다시 GPS 찍어 은거지를 추정해보자. 잠시 쉬었다가 그 방향으로 일단 가는 거야. 이 루트는 이제 안 쓰여. 나라도 그러지 않지. 저 방향으로 가긴 가는데, 이제 산에 적도 퍼져있을 것 같고. 저리로 간다고 되나? 다시 은거지를 추정해서 결정해보자. 뭐 어떻게...’


군장을 벗고 잠시 누웠다 일어나는 순간 하사는 알았다. 성대에서 컥컥컥컥 소리가 나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허리가 사람이 서 있게 할 수가 없다. 나무를 잡고 일어서지 않으면 도저히 그 고통을 감내할 수가 없다. 고통으로 눈물 없는 울음을 몸이 운다. 한동안 쓰러져 있다가, 몸을 뒤집어 엎드린 다음 무릎을 당겨 꿇고 양손을 밀면서 억지로 억지로 일어났다. 군장에서 5.56mm 실탄과 판초를 꺼낸 다음, 판초를 깔고 엎드려서 가진 탄창에 실탄을 삽탄했다. 그게 끝나자 탄창 꼽고 실탄 1발 삽탄에 자물쇠 안전으로 돌리고 돌아눕는다. 신음소리를 내면서 점차 온 몸에 힘을 뺀다.


총을 상공으로 세워 가늠자가 중앙에서 좌우 치우쳤나 확인...


울지 않기로 했었다. 쪽팔리게. 그런데 몸이 자꾸 들썩인다. 몸 중앙이 떨려온다. 안되겠다. 풀어버리기로 했다. 아무도 안 보잖아. 5G 만났을 때 우는 것보다는 나아. 다른 여단 앞에서 쪽팔리게... 하사는 손으로 입을 막고 울기 시작했다. 격렬한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에이 씨...’


적당히 울어라. 하느님도 가끔은 외로워한다.



12. 운명. 사전의 뜻 :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


양쪽은 순식간에 수풀을 돌아서다 조우했다. 양쪽 모두 즉각 총을 들어야 정상인데, 양쪽이 동시에 멈췄다. 허리 고통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피해 산을 오르던 김하사 앞에 갑자기 세 사람이 나타났다. 처음 든 생각은... ‘죽었다’. 그러나 상대가... 더러운 때가 묻어 있었지만 군복이 낯익은 디지털 픽셀. 그 픽셀을 자세히 보기 전에 이미 군복 모양이 확 들어왔다. 전술종합 3주차 정도에 산악에서 다른 지역대를 만날 때와 비슷한 기분. 군복의 모양. 특히 컬러.


그러나 김하사가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 앞은 변해 있었다. 정면에 선 사람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김하사가 앞사람 얼굴을 보고 있던 어느 순간 뒤의 두 명은 벌써 나무에 의탁해 총구를 들고 있었다. 서로 놀라 멈춘 건 같았지만 순간 반응은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김하사보다 두 배 빨랐다. 나무에 붙어 몸을 반쯤 가린 두 명을 번갈아 보니 표정이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의 눈초리는 의심을 담고 있었다.


“멧돼지.” 김하사는 말을 던졌다.

그리고 진짜 원하는, 정말로 원했던 말을 드디어 듣는다.

상대의. “멧돼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김하사 입장에선 셋 모두 낯선 얼굴, 그들 역시 김하사 얼굴을 알 리가 없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것에 적응이 되었지만, 이건 또 새로워 몸이 굳었다. 그 산 7부 능선에서 북한군이 아군복장으로 위장하고 나타날 리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다. 김하사는 그냥 봐도 자기보다 기수 낮은 사람이 없어 보였다. 그중 고참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무리 부정해도 담당관처럼 생겼다. 담당관 냄새가 난다. 김하사에 비해 셋의 몰골은 훨씬 더 초라했다. 길어야 일주일 차이로 그들의 행색은 훨씬 초췌했다. 양옆의 두 명이 천천히 총구를 내리기 시작했고, 김하사가 앞으로 나갔다.


“반갑습니다. 정말.”


그런 김하사가 좀 이상하게 보였는지 담당관은 뭔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씰룩이는데, 남은 두 명이 와서 악수를 청했고, 이어 포옹했다. 순간 김하사는 니미 씨발 드디어! 할 뻔했다. 담당관도 다가왔다. 김하사 등을 퍽척 쳐준다. 하사는 다시 물었다.


“멧돼지.”

“그래 멧돼지!”


하사는 하도 5지역대를 속으로 뇌까렸더니 그들이 다른 별에 사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사실 별다른 건 없다. 김하사는 너무 기뻤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척추가 뜨거워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군장이 땅을 쿵 치고 뒤로 기댄다. 허리로 인해 숨이 지글지글 턱턱 막힌다. 담당관이 나선다.


“어디 아프냐?”

“허리요.”

“이런, 북한에서 그럼 어째.”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 처음 보는 거 같다.”

“그러실 겁니다.”


“하사? 몇 기!”

“부후 000기입니다.”

“어이구 고생 많다. 나 담당관야.”

“단결.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 셋 다 중사다. 됐지? 정리...”

“아, 네...”

“이름.”


“김원기입니다.”

“쭉 들어라. 여기부터 지용철. 김영남. 나 권. 끝.”

“예.”


“담배 피냐?”

“주십시오.”

“너 북한말 썼으면 벌써 쐈다.”


담당관은 담배를 하나 김하사 입에 물려주고 성냥을 켰다. 한 모금 뿜은 하사가 얼굴에 땀을 씻어 내린다. 굳어져 있던 팔에 힘을 빼 K-2 든 손을 밑으로 내렸다.


“자물쇠 잠겨 있어?”

“네, 안전입니다.”

“그래 씨바, 그게 제일 무섭다.”

“사격장도 아니고. 여기서 오발한 놈이 있다니까.”


다른 중사가 끼어든다.

“000기면, 죽은 상윤이하고 동긴가?”

“상윤...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러냐?”

“야이 새꺄. 니가 하사들 기수를 어떻게 다 알어?”

“하긴, 고참 것만 정확히 외우죠.”

“아휴,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오후다. 김하사가 북한에 온지 5일. 드디어 아군과 합류했다. 그것도 다른 여단.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저도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된 거야?”

“아.... 참. 말로 다하기는...”

“긍까. 나머지 어딨어.”

“현재 저 혼잡니다.”

“에이 씨... 혼자야?”


“머리에 든 걸로 다 찾죠 담당관님. 재촉하지 마세요.”

“그래 뭐. 그걸 모르니까 우리가 이렇게 지랄이었지.”

“너 기운 정신 좀 차려야겠다. 움직이는 시체 같아.”


“재집결지 선언 없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작전 중에 어떻게 된 거야?”

“아니요. 침투 도중에.”

“침투 도중에?”

“네.”


“무슨 소리야.”

“수송기가 추락했습니다.”

“얘 또 왜 이래!”

“정말입니다. 생존자가 거의 없습니다.”


“5골프는 우리랑 같은 비행기로 점프했잖아.”

“네?”

“우리가 먼저 나갔고, 점프는 딱히 이상 없었는데.”


김하사는 다가오는 현실이 갑자기 어지러웠다.


“아니, 5지역대 아니십니까?”

“너가 5지역대잖아!”


정적.


“.... 전 다른 여단입니다. 5G를 찾으러 왔습니다.”


“뭐라고? 니가 다섯 골프가 아냐?”

“아닙니다. 저도 찾으러 온 겁니다.”

“어쩐지 대대에서 너 얼굴을 모르겠어. 신병하산 줄 알았잖아.”

“그럼 담당관님은 어디십니까?”

“여섯 골프에서 나온 정찰조야. 찾으라는 명령 받았어.”

“정찰조요?”

“전문 받았어. 통신 끊겼다고. 5G 사라졌다고.”


김하사는 그대로 멈췄다. 중사 셋도 멈췄다. 몸도 눈도 담배 빠는 것도... 김하사는 아득한 블랙홀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군을 만나기는 했다.


“그럼 혹시... 돌고래요?”

“그래. 우리 팀 이름이야. 돌고래.”

“......”

“니가 우릴 어떻게 알어. 참 나.“

“사령부에서 전문으로 받았습니다.”

“진짜야?”

“예. 다른 지역대에서 돌고래가 찾으러 나간다고.”


“너 우리 여단 아니란 건 뭔 소리야?”

“저는 똥개요.”

“미치겠네. 말마따나 고양이 섹터에서 뭐해!”

“사령부 전문을 받았습니다. 5G를 찾으라고.”


“그럼 우린 둘 다, 아직 5G를 못 찾은 거네?!”


옆에 있던 두 명이 기겁을 한다.

“이런 니기미 상황 골 때리네 진짜.”

“사람 돌게 만들어. 아주 이게.... 어?”


“우리 지금 나흘 째 찾고 있었다고.”

“그럼 어떻게 하죠?”

“사령부 명인데... 참나.”

“저랑 같이 찾으시죠.”

“그래, 지역대장도 반드시 찾으라고 했어.”

“저도 그런 입장입니다.”

“어쩔 수 없지 뭐. 너 완전히 침투군장이다.”

“통신장비로 꽉 찼습니다.”


“어 씨, 이거 어떻게 찾지?”

“부중댐. 섹터 거의 다 뒤진 겁니다.”

“혹시 몇 명 빼고 전멸한 거 아닙니까?”

“야이 개새꺄 동기 선후배 다 있는데 걸 말이라고 하냐?”

“죄송합니다. 우리라고 뭐 많이 남았습니까.”


담당관이 참다 못 해 소리를 질렀다.

“아니 5지역대 목표는 대체 뭐야? 어딨어!”


“아무도 모릅니다. 절대 말 안 했어요.”

“팀장 지역대장끼리도 절대로 보안 보안 했어요.”

“우리 지역대도 벅차 죽겠는데, 뭔 지랄 찾으라고!”


김하사는 문득 허리 통증이 떠오른다.

이제 울지 않는다.

울 기운이 없다.


“이걸로 힘이나 내라.”


담당관이 뭘 김하사 얼굴에 내민다.

특전식량. 강정. 참깨 강정....

김하사는 울지 않았다고 믿었다.



[송신 : 8723 수신 : 4763 내용: 5G를 3일 안에 반드시

찾을 것. 실패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됨. G장이나 임무

인수 C장과 조우하면 곧바로 통신 개통해 5G 추가 작전

전문 수신할 것, 골프장과 인수 C장 단독 열람. 1급.

귀 통사도 보안 엄수. G장 외 절대 열람금지. 돌고래도

열람 불가. 지금까지 교신 전문 즉각 파기, 차후 교신도

열람 후 즉시 파기. 통일.]


김하사는 돌고래팀이 보기 전에 전문을 파기하고, 급하게 안테나를 철수하면서 움직여 질문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김하사를 보는 돌고래 팀 담당관 눈빛이 날카롭다.


“너... 뭐 우리한테 숨기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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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6 ha******
    작성일
    21.01.29 13:38
    No. 1

    전에 여기까지 보고 이후에 김 하사의 최후만 접했었는데 5G의 작전은 성공했을지 궁금합니다.ㅋ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1.01.29 14:00
    No. 2

    그 중간과 이후의 일이 총 3회 에피소드에 걸쳐 기술될 것입니다.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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