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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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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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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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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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골프 브라보 3

DUMMY

김하사가 경험한 시간이 꽤 길어 보이나, 실제 사건은 김원기가 일어서겠다고 용을 쓴 시간부터 수송기를 이탈할 때까지 길어야 1분 30초다. 그러므로 실제로 살려고 나간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과 스피드로 발버둥치며 비행기를 탈출한 거다. 동체가 엄청나게 진동하고 있었고, 잠시 치료에 주력하거나 관망 하거나 지체한 사람들은 나올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 ‘무조건 탈출’만을 바라본 소수만이 나올 수 있었다.


공군은 북한 대공망을 막아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호로 나온 전폭기들은 레이더로 작동하는 지대공미슬 포대에 어울리는 병기였다. 또한 지대공미슬 역시 점프 수송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김하사 수송기를 맞춘 구식, 심지어 레이더도 쓰지 않는 대공포들은 제공호에 기관총을 설치해서 쓰지 않는 이상 무장헬기나 A-10 외에 대처할 수가 없다.


수동조준으로 쏘는 대공포[고사포] 포구 화염을 보고 전폭기들이 공대지미슬을 쓸 수도 없고 쏴봤자 그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미슬로 처리하나. 수송기가 지나가는 동안 짧게 쏘기에 화점도 금방 사라진다. 그리고 D+5일... 또한 제트기도 잡으려는 고사포에게 몇 백 미터 위 느린 수송기는 껌이다.


전시상황 북한 상공에 그 느린 수송기가 들어간다는 자체가 자살행위와 같은 거였다. 그렇지 않으려면 필요한 건 하나. 침투지역에 실시간 북한 군용통신과 레이더 전 주파수대를 일시에 다운 시키는 Jamming 밖에 없다.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정해져있다. 미 공군 전자전기(ECM)와 공중조기경보기(AEW&C). 즉, 대규모 공중폭격 때와 똑같은 전자전 지원이면 안전을 그래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전시에 모든 무선통신은 필요한 때만 쓰는 것이 정석이고, 낙후한 북한의 주요 통신망인 유선전화까지 막을 수는 없다. 구형 대공포들은 유선으로 통보받은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수송기 앞서 폭격기들이 폭격하면서 지나가고 바로 점프하는 것. 이걸 미국이 해줘?


2016년 9월, 북에게 해킹 당해 유출된 국방부 자료 A4 용지 1,500만 장. 참수작전 포함. 국방부와 미군은 어떤 정보가 넘어갔는지도 여전히 모른다. 아군 전폭기도 못 잡는 무-레이더 구형 대공포가 이 외딴 산악에 있는 건 우연인 거지? 전시작계도 일부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대공포는 그저 개 같은 우연인 거지? 그런 허술함 때문에 전우들이 죽는 건 아니지? 믿어도 되지? 그래 믿어볼게. 그때 유출된 전시작계에서 혹시 이게 있었다면 골격은 분명 바꿔주었겠지? 유출되면 완전 폐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보안 기본이라고 군 교육에서 가르쳐줬잖아. 한미전술정보 공유체계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


이후로 하사는 공군 근무자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왜 낙하산이 안 보였을까? 색깔 때문에 어둠에 가린 건가? 설마 립코드를 못 뽑은 건 아니겠지? 공수교육 안 받았더라도 사용요령은 당연히 숙지했을 텐데. 시야가 최대한 땅으로 향한 상태에서 사지를 펴고 립코드를 뽑으면 된다. 혹시 스핀을 먹으면서 전개되는 낙하산이 몸에 감겼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낙하산 기능고장? 그 사람 낙하산은 하나뿐인데... 물론 하사 역시 예비낙하산 기능고장 났으면 죽었다.


주낙하산은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공군 승무원! 자유낙하로 떨어질 당시 그렇게 가까웠는데 안 보일 리가 없다. 혹시 자기 낙하산 개방하는 것에 맞아 충격으로 추락사한 게 아닌가 너무나 많은 상상이 떠올랐다. 자신을 살리려고 노력했던 근무자가 정말 그대로 추락해 죽은 게 아닌가 죄책감이 든다. 모든 것이 혼자. 누구라도 함께 있으면 보다 나을 거란 생각도 든다. 굳은 의지로 수송기에 올랐는데 이게... 홀로. 아무도 없이. 지역대도 팀도 없이, 이건 낙오다. 자대 1년 넘긴 김하사 입장에서는 처음 접하는 현실이었다.


‘나 어디로 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건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널 보고 있다


- 정호승 시인





2. 공군대원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다 순간 산봉우리들이 시커멓게 사방에서 올라왔고 김하사는 접지를 준비했다. 강하고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검고 묵직하게 존재하는 저 아래는 무서웠다. 모르는 DZ에 야간접지. 아니, 이건 DZ가 아니라 그냥 산악. 헬멧이 없어서 접지 순간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몸이 돌면서 낙하산이 산개되었기 때문에 개방되자마자 김하사 몸은 수평으로 돌기 시작했다. 꼬인 산줄은 한쪽으로 빙빙빙 돌다가 장력이 더 이상 못 버티면 섰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돈다. 그 회수가 좌우로 돌면서 줄어들다가 결국 중간에 서는데 이때까지 손 쓸 방법이 없다.


컴컴한 상태에서 지상의 일정한 패턴을 물색했다. 조종줄이 없으니 이제 조종은 라이자로 해야 한다. 무얼 찾았을 때를 대비해 민감하게 움직이려 쥐고 있다. 밭이나 뭐 그런 게 있을지 몰랐지만, 일단 인공의 형식이 드러나면 칸과 구획이 보이고, 나무들 많은 곳은 좀 더 검고 패턴이 불규칙하다. 감으로는 풍속 5노트? 그리 강하지 않다.


남쪽에서 전술종합이나 기타 야외훈련에 전투강하가 꼈을 때는 DZ 일대 지도도 보고 상공에서 도로와 물가와 논밭을 파악하고 보다 안전한 장소를 택해 그리로 날아간다. 렌턴으로 접지할 아래를 비추고 접지하는 원사도 있다. 전술종합이라 해도 DZ는 이렇게 살벌한 곳을 쓰지 않는다. 이곳은 산세가 높고 가팔라 검은 봉우리들이 금방 치솟아 시야를 어지럽힌다.


‘젠장, 뭐가 보여야 말이지...’


아무래도 깊은 산악이라 (그런데 이런 루트에 대공포가 있었고) 나무들이 클 거 같다. 갔다 박으면 작살이다. 무섭다. 항상 그렇지만 비행기에서 뛰는 것보다 접지가 공포다. 경기도 광주는 껌이고 전술종합 모르는 DZ는 공포. 여기는 그 서너 갑절 이상이다.


바람소리는 휙휙 날리며 카나피 끝자락이 떨리고, 아무리 봐도 지상에 특정한 패턴이 안 보인다. 그냥 인적 없는 적막한 산인 거다. 접지 직전에야 이게 뭔지 보일 거 같다. 그리고 헬멧 없는 맨 대가리 어디 때릴까 정말 걱정. 평상시에 DZ가 평평하다면, 김원기 하사는 접지 시점에 오른쪽 조종줄을 천천히 밑으로 내려 우측으로 돌면서 자연스레 오른쪽 접지로 이어지는 방법을 썼다. 이런 건 서로 말하지 않지만, 각 개인의 고정관념과 같이 좌우측 선호하는 접지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무풍일 때 군장을 분리하지 않고 홀딩자세에서 쿠션처럼 쓰기도 한다. 오른쪽 접지가 보통 많다. 고참 중사들은 바람 적고 밑이 평평하면 조종줄 양쪽으로 푹푹 당겼다 놨다 반복하면서 집지 직전 하강속도를 줄인다.


부유 시간이나 올라오는 지형이나 곧 접지가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휴, 제발...’


언제 라이자를 놓고 얼굴을 감쌀지 민감하게 가늠하는데, 아무리 봐도 능선을 향해 다가서는 것 같다. 나무에 걸리면 몸이 몇 미터 공중에 뜨는 높은 나무만 아니면 그리 나쁠 것 없다. 두꺼운 나무 하단만 정면으로 안 때리면 다행이다. 능선을 눈앞에 두고 홀딩으로 접지하면 적어도 능선 각도에 붙듯이 접지는 편하나, 만약 밑으로 굴러 떨어지면 큰일이다.


호흡을 정리하고 하체에 불필요한 힘을 빼기 위해 양쪽 군홧발을 안쪽으로 퍽퍽 때리며 긴장을 풀려 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래도 나무? 그냥 빽빽하게 검다. 긴장된다. 군장을 분리해야 되나 어쩌나 순간 정신이 번뜩 났다. 그러나 시간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군대원을 찾으려고 시간을 너무 허비한 거다. 군장 이거 이거 해야 하나 군침을 삼키며 고민하던 와중.


순간, 나무들이 치솟아오른다. 나무 몸통들이 순간 수직으로 허옇게 빛났다.


‘헉.’

김하사는 라이자를 놓고 손바닥을 펴 정면 앞머리를 감싸고 양 팔뚝을 얼굴에 이빠이 밀착하고 때를 기다렸다. 니미 제발... 제발... 이런 울창한 수목지대 접지는 공수교육에서나 기억난다. 예비산 위로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어쩌고. 그것도 헬멧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짧은 기다림의 순간 하사는 군화 속 발가락을 다라라라 움직이며 감각을 살리려 했다. 발과 하체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발모가지나 다리 부러진다. 언제냐, 언제냐, 그리고....


퍽! 쿵! 드드드득.... 퍽! 접지는 몸이 능선 각도에 붙으며 그래도 가볍게 붙었으나, 가지 같은 게 정강이와 무릎을 때렸고, 김하사 자신도 모르게 충돌하는 나무를 민다고 생각해 양발을 약간 앞으로 뻗었다.


땅을 쿵 치고 몸이 앞으로 넘어가다 다시 뒤로 넘어갔고, 이어 밑으로 구른다. 구르는 가운데 나무 밑뿌리를 하나 치면서 튕겨 몸이 돌면서 내려갔다. 양팔로 머리를 죽어라 눌러 감싼다. 팔이 부러져도 머리를 막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계속 났다. 몸속에서 청승맞은 아낙이 신음한다. 푸더더덕 푸더더덕 퍽 퍽. 그리고 어느 순간 멈췄다. 김하사 호흡이 떨고 있다. 끝인가? 이게 끝인가?


그 자세 그대로 있던 하사는 천천히 팔에 힘을 풀었다. 힘을 풀면서 얼마나 몸에 힘을 줬는지 깨달았다. 숨이 꺼지면서 양팔을 뻗어버렸다. 팔 다리 사지에 모두 힘을 빼 뻗었다. 기울어진 비탈에 45도 거꾸로 누워 있었다.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몇 초 지나지 않아 어깨와 허벅지와 장딴지 갈비뼈에서 뜨거운 고통이 올라온다. 그리고 기내에서 일어설 때 우두둑 했던 척추 자리가 불타는 듯 뜨겁다. 자연스레 입이 벌어지고 호흡이 격하게 터진다.


“으으으으으...... 허~~!!! 헉 아...”


고요한 산악. 누가 이 신음소리를 듣나. 자신이 여기 있는 걸 누가 알까. 자신조차도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인적 없는 컴컴한 산. 몸 여러 곳에 너무 아프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몸을 점검한다.


‘어디 부러지지만 않았으면...’


먼저 팔을 들어 본다. 한 팔, 두 팔, 돌려본다. 아프지만 뼈는 정상. 휴. 손을 들어 손끝으로 복부 여러 곳을 가볍게 찔러본다. 푹 푹 푹 푹. 아프긴 한데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어디 부딪쳤지만 갈비뼈가 부러지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다리. 한 쪽 들어본다. 그리고 반대편...


‘어? 괜찮어?...’

발목, 장딴지, 허벅지. 그리고 점차 몸을 일으켜 골반? 괜찮다.

“후, 침투는 성공이다.”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리며 해체와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척추가 뜨겁고 마음은 그저 눕고 싶다. 허리 좆된 거 아냐. 불안하다. 그래도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다. 움직일 정도는 된다. 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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