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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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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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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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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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해변으로 가요 1

DUMMY

조명하.


그는 일제강점기에 공무원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자도 있었으나, 1926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장례식에 큰 자극을 받고 일본으로 갔고, 1927년 상해 임시정부로 가기 위한 경유지였던 대만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24세의 조명하는 대만의 일본점령군을 치하하기 위해 방문하는 구니노미아 대장을 노린다. 구한 무기는 단도가 유일했다.


1928년 5월 14일 9시 55분, 차량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뛰어올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구니노미아 대장을 척살했다. 구니노미아는 조명하에게 칼을 맞은 지 3일 만에 죽었다. 대만총독이 사임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는데, 구니노미아는 당시 일왕의 장인이었다. 조명하는 칼에 독을 발라놓은 상태였고, 척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직접 칼을 쥐고 찔렀다는 설과 ‘단도를 던졌다’는 설.



해변으로 가요


“맞는 것 같은데?”

“어휴... 허...”


둘 중 한 명이 수풀에서 뭘 발견했는지 쪼그려 앉아서 땅을 쳐다본다.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걸 손으로 들었다. 손으로... 사람 손이었다. 손가락이 두 개 날아간 어떤 명을 달리한 자의 손. 팔뚝 중간이 잘려 있고 습기가 말라 훈제 조각 같다. 반지 시계 아무 것도 없다. 시장통에 전시된 돼지족발과 얼핏 비슷해 보였다. 특별한 문신이나 상처도 없으니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손이다. 다른 한 명이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다가와 그걸 쳐다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쯔쯔쯔... 이거 포가 때렸어, 이거.”


말을 한 사람이 입으로 호흡을 후~ 강하게 불더니, 갑자기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 멈춘다. 쪼그려 앉은 사람도 동작을 멈추어 선 사람을 보고 다시 사방을 본다. 선 사람은 귀에 들리는 소리를 감상하는 듯하다. 잠시 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자 쪼그려 앉은 사람이 일어나 손을 손에 든 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 손을 버리는 것도 들고 있는 것도 머쓱하다.


딱 봐도 아는 것. 갑자기 몸이 반응하며 지나칠 수 없는 것. 전군 공용 군복과 구별되는 특징적인 디지털 픽셀 천 조각. 문양의 색은 때로 바랐지만 둘이 입은 것과 같은 군복이다. 많은 흔적들이 있다. 수백 발이 넘을 흩어진 탄피. 작은 살 조각들. 수풀에 흘렀다 굳은 흑자주색 얼룩. 깨지고 휘어진 총 조각. 딱 봐도 자신들 종류 총이란 걸 알 수 있다. 권총손잡이 쪽 하단이 있으면 총번을 적어둘 터였다. 왠지 낯익고 익숙한 산 높은 곳의 3면이 막힌 수풀 무성한 곳. 참 적당한 곳이었다. 둘의 미간은 언제부턴가 주름이 강하게 오그라져 풀어지지 않는다.


“주기를 찾아보자. 어차피 우리 여단 아냐. 기록은 해줘야지. 현충탑에.”


둘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그리 차이가 없다. 동그란 위장모 밑으로 내려온 장발과 수염. 군복도 총도 거의 모든 게 똑같다. 체구만 차이 난다. 둘 다 특전조끼에 대검이 두 자루가 달렸다. 아니 한 명은 세 자루다. 칼을 더 단 사람이 고참으로 보였고 남은 한 사람은 군번이 낮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칼을 하나 더 찬 사람은 좀 편한 반면, 졸병 같은 사람은 양손으로 총을 파지하고 습관처럼 사격준비를 하고 있다. 그에 비해 고참은 소총을 각개로 등에 걸고 그립에 별이 그려진 권총을 손에 쥐고 있다.


고참이 수풀 무성한 곳을 손가락질하더니 먼저 다가가 밑을 살핀다. 유심히 경사진 땅바닥을 보더니, 검지 중지로 V-자를 만들어 자기 양 눈을 지시하고는 손을 밖으로 돌려 양쪽으로 휘두른다. 잘 살피고 있으란 뜻. 졸병이 끄떡끄떡하고 총을 들어 눈으로 자물쇠를 확인한 뒤 10미터 뒤로 물러나 나무에 의탁한다. 그런 졸병의 준비를 보고나서 고참이 군홧발로 어떤 곳을 발로 마구 헤집더니, 이어 엎드렸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안에 굴 같은 게 있었다. 30초 만에 고참의 발까지 그 안으로 모두 들어간다.


졸병은 총을 수평으로 놓고 천천히 사방을 번갈아 바라보길 반복한다. 산새 소리. 가벼운 바람. 연무도 아닌 뿌연 하늘에 태양이 동그랗게 하얀 동전으로 보이는 날이다. 장소는 산의 7부 수목 울창한 작은 골짜기. 조용하다. 경험 때문인지 조용할수록 더 긴장된다. 의탁한 나무에서 종종 몸을 반대로 돌려 후방도 관측하고, 중간에 고참이 들어간 비트 쪽으로 눈길을 준다. 여기선 삐뜨라고 부른다.


3분 쯤 지났을까. 천천히 고참이 밖으로 기어 나온다. 한 뼘 짜리 파우치를 손에 들었다. 나오자마자 또 사방을 조용히 둘러보고는 턱을 들어 입으로 딱딱 소리를 낸다. 졸병이 거총상태로 천천히 다가온다. 고참은 파우치 안쪽에서 뭔가 꺼내더니 작은 하나를 준다. 특전식량 전분. 졸병은 받자마자 비닐을 까서 입에 넣고 눈 감으며 음미한다. 고참도 같은 걸 하나 입에 넣는다. 졸병은 깊은 호흡으로 미소를 짓다가 눈을 떠 고참을 본다. 그러더니 문득 손가락으로 고참 입을 지시한다.


씨익 웃는 고참의 하얀 치아에 검은색 액체가 묻어 있다. ‘고참은 초콜릿이요?’ 졸병이 고참 얼굴에 주먹을 쥐어흔든다. 고참이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미소로 졸병 손에 다시 하나 쥐어준다. 졸병이 손을 편다. 강정. 졸병이 눈을 개슴추레 뜨면서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고참이 주먹을 졸병 면상에 들어 한 대 때리는 시늉을 한다. 파우치에는 총알 다섯 개도 들어 있었다.


잠시 씹고 빨아 입 속에 것을 넘기고 졸병이 카멜백 마우스피스를 고참에게 내밀고, 고참이 한 모금 빨자 자신도 한 모금 빨고 마우스피스를 호주머니에 넣는다. 고참은 이제 다른 쪽을 지시한다. 더 깊고 우거진 곳. 고참이 앞장을 서서 천천히 나가기 시작하고 졸병에게 뒤를 감시하라고 검지로 고개 넘어가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고참이 진행하는 걸 바라보며 멈춰서 거리를 벌리고 10미터 이상 넘어가자 천천히 따라간다. 뒤를 주기적으로 돌아보면서...


30미터 쯤 갔을 때, 걸어가던 고참이 고개도 안 돌리고 손가락으로 지나간 자리 오른쪽 아래를 강조하고 계속 간다. 천천히. 천천히. 졸병이 바로 그 자리를 지나치며 오른쪽 아래를 봤고, 순간 인상이 찌푸려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푸르르 풀어진다. 몸의 어느 부위인지 알 수 없다. 서너 근? 불에 그슬었고 피가 굳어 딱딱해진 상태에서 곰팡이 같은 초록색 부패가 있다. 뼈와 근육과 내장이 엉켜 굳었다. 잠시 바라보던 졸병은 고개를 돌리고 가면서 옆으로 침을 퇘 뱉었다. ‘립이냐...’ 다시 고개를 돌려 속이 쓰린 듯 쳐다보고 돌려 계속 간다.


다시 비트 하나를 발견했고, 둘은 그제야 감이 왔다. 2개 팀 연합 아니면 지역대 은거지였다. 둘 입장에선 사치스런 은거지였다. 둘은 지금까지 이런 거 꿈도 못 꾸고 폐가와 짚단 더미 속에서 자고 거지나 먹을 것을 주워 먹었다. 군복에 기름때가 번들거리고 이유 모를 핏자국이 여기저기 굳어 있다. 제대로 쉬지 못해 해가 중천에 떠야 몸이 풀린다.


졸병의 오른손은 얇은 천을 감고 있는데, 엄지와 검지 사이 골과, 엄지 검지 중지 안쪽 중간 마디를 다쳤다. 베였다. 칼질하다 다친 전형적인 상처. 무엇을 찔러 칼이 들어가다 막혀 - 손이 손잡이에서 미끄러져 앞으로 들어갈 때, 군용 대검은 총구 걸개가 따라 들어가는 걸 막아주지만, 걸개가 없는 사제 칼은 지르던 힘 때문에 손이 손잡이 앞으로 밀려들어가 그 세 손가락을 벤다. 깊게 밀리면 새끼손가락까지도 벤다. 손잡이가 밋밋한 나무토막이면 더 잘 미끄러진다. 칼이 뼈에 거릴 때 미끄러져 손을 벤다.


아는 사람들은 지문 채취도 애매하고 그래서 붕대 감고 그런다. 피부를 뚫어도 칼이 물컹한 내장에 미끄러져 중상을 못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어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유명한 일식집 칼을 쓴다. 일식 조리사가 회를 다룰 때 칼끝으로 정리하는 스킬이 중요하기에 그 칼은 재질이나 칼끝이 서슬 퍼럴 정도로 예리하다.


그런 칼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도 쉬이 내장에 미끄러지지 않고 감긴?다. 그리고 회칼은 대형 생선 뼈까지 수직으로 잘라야 하는데, 싼 스테인레스 칼은 생선 뼈 자르다 칼날이 서걱서걱 나간다. 강도에서도 차이가 나기에 비싼 것이고, 게다가 사람 몸을 관통할 만큼 길고 예리하다. 대검도 찌르기 인명살상을 위해서는 끝의 연마가 중요하다. 대충 갈 시간 밖에 없으면 대검 끝이라도 잘 갈아야 한다.


칼날 너비가 넓은 부엌칼보다 너비가 좁은 과도는 더 쉽게 손이 따라 들어가 손가락을 벤다. 여러 번 찌를 때 체액과 피까지 섞이면 더욱 미끄러져 베이기 쉽다. 칼이 인체에 들어가는 순간 공간이 생기면서 주변 피가 칼 부위로 쏠려 뭉친다. 잔인한 놈은 피를 한번에 더 낼려고 비틀고 공간을 넓힌다. 거꾸로 뭐 묻는 게 싫은 놈은 스냅으로 빠르게 찔렀다 뺀다.


찔렀다 빼면 칼로 뭉친 피가 따라 나오고 - 밖으로 흩뿌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피로 젖었을 때 다시 찌르면, 손잡이와 칼 너비가 똑같을 경우 자칫 손이 칼날 중심까지 밀려들어가 크게 베인다. 넓은 부엌칼이면 손이 따라 들어가다 아랫날 턱진 곳에 검지 앞쪽이 베이고, 위쪽은 날은 없고 각이 져 있지만 흥분한 사람이 칼을 너무 세게 쥐었을 경우, 엄지와 검지 사이 골도 그 사각에 밀려가 베인다.


대한민국 도검류 살인의 대부분이 부엌칼과 과도라서 형사들은 의심 가는 사람 손 거기부터 본다. 초범이거나 흥분해서 과도하게 난자한 경우 손 상처가 작게라도 남는다.


현장에 피자국이 가해자와 피해자 두 가지인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벽에 등을 대고 있었거나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있었을 겨우 칼이 막혀 공격자가 이런 부상을 입는다. 과도한 흥분과 공격은 공격자 손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금방 상처를 입는다. 칼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찌르는 것보다 빼는 동작에 숙련되어, 연속동작 스냅으로 지르고 스냅으로 뺀다. 칼로 사람을 전문적으로 찌르는 사람이라면, 복싱의 타격과 같이 찌르는 것보다 빼는 것에 신경쓰고, 그래서 필요 이상의 상처를 내지 않는다.


얼만큼 찔러야 대상이 죽는다는 확신이 없거나, 혹여 반항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필요 이상의 난자를 한다. 숙달자는 거의 빼려고 찌르는 개념으로 출혈을 염두에 두는 것이고, 칼을 써 본 놈이 살해 의도가 있으면 날을 수평으로 돌리면서 복부가 아닌 폐에 이렇게 스냅으로 줬다 뺀다. 하지만 전문 칼잡이란 말도 어쩌면 옛날 직업이고, 사람 죽이는 건 칼잡이가 아니라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똘마니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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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다섯 골프 브라보 10 21.01.25 384 22 12쪽
176 다섯 골프 브라보 9 21.01.22 389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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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다섯 골프 브라보 7 21.01.18 388 19 11쪽
173 다섯 골프 브라보 6 21.01.15 387 20 12쪽
172 다섯 골프 브라보 5 21.01.13 353 22 13쪽
171 다섯 골프 브라보 4 21.01.11 378 17 11쪽
170 다섯 골프 브라보 3 21.01.08 384 22 12쪽
169 다섯 골프 브라보 2 21.01.06 379 18 12쪽
168 다섯 골프 브라보 1 21.01.04 462 18 11쪽
167 개도 잠든 밤 3 21.01.01 434 21 18쪽
166 개도 잠든 밤 2 20.12.30 397 18 13쪽
165 개도 잠든 밤 1 20.12.28 416 18 10쪽
164 안둘 바라기 2 20.12.25 385 23 11쪽
163 안둘 바라기 1 20.12.23 408 17 10쪽
162 태운다 나의 거짓 4 20.12.21 372 16 11쪽
161 태운다 나의 거짓 3 20.12.18 375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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