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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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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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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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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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섯 골프 브라보 9

DUMMY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고 품위와 이상을 간직한 채 먼저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라. 그래서 젊은 군인의 죽음은 찬양할 만하다. 하필 그게 내가 되어 죽고 싶진 않겠지만. 그때 전사한 젊은 군인들 옆에서 같이 싸운 사람들은 개털이 되었고, 거기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이 배부르고 잘산다.


옆에서 싸웠던 사람들은 죄책감으로 살고 거기 없었던 사람은 고민할 게 아무~~ 아무 것도 없다. 인생은 즐거우니까. 배부르게 먹고 짜릿하게 싸며 잘 살어. KKK 커스터 장군이 실수로 자기 두뇌보다 뛰어난 명언을 했다. 용감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들뿐이라고.


그래, 먹고 싸는 것만 아는 놈들이 그 고귀함을 알겠어? 영혼을 맑게 일깨워준 한겨울 조식 한없이 맑은 똥국에 감사. 어쩔 수 없이 못 간 사람들을 진심으로 제외하고,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멀쩡한 몸으로 군대 뺀 놈들 용서할 수가 없어. 이성적으로 용서해도 육체적으로 분노가 일어. 마음은 너그러운데 주먹이 쥐어지네? 그들은 대항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어. 왜냐? 그게 어떤 건지 모르니까. 그건 가봐야 아니까... 모르는 걸 어떻게 반박해.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목숨을 바친 사람들.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에? 아니지. 짧은 인생 영원한 젊음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해도 영예는 개인적인 것으로 줘야지. 어머니는 저승에서 아름다운 청년을 보게 된 거야. 전장의 군인은 그 어떤 현자도 못했던 걸 해. 기다리는 것. 자기 죽음을 기다리는 것. 진심으로 그 무서운 걸 기다리며 싸우다가 옆 사람을 돕기까지 하는 것. 숭고하지. 전시를 못 겪은 장군들은 전시를 겪고 있는 초급장교 병사 부사관들에게 경외심을 가져야지. 암. 뇌가 달린 인간이라면 당연하지.


평시는 끝났어. 옛날 월남짬밥으로 계급 좀 커버해봐야지.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시 줄 잘 선 사람들이 올라갈 거야. 그래서 죽은 군인들이 비참해. 죽을 곳에 같이 있던 군인들이 올라간다는 보장 있어? 죽을 곳에 없었거나 더 안전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는 거지. 일단 살아서 줄에 서 있을 확률이 더 높으니까. 쓰러진 시신을 일으켜 줄에 세워주진 못해. 양심이 밥 먹여 주냐고 묻는 놈들 골통을 까고 싶어.


종교적인 걸 치우고 사실만을 보자면

죽이지 못하는 자는 언제나

죽일 수 있는 자의 지배 하에 있는 거지

- 제네레이션 킬


10. 고요라는 명사보다 섬뜩하게 컴컴한 산의 진중함. 그 진중함 앞에 요란 떠는 인간은 잡아먹힌다. 갑자기 천만 톤짜리 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전조. 힘의 한도를 알 수 없는 거인의 팔짱. 급하게 흔들리지 않는 거인의 호흡과 대자연 외엔 건드릴 수 없는 모든 일에 대한 초연함. 그 진중함에 눌려 하사는 잘나거나 강자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다.


말로 아는 게 아니라 피부가 느낀다. 그리고... 다가온다... 이제 다가온다...


아무 것도 보이거나 들리거나 냄새가 오지 않지만, 마치 풍경에 아지랑이가 그림 외연을 흔들 듯이 중성자들이 교란하기 시작한다. 양자도약이라도 일어난 듯 커크가 주변 공기를 흔들며 도약한다. 무딘 인간이 보기에는 미세하지만 작은 범위 안에선 엄청나게 활동적이다. 인간 오감에 아직 그 어떤 정보도 들어오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들 크기를 기준으로 직감하며 모든 걸 안다고 착각한다. 그보다 작은 세계는 인간 능력 밖이라 생각한다. 다가올 폭풍과 천재지변은 인간이 무지한 가운데 벌레와 쥐가 더 빨리 알아챈다. 인간의 착각이다. 그걸 살짝 느끼면 당신은 교주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인간 크기로 이하에 둔감하다. 산중에서 감각이 확장된다는 건 보통의 인간이 느끼는 인지 확장력 단위가 작아진다는 것. 뭐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느끼기 전에 일은 먼저 일어나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김하사는 알았다. 벌어진다. 일어나고 있다. 산의 진중함이 뭔가로 인해 깨지기 시작한다. 깨져도 그것은 어차피 냉정하게 바라만 본다. 수풀에 숨은 김원기 하사는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오는 무엇에 눌린다. 본능적으로 불편해지고 점차 숨이 막히는 공기. 차갑게 반짝이는 별, 하늘 아래 대기는 저기압으로 내려앉고 벌레는 저 멀리를 노려본다. 산새는 숨을 죽이고 부리가 분주하다. 그리고 그 압박의 정점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린다.


탕! 타다다다다당!


그러자 조금 다른 총소리가 탕! 탕! 탕! 탕! 반응한다. 점차 소리가 하사를 향해 가까워온다. 드디어 만났다. 바라던 것과 조우한다. 이제 하사는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멀다.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총소리 거리는 단위가 미터가 아닌 킬로미터.


하사는 음식물을 훔친 민가에서 산으로 뛰어올라 GPS를 찍었다. 누군지 모를 습격/타격작전이 벌어진 총성과 폭음이 난 장소를 추정해 찍고, 거기서 깊은 산악으로 들어가는 루트 서너 개를 찍었다. 반드시 거칠 루트를 물색하고 그 중 하나를 택했다. 만약 공격제대가 재빠른 퇴출을 시도할 경우 조별로 갈라지고, 그럴 때는 퇴각 루트가 두 개 이상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김하사는 GPS로 살핀 루트 하나를 택했다. 이유는, 두 개의 루트 혹은 산길이 겹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도가 없기에 어떤 길이 어떻게 나 있는지 모른다. 그냥 그런 곳에 길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산길 루트가 겹치는 부근에 가 있으면 적어도 하나는 건질 것 같다. 그래서 그 교차하는 지점, 삼각지처럼 산길이 붙는 곳 아래 쪽 수풀에 숨어 있다. 하사는 부대의 퇴출 속도를 감안할 때, 자기가 도착하고 적어도 20분 안쪽에 접촉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접촉이 없으면 그 루트가 아닌 거다. 그렇게 그 삼각지 아래 쪽 루트에 숨어 있다가 위쪽 루트 저 멀리 아래서 총소리가 난 것.


하사는 일어나 산길이 겹치는 곳을 향해 속보로 간다. 그리고 겹쳐지는 곳 바로 아래서 울창한 나무에 의탁해 기다렸다. 소리로 들었을 때, 적어도 15분은 기다려야 했다. 시간도 생물인지 늘어졌다 빨라졌다 사람 힘들게 한다. 미세한 소리를 먼저 들으려 노력한다. 어서 빨리 그게 오길 갈망한다. 더 이상 혼자 ‘방황’ 따위는 하기 싫다. 도주하는 무장공비도 아니고 하루하루 초라해지는 자신이 싫다. 잠시 눈감고 귀를 연다, 다시 눈을 떠 이제 눈으로 보려 한다. 아군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10분이 경과했을 무렵...


무리가 뛰어온다. 저 윗길에서 김하사가 있는 교차점을 향해 뛰어온다. 길은 삼각지처럼 김하사와 무리를 만나게 했다. 김하사 추정은 일치했다. 적어도 2분 안에 김하사 앞에 나타날 게 분명했다.


‘멧돼지!’


그런데, 다시 어떤 감각이 그 무리에서 멀어져 다른 곳을 지시한다. 어딘가 다른 곳이 이상하다. 문득 하사는 시선을 밑으로 돌리고, 자신도 모르게 숨이 헉! 멎었다. 김하사가 올라온 길 저 아래서 또 다른 무리가 밀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다른 조? 시간은 빠른 판단을 요구했다. 암구어를 제대로 듣지 않고 발포할 수도 있어 심히 불안하다. 사람 마음 심각하게 아래서도 무리가 올라온다. 올라오는 게 아니라 거의 뛰는 소리다. 하사는 어느 쪽에 먼저 암구어를 소리칠까 당황했다. 거리로 보면 아랫길에서 올라오는 무리가 먼저 나타날 거 같다.


‘멧돼지... 멧돼지...’


기상은 고요하고 달빛은 거의 없지만 바람이 강하게 분다.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경사면을 타고 내려간다. 그러면 저 윗 무리는 아래 무리 소리를 못 듣고, 아래 무리는 위 무리 소리를 훨씬 더 빨리 강하게 듣는다. 아래 무리는 윗길에서 올라오는 무리의 존재를 알 수도 있다. 추정이다.


아무래도 아랫길이 빠를 것 같아 김하사는 아래에 더 집중했다. 그들을 향해 오감을 열고 소리칠 순간을 기다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돌 던져진 호수처럼 다시 파동이 거칠어지는 호흡. 뛰기 시작하는 심장박동. 하사는 부러진 개머리판 AK 총구를 들고 자물쇠를 풀까 말까 고민했다. 괜히 풀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당겨 아군에게 오발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이런 작전상황은 김하사도 처음이다. 훈련은 많았지만 긴장은 비교되지 않는다. 잠깐의 실수와 시간차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일촉즉발이란 말. 만약 암구어를 걸었는데 제대로 못 듣고 바로 자신을 향해 갈겨버리면 큰일이다. 상대는 김하사처럼 조용히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적어도 한두 시간 거친 호흡 격정적으로 움직이던 사람들이다. 차분한 김하사 같지 않다.


아래서 올라오는 무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하사는 자물쇠를 일단 안 풀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좀 느리게 올라왔으면 좋겠다. 자기 암구어가 들리건 안 들리건, 만약 자기가 방아쇠를 당기면 그때는 말이고 뭣이고 그냥 야밤 총질 된다. 숫자로 봐도 당연 김하사는 죽는다. 발발하면 말은 무익해지고, 자기가 아군 총에 맞아죽을 수도 있다. 밑에서 올라오는 무리는 상당히 무거워 보인다. 무겁다. 그렇다. 위쪽에서 접근하는 무리보다 묵직해 보인다. 사람이 많은 건지 무거운 걸 들었는지 가벼워보이지가 않는다. 무게의 추는 아래로 엄청 기운다.


‘뭐 저렇게 무겁고 강해 보여?...’


순간 하사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방차대’. 북한군 용어로, 적 공격이 예상되거나 출몰할 지점에 미리 대기했다가 행동하는 별동대 혹은 선 투입부대를 말한다. 만약 방차대라면 그들은 이 밤에 주요 게릴라 출몰 산악 한 곳에서 대기하다, 아군 타격작전이 일어나자 무전 받고 아군 타격부대를 찾아 기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하사가 의심을 가진 이유는 그렇다. 저 아랫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속도나 도달한 거리가 윗길에서 뛰는 사람보다 일단 빨랐고, 아래 쪽 무리 숫자가 너무 많아 보였다. 점차 불어나는 듯하다. 소대? 김하사가 알 수 있는 규모는 소대란 명칭보다 지역대급이다. 그런데 과연 작전 열흘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지역대가 완편으로 여전히?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든다. 정말? 5G가? 모른다. 추정일 뿐.


다시 고개를 돌리니 저 윗길에서도 무리가 뛰어서 올라온다. 두 무리는 서로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 흥분한 상태에서 자기들 발소리에 귀가 둔해진 거다. 소리라도 쳐야 서로를 식별할 상황. 너무 컴컴하다. 양쪽 모두 아군이라도 산중에서 오인사격 날 확률 높다. 위쪽은 많아야 열 명, 그 이상은 아니다. 하사에게 혼돈이 온다. 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아래는 소대. 위에는 열 명. 이 모든 합이 5G란 말인가? 아니면 한쪽은 아군 한쪽은 적? 자기 생각이 모든 건 아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2개 지역대가 이미 연합했을 수도 있다. 김하사는 이 여단 이 대대 작계를 모른다.


50대 10. 어떤 것이 5G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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