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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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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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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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G BRAVO 1

DUMMY

5G BRAVO




7월의

짙은 풀냄새는 작업하는 병사에게 징그럽고

축축한 흙냄새는 병사의 삽질을 말하노니

병사는 참고 또 참고 제대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건 훈련이었다

시간과 날짜가 종료를 보증하는 훈련이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너 이제 저 거친 광야로 가라


산은,

오히려 흙을 보기 힘들다. 산의 흙은 겨울과 초봄에나 좀 보인다. 풀과 나무가 조그만 공간도 허용치 않고 뻗어, 흙에 떨어지는 태양을 향해 벌려 막는다. 자리를 잘 잡아 햇살 머금은 놈은 살고, 가려진 놈은 핏기없이 건초가 되고 나무는 하얗게 변하다가 ‘우두둑’ 기울어 뻐개진다. 살아남은 나무와 풀이 이제 이 산의 지형이다. 미물도 이런 경쟁에 생명을 건다.


모처럼 흙이 보인다.


새로 지은 밥의 평면에 주걱을 꽂아 뒤집듯, 풀 덩어리가 뒤집혀 실핏줄 같은 뿌리와 뻘건 흙이 드러나고, 먼지가 날리며 나무 파편이 살인 이쑤시개처럼 사방을 쑤신다. 굵직한 가지가 잘리고 부러지고 파쇄되고, 작은 나무는 통째로 뽑혀 공중에서 물을 터는 파처럼 회전한다. 새는 사력을 다해 날아가고 멀리 못 가는 벌레는 숨을 죽인다. 들짐승들은 이미 죽은 목숨처럼 가만히 있다. 주걱이 밥을 퍼 뒤집는 폭이 넓다. 짐승들도 달리면 더 위험하단 걸 알았다. 자신들이 예감하고 예측할 종류가 아니다.


천재지변.


“아. 이 씨...”


사람은 아기처럼 웅크려 지구의 종말을 울먹인다. 천재지변이 집중된 지대의 인간들은 이것에서 빠져나가지 못함을 즉시 알았다. 이미 되돌릴 수 없도록 형성된 것이다. 인공적으로 계획된 것이다. 모양 없는 힘이 사람을 퍽 퍽 밀고 들고, 커다란 양은 쟁반 찢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두들기고, 짧은 순간 잡것이 불타 연기가 코를 쑤시고, 코는 익숙한 냄새의 공격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땅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미간을 모은다.


‘뭐야. 어디야.’


날아오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다. 몸의 떨림이 하체에서 올라와 얼굴 피부를 전율하고, 파탄의 와중에 가느다란 눈은 하늘을 본다.


푸르다.

푸르른 날의 파멸. 이 파멸의 와중에 유유히 푸르다. 한 사람이 흙과 피가 범벅된 얼굴로 너그럽도록 퉁명한 푸른 하늘을 본다.


‘이런 하늘 아래.’


옆 사람이 구강이 턱뼈가 탈골되도록 벌어지지만, 귀가 막혀 무슨 말인지 모른다.


맨 처음 몇 개의 커다란 음향이 청력을 쫓아냈다.


귀에서, 익숙한 사이렌이 가느다랗게 징~~~~~ 징~~~~~~~ 울린다.


신의 포크가 대지를 찢고 뒤집는다

묻고 싶다, 이것도 당신의 뜻이오?

이것도 당신의 계획이오?


사람에게 비극적 무엇이 올 때, 그 직전이 너무 안락했다면, 돌연한 충격에 이성은 무너지면서 바로 분별하지 못한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멱살 잡혀 미친 듯이 흔들리는 인간이 무슨 생각...


인간은 산악의 야수처럼 24시간 날카로움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게 된다면 인간도 표범의 눈과 노루의 귀와 같다. 인간은 쉬기도 해야 한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은 잠, 수면. 인간은 바로 뛸 수 있도록 서서 자지 못한다. 자면서 완전한 날카로움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곳의 사람들은 그 중간 정도는 단기간에 발달했다.


거인에게 멱살을 잡혀 흔들린다.


갑자기 닥친 걸 납득하지 못하는 시간이 5초라 해도, 무논리 공백은 상당히 긴 거다. 그것이 사람끼리의 공격이라면 상대는 그 5초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전방은 눌러! 던져! 당겨! 충격 충격 쏴.


바로 그러했다.

시작은 무 논리를 넘어 착각이었다.


쌔애애~~~액 슈~~~~~우욱...


전폭기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 깨어있는 사람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틀었고, 뭔가 쏘오~~~~오오옥~~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버버버버버버. 범범범범범범.


이어지는 옅은 기관차 소리. 그 소리가 멀리 지나가는 듯하더니, 순간적으로 증폭되면서 ‘나로’ 향함을 알았다. 평화롭게 부유하던 공기 덩어리들 사이로 무엇이 쐐기처럼 파고들었고, 다시, 다른 소리가 음성변조처럼 치! 치! 치치- 치치치~~~ 그 무엇이 엄청나게 연달아 날아오는 것처럼 카라라라라...


볼륨이 엄청나게 빠르도록 도플러를 통과한다. 한 가지가 아니다. 다양한 것들이 공기 마찰음을 중폭하며 뚫고 온다.


쉿~ 쌔애애애액~


처음에는 길었지만, 사람들 귀에 소리들이 더 짧게 인지된다.


투사체는 적어도 세 가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작정하고 날아든다. 사고의 정지. 파열음은 사람들 귀를 채우고 몸을 패대지친다.


꽝~~!


꽝! 꽈릉~~!

꽈과광!


폭발!!!

드디어 소음의 증거가 발생한다.


‘오, 씨발!’


사람들은 너무 가깝다 생각했다.

폭발이 점차 가까워져 ‘죽음’이란 단어조차 낯설다.


사람들은 전쟁영화를 너무 많이 봤는가.

저건 내 것,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기계는 거짓말 못 한다.


꽈릉~! 꽝! 꽝! 꽝!


처음에는 바로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가까워져 온다. 더듬듯이 다가온다.

이제 실물의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늘어난다.


‘수정사, 수정탄...’


귀먹은 사람들 눈에는 이제 무성영화가 보이고, 연륜 있는 사람들은 귀를 열고 날아오는 방향을 주목한다. 기름 끓는 프라이팬 같은 공간, 작은 공간의 온도는 지옥처럼 치솟는다. 인공의 열이 이글이글 차가운 땅과 나무를 끓인다.


“골프장. 골프장!”


무리의 대장은 곧바로 결정하지 못했고, 곧바로 했어도 이 충격의 맹폭 속에서 모두에게 정확한 전달도 미지수. 그래도 소리를 질렀다.


“교전 준비---! 퇴출 준비---!”


첫 포성이 터지자마자, 조용히 기다리던 약 500명이 3개 방향에서 대놓고 1km 질주를 시작한다. 질주하는 자들에게 전통적인 AK-47은 없고 5.45mm 신형 AK-74, 많은 수가 총열덮개 아래 단축형 유탄발사기가 달렸다. 군복은 과거 남쪽에서 사용하던 우드랜드 패턴의 눅눅한 풀색 위장무늬. 철모 없이 풀 꼽은 전투모를 썼다. 그들이 산 8부의 이 골짜기를 향해 질주하는 속도는 어디서 보던 게 아니다. 날듯이 뛰어오른다. 500명은 그 5초를 노리고 있다. 혼돈의 5초. 그때를 놓치면 자신들이 한 명 더 쓰러진다.


그들을 맞이해야 할, 아무 표식도 계급장도 없는 연한 녹색 디지털 픽셀 군복, 나이 먹고 높아 보이는 권총 든 사람.


“교전 준비!!! 퇴출 준비!!!”


두목은 실수가 있었음을 떠올리며 몸서리친다.


하나. 오늘 아침, 잠복초 아래로 정찰을 내보내지 않았다


둘. 긴급전문을 송신하려 같은 장소에서 재차 무전기를 켰으며


셋. 이틀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철칙을 부상자를 이유로 어겼다.

(하나 + 1 : 아니면 일대 더 높은 곳으로 가 360도 관측)


‘CAS 부를 시간 없어. 아무리 빨리 와도.’


밤새, 그리고 통이 틀 때 곧바로 이동해야 하나 골프장은 주춤했었다. 생각이 떠오를 때 해야 했다. 두 번 생각하면 늦다. 이틀 전의 교전, 이쪽 산으로 이동한 걸 상대가 모를 리 없다. 무인지대 산악은 넓으나 전통적인 게릴라 베이스로는 헐벗은 산이 깊지 않다. 남한처럼 헬기가 떴다면 다 죽었다. 그러나 인민군 직승기는 뜨지 않는다. 뜨면 동체에 kill 마크를 새기려 온갖 미군 한국군 전투기들이 날아올 거다. 레이더에 ‘뜬 것’이 통보되면 조종사들이 미칠 거다.


적 조우 교전으로 디지털 픽셀 무리는 7할로 줄었다. 무리는 특정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교전을 회피하고 은거하라는 엄명을 받고 있다. 은거 상태에서 2개 비포장도로를 정찰감시 하란 명령을 받았다. 다른 제대와 다른 것은, 정찰조가 휴대용 20kg 대전차 미사일을 휴대한 것.


중상자 네 명, 그들을 두고 가거나 이동이 둔해지거나 둘 중 하나. 갑자기 직면한 무리 안의 인간적인 문제.


터진다. 계속 터진다. 끝없이 터진다.

포격 맞는 사람들은 그만하고 오라고!

미칠 것 같다. 벌거숭이로 집합 당한 것 같다.

끝내려고 오면, 바로 그때 이걸 갚으리라.

저들은

산 놈을 줄여 전의마저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밖으로 겉돌던 포탄들이 동심원으로 모인다.

조그만 골짜기의 생각들도 하나로 모인다.


‘관측되고 있어. 몰려온다. 이제 온다.’


이 무슨 심리 싸움인가.


끝이 없어야 진짜 폭력이다. 막탄이란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아니. 더. 더. 덤으로 더. 추가 포탄 열 개로 더 죽일 수 있다면 돌격하는 아군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퍼붓는다. 쏘는 사람이 지쳐도 더. 더. 더. 포탄으로 다 죽이고 들어오겠다는 거다. 갈기갈기 찢어 못 일어나게 만들고 들어가겠다... 산악의 동심원을 향해 달리는 500명은 이 포격의 길이를 대충 알고 있다.


숟가락이 밥을 푼 자국이 늘어난다.

시뻘건 흙의 월면으로 변하는 지대.

어떤 놈이 쌍안경으로 살펴도,

이 동심원 안에서 사람은 보기 힘들 거다.

모두 경사면을 삼단삽으로 파서 들어가 있다.


그중 한 비트.

골짜기 반 비트에 있던 둘은 바위 옆에 한쪽 눈만 내민다. 두 명은 도로검문소에서 볼 수 있는 내무국 군관 복장. 군복은 노획이 아니라 남에서 입고 온 것. 둘은 웅크려 귀를 막고 멈춰있다가, 서서히 몸을 풀며 서로를 바라본다.


툭!

둘의 눈앞에 툭! 떨어졌다.


동공 4개가 확장된다. 디지텔 픽셀 조각. 그 안에 살까지 들어 있다. 날아가면서 천이 벗겨지지 않았다. 침을 삼키고 싶어도 입속에 모아지지 않고 꺼끌, 기도와 식도 물기가 순간 증발한 것 같다. 떨어진 걸 넋이 나가 노려본다. 정육점에서 서너 근을 사서 오다가 먼지 가득한 흙에 떨어져 구른 고깃덩어리. 사람 팔뚝 모양을 닮았다. 닮았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교란하지 않는다. 둘은 말로 문장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한 명이 그 조각을 잡아 먼지를 털고, 손으로 흙을 파서 옆에 묻는다. 이윽고 둘 다 얼굴을 땅에 박는다.


5초...


눈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정신 차려.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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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너의 목소리가 들려 1 23.07.17 321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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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5G BRAVO 2 23.06.12 29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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