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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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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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6,964

작성
23.07.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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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G BRAVO 6

DUMMY

5G BRAVO



괴물은 어디에 있나.

무엇이 괴물인가.


한강에 수영하는 대형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나?


그것도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괴물.

괴물은 모양이 안개 같으면 인간이 안 무서워한다.


추상적이면 인간이 무서워할 ‘괴물!’ 이미지가 성립하지 않아.


인간이 겁먹을 괴물은 동물이거나 동물적 성향이어야 한다. 생각이 없어야 괴물이며, 여성도 어린애도 가리지 않고 씹어 먹어야 정상적인 괴물이다. 보다 짐승적 성향을 부여해야 괴물이 된다. 사람 목을 조이는 풀을 괴물이라 하지 않는다.


괴물.

얼마나 멋있나. 치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양심도 논리도 두려움도 없는 존재.


“적 같네 진짜...”


흙에 묻혀 얼굴도 보이지 않는 몸이, 손을 움직여 자기 조끼에 있던 탄창과 수류탄을 옆에 꺼내놓는다. 사격하다 문득 발견한 팀원은 묻힌 전우를 도울 수 없다. 파내줄 시간이 없다.


‘손이 움직여. 손이.’


2m나 떨어진 데다가 잠시만 한눈팔면 당한다. 사격전은 서로가 2분만 지나고 막 쏘는 걸 줄이고, 감각이 민감해지며 조준이 정확해진다. 이제 먼저 고개 드는 놈이 맞는다.

멀리 안 보인다. 근접하는 놈들은 측면에서 불쑥 올라온다. 모두가 엎드려 눈높이 풀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도사린다.


총. 내가 괴물이 되려면 총을 놓으면 안 된다. 총구를 수평으로 들고, 기다려, 손과 팔뚝이 부드럽게 떨린다. 총구를 내리면 진다. 버텨라.


지금 탄창에 몇 발이 들었는지 모른다. 노리쇠가 아가리를 벌리면 왼손을 뻗어 저 여분 탄창을 잡으리라. 저 수류탄을 잡으리라. 약실 개방은 안 봐도 된다. 방아쇠를 당길 때 덜컥 걸리는 느낌이 없으면 약실은 개방되어 새 탄창을 바라는 거다. 사격장에선 약실 열리면서 철컥 노리쇠뭉치 걸리는 걸 느꼈는데, 진짜 표적으로 쏘니 남은 실탄도, 탄창이 끝난 것도 모르고, 방아쇠 먹통으로 깨닫는다.


탕! 탕!

총알이 30cm도 안 되는 곳을 때린다.


못 움직인다. 사소한 인적에도 총알이 때릴 정도로 민감하다.


속삭임.


“태영아. 태영아. 괜찮아?”


어느 틈에 흙에서 솟은 손이, 탄창을 준 부들거리는 손이 멈출 것 같다.


“조금만 참아. 내가 파내줄게.”


구강에 흙이 차 있다. 그러나 살아있다.


탄창 두 개와 수류탄. 이건 써야 한다. 사수를 위해 꺼내놓은 것.


낮고 조그맣고 구슬픈 소리. 저 앞 북한군.


‘마이 아프나? 어쩌라고!’


다시,

경사면 나무에 은폐한 셋.


조장은 어린 하사를 본다.

고참이 손가락으로 산 너머를 지시한다.


‘어이 낙오 하사. 니가 가라.’


하사가 고개를 젓는다.


고참이 얼굴을 들이밀라고 손가락을 까닥까딱, 가까워진 귀에 속삭인다.


“이대로 죽으면 우리 통신이 노출된다. 자, 받아.”


손바닥만 한 암호 책.


“니가 파기해. 저기 뒤에서 넘어오는 대열이 다 지나가면 넌 조용히 출발해라. 우린 못 간다. 우린 저기 중대원과 동기가 있다. 넌 우리 여단도 아니잖아. 그리고 봐.”


저 아래 교전 장소. 은거지. 사계가 완전히 트였다. 여기서 저격하면 적은 골짜기를 되넘어가기 전에 다 걸린다. 여기서 쏘면 최적이다. 넘어오면 다 잡는다. 너무 잘 보인다. 둘은 이미 결심했다. 진정되지 않은 호흡이 속삭임을 잇는다.


“우린 못 가. 다시 공격하면 넌 출발해. 너 죽어, 알았어? 명령한다. 안 가면 너도 죽는다.”


하사는 말하고 싶었다. 정말 간신히 서고, 간신히 쪼그리고, 걷기는 죽을 것 같은 상태라고. 게다가 이 군장으로! 차라리 쌩쌩한 중간짬밥이 가는 게 맞다고. 허나. 이 마당에. 어떻게 말하나. 아프다고. 아프다고! 허리가 너무 아파 죽겠다고!!!


“같이. 예?”

“그만해.”


“도피탈출해서 작전 지속함이 올바릅니다.”


“그저 죽겠다는 게 아냐. 저 봉우리를 넘어가 보면, 북동으로 좀 낮은 봉이 하나 있다. 보면 알겠지만, 봉우리 모양이 요상하다. 보면 딱 안다. 거기서 만나자. 시간은 자정까지. 이렇게 된 이상 통신은 누구라도 살아서 이 상황을 보고해야지. 어이 쪼수, 이 친구에게 통신 세트를 맞춰. 어이, 우로봐 똥개... 너 혼자 교신 가능하지?”


중간짬밥이 자기 군장을 풀어 물품을 꺼낸다.


“옜다, 전도와 사령부 통신 방위각. 여섯 골프 만났을 때, 대충 어디 있는지 너 들었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뭐라도, 느낌이라도!”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는 얘기했습니다.”


“유사시 거기로 가. 알았어?”


“바로 재집결지로 온다고 말씀하십시오!”


“이 자식이 근데...”


뒤쪽 봉우리에서 넘어온 병력들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저 아래 사람들은 저들을 모르고 있다.

곧 총을 쏴서 신호하지 않으면 골짜기는 당한다.


안테나와 부속기재를 군장에 넣어주고, 여분의 실탄과 수류탄을 꺼내 조끼에 가득 채운다. 이윽고, 둘이 하사를 본다.


“김원기.”


“......”


“가라.”


중사는 말없이 돌아서 은엄폐 할 지점을 물색하며 앞으로 나가고, 중간 군번인, 역시 중사가 김원기 특전조끼 앞에 걸린 수류탄을 훅 낚아챈다.


“성함.”


“안 죽어.”


“성함. 난 밝혔어!”


“그만 물어!”


“그러다 포로 되면 서로 죽이게 된다. Go!”


잠시 눈을 마주치고, 등을 돌려 사수가 있는 곳으로 낮은 자세 정숙보행... 쳐다보지 않고 등 뒤 하사를 향해 손을 들어 잠시 멈췄다 내린다.


‘잘 가라고? 이렇게?’


돌아서 이동하는 김하사는 두 종류의 땀이 볼을 타고 흐른다.


알렉산더 프로코렌코. 25. 시리아에서 항공유도 특수작전 중 IS에 포위.


“사령부 응답하라, 반복한다, 놈들에게 발각됐다.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다. 긴급퇴출을 요청한다. 놈들을 길게 저지할 수 없을 것 같다. 좌표는 ********. 탄약이 떨어져 간다. 개새끼들! (사이) 이동 명령을 거부한다. 불가능하다. (사이) 공습을 요청한다. 서둘러 주십시오. 놈들이 나를 잡아 행진하며 나와 군복을 모욕하는 걸 원치 않는다. 품위를 지킨 채로 이 개자식들과 함께 죽고 싶다. 마지막 부탁이다, 공습이 이뤄지든 이루어지지 않던 어차피 놈들에게 난 죽는다. (사이) 놈들이 문밖에 있군. 그간 감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웠다고 전해주십시오. 제 죽음을 복수해주십시오, 사령관님, 그럼 안녕히! 조국과 가족에게 제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마음은 최종을 지향한다.

실탄 옆에 대검과 삼단삽도 위치시키고,

옆 사람을 압박붕대로 지혈한다.


“고마 해. 어데 맞았는지 내가 안다. 니는 가라 이제.”


“어딜 갑니까. 가긴 어딜 가라고.”


“그런가?”


“못 가···. 사수.”


“아침을 못 먹었어.”


“싸수. 군장이 손에 닿습니다.”


사수는 바로 그 말을 이해했다.


조수는 땅을 발로 밀며 군장을 끌고,


“그리 할래?... 메 파운드 남았노.”


“아직 많아요.”


칡뿌리처럼 군장이 땅에서 나오고,


드디어 군장을 풀기 시작한다.


“쫏수. 폭약 꺼내지 마. 그냥 거기가 뇌관을 꼽아. 뭐가 남았냐?”


“비전기식요. 전기식 점화기가 어디 갔어요!”


“군장 터졌어?”


“예.”


“도화선은?”


“제 파우치에 한 1.5 메다 있습니다.”


“총 쏘다 가고 싶다.”


여전히 하늘은 푸르다. 조종사가 참 좋아할 날이다. 바람도 별로 없다. 볕이 따스하다. 한여름에도 모닥불 피우면 사람 모인다고. 태양은 언제나 따뜻하다. 곰곰이 생각하면, 더워도 얼마나 좋은 존재인가. 훈련 중 폭우는 죽음이다. 고어 팩도 못 당한다. 빤스까지 다 젖고 나면, 훈련에서 간절한 것은 오직 말리는 것, 전술이고 좆이고 죄다 꺼내서 나뭇가지에 걸어 말리고, 여전히 흐리면 모닥불 피워서 죄다 말린다. 침낭 말리다가 미친다. 그래야 행군할 때 군장이 덜 무겁기도 하다. 그리고 양말과 군화가 안 마르면 행군 정말 개 같다. 군인을 가장 괴롭히는 훈련을 시키면 장마 때 내보내면 된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추억.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추억. 이 자리의 추억. 누가 살아서 여길 추억으로 기념한단 말인가. 확률 없다.


부상으로 무기력하게 잡히는 게 가장 개 같다. 절대로!


I'M A BELIEVER


“어머님에게 미역국 맛있었다고 꼭 전해드려.”


침묵. 울고 싶지만 감정이 안 잡힌다.


“같이 가서 또 먹지 말입니다.”


“꼽았어?”


“예.”


“도화선에 뇌관도 찝었다고?”


“아니오. 뇌관이 연결된 것 하나 있었습니다. 도화선 고정도 했습니다.”


“라이터? 점화기는. 비전기식 점화기 없어?”


“어딨는지 모르겠습니다. 라이터 콜.”


“...중간에 놔.”


“예.”


“누구든 남은 사람이 한다. 알았어?”


“예.”


“악수하자.”


“네. 사수님.”


“...드러분 놈 만나서 욕봤다.”


“아임다. 즐거웠슴다.”


“말 좋게 하네.”


“싸수. 마지막으로 지시하실 거 없습니까.”


“마지막?”


“뭐라도.”


“음...... 야자 타임이나 할까?”


“농담 말고 말입니다.”


“음, 네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 하나 불러봐.”


조수는 알았다.

저들이 듣건 말건

별, 별, 별 상관없다는 것을.


‘저들은 곧 온다. 그리고 우린 신이 아니다.’


저 멀리 하늘에 또다시 쐐기가 공기를 가른다.


I'M A BELIEVER


모두가 독창을 듣는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박자에 맞게 스푼이 대지의 밥을 뜬다.


‘낯설지 않아. 알았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이걸 누가 짰는지 모르지만, 여단 첫 격리지역 적정연구 때 종이를 보고 이미 알았어. 다 각도로 촬영된 위성 사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그러나 우리가 특별하지도 않아. 전 팀, 전 지역대, 전 대대, 전 여단... 거의 비슷할걸? 내용은 몰라도 반응은 볼 수 있거든. 이중 잠금장치 건물을 나와 휴식 시간에 믹스 마시고 담배 피울 때, 서로 묻지 않는 것이 통례라 침묵했지만 깊은 호흡 깊은 담배. 아, 쟤들도 저렇구나. 장난삼아 너희는 어디냐... 피식 피식 안 웃는 놈이 없어. 이런 말도 했지. 기가 막혀서. 나 원 참 기가... 응? 아 씨발 여기서 불발탄이 나와서 사격 중 노리쇠 후퇴/전진을 했어! OK. Fuck the world.’



[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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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2 de*****
    작성일
    23.07.12 09:33
    No. 1

    음... 이원기 하사는 퇴출 후 보고하고 지령 받다가 추적조나 포병에 맞았나보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저번화 댓글에서 물어본것 격납고화 맞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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