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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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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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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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대대는 어디로 3

DUMMY

5대대는 어디로





돼지의 시체는 너희들 사상에 영향을 주리라. 총알 앞에 총폭탄 정신은 물에 물 탄 듯 된다. 통제가 극악에 이른 나라는 오히려 쉬이 무너지고 인민이 배신한다.


고요한 바람, 소리. 이럴 때 반합을 태우는 잔가지 타서 부러지는 소리 그립다. 벌써 침이 넘어가네. 왼손에 기다란 염장무 들고 허연 쌀을 퍼먹고 싶다.


한번 웃긴 일 있었지. 내가 탄창 속까지 어찌 알아. 노획한 건데. 쐈더니 한 발이 예광탄이야. 기관총 벨트에서 뺀 건가 하여간, 맞은 몸이 녹색으로 타올라. 외계인인 줄 알았네... 참 아군 것 아니라서 다행이지. 아군 거는 크롬 퍼플 빨간색이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엽사들 가볍게 볼 사람을 아니구나...


사람이나 돼지나 뭐 별것이 달라?

총구 돌리면 그거지.


정육업 무시하며 백정이라는 노인네들 가끔 있지.

죽은 것 자르고 저미는 것이 뭔 백정이여.


이제 백정은 총잡이지.


사냥총에 거대한 동물이 무너져. 인간이 코끼리보다 불쌍해? 우리도 동물처럼 한 방에 푹. 가는 거지. 학식이 있건 운동선수건 고대로 한 방에 간다. 나나 너나 한 방에 삽질하듯 병신처럼 간다. 빈 헝겊 쪼가리처럼. 날 죽이려는 놈들은 원래 죽어야 할 인간들이다. 명언 있지. 죽는 순간까지 죽음은 날 영원히 잡지 못한다. 난 안 죽으련다. 안 죽을 거다.


한쪽 눈알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깨져 팝 아트로 얼룩지고, 수류탄 폭발로 뭉개진 코가 눈에 가서 붙었다. 턱이 깨지고 치아 부러져 날아가고 치조골이 드러나고, 매장하지 못한 시신에서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좋아할 벌레들이 기어 다녀. 안거마스가 크게 늘어진 얼굴만 봐도 놀라는데, 그 면상의 (말하자면 인간적인) 구도가 아작나면 가족도 보기 힘들걸. 탄착이 몸에 떨어져 인형같이 백색이 된 망자의 얼굴, 그 냄새는 또 참...


종합병원 장례식 입관에서 곤히 잠든 얼굴과 가지런한 손은 아름다운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산골에 재채기하기 직전 표정으로 전사한 사람이 가장 슬펐어. 내 팀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게 슬펐어. 표정에 쓰여있었지. 미련. 미련. 미련.


‘저 모양으로 저승에 가? 신께서 끔찍한 걸 가장 많이 보겠군. 옛날엔 목도 많이 잘랐는데... 저승에도 영현반이 있어 꿰매고 닦아서 신 앞에 세우나?’


널린다. 각양각색 백색 마네킹 천국. 의대 고학년 실습은 여기 아무 야산이나 가면 된다.


생각은 내가 뒈질 때나 하는 거다.


나에게 먼저 조준 당한 사람은 약자이며, 파리이며 바퀴벌레이며,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이라고 하시게. 정글의 맹수들처럼 먼저 조지는 놈이 강자다. 너와 나, 제발 내가 귀중해달라고 세상에 애원한다. 인류 역사에서 무수한 인간이 하찮게 쓰러졌다. 현대는 총알과 폭탄이 속도감을 더해주지. 머리, 폐, 심장 내장. 대동맥. 팔다리.


모든 피부에 총알구멍을 내려면 최소 800발은 맞아야겠지? 탄두 대비 제법 큼지막한 유기적 생명체. 지구상 생명체는 총이 코뿔소를 쏘건 인간이 인간을 쏘건 외형적으로 같다. 그 작은 게 너무 깊숙이 들어가서 아이고, 아이고, 우린 뒈지는 거여.


쏘고 본다. 니가 누군지 알 게 뭐냐. 니가 어떤 인생인지 내가 알아서 어따 쓰게. 내가 저격수냐? 심리를 읽게...


나에게 고꾸라질 때 심지어 쾌감이 와서 그때 좀 미안해. 멀쩡하던 것을 내 방아쇠 몇 초로 결정하니까. 염라대왕이 있으면 하소연하던지. 난 쏘고 죽이는 직업. 별것들이 내 인생에 감나라 배나라 그러다 총이나 맞아. 이 주황색 군침 도는 총알, 이 한 알이 역사철학이다. 파리 모기 바퀴벌레를 죽이러 여기로 와라. 두 시간만 체험하고 돌아가면 노벨문학상 책장을 찢어 똥 싸고 밑이나 닦게 될 거다. 다 할 수 있어. 곧 적응하게 돼. 살려면 별 개지랄 다 한다. 위선이 힘들어 여긴. 죽이지 않아?


영화에서 왜 사이코패스 역할에게 감독이 씨익 웃으라고 하지? 힘없는 부녀자나 해한 놈들이 뭐가 잘났다고 씨익 웃어. 그게 무섭냐? 웃기냐? 소름이 돋냐? 난 웃는 면상을 난자하고 싶던데.


하여간 인간들은 패러독스야.


연쇄살인범은 인간 변종으로 끔찍하게 여기면서 Band of Brothers의 로날드 스피어스 중위는 우러러보지.


”저 병신들 저거.“


어디를 뒤지는 거야. 난 이리로 가는데.


난 내 목에 방울을 달았어. 딸랑 딸랑 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소리를 듣고 골통에 적중해주세요. 오다가 나한테 맞으면 즉석복권 꽝.


대체 어디 간 거야? 어떻게 팀이 싹 사라질 수 있지? 나, 따 당했나? 하하. 여기 지역대에 내가 모르는 재집결이나 뭐가 있어? 아무리 식객이라도 말야. 하긴 더러울 일이었지. 먹을 걸 구하러 갔다가 일이 벌어졌으니. 자기들끼리 재집결지 있고, 난 모르고. 아무리 뒤져도 어디로 간다, 표식도 없어. 나 혼자 뭘 할 수 있지?


아, 이것 봐라.

까먹고 있었잖아!


‘거기가 있잖아, 거기. 아, 거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쌔애애애애액~~~ 또 상공의 전투기.

높아서 잘 안 보이지만 모텔 인디아 골프는 아닌 것 같다.


어디 때려 부수러 가냐. 조종사는 식당 밥 먹으며 전투하겠지?

미 해군이면 항공모함 장교식당에서? 오, 샐러드, 비만은 싫어!


뭐야.

넌 똑똑하네.

나라면 어디 숨었을까 보는 것 같군요?

하지만 동료들과 같이 다녀야지. 너무 용감한 거 아냐?

다만, 여기서 쏘면 방향을 가르쳐주는 건데.

음? 여기서부터 다른 방향으로 가면 되잖아!

현 거리, 90?

좀 더 가까이 오면 미간.

그래,

13은 무의탁 서서쏴로.


알았어. 검지는 결정했다.


정찰대의 상징. 아는 사람만 알지. 흑복이 아니야. 총을 잡을 때 항상 오른손 검지를 뻗어서 총 옆에 대지. 그게 상징이 아니야. 그다음, 엄지를 사격 단자(스위치)에 대고 다닌다. 대테러의 기본. 적! 스위치 돌려! 당겨! 가 아니다. 적돌려당겨.


적! 엄지가 스위치를 [안전]에서 [사격]으로 돌림과 동시에 검지가 방아쇠울로 들어와 당기는 것. 1초.


걷는다. 검지는 뻗고 엄지는 스위치에 올리고.


자, 다시 모네의 화폭······.


나는 HALO맨이다.

내 이름은 HALO맨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높고 푸른 창공에서

오늘도 내일도

신(존)나게 점프를 한다.




2.


내가 이름 모를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은 복잡한 이유는 없다. 나 자신에게 뽀대 나게? 남자답게? 전혀 아니다. 난 범죄 미스터리 같은 거 많이 봤고, 그때마다 초라한 상태로 죽은 시신들을 보고 느꼈다. 모자이크도 많지만, 검색어만 잘만 치면 진짜 시신들을 구글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내 기분. 초라하다. 초라하다. 거기에 더해 뭔가에 진 것 같은,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피해자건 범인이건 기분 비슷했다. 인생? 세상? 그런 것에 진 것 같은 기분... 남들 생각은 모르겠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맞겠지. 하지만 수송기에 오르는 순간 사진들이 떠올랐다. 멋지게 작전하고 복귀한다? 뭐 타고 복귀해? 걸어서?

HALO는 잠깐, 산과 들에서 끝없이, 끝없이.

그 시신들, 초라하고 불쌍하고 화도 치민다. 그런 사진이 왜 유튜브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가. 나도 그걸 본 놈이지만, 망자에 대한 모독 같다. 차라리 생전의 밝은 사진을 싣지 그래. 세계의 범죄 감식반들이 엄청난 사진을 찍으니 새는 것도 많은 거지.

옷이 벗겨지고 살이 드러나고 관절이 굳어 그로테스크한 모습.

‘난 그 누구에게도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우리 땅 옛날 무장공비 무장간첩 시신 사진들. 난 그 시신들에도 불쌍함과 연민을 느꼈다. 시신이 된 사람을 여전히 적이라고 저주와 비난과 조소를 할 이유는 없잖아? 더 이상 나에게 총을 못 쏘는 놈은 적이 아니다. 내 총에 맞은 모든 적은 용감하다. 모든 적을 존중하기 위해 난 적의 명을 끊는다.

가장 기분 나쁜 건 범죄자들이 하는 시신 모독.

‘그래서 이것들은 가차 없이 죽어야 해.’

콧구멍이 넓어지고 얼굴 피부에 열이 오르는 분노. 죽었으면 자세라도 편안하게 해주고 옷이나 모포라도 좀 덮어주지. 모욕해?

난 내 데스마스크 안 보여주지. 절대로 안 보인다. 그런 일을 막고 지연하기 위해 난 적이라면 누구든 쏘겠다. 난 고양이처럼 ‘실종상태’로 죽을 거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앗 뜨거!”

연기 좀 나나?

적막한 수풀 속에 나 혼자.

뭐 이 정도면?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오오오... 아앗싸.”

모처럼 밥 내에 코가 환장하고 침이 꿀꺽, 악관절이 떨리면서 혀가 전율한다.

지리산에선 몽당숟가락이 당증이라 했다는데, 어떻게 숟가락이 사라지냐.

“목매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씨 만나요...”


생각이 중단되고 필름은 끊긴다. 내가 주인공인 무성영화를 본다. 어떤 동물이 씹고 삼키는 데만 집중한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밥을 먹는 게 아니다. 이건 식사가 아니다. 하지만 중단되지 않는다. 딱 한 번 씹는 시늉만 내고 삼킨다. 입천장을 디고 급조 나무젓가락이 목젖을 찌른다. 허, 헉, 허. 숨이 거칠어진다. 입안에 물집 생기겠다. 턱이 들리고, 밥이 가득 든 입이 상공에 김을 내뿜는다.

‘어, 개 뜨겁네.’

또 삼키고,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밥을 한 더미를 집어 아가리에 욱여넣는다. 고기고 뭐고 오직 밥, 이 밥을 하루 세 번 양껏, 아가리 째지도록 매일 이팝을 먹고 싶다. 고깃국도 필요 없다. 잡다한 거 필요 없고, 위장을 든든하게 채우는 이 곡식이 필요하다. 한 알 한 알이 다이아몬드처럼 오독오독 보석 같은 향기. 불로 때서 밥은 더 맛있다. 이래서 게릴라는 반합을 못 버리는 거다. 언제라도 쌀을 구할 미련 때문에.

“허~~~ 허~~~ 허~~~”

떡 친 것처럼 헐떡이네. 바쁘게 쓸어 넣고 푹석 주저앉으니 정신이 돌아온다. 말마따나 정신이 퍼뜩 돌아오고 눈이 앞으로 쑥 나온다. 얼룩 구름 잔뜩 낀 하늘...

소리?

‘사주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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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대는 어디로 3 23.09.04 238 8 11쪽
335 5대대는 어디로 2 23.08.28 281 9 11쪽
334 5대대는 어디로 1 23.08.21 326 6 11쪽
333 너의 목소리가 들려 4 +1 23.08.07 340 13 14쪽
332 너의 목소리가 들려 3 23.07.31 285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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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너의 목소리가 들려 1 23.07.17 321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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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5G BRAVO 3 23.06.19 275 12 11쪽
325 5G BRAVO 2 23.06.12 29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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