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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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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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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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대대는 어디로 4

DUMMY

5대대는 어디로




총 들고 사방 10m, 천천히 걸으며 이상 유무 확인. 왼손으로 입가와 수염에 붙은 밥알을 입술 안으로 밀고, 혀로 핥아. 남은 한 톨이라도... 족히 네 공기는 될 양을 1분 만에 먹어치웠다. 금방 꺼지겠지만 얼마만의 포만감인가. 참고 참지만, 드럼통 같은 트림이 꺼억~~~ 터진다. 영양분이 날아가는 것 같아 트림조차 아깝다. 선수 시절 체중보다 더 내려간 것 같다. 그동안 몸빵은 뭐냐. 그거라도 해서 버티는 건가?


불가는 정리해야지. 하는 김에 숯을 식혀 으깨고 손에 침을 퇘! 버무려, 얼굴에 문질러. 면상, 귀, 목, 손등.


앉아 있는 시간이 불안하다.

‘내려가서 확인해보자.’


먼저 눈을 미치게 한 건 쌀이다. 재빨리 덮고 올라와 밥부터 해 먹었다.


도착. 사주경계, 청음... 조용히 20분이 참고 참으며 대기. 먼저 움직이면 죽는다.


‘지겹다 없어. 이상 없어.’


천천히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치우고, 판초 걷어내고 구덩이 확인.


이렇게 든든하냐.


지뢰. 대전차지뢰. AK, RPD, 폭파 용구, 수류탄, 실탄, RPG와 로켓탄. 아, 권총까지 여러 개 있네. 그리고 누구 것인지 쓸모가 없어지고 찌그러진 우리 군장. 군장 빼고 모두 남쪽에서 온 물건이 아니다. 노획한 것. 총에 피도 묻어 있다. 팀이 이것을 묻을 때 난 여기 없었다.


‘어디 간 거야. 짜증 나게 진짜.’


그래 말해봐. 생각은 뭐냐. 혼자 남았다. 진짜 생각? 뭐겠어. 사는 거지. 내가 쓸 것을 군장에 챙기고, 혹시나 찾아올 이 팀 팀원들을 위해 반 정도는 남겨두고, 여기 일주일 후에 다시 온다. 만약 그때, 이걸 가져간 사람이 없으면 이 팀은 끝난 거다. 그러지 않길 바란다.


5대대 이 팀이 돌아와서 보면, 내가 왔다 갔다는 거 당연히 안다. 일주일 안에 이걸 가져가고 메모라도 남기면 고맙겠다. 하여간 고맙다. 먹을 게 가장 간절했지만, 생존은 분명 총알과 수류탄이다. 배고프면 속 쓰리지만, 총과 총알이 없을 때의 공포까진 아니다. 총알이 몇 발 없을 때가 불안하다. 총 총알이 없으면 정말 공포가 온다. 알몸으로 내몰린 기분이 들어...


‘노획한 AK를 쓰게 되면, 먼저 가늠자 판 중간 홈이 좌우로 얼마나 쏠렸는지 봐라. 보통은 그렇게 심하지 않지만, 사용하던 사람의 턱 견착이 요상해서 한쪽으로 많이 밀려 있으면 사격에 문제 생긴다. 그럴 때 정중앙으로 돌려놓고 쏴보다, 탄착이 좀 이상하면 약간만 조정해. 영점사격을 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소리를 낼 수 없어 기회를 봐야 한다.


거의 중앙이면 일단 사용해봐. 가늠자 거리판을 몇에 물려놨는지 확인하고, 100m 이상 쏠 경우는 드무니까 그냥 1에 놔. 올리면 하탄 난다. 우리 여단사격장 끝 거리 타킷 정도면 2다. 개머리판 뒤쪽 구멍에 AK 손질도구, 꼬질대 통, 없으면 있는 걸 꼭 끼워놓고. 총이 여러 정이면 낮에 분해해서 총열 속과 스프링 탄력 좋은 놈으로 선택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해야 할 때가 또 있다. 전우의 총을 쓰게 됐는데 조준경이 안 될 때, 똑같이 확인해서 가늠자가 쏠려 있으면 일단 중앙으로 놓아라.‘


아, 손가락 끝 아프네. 제기랄 거. 열 개도 넘는 탄창. 한알 한알 삽탄 이빠이. 손가락이 탄창 끝의 절삭 면을 반복적으로 누르다 베일 것 같다.


25발? 아니, 30발 만땅으로. AK 탄창 아낄 일 있냐? 스프링을 눌러 보고 탄력이 눅눅하지만 않으면 모두 30발 넣어. 총탁(개머리판)에 때려서 실탄을 탄창 뒤로 밀고...


우리 총만 그런가? AK는 상관없나? 모르겠다. 하던 대로 해. 탄두가 탄창 앞에 걸려서 기능고장 나는 것보단 낫지. 클립으로 10발씩 좌르르 좌르르 넣고 싶다. 북한도 넣는 게 있긴 있는데 말야. 이렇게 존나게 삽탄하는 건 왜 영화에 안 나오냐. 영화는 왜 30발 탄창에서 50발이 나가냐. 영화감독들 잡아서 2천 발씩만 삽탄 노역을 시키면 영화가 새로워질 거다.


다섯 개 끝. 탄창 5개, 급하게 갈기면 2분도 안 걸린다. 영화가 아무리 압축이라지만, 전투 중 탄창에 삽탄하는 건 나와야지. 탄창도 툭툭 때리고. 삽탄 끝나면 AK 분해해서 윗니 아랫니 구석구석 한번 닦자...


오후 햇볕이 따갑다. 벌써 다시 배가 고프다. 손을 턴다.


‘다 끝났니?’


죽어도 억울해서 못 죽겠네

우리 팀은 어디로 갔나.

왜 5대대 구역에 안 나타났지?

진짜 다 골로 간 거냐. 응?

최상사 같은 사람이 죽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총은 총이라지만.




3.


이러다 정말 골로 가는 거 아닌가. 너무 많이 맞았다. 마음이 교만해지자 세상도 따라 변심했고, 거만함이 몰고 온 나의 문제. 전국대회면 나도 명함 못 내민다. 내 체급에 나를 분명히 이길 사람이 최소 다섯이다. 대회가 여기저기 중구난방이고, 해당 단체 전국대회에서 승리하면 그해 챔피언이라고 저마다 주장하지만, 그래도 그 단체들이 한 해 챔프를 결정하는 대회를 열지 않으면 뛸 링 자체가 없다. 스폰이 사라져서 대회가 주저앉곤 한다.


그러니 각자 체육관의 본 메뉴를 상관하지 않고 다 출전한다. 입식만 되면 모두 서류를 쓴다. 관중석은 텅텅 비고 코치들 고함만 지방 체육관을 울린다. 냉정하게 난 전국대회 15위권. 대회마다 만나는 선수들도 똑같지만 줄어든다. MMA로 무척 쨌다. 얼굴을 안 비춰 물어보면 주짓수 배운단다. 입식 사회가 좁아진다. 느낌 이상한 신인이 나오면 관장들이 조용히 뒤를 캔다. 그래도 이겨야 하니까.


얼굴, 몸, 보면 느낌과 별 안 다르다.


이번 게임 내가 먹는 분위기였다. 지역대회 결승. 이기면 서울대회 8강, 아무리 봐도 내 몸은 최고조로 올라왔다. 땀복을 24시간 반 미치기 직전에 계체하고 전복죽 첫술을 뜰 때 느꼈다. 이번에 뭐 된다. 된다. 느낌 올라온다. 바람이 분다. 서울 가자.


‘오랜만이다 야.’


건너편은 나보다 어리고 전에 이겼던 아이. 나한테 개 쩔게 깨졌었다. 실력 갑자기 점프하는 거 안 믿는다. 다만, 녀석이 내가 기억하는 똑같은 몸에 (2년 더 자랐으니까) 살짝 두꺼워졌다. 안 보여서 운동 그만둔 줄 알았다. 2년 전 시합은 팔꿈치가 허용되던 드물었던 무에타이 간판 시합. 팔굽 안 쓰는 킥복싱으로 배운 아이는 내 오른 팔굽에 맛이 갔었다.


내가 낙무아이라고 대놓고 말하기 우습지만, 베이스는 타이 복싱. 녀석을 코너에 붙여놓고 콤비네이션으로 팔굽 연타 좌우로 돌리고 몸을 굽혔다가 - 왼손 가드, 위로 솟구치며 오른손 팔굽을 아래서 위로 긁었는데, 걸렸다. 뜨억 호흡이 내 얼굴로 날아오고, 녀석이 충격을 벗어나려고 글러브로 날 밀며 버텼다. 난 오른발을 들면서 녀석 팔 위에 내 왼 팔굽을 얹어 땀을 윤활유처럼 타고 수평으로 밀어 턱을 찍었다. 쓰러질 때 눈에 초점이 안 보였다. 어퍼 엘보우가 컸어.


‘이놈이 갑자기 왜 이러지?’


오늘, 내가 너무 맞는다. 태국 유학 갔다 왔냐. 로킥이 무릎 바깥쪽 근육을 정확히 더듬으며 연짱 쌔린다. 녀석이 ‘여긴가? 여기구나.’ K1 어네스트 후스트처럼 정확한 근육 부위를 좁혀 들어온다. 다리를 접으며 들어서 막지만 이미 전기가 찌릿찌릿 온다. 고무다리 뻐쩡다리 될까 겁난다.


바로 보내버리려고 1라운드에 오버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아차 싶었다. 첫 바디-킥과 첫 팔꿈치에 전혀 안 흔들리고 눈빛이 얼음, 통나무를 때리는 것 같다. 전과 다른 사람이다.


‘이건!’


충격을 받았다는 호흡이 전혀 안 터진다. 모든 운동경기가 같다. 상대를 우습게 보다가 이거 아니다 싶은데, 게임 중간에 초심으로 못 돌아가는 거다. 그건 최고 프로들만 가능하다. 우린 마음을 바꾸면 그 순간 당한다고 생각한다. 강대 강에서 한 발 빼면 쳐맞는다는 불안. 한번 삐딱선은 교정되지 않고 더욱 새로운 국면으로 날 몬다. 왜? 변수가 나만이 아냐. 내가 깨달았지만, 상대도 깨달은 거지. 간을 본 녀석은 2라운드에 작정을 하고 나왔다. 눈이 프린팅한다. 복수. 앙갚음. 노인네. 너 이 자식 죽어 봐라...


전형적인 무에타이. 앞발이 니(knee) 가드로 스텝을 톡톡 밟으며 무릎을 들다가, 바닥에 튕긴 발이 갑자기 훅- 쌔리며 면상에 채찍처럼 온다. 눈으로 보는 각 바깥의 아래에서 치솟는데, 너무 아프다. 그냥 ‘발 아무 데나 걸려라’가 아니라, 때리는 발등 살이 타격 부위를 완전히 감는다. 상대를 때릴 때 정확히 발 어느 부위로 어디를 정확히 때리라고 코치를 받은 거다.


이것이 미쳤나. 미친 게 아니라 분명히 본국(태국) 다녀왔다. 각이 개월 각이 아니다. 적어도 1년. 태국 애들은 발의 어느 부위(너비)로 상대 무릎 특정한 작은 근육을 정확히 니킥으로 차라고 배운다. 태국 애들과 하면 니킥이 더듬으면서 발등 가격 부위와 찾고 있는 내 타격 부위를 일치시킨다. 더듬으면서 영점을 잡는다. 제대로 일치되면 난 고무다리 되고, 건너편 눈이 말한다. ‘이거? 여기?’


펀치는 견딜 만하다. 펀치는 강하게 맞아도 멍할 뿐, 생 주먹처럼 ‘아프지는’ 않다. 하지만 로킥, 바디킥, 니킥... 아프다. 내장 출혈로 죽을 수도 있어.


“헛!”


로킥 맞은 내 무릎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고 허허실실로 온다. 저게 몸 완전히 풀렸다. 춤추는 것 같다. 로킥 포즈에 갑자기 주먹, 주먹 포즈에 갑자기 로킥. 내 균형이 무너지자 무작위로 온다. 콤피네이션은 대여섯 가지 뻔한데, 보면서도 피할 수가 없다. 이 좁은 감옥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펀치로 툭툭 치고 로킥을 차다가 엘보우가 훅 들어와 좌우 상하로 돌아오고, 내 목이 무에타이 클린치로 잡히고 연타 니킥... 팔뚝을 겹쳐 니킥 방어를 하지만 팔뚝 뼈 부러질 거 같다. 2년 전의 메뚜기는 사마귀가 되어 링에서 재회했다.


숨이 막힌다. 아니 턱! 막혔다. 뭐지?

어...


‘갈비뼈, 부러진 거 아냐?’


아무리 맞아도 정신이 멀쩡하면 안 쓰러진다. 들어오는 걸 똑바로 보면 아파도 쓰러지진 않는다. 하지만 허리가 구부러지고 시선이 떨어지면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것에 맞아 멍~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난 다운된다.


더 큰 것! 결정적인 것! 기에 눌린다. 기빨이 날 깔아뭉갠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몸통을 혀처럼 말고 가드 방어로 최대한 버티지만, 녀석은 틈을 계속 보고, 틈은 늘어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역동작을 봐도 못 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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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5대대는 어디로 3 23.09.04 238 8 11쪽
335 5대대는 어디로 2 23.08.28 281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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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너의 목소리가 들려 3 23.07.31 286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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