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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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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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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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대대는 어디로 1

DUMMY

5대대는 어디로



1.


모네가 붓으로 그린,

눈 부신 빛이 범람하는 여름 바닷가.

여인과 아이들의 하늘하늘한 옷의 하얀색은 번지고,

화면이 흐려지면서 하얀색으로 페이드아웃 되는 것 같은 풍경.


군인은 사진만 봐도 사계절 각각의 냄새를 기억한다.

지금은 늦여름 흙과 풀의 독특한 냄새. 군인은 거기서 시뻘겋고 축축한 흙은 보는 존재.

”파!“

삼단삽으로 은거지를 까던 냄새의 기억이 또렷하다. 냄새는 사계절 네 개가 아니다. 여덟 개는 넘지. 산, 들, 강변, 바닷가의 냄새는 또 다르고. 한여름 동해안 바닷가 냄새는 아직도 이가 갈린다.


흑과 백.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그늘이 무작위로 아롱진 곳. 무성한 가지와 잎이 인공적인 모양을 감추며 위장을 만들고, 나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오똑 솟은 강철 침에 초점을 모은다. 쇠침의 끝을 자세히 보면 직사각형이라기보다 뭉툭하다. 흠집도 보일 만큼 또렷이 우뚝 섰다. 특등사수는 이것을 못 볼 리가 없다. 그리고 그 침 위에 살금살금 움직이는 어두운 물체.


‘그늘로 들어가기 전에...’


수직 침은 물체를 따라간다. 강철 침 외의 사방은 신기루 만화경처럼 흐릿하다. 가늠쇠를 향한 집중. 가늠쇠와 그림자의 일치. 쇠침 밖의 흐린 세상은 맑은 파스텔 그린, 뿌연 백녹색이 산들바람에 살랑인다. 하지만 쇠침은 흔들리지 않고 고정. 가늠쇠는 나의 마음이다.


‘잠시 동공을 풀고 조준선 정렬 확인... OK.'


다시 가늠쇠와 물체, 사지가 달린 그림자. 물체에 수평으로 삐쭉 나온 선이 좀 길어? AK 자동화기 지정사수 AKM? APM? 정확한 명칭이 뭐건···. 반갑습니다···. 동포 여러분.


저 사람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뭣인가 찾았지만 날 인지하지 못했다. 태양 볕과 그늘이 교차하는 수풀 사이, 난 여기 한 뼘만 내밀고 널 보고 있어...


조준경이 망가졌다. 그로 인해 득과 실을 체험한다. 배율 3X만 넘어도 근접전에서 스코프는 수풀과 땅을 헤매다 훅 지나간 그림자를 다시 찾기 힘들다. 결국, 상대는 순간적으로 나와 가까워지고, 스코프 달린 총이 지향사격으로 전락하는 대신, 사이트가 있으면 먼 거리를 정확히 쏜다. 그러나 200까지는 나도 렌즈 없이 한다.


조준경, 차라리 잘 됐다. 수동사격이 진짜 사격의 맛 아니냐.


너.

무리와 떨어져 사방을 쳐다보는 너, 계급 뭐냐.

이거 스코프가 없으니까 원.


Soft hand,

Soft ‘Right’ hand finger!


총의 원리는 같다. 우리 총 너희 총 다르지 않아. 총을 잘 쏜다는 건 조준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조준의 중요성을 누가 모르나. 하지만 조준은 누구나 연습하면 시간이 단축되고 적응이 되며 안정감이 생긴다. 사격을 많이 해도 안정감이 생긴다.


총은 조준 능력이 아니다. 그건 기본이고, 그 이전에 하나가 해결돼야 한다.


총을 잘 쏜다는 건, 격발하는 순간에 총이 안 흔들린다는 뜻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총은 격발의 예술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난 기록으로 증명했다.


방아쇠가 하는 일은 – 뭘 때리는 게 아니다. 때리는 건 공이가 하는 일이고, 방아쇠란 : 스프링에 눌려 있는 공이치기에 걸린 톱니를 풀어주는 것. 방아쇠가 때린다고 생각하면 이 개념을 이해 못 한다. 방아쇠 당김은 눌린 스프링에 쐬기를 빼주는 작용과 같다. 쐬기를 빼는 것과 실탄 뒤의 뇌관을 때리는 기능은 대부분 분리되어 있다. 동일체가 아니라 두 기능이 연동해서 작동한다. 그걸 하나로 보는 사람들은 무 스코프 저격이 힘들다.


초보는 손가락 한 마디 이상을 방아쇠에 넣어 당기고,

숙련자는 검지 끝만 (필요한 만큼만) 대서 당긴다.


나는 검지 첫 마디 반만 쓴다.

이 차이는 소총에서는 크지 않으나 권총에선 – 격발 순간 – 꽤 총구가 튄다.


이 손가락의 차이는 무엇을 말하나?

방아쇠가 당겨지는 힘이 과도한가의 문제다.


방아쇠는 방아쇠가 더 당겨지지 않는 막히는 곳까지 당기는 게 아니다. 막히는 벽까지 때리는 게 아니다. 벽에 도달하기 전에 격발된다. 방아쇠가 막히는 벽은 기계적으로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한다.


방아쇠가 막히는 곳에 닿는 (치는) 순간 총 수평이 약간 깨진다. 총구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방아쇠는 더 못 가는 벽에 닿기 전에 쐬기를 뺀다. 방아쇠는 막히는 곳까지 닿지 않아도 쐬기를 빼고 격발시킨다. 그 벽이 쐬기가 뽑히는 장소가 아니란 말이다. 고로, 손가락을 한 마디 이상 넣어서 당기면 힘이 강해져 그 ’벽‘에 닿는 것이고, 손가락 끝을 살짝 대고 당기는 사람은 ’벽에 닿기 전에‘ 격발시킨다는 뜻이다.


방아쇠가 벽에 닿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약간 틀어진다. 그전까지는 방아쇠 장력에만 관여하지만 – 벽에 닿는 순간 손가락 힘이 몸통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기는 손이 있는 총 오른쪽으로 대부분 돌아가거나 튄다. 이것이 권총이라면 무척 흔들리고, 가뜩이나 총열도 짧고 움직임이 급격한 권총은 아무리 조준 잘해도 튀면서 총알이 나간다. 즉, 무조건 방아쇠를 확 당겨 벽에 닿으면 총알이 발사되기 전에도 총이 틀어지는 거다.


총이 잘 안 맞으면 내 검지가 옆에서 볼 때 완전한 수평인지를 봐야 한다. 누가 봐주는 수밖에 없다. 검지가 수평이 되면 벽에 도달해도 옆으로 돌아가기보다 후방으로 밀린다는 뜻이다.


권총도, 소총의 권총손잡이도, 오른손 그립을 통해서 완전한 수평으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인체 구조를 총 그립이 완벽히 맞춰주지 못한다는 거다. 인종 체구, 손가락 길이 등등 다르다고 총 그립을 따로 만들 수도 없다. 그립은 공장에서 똑같이 나온다.


그러므로 검지가 최대한 수평으로 부드럽게 당기기 위해서 - 그립을 너무 꽉 잡으면 안 되고, 그립을 잡는 힘이 강하면 빨리 장력의 벽을 도달한다. (검지가 수평이 되려면) 그립을 잡는 위치도 자신의 손 크기에 따라서 약간 아래로 위로 조절하고, ’느슨하게‘ 잡아야 덜 흔들린다. 손이 작으면 위로 바짝 잡고, 손이 크고 손가락이 길면 손잡이 좀 밑으로 잡아야 검지가 수평으로 당긴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오른손 그립은 필요한 만큼만 살짝 쥐는 거다.


검지와 중지로 고리를 만들어 빠지지 않게만 잡아도 된다.


이는 방아쇠에 마구 힘이 전달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 의미가 바로 방아쇠에 1~2~3단계 걸리는 것을 느껴보라는 의미와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권총이 힘들다. 소총보다는 견착/지지점이 없이 공중에 떠있는 총이니까. 가장 큰 차이는 개머리판의 유무다. 개머리판 견착으로 소총은 권총보다 확고하다. 1차대전에서 개머리판을 장착했던 모젤 권총 등은 그래도 안정적일 것. 권총은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다. 부드럽게 잡으려 해도 기본적인 권총 통제력의 손아귀 힘이 필요하다. 조준도 해야 하니까. 그 중간 어디의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주먹을 쥔 것도 아니오, 안 준 것도 아니다.)


총을 잘 쏜다는 사수는, 방아쇠가 벽에 막히기 전에 쐬기가 빠지는 것이며, 시작점과 벽에 닿는 중간에 격발이 되어 총알이 나가는 사람이다. 즉, 방아쇠가 막히는 벽에 도달하지 않고 총을 쏘는 사람이다. 그래서 총열 덮개에 바둑알 같은 것을 놓고 격발하는 연습을 하는 거다. 이 개념을 모르고 연습하면 의미가 없다.


이런 장력, 시작점에서 벽까지 거리와 격발점은 총마다 다르다. 시작점이 1이고 벽이 5라면, 4에서 격발되는 총도 있고, 4.5도 있고, 3.5도 있다. 원리는 같지만, 총의 구조와 특성을 모르면 조준 아무리 잘해도 격발 순간에 흔들린다. 100m는 맞아도 200m 이상에서 문제가 된다. 무 스코프 저격이라면 100m라도 어떤 부위에 맞추는가로 또 갈라진다. 100m이라면 머리나 심장을 맞춰야 정상이다. 아니면 적의 추격속도를 늘이기 위해 몸통이나 허벅지를 일부러 쏘던가.


뭐가 문제인지 이유도 모른 채 고민만 졸라 하고, 그러다 한 5천 발 쏴야 그때부터 무의식중에 그렇게 맞춰진다. 그건 낭비다. 기준 이하 사격자는 국방비 낭비다.


그렇게 ’감‘으로 익힌 사람은 이론을 알고 맞춘 것이 아니기에, 사격을 오래 안 하면 다시 안 좋은 버릇이 나타나서 또 방황할 수 있다. 연습하는 방법은 총을 분해해서 상부 총열을 분해하고 아래 손잡이와 방아쇠 틀만 쥐고 격발연습을 하는 것이지. 총 무게 때문에 격발로 인한 흔들림을 느끼기 힘든데, 상부 총열을 빼고 하부만으로 격발하면 흔들림이 잘 보인다. 가벼워지니까.


검지 첫 마디 1/2의 예술.


조준을 유지하고, 방아쇠가 뒷벽에 막힐 때까지 당기지 마라.


그 중간에 총알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오른손은 soft해야 한다.

검지가 간지럼 태우듯이 긁어야 한다.


검지 끝의 예술


나는 이 노획한 총의 격발을 연습하기 위해

눈 감고 50번도 넘게 장력을 익혔다

벽에 닿기 전에 어느 포인트에서 격발하는지 익혔다

내가 쓰던 총과 격발점이 얼마나 다른가 익힌다.

앞으로도 계속 연습할 것이다

이 총을 버리고 다른 총을 잡으면 다시 연습할 거다


가늠자가 이 정도 중앙이면, 이 거리에서 충분하다.

너는 내 검지 끝으로 죽는다.


풍경, 색채, 새 소리.

참 좋~은 날이다, 말리기 좋은...

넌 발길을 멈추고 난 호흡을 멈추고, 넌 긴장하고 난 부드럽다.

’반갑습니다······.‘


방아쇠의 기계적 이격이, 어느새 1단을 지나 tuning point를 넘어서고, 난 세상 태평하게 모든 걸 유지한다.


‘모네, 파라솔을 든 여인. 안녕.’

전선에 매달린 무거운 덩어리 느낌,

참고 참던 그 팽팽한 장력이 길어진다.

그리고 끊어진다.


터~~~~~엉!


물체가 내 가늠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슬로비디오. 화면이 약간 위로 들리며 몸이 뒤로, 내 몸이 전체적으로 푹! 밀리고 덜커더~~~억! 기계는 맞물림을 풀었다가 뒤를 치고, 다시 앞으로 전진.


이 이 이이~~~잉...


무성영화가 끝나고 오감이 돌아온다. 소리 냄새 온도 잎사귀.


산야를 마지막으로 터는 반향음.


털리는 먼지. 파스텔 그린의 흔들림. 온화한 태양. 북조선 화약 냄새...


[CQB 원칙 : 테레범에게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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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5대대는 어디로 4 23.09.11 222 8 11쪽
336 5대대는 어디로 3 23.09.04 237 8 11쪽
335 5대대는 어디로 2 23.08.28 281 9 11쪽
» 5대대는 어디로 1 23.08.21 326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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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너의 목소리가 들려 1 23.07.17 321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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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5G BRAVO 3 23.06.19 274 12 11쪽
325 5G BRAVO 2 23.06.12 29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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