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종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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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로
작품등록일 :
2012.09.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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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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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새로운 링크

Copyright ⓒ 2010-2015 by 한새로




DUMMY

정신을 차린 민혁이 가장 먼저 느낀 감각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극심한 두통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속도 뒤집어질 듯 쓰렸다.

힘겹게 눈을 뜨니 침대 주위로 반투명한 연분홍빛 캐노피(canopy: 침대 위에 지붕처럼 늘어뜨린 덮개)가 드리워진 것이 보였다.

통증을 억누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가운데 어느 정도 몽롱한 기운이 가시자 귓가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슬며시 들춰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는 물론 여인도 발가벗은 채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급히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니 실내장식이 여염집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 청루(靑樓: 몸을 파는 기생이 있는 집)인 듯싶었다.

‘링크는 잘 된 것인가?’

어찌 되었든 바랐던 대로 다른 시대, 다른 몸으로 링크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링크 된 시대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익히 보아 왔던 중국풍의 장식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적어도 지구를 벗어나 이계에 링크 되는 황당한 사고는 일어난 것 같지 않았다.

 

 

 

냉철하게 판단해 보았을 때, 시간을 거스르는 과거로의 링크는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스승 파누스의 어이없는 실수로 비롯된 마법진에서 실마리를 얻어 만든 것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시험조차 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마법진의 영향권 안에 들어선 행동은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포아로처럼 영영 몸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 채 의식만 남아 차원을 떠돌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무모한 일을 감행하게 된 것은 순전히 무공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혁은 그가 만든 마법진이 틀림없이 성공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무모하긴 했어도 성공했으니 신께 감사 기도라도 드려야 하는 것인가.’

이제 링크를 끊고 본신(本身)으로 아무 탈 없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일단 한 번 이어졌던 링크는 같은 마법진 아래에서라면 계속 이어질 테니 말이다.

 

 

 

민혁은 손을 들어 자세히 살폈다. 손의 상태만 보아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략은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굳은살 하나 없는 깨끗한 손. 순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왕이면 무가(武家)의 인물에 링크 되었다면 좋았을 걸.’

아무리 봐도 무인의 손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고생이라고는 전혀 해 보지 않은 듯 창백하기까지 한 피부색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링크를 끊고 마법진을 다시 만들어야 하나?’

그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공과 관계없는 일반인은 무공을 배울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위험하더라도 이번 링크를 끊고 새로운 링크를 시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나 한 뒤 결정을 내리자.’

민혁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옆에서 곤히 자는 여인을 불러 깨웠다.

“이봐.”

여인은 목소리를 낮춘 채 부르는 것으로는 잠에서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그는 여인의 뺨을 톡톡 치며 조금 큰소리로 불렀다.

“이봐, 이봐!”

그러자 여인은 그를 더욱 힘껏 껴안으며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으음.

깨우지 말라는 듯 가볍게 앙탈을 부리더니 다시 잠에 빠져들 기세였다. 보드라운 여인의 살갗이 온몸에 느껴지자 민혁의 남성이 자신도 모르게 성을 냈다.

애써 욕망을 억누른 민혁은 허리를 감싸 안은 여인의 팔을 떼어 내며 다시 한 번 불렀다.

“이봐!”

그제야 여인은 힘겹게 눈을 떠 멍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공자.”

여인은 그가 이른 새벽부터 자신을 깨우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늘어지게 잠을 잔 뒤 꽃단장까지 마치고 깨워도 쉬이 일어날 줄 몰랐던 도련님이 동이 채 트기도 전에 자신을 깨우니 그럴 만도 했다.

“잠깐 일어나 봐.”

그의 말에 여인은 본능적으로 이불로 가슴을 가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아직 시간이 이르옵니다. 더 주무시지 않고 어인 일이시온지요?”

그는 후벼 파는 듯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두통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여인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어제 평소보다 술이 과하셨는데……. 편찮으신지요? 봉밀수(蜂蜜水: 꿀물)라도 올리오리까?”

여인의 말로 보아 몸의 주인이 여인을 하루 이틀 찾은 것이 아닌 듯싶었다.

“괜찮아. 그것보다…….”

민혁은 질문을 던지려다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두통과 복통에 뭐라도 마시는 게 낫겠다 싶어 바로 마음을 바꿨다.

“있으면 좀 다오.”

그의 말에 여인은 조심스럽게 이불에서 빠져나와 속이 훤히 비치는 옷 한 겹으로 알몸을 가리더니 창가 탁자에 놓인 자기병에서 뭔가를 따라 그에게 가져왔다.

“드사와요.”

민혁이 여인이 내민 잔을 받아 한 모금 맛을 보니 영락없는 꿀물이었다. 갈증이 심했던 터라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빈 잔을 다시 여인에게 건넸다.

그가 단숨에 잔을 비워서인지 여인은 조심스럽게 그의 의향을 물었다.

“더 드리오리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그의 대답에 여인은 두말없이 빈 잔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여인의 머리카락은 매우 길어 허리께까지 내려온 터라 그 뒤태가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얼굴 또한 고치고 가꾼 현대 연예인의 미모에 익숙한 그의 눈에도 꽤나 미인 축에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잠을 더 청하려는 생각이었는지 입었던 옷을 다시 벗어 놓고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자세로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가 눕지 않고 몸을 일으킨 그대로 있자 먼저 눕지 않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기침(起枕: 자리에서 일어남)하기에는 이르옵니다.”

여인의 태도 하나하나에는 현대 여성에게는 보기 어려운 기품이 배어 있었다.

‘옛 창기(娼妓)들은 손님에 대해 이처럼 예를 다했던 것일까?’

민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여인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그의 물음에 여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녀와 하루 이틀 알았던 사이가 아닌 터. 뜬금없는 질문에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감히 그 이유를 묻지는 못하겠는지 순순히 대답을 했다.

“수화(秀花)이옵니다.”

“수화라…….”

그가 이름을 되뇌자 수화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의아함이 어렸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녀를 품으며 수없이 불렀던 이름이었건만 난생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름을 묻고 되뇌다니.

“공자.”

그를 부르는 수화의 어조에는 걱정이 한가득 묻어났다.

“내가 누구냐?”

그가 다짜고짜 물었다. 하지만, 수화는 그가 질문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누구냐니요?”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내가 누구냔 말이다.”

수화는 그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혹 그가 실없는 농(弄)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농의 기운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 그가 단순히 장난을 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챈 수화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고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서문세가의 대공자(大公子: 큰 아들)이시옵니다.”

그 대답에 민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가(世家)라면 적어도 바탕은 된다는 말이었다. 거기다 대공자라면 추후 세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이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서문세가가 무가(武家)이더냐?”

그의 질문에 수화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그러나 감히 그 연유를 묻지 못하고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그 대답에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가라면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한데……. 어찌 나는 무공을 못하는 것이냐?”

민혁은 아까 살폈던 손 상태로 보아 이 몸의 주인이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하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수화는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에 그가 채근하듯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을 않는 것이냐?”

그의 다그침에 수화는 얼른 무릎을 꿇고 원망스럽다는 투로 고했다.

“공자, 어찌하여 소첩에게 그런 하문(下問)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는 그런 수화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을 재촉했다.

“괜찮으니 말해 보아라.”

그의 채근에도 수화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태도를 바꾸지 않고 대답을 기다리며 바라보고만 있자 수화도 어쩔 수 없었는지 마침내 힘겹게 답을 했다.

“공자께옵서는……. 무공보다 시(詩), 서(書), 화(畵), 가무(歌舞)를 즐기셨사옵니다.”

한마디로 한량(閑良)이란 말이었다. 막강한 집안 배경과 위상을 가졌음에도 무공 수련을 등한시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가 그리했던 연유를 아느냐?”

그의 물음에 수화는 송구스러운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첩이 어찌 그 연유를 알겠사옵니까?”

“그래, 그렇겠지…….”

벌거벗은 채 무릎을 꿇은 자세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수화와 잠시 눈을 맞추던 그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여기는 어디냐?”

수화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공자가 철이 든 이후로 세가 안에서보다 이곳에서 밤을 보낸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감히 대공자의 하문에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물으면 답을 해야 하는 처지일 뿐이었다.

“이곳은 청화루(淸華樓)이옵니다.”

그녀의 대답에 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어느 지방이냔 말이다.”

그 말에 수화는 또 다시 고개를 들고 대공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한 점 사심 없는 맑은 눈빛에 그녀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여기는 하남부(낙양洛陽의 옛 지명)이옵니다.”

하남부라면 북경이 있는 하북성 아래가 하남성이니 대충 어디쯤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하남성과 수화가 답했던 하남부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 하남부, 즉, 낙양은 나중에 하남성에 속하게 되니 크게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그럼 이곳이 하남성인 것이냐?”

민혁은 몰랐지만, 그가 말했던 ‘하남성’은 명(明)이 건국된 이후의 지명이었고, 원(元) 황실이 건재한 지금에는 ‘하남강북행성’이라고 해야 맞았다.

하지만, 흔히들 이를 줄여 ‘하남행성’ 혹은 ‘하남성’이라고도 했기에 수화는 그의 물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옵니다.”

대략적인 정보를 알아낸 민혁은 일단 부딪쳐 보겠다는 생각으로 수화에게 명을 내렸다.

“내 옷을 가져오너라.”

그 말에 수화의 고개가 발딱 쳐들어졌다.

“벌써 가시려는 것이옵니까?”

“그래야겠다.”

“어찌…….”

수화는 대공자의 변화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지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대꾸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자 수화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아까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입고는 그의 의복을 챙기기 시작했다.

“준비되었사옵니다.”

수화의 말에 민혁은 침대에서 나와 수화의 앞에 섰다. 수화는 매우 익숙한 솜씨로 그가 옷 입는 것을 시중들었다.

의관의 정제를 마치자 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끝까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수화는 이제 포기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문장천(西門長天) 대공자님이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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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 @HAANSERO


작가의말

링크를 이곳에서 연재하니 외전도 제대로 연재해야겠다는 생각에 1편부터 손보아 다시 올립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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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1화 출행(出行) +2 15.06.26 4,357 114 11쪽
20 제20화 창허무극검(蒼虛無極劍) +6 15.06.19 4,510 113 13쪽
19 제19화 귀가(歸家) +6 15.06.12 4,518 129 12쪽
18 제18화 오행지(五行指) +3 15.06.05 4,475 104 12쪽
17 제17화 초청(招請) +6 15.05.29 4,972 125 12쪽
16 제16화 조그만 기연(奇緣) +6 15.05.23 5,411 131 13쪽
15 제15화 무당 입문(武當 入門) +6 15.03.07 5,588 154 13쪽
14 제14화 아! 장삼풍(張三豐) +4 15.02.20 5,563 162 11쪽
13 제13화 태화산(太和山) +5 15.02.17 9,521 154 11쪽
12 제12화 소림승 무강(少林僧 無疆) +5 15.01.27 5,933 170 13쪽
11 제11화 협의지심(俠義之心) +3 15.01.25 6,510 170 13쪽
10 제10화 무당행(武當行) +4 15.01.24 6,456 172 11쪽
9 제9화 수검(受劍) +4 15.01.19 6,967 192 13쪽
8 제8화 결행(決行) +3 15.01.18 7,341 204 13쪽
7 제7화 설득(說得) +4 15.01.16 7,140 193 12쪽
6 제6화 출관(出關) +5 15.01.15 7,264 18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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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화 세가풍운(世家風雲) +6 15.01.06 8,124 243 13쪽
3 제3화 폐관 수련 +4 15.01.05 7,699 222 14쪽
2 제2화 서문세가(西門世家) +5 15.01.04 8,766 222 11쪽
» 제1화 새로운 링크 +7 15.01.03 10,163 19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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