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종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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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로
작품등록일 :
2012.09.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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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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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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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설득(說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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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아연이 집무실로 들어왔을 때 서문전은 서문장천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직접 보고 나서야 아연의 곁에 서문장천도 있음을 발견하고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불과 석 달의 폐관으로 자신의 이목마저 속일 수 있는 고수가 된 것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장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장천은 마치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순간 그는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암암리에 내기(內氣)를 모은 뒤 장천의 모습을 한 자를 향하여 전력을 다해 일장을 쏘아 냈다. 하지만, 그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일장을 이형환위(移形換位: 잔상으로만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위치를 이동하는 보법)로 간단히 피해 버렸다.

‘이형환위라니…….’

불과 석 달 전만 하더라도 평범한 보법조차 서툴렀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폐관 수련 단 삼 개월 만에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는 이형환위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언하건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기척마저 숨겨 준비했던 자신의 공격을 마치 미리 알았다는 듯 피해 내는 것 하며, 아연과 함께 방에 들어올 때 자신이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점 등, 모든 정황이 눈앞에 서 있는 사내가 자신의 아들 장천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서문전은 잔뜩 얼굴을 굳힌 채 자신과는 다르게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서 있는 장천을 바라보았다. 누구냐고 재차 물었음에도 사내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장천이 입을 열었다.

“소자는 아버님의 아들, 서문장천이옵니다.”

그 말에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 말을 나보러 믿으란 말이냐?”

그러자 장천이 곤혹스러워하며 되물었다.

“그럼 어찌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가짜라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서문전은 혼란스러웠다. 정황으로 보아 도저히 장천일 수가 없는데 당사자는 장천이라 주장하니 자칫 잘못했다가는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라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그는 장천을 향해 명하듯 말했다.

“옷을 벗어 보아라.”

장천에게는 어린 날 아우 창천과 대련을 하다가 생겼던 상처가 있었다. 작지 않았던 상처라 짙게 흉이 남았고, 만약 눈앞의 사내가 장천이라면 그 흉터로 사실 여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옷을 말입니까?”

“그래.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장천은 그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그동안의 수련으로 다 낡아 버린 감색 무복을 훌훌 벗었다.

조금의 군살도 없는 훌륭한 몸. 술과 쾌락에 찌들었던 삼 개월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장천의 몸이 드러나자 가장 놀란 사람은 장천의 시중을 들던 아연이었다.

앗!

아연의 경탄성에 장천은 시선을 돌려 아연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아연은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사내의 벗은 몸에는 그의 짐작과 달리 장천에게 있던 흉터가 그대로 있었다. 서문전은 얼굴을 찌푸리며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설마 흉터까지 그대로 흉내를 냈단 말인가? 갓 입은 상처도 아니고 오래된 흉터를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누군가 서문전의 집무실로 뛰어들었다.

“가주!”

들어선 자는 장천을 데려가기 위해 멀리 무당파에서 온 무당파의 2대 제자 백영(柏英)이었다. 아마도 가주가 문을 부수는 소리를 듣고 변고가 발생한 것으로 여겨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쫓아온 듯싶었다.

부서진 문을 넘어 집무실로 들어선 백영의 얼굴은 의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서문세가의 가장 심처(深處)라 할 수 있는 가주 집무실의 문은 산산이 부서져 휑하니 뚫려 있었고, 그 입구에는 남자 하나가 웃통을 벗은 채 서 있는 상황.

백영은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지 도호(道呼)조차 잊고 서문전을 향해 물었다.

“가주.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서문전은 그런 백영을 향해 침착하게 대꾸했다.

“진정하시오.”

서문전의 말소리가 차분해서였을까. 백영은 이내 도호를 읊조렸다.

“무량수불!”

분위기가 진정되자 서문전이 장천을 향해 하나의 제안을 했다.

“네 실력이 뛰어나 감히 대적할 수 없으니 살펴보기 위해 잠시 제압하겠다. 따르겠느냐?”

서문전의 말에 장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장천의 대답에 서문전은 백영을 향해 부탁의 말을 건넸다.

“백영 도장. 도장께서 장천의 마혈(痲穴: 인체의 혈도 중 내가 진력을 집어넣으면 온몸이 마비되는 혈도)을 제압해 주시오.”

그러자 백영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청년이 장천? 마혈을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서문전의 말투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백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웃통을 벗고 있는 청년에게 다가가 천주혈(天柱穴: 목 뒤 양쪽에 있는 혈도)과 거골혈(巨骨穴: 견갑골과 양팔의 뼈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혈도) 등을 차례로 점혈(點穴: 혈도를 짚음)했다.

백영이 점혈을 마치고 서문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서문전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 나와 장천의 앞에 섰다.

장천은 그런 서문전을 바라보았으나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적의(敵意)나, 하다못해 경계의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문전은 장천이 상처를 입었을 때 누차 장천의 상처를 살폈기에 상처의 모양이나 크기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살피고 또 살펴도 그때의 상처 그대로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아무리 보아도 장천이 확실한데……. 장천이라기에는 너무나 무공이 뛰어나지 않은가.’

그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청년을 장천이라 단정 짓기에는 터무니없이 무공이 강했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청년의 몸에 남아 있는 흉터 자국이 장천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고민에 빠져 있자 지켜보던 백영이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가주, 이 청년이 장천입니까?”

상처를 살피던 서문전은 몸을 일으키며 백영에게 대답했다.

“글쎄 말이오. 본 가주도 알고 싶을 뿐이오.”

백영은 가주의 대답에 더욱더 혼란스러워지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장천이 말했다.

“아직도 믿지 못하십니까?”

서문전의 마음은 반반이었다. 장천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장천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너라면 믿을 수 있겠느냐?”

서문전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서문전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집무용 탁자로 돌아와 앉았다. 모두의 시선은 서문전을 향해 있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결말이 나느냐에 따라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초지종을 말해 보거라.”

서문전의 마음이 믿는 쪽으로 기울었는지 장천으로 하여금 연유를 설명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자 장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

“청화루에서 밤을 지새웠던 그날, 소자는 꿈을 꾸었습니다.”

뜬금없이 꿈 얘기를 하자 서문전은 제지하려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장천은 서문전이 뭐라 하려다가 멈추자 그 의미를 알아채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색목인이 꿈에 나와 심법 하나와 검법 하나를 내밀며 무공을 배우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느냐?”

서문전이 궁금했는지 대뜸 물었다.

“그래서 소자는 가전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 배우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무당파의 백영 도장은 물론 염 총관이나 무공을 모르는 아연까지도 장천이 하는 신비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장천은 입맛을 다시더니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노인은……. 아, 그 색목인이 노인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고금 제일의 무공이 사장(死藏)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고금 제일의 무공?”

천하에 고금 제일의 무공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세월이 흐를수록 무공은 끊임없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고강한 무공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파해(破解) 되기 마련이고, 파해 무공이 있는 이상 그 위력도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 지금까지의 무공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무공을 창안했는데 누구도 익히지 못해 배울 사람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으나 끝내 계승자를 찾지 못하고 결국 우화등선(羽化登仙)하게 되었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흥미진진했다. 장천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야기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서문전이 다급하게 묻자 장천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노인은 결국 모든 힘을 쏟아 자신의 무공을 담은 염체(念體)를 만들어 천하를 돌아다니도록 했고, 그 염체가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자를 찾아내면 스스로 꿈으로 현신(現身)하여 가르쳐 주도록 하였답니다.”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서문전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염체가 선택한 대상이 바로 너란 말이냐?”

장천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다.

“그렇습니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오!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지만 꿈속에서 무공을 전수받았다는 말에 다들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소자가 수락하자 노인은 기뻐하며 모든 무공을 강제로 전해 주었습니다.”

“강제로?”

장천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노인이 소자에게 알려 주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서문전은 기뻐하다 퍼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장천의 안색이 절대 밝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냐? 그 사실이?”

“그것이……. 꿈을 통해 무공을 전하기 위해서는 기억 일부분을 지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면 깨고 나서 잊히기에 기존의 기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무공에 대한 기억을 각인시켜야만 깨고 나서도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허…….”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에 다들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럼……. 그럼 네 기억이 사라졌다는 말이냐?”

서문전의 물음에 장천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소자는 아버님이신 가주님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런…….”

장천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습니다. 칠 성(칠십 퍼센트) 수준의 무명 심법으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내공을 얻었고, 전격검이라는 삼 초 검식 또한 그 위력이 적지 않으니 안타까워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천의 말에 서문전이 아까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럼 아까 네가 보여 준 이형환위는 순전히 내공의 힘이었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무공 중에 보법이나 신법은 없었으니까요.”

그 말에 서문전이 다시 물었다.

“도대체 내공이 얼마나 되면 보법도 모르면서 이형환위를 펼칠 수 있다는 말이냐?”

서문전의 말에 장천은 백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기에는 껄끄럽다는 의사 표시. 백영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도호를 읊었다.

“무량수불.”

서문전 역시 그런 장천의 마음을 알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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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1화 출행(出行) +2 15.06.26 4,357 1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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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6화 조그만 기연(奇緣) +6 15.05.23 5,411 131 13쪽
15 제15화 무당 입문(武當 入門) +6 15.03.07 5,588 154 13쪽
14 제14화 아! 장삼풍(張三豐) +4 15.02.20 5,563 162 11쪽
13 제13화 태화산(太和山) +5 15.02.17 9,522 154 11쪽
12 제12화 소림승 무강(少林僧 無疆) +5 15.01.27 5,934 170 13쪽
11 제11화 협의지심(俠義之心) +3 15.01.25 6,510 170 13쪽
10 제10화 무당행(武當行) +4 15.01.24 6,456 172 11쪽
9 제9화 수검(受劍) +4 15.01.19 6,967 192 13쪽
8 제8화 결행(決行) +3 15.01.18 7,341 204 13쪽
» 제7화 설득(說得) +4 15.01.16 7,141 193 12쪽
6 제6화 출관(出關) +5 15.01.15 7,264 187 11쪽
5 제5화 가주의 결심 +6 15.01.13 6,865 189 11쪽
4 제4화 세가풍운(世家風雲) +6 15.01.06 8,124 243 13쪽
3 제3화 폐관 수련 +4 15.01.05 7,699 222 14쪽
2 제2화 서문세가(西門世家) +5 15.01.04 8,766 2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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