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종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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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로
작품등록일 :
2012.09.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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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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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제운종(梯雲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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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진짜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의례적으로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산파의 천 장로는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댔다.

“이제 고작 반년 조금 더 됐을 뿐입니다.”

그의 대답에 천 장로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여유가 흘렀다. 장 진인의 혁혁한 위명 때문에 무당파라고 하면 늘 한 수 접어주었던 화산파가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반년이라면 무림의 상식으로 고작해야 심법이나 간신히 익힐 수 있는 기간이었다. 무공 수련을 멀리한 채 주색에 빠졌던 서문장천이 어떠한 연유로 장 진인의 적전 제자가 되었다 하여도 제대로 사사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터, 천 장로의 눈에는 서문장천은 이제 갓 무공에 입문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무림에서 장 진인께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지. 아마 무림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장 진인께 일 초 반 식만이라도 가르침을 받길 원할 걸세.”

천 장로의 말에 공감을 하는지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장 진인께 무공을 사사한다는 건 대단한 영광이자 기회라 할 수 있네. 서문 공자가 장 진인으로부터 무공을 사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록 지금은 무공이 일천할지라도, 아마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서문 공자의 위명이 전 무림을 떨치게 될 걸세.”

천 장로는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 덕분인지 그에게 덕담을 건넸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민혁은 서문장천의 무공이 일천할 것이라 아예 단정 지은 채 이야기하는 천 장로의 언사에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겸양의 말로 화답했다.

하기야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서문장천이 장 진인도 인정할 만한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을 그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그러니 천 장로가 그리 단정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무당파는 당당히 무림 오대문파의 하나. 무공의 고하(高下)를 떠나 무당파의 대표라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게.”

민혁이 슬쩍 창천을 보니 창천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은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민혁으로서는 무당파의 대표이자 무림의 후배로서 해야 할 도리는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천 선배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진신 내공이 이 갑자를 넘어선 그의 경지를, 채 일 갑자도 되지 않는 천 장로가 알아보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 서문장천의 모습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백면서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내공이 깊어 갈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기세는 점차 부드럽고 온화해졌다. 특히 무당파의 대표 심법인 태극신공은 그 정도가 다른 심법보다 훨씬 더했다.

도가(道家) 내공 중에서도 부드러움에 있어서 그 수위를 다투는 태극신공은 수련의 깊이가 더해 갈수록 일반적인 내공 고수들이 갖는 날카로운 기세는 사라지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치 대해(大海)처럼 진중한 안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태극신공을 극성으로 연성한 민혁의 기세는 하수가 느끼기에 한마디로 유약함, 그 자체였다.

 


 

주문했던 식사가 나오고 일행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주루에는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나마 듬성듬성 빈자리가 남아 있었던 이 층에도 어느덧 빈자리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찼다.

거기에 비례해 소란스러움도 갈수록 심해졌다. 이제 이 층도 일 층 못지않게 시끄러워져 목청을 높이지 않고는 옆 사람과 대화하기도 어려웠다.

민혁은 최대한 청각을 막았음에도 오랜만에 겪는 소란스러움에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이었다.

“화산파는 오늘 소림에 오를 생각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천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황으로 보아 아마 오늘 이 마을에서 숙소를 잡기는 어려울 듯하네. 늦더라도 소림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네.”

천 장로의 대답에 민혁은 창천을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의견을 밝혔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천 장로는 이미 어두워진 창밖을 보더니 대꾸했다.

“그게 좋겠군. 자네도 우리와 함께 가겠는가?”

민혁은 창천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창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예.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천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일어나도록 하지.”

제일 큰 좌석을 차지했던 화산파가 일어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며 잠시 조용해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주루를 나서자 무슨 생각인지 천 장로가 그에게 물었다.

“혹시 말을 타고 왔나?”

민혁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사실대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의 말에 천 장로가 중얼거렸다.

“걸어왔나 보군.”

그러더니 대뜸 다시 물었다.

“우리는 경공으로 갈 생각인데……. 경공은 할 줄 알겠지?”

굳이 무당파의 경신법이 아니더라도 무가(武家)인 서문세가의 자제들이니 경공은 배웠을 것이라 여기는 듯싶었다.

민혁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괘념치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의 대답이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서인지 천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말했다.

“마을을 벗어나면 소림까지 경공으로 간다!”

“예!”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아 일행이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을 벗어나게 되었다.

천 장로는 한 차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장천에게 말했다.

“우리가 앞장서도록 하지.”

천 장로는 나름대로 서문 형제를 배려하려는 생각에 장천에게 앞장서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 앞장서야 뒤로 쳐져 일행으로부터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 수 있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민혁은 어찌 됐건 상관이 없었기에 순순히 천 장로의 제안을 따랐다.

그가 승낙하자 천 장로는 천천히 소림사가 위치한 소실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따라 움직이자 천 장로는 마치 따라와 보라는 듯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그도 곧장 제운종을 사용해 천 장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자 천 장로는 흘끔 그의 신법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제운종입니다.”

그가 신법을 펼치는 도중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천 장로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섰다.

“자네? 말할 수 있나?”

웬만한 내공 수준으로는 신법을 펼치며 입을 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비록 서문세가의 대공자라 하지만 ‘서문세가의 망나니’로 불명예스러운 명성을 무림에 떨쳤던 장천이 몇 개월의 수련으로 그 수준까지 내공을 수련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한 듯싶었다.

천 장로를 따라서 멈춘 민혁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먼 길을 간다고 사부님께서 제 경공에 공을 많이 들이셨습니다.”

민혁의 대답에도 천 장로는 지금 이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운종이 무림 일절이라고 하더니만 정말 그런가 보군.”

천 장로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민혁의 경신법이 아주 적은 내공만으로도 펼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제운종이라서 일천한 내공으로도 경공을 펼치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민혁도 한마디를 덧붙여 천 장로의 생각에 힘을 보태 주었다.

“속도는 몰라도 효율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능히 무림 일절(一絶)이라 불릴 수 있지요.”

민혁의 설명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천 장로는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웃으며 제안을 했다.

“속도를 더 높여도 되겠나?”

민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천 장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렸던 속도는 창천과 함께 경쟁하듯 경공을 펼쳤던 것의 반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나 창천이나 얼마든지 속도를 높일 여력이 있었다.

그의 대답에 천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경공을 발휘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탓에 눈을 뜨기 어려울 지경이 되도록 속도를 높였지만 그는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같이 달리던 천 장로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 장로는 거기서 멈출 수 없다는 듯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의 초감각에 창천의 기척은 여전히 뒤에 붙어 있었지만, 근근이 따라왔던 화산파 제자들은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천 선배님. 화산파 제자들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의 말에 천 장로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도를 늦췄다.

“제운종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군. 그런 속도에서도 입을 열 수 있다니 말일세.”

천 장로는 서문장천의 실력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제운종이라는 무당의 경신법에 대해 놀란 모습이었다. 그만큼 서문장천이란 이름이 주는 선입관이 나빴다는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초감각에 뒤쳐졌던 화산파 제자들이 다시금 따라붙은 것이 느껴졌다.

“다시 가도 될 듯합니다.”

천 장로도 이미 느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당한 빠르기로 경공을 펼쳤다. 아마도 화산파 문도들과 숭산까지 올 때 달렸던 속도인 듯싶었다.

 


 

쉬지도 않고 경쟁적으로 경공을 펼친 덕택에 한 시진(두 시간)도 되지 않아 소림사의 산문(山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 장로와 민혁, 그리고 뒤를 이어 창천과 화산파 제자들이 하나둘 도착해 걸음을 멈추자 산문을 지키던 승려들이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아미타불. 소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 장로는 승려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화산파의 천진행입니다.”

화산파라는 말에 승려들은 더욱 공손하게 합장하며 다시 인사를 올렸다. 민혁도 그들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자신을 소개했다.

“소생은 무당파의 서문장천이고, 이쪽은 제 아우 서문세가의 창천입니다.”

서문장천의 이름을 들은 승려는 인사도 잊고 놀란 눈으로 장천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서문 공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방장(方丈)께서 공자가 오시기를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천 장로는 승려의 태도에 얼굴이 굳어졌다. 화산파의 장로인 자신에게는 담담한 태도로 인사를 올렸던 승려가 서문장천이라는 이름에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 보면 화산파에 대한 모욕이라 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무당파 장 진인의 적전 제자라고 하여도 ‘서문세가의 망나니’라는 악명을 떨쳤던 서문장천을 대하는 태도가 화산파의 장로인 자신을 대하는 것보다 한층 공경스럽다는 것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러건 말건 그 승려는 옆에 있던 승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강. 서문 공자를 방장께 안내해 드리도록 하게.”

“예, 사형.”

아강이라 불린 승려는 장천을 향해 합장을 하며 청했다.

“아미타불. 따라 오시지요, 서문 공자.”

민혁은 잠깐이나마 여정을 함께 했던 천 장로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방장께서 따로 보고자 하시나 봅니다. 소생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천 장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보도록 하세.”

“예, 그럼.”

민혁은 창천에게도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 아강을 따라 산문을 올랐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천 장로는 의문을 참을 수 없었는지 승려를 향해 물었다.

“방장께서 어찌 서문 공자를 찾으시는 겁니까?”

승려는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합장을 한 채 대답했다.

“그 이유는 이번 회합이 서문 공자로 말미암아 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죠.”

듣지 아니 한만 못했다. 천 장로는 승려로부터 대답을 들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서문 공자로 말미암아 열린 회합이라니.”

천 장로가 알기로는 이번 회합은 무림의 의기(義氣)를 되살리고 협(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대회였다. 승려는 천 장로의 의문에 찬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서문 공자의 협행에 소림도 깨달음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천 장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승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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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7화 신기의 비접(飛蝶) +5 15.09.12 2,925 84 13쪽
26 제26화 비연 북미연(飛燕 北美燕) +2 15.09.05 3,194 75 11쪽
25 제25화 소림의 계획 +7 15.08.29 3,249 79 12쪽
24 제24화 대환단(大還丹) +7 15.07.25 3,676 97 11쪽
» 제23화 제운종(梯雲縱) +4 15.07.17 3,793 98 12쪽
22 제22화 화산파(華山派) +3 15.07.10 3,887 99 13쪽
21 제21화 출행(出行) +2 15.06.26 4,357 114 11쪽
20 제20화 창허무극검(蒼虛無極劍) +6 15.06.19 4,510 113 13쪽
19 제19화 귀가(歸家) +6 15.06.12 4,519 129 12쪽
18 제18화 오행지(五行指) +3 15.06.05 4,475 104 12쪽
17 제17화 초청(招請) +6 15.05.29 4,973 125 12쪽
16 제16화 조그만 기연(奇緣) +6 15.05.23 5,412 131 13쪽
15 제15화 무당 입문(武當 入門) +6 15.03.07 5,589 154 13쪽
14 제14화 아! 장삼풍(張三豐) +4 15.02.20 5,563 162 11쪽
13 제13화 태화산(太和山) +5 15.02.17 9,522 154 11쪽
12 제12화 소림승 무강(少林僧 無疆) +5 15.01.27 5,934 170 13쪽
11 제11화 협의지심(俠義之心) +3 15.01.25 6,510 170 13쪽
10 제10화 무당행(武當行) +4 15.01.24 6,456 172 11쪽
9 제9화 수검(受劍) +4 15.01.19 6,967 192 13쪽
8 제8화 결행(決行) +3 15.01.18 7,341 204 13쪽
7 제7화 설득(說得) +4 15.01.16 7,141 193 12쪽
6 제6화 출관(出關) +5 15.01.15 7,264 187 11쪽
5 제5화 가주의 결심 +6 15.01.13 6,865 189 11쪽
4 제4화 세가풍운(世家風雲) +6 15.01.06 8,124 243 13쪽
3 제3화 폐관 수련 +4 15.01.05 7,699 222 14쪽
2 제2화 서문세가(西門世家) +5 15.01.04 8,766 2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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