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종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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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로
작품등록일 :
2012.09.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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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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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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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비연 북미연(飛燕 北美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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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면사녀가 다가오자 민혁은 그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이 시대 여인들보다는 약간 큰 키에 움직임은 바람처럼 조용했다. 옆에 서 있던 창천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이 형수님 되실 분입니까?”

민혁 역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런 사이 면사녀는 그의 앞에 섰다. 면사녀는 탐색이라도 하려는 듯 아무 말 없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만 보았다.

멋쩍어진 민혁이 먼저 물었다.

“혹시 비연(飛燕) 소저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면사녀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북혼 세가의 북미연(北美燕)이에요.”

그런 비연을 보며 민혁은 생각했다.

‘아라비아의 공주도 아니고 두꺼운 면사를 쓴 여인과 상견례라니.’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아랍 쪽 소개팅 사이트가 떠올랐다. 그곳에는 여자들의 사진이 모두 부르카(Burka : 무슬림 여성이 입는 두건이 포함된 옷의 일종으로 머리부터 발목까지 전신을 모두 가림)를 입은 채로 소개되어, 소개팅 사이트가 아니라 마치 부르카 판매 사이트처럼 보여 마구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북 소저였군요. 이쪽은 제 아우 창천입니다.”

그러자 창천은 붙임성 있게 인사를 올렸다.

“서문창천입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창천은 ‘형수님’이란 말은 붙이지 않았다. 비연은 창천을 향해서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다시 시선을 장천에게로 돌렸다.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더니, 서문 공자를 보니 그 말이 딱 맞음을 알겠군요.”

그 말에 민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 말씀,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비연은 민혁의 말에 대뜸 물었다.

“소림에서 전한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뜬금없는 질문에 민혁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되물었다.

“소림에서 전한 이야기라니요?”

“소림의 대사님들께서 본 세가에 와서 전하기를 서문 공자께서 몇백에 달하는 도적떼를 홀로 상대해 주살(誅殺)하고 두목을 사로잡았다고 하더군요.”

비연의 친절한 설명에 민혁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몇백은 아니고 백여 명쯤 되었습니다. 모두 무공을 익히지 못한 자들이라 상대하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고 말이죠. 두목은 재빠르게 도망치는 바람에 놓칠 뻔했는데 운 좋게 잡았을 뿐입니다.”

민혁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비연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이었군요. 사실 서문 공자에 대한 소문……. 하고 소림 대사님들의 말씀이 너무 달라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했었습니다.”

비연이 소문이란 말을 하며 말꼬리를 흐리자 민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인터넷도 없는 동네에 웬 소문이 그리 넓게 퍼진 거야? 도대체 모르는 사람이 없네.’

“그래도 무가(武家)의 자제로서 기본은 합니다.”

그 말에 비연은 창천을 흘끔 본다.

“오늘 비무(比武) 대회에는 두 분 모두 참가하시겠지요?”

“소생은 무당파를 대표해 나갈 테고, 아우 창천은 서문세가를 대표해 나갈 겁니다. 비연 소저도 북혼 세가를 대표해 나오실 테지요?”

“예, 아마도요.”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이거 참 곤혹스럽군요. 여자 앞에 기꺼이 무릎은 꿇을 수 있어도, 여자와 겨룰 자신은 없는 데 말이에요.”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니…….”

비연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금 되뇌다가 결국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이익!

그러더니 단단히 토라진 듯 차가운 음성으로 한마디 내뱉고는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비무대(比武臺)에서 보도록 하지요, 서문 공자.”

비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창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이다가 그에게 물었다.

“형님. 형수님께서 왜 저리 역정을 내시는 것입니까? 혹시 여자와 겨룰 수 없다는 형님의 말씀에 그런 것입니까?”

민혁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여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고 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직도 민혁의 말에 담긴 뜻을 짐작조차 못하는 창천을 향해 민혁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휴우. 너도 무공에만 목을 매지 말고 여자도 좀 만나고 그래야겠다.”

“예?”

민혁은 그런 창천의 반응을 무시하고 창천을 잡아끌었다.

“가자. 일찌감치 가야 좋은 자리를 맡지.”

“예? 아. 예.”

창천은 그가 잡아끄는 대로 이끌려 대전을 나섰다.

“서문 공자.”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대전을 나서자마자 남명 대사가 불러 세웠다.

“방장 대사님.”

남명은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그에게 말했다.

“서문 공자는 소승과 함께 가도록 하세. 아, 물론 창천 공자도 말이야.”

그가 생각하기에 남명 대사와 함께 움직이는 건 손해 볼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의 대답에 남명 대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이끌었다.

“자. 함께 가세.”

 


 

비무 대회가 치러질 대연무장은 어느새 중앙에 커다랗게 비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단상이 설치되어 차일과 함께 수십 개의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이미 각 문파의 수장들이 자리를 차지한 상태여서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일 앞줄은 모두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남명 대사 등이 앉을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남명 대사는 단상 제일 앞쪽으로 걸어가 민혁 등을 옆에 앉히고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남명 대사가 도착하자 곧장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의협단 단원 선출을 위한 비무 대회를 개최하겠소이다.”

익숙한 느낌에 소리친 사람을 보니 도적을 데려갔던 무강 대사였다. 단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각파의 참가 예정자는 준비된 이름을 쓴 목패를 받아 앞에 보이는 함에 넣어 주시기 바라오.”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단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진행을 맡은 승려에게 자신의 문파와 이름을 말하고는 목패를 받아 함에 넣었다.

함은 두 개가 준비되었는데, 무당파의 서문장천처럼 혼자 참가한 문파는 백색으로 된 함에 목패를 넣도록 했고, 두 사람을 내보낸 문파는 각기 다른 함에 넣도록 했다.

모든 참가자의 등록이 끝나자 그 숫자를 집계한 승려들이 부지런히 대진표를 그렸다. 참석한 문파는 예순한 개 문파였고, 참석자는 백오 명이나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문파가 두 명의 참석자를 내보냈다는 말과 같았다. 한 명을 내보낸 문파는 의협단의 자격에 맞는 제자가 없거나 민혁처럼 아예 혼자 참석한 경우였다.

잠시 후, 단상 앞 목판에 추첨으로 작성된 대진표가 나붙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누구와 겨루게 되었는지 궁금했기에 관심을 갖고 대진표를 살폈다. 대진표를 확인한 사람들은 때로는 탄식을, 때로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파가 단 한 번만 승리하더라도 의협단원을 배출할 수 있었기에 크게 낙심하는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는 몇 개 문파는 싸우지 않고도 다음 회전에 올라선 상황이라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창천 역시 추첨의 행운에 힘입어 부전승으로 다음 회전에 안착한 상태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힘을 아끼게 되어 다행이구나.”

창천으로부터 추첨 결과를 전해 들은 민혁은 창천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섯 번 싸우는 것과 일곱 번 싸우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으니까요.”

창천은 은근슬쩍 의협단주 자리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다.

“의협단주가 되고 싶은 게냐?”

그의 물음에 창천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하자면, 의협단주란 자리보다도 가문의 영예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창천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서문장천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가문을 더욱 빛낼 것 같은 창천을 대공자로 올리기 위해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타락과 방종의 길로 들어섰던 것 아니던가. 그만큼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문의 영예, 문파의 영예는 개인의 목숨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 입장이 애매모호하구나. 널 이기자니 가문이 울고, 네게 지자니 무당파의 명예가 걸려 있으니 말이다.”

“형님은 그저 최선을 다 하시면 되는 겁니다. 이기면 문파의 영예가 빛날 테고, 지면 가문의 영예가 빛날 테니까요.”

민혁은 창천의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같은 일을 놓고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새삼 느낀 것이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민혁의 말에 창천은 겸연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다시 무강 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진이 확정되어 지금부터 마흔한 번의 일차 회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무강 대사의 말에 중인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원 나라가 무림의 문파를 탄압하기 시작한 이래 수준 높은 비무를 볼 기회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모험에 가까운 소림의 행사에 모두들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첫 번째 대결은…….”

무강 대사의 진행에 따라 첫 번째 비무자가 비무대에 올라오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른 살 이하로 나이를 제한해서인지 민혁의 눈에 차는 실력을 가진 자는 드물었다. 대부분 이십대 중후반인 참가자들은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박투(搏鬪)를 계속했다.

원 조정의 병장기 휴대 금지 조치 때문인지 도검(刀劍)을 사용하는 참가자는 보이지 않고 모든 대결이 적수공권으로만 이루어졌다. 한탄스러운 마음에 민혁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남명 대사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찌하여 그런 한숨을 쉬는 것이오?”

민혁은 남명 대사를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병기의 제왕이라는 검을 사용한 검법이나 도법을 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습니다.”

남명 대사 역시 공감이 가는지 민혁과 비슷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병장기를 소지했다가는 반역으로 몰려 문파의 존망까지 위협받는 현실에서 누구도 감히 병장기를 소지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오.”

원 황실은 병장기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집에서 쓰는 식칼까지도 몇 집에 하나씩만 갖고 공동으로 사용하게 할 만큼 무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원 황실은 한족(漢族)을 주축으로 하는 무림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의 말에 남명 대사는 가볍게 불호를 외우고 다시 시선을 비무대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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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화 비연 북미연(飛燕 北美燕) +2 15.09.05 3,195 75 11쪽
25 제25화 소림의 계획 +7 15.08.29 3,249 79 12쪽
24 제24화 대환단(大還丹) +7 15.07.25 3,676 97 11쪽
23 제23화 제운종(梯雲縱) +4 15.07.17 3,793 98 12쪽
22 제22화 화산파(華山派) +3 15.07.10 3,887 99 13쪽
21 제21화 출행(出行) +2 15.06.26 4,357 114 11쪽
20 제20화 창허무극검(蒼虛無極劍) +6 15.06.19 4,510 113 13쪽
19 제19화 귀가(歸家) +6 15.06.12 4,519 129 12쪽
18 제18화 오행지(五行指) +3 15.06.05 4,475 104 12쪽
17 제17화 초청(招請) +6 15.05.29 4,973 125 12쪽
16 제16화 조그만 기연(奇緣) +6 15.05.23 5,412 131 13쪽
15 제15화 무당 입문(武當 入門) +6 15.03.07 5,589 154 13쪽
14 제14화 아! 장삼풍(張三豐) +4 15.02.20 5,563 162 11쪽
13 제13화 태화산(太和山) +5 15.02.17 9,522 154 11쪽
12 제12화 소림승 무강(少林僧 無疆) +5 15.01.27 5,934 170 13쪽
11 제11화 협의지심(俠義之心) +3 15.01.25 6,510 170 13쪽
10 제10화 무당행(武當行) +4 15.01.24 6,456 172 11쪽
9 제9화 수검(受劍) +4 15.01.19 6,967 192 13쪽
8 제8화 결행(決行) +3 15.01.18 7,341 204 13쪽
7 제7화 설득(說得) +4 15.01.16 7,141 193 12쪽
6 제6화 출관(出關) +5 15.01.15 7,264 187 11쪽
5 제5화 가주의 결심 +6 15.01.13 6,865 189 11쪽
4 제4화 세가풍운(世家風雲) +6 15.01.06 8,125 243 13쪽
3 제3화 폐관 수련 +4 15.01.05 7,699 222 14쪽
2 제2화 서문세가(西門世家) +5 15.01.04 8,766 2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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